'민족'은 과연 하나인가?
코리언들의 복수의 정체성 이해하고 인정해야
    2015년 04월 14일 10: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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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화에 따라 인간들이 이루는 집단들도 진화됩니다. 전통시대 말기의 조선인들이 이루는 집단들의 큰 틀은 아마도 세 가지였습니다. 마을/씨족/학파계열, 국가, 그리고는 유교적으로 이해되는 “삼강오륜의 도리를 지키는 인간”이었을 것입니다.

후자를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동아시아 문화권의 일원”이 되겠지만, 그 당시에야 유럽인들이나 동아시아인들이나 자신들의 문화권을 “세계 유일의 진짜 문명”으로 절대화했지, “하나의 문화권”이라고 상대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컨대 최익현 선생이라는 “마지막 선비” 중의 한 분은 1차적으로 경주 최씨 출신의 화서 이항로 선생의 문하생이었고, 2차적으로는 조선국의 충신이었고, 동시에는 짐승 같은 양왜들이 쳐들어오는 상황에서 삼강오륜인을 지켜내려는 도리 있는 인간, 즉 동아시아의 진정한 문명인이었습니다.

이런 복수의 정체성들은 상호 충돌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씨족/지역/학파 출신들을 (그러나 매우 차별적으로) 등용시켜주는 조선국의 국시가 성리학이었기에 말입니다.

최익현이 짐승 취급하는 양왜로부터 골고루 공부했지만, 그러면서도 그 일기에서 최익현을 “최충신”이라고 높여주고 그 충성을 칭송한 윤치호 같은 초기 (우파)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최익현의 “3중 정체성” 중에서 유효한 것은 아마도 제1차 정체성, 즉 “가문”과 “계파”뿐이었습니다.

조선국은 눈앞에 기울어져 무너져갔으며, 그 만큼 제2차 정체성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이제 군주/사직이 아니고 언어 등 여러 가지 태생적 조건과 일본인들의 인종주의적 차별로 그 경계선이 그어진 “민족”이었습니다.

윤치호는 일찍부터 러시아보다 일본을 선택해야 한다는 유길준 등의 선배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식민지 시기에 자타가 공인하는 원로 친일파가 됐지만, 그 일기를 보면 그가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이 될 수 있다”는 내선일체 식의 환상을 품어본 적도 없습니다.

윤치호

윤치호

그에게 일본의 신도는 동화 격의 귀신 이야기이었으며 신궁 참배는 “강자가 시켜서 약자가 해야 할” 복종의 의례이었지, 그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천황을 마음으로 모신 적은 없습니다. 뭐, 본인이 모신다고 백번 이야기하고 실제로 그렇게 내면화하려 노력해도, 일본인들의 외지인에 대한 유다른 배타성으로 어차피 무의미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각의 국가 부활 희망과 집단적/문화적 자기보존, 그리고 일본인들의 인종주의적 배제로 “조선 민족”이 태어났습니다. 물론 이게 정체성의 전부도 아니었습니다. 윤치호의 제3차 정체성은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문명세계”, 즉 새로운 “중화”에 대한 소속의식이었죠. 안 그랬다면 일기를 왜 완벽한 영어로 적었겠어요?

윤치호가 친일파로 지목돼 늙은 목숨을 스스로 끊었던 1945년에는, 조선 민족/민족주의는 조선반도의 대부분의 출신자들에게는 아직도 대체로 동일했습니다. 이념적/지역적 등의 늬앙스 차이야 있었지만요.

인생의 대부분을 중국과 쏘련에서 보낸 김일성이 조선반도로 돌아오고 나서는 홍명희 등 거물 민족주의자들과 완벽한 협업체제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김천해 동지처럼 “재일”하면서 운동하신 분들도 북조선으로 가서 얼마든지 그 체제 속으로 편입될 수 있었던 것을 이를 반증합니다.

그러나 벌써 민족의 “하나됨”에 약간의 틈은 보이기도 했죠. 이북으로 파견된 쏘련파 (함북 출신) 고려인 2-3세들은, 기타 조선인들과 쉽게 섞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일상 언어는 평안도 사람들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육진 방언과 명천 방언의 범벅인 고려말이거나 러시아어이었으며, 대부분은 “조국”이라고 할 때는 쏘련을 뜻했습니다. 함북을 늘 괄시해온 조선반도 역대 정치체들의 탓이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은 다민족 국가 쏘련의 흡입력도 강했습니다.

북으로 파견된 고려인들 중에서는 방학세 등 극소수가 끝까지 남았지만, 숙청돼 감옥에서 늙어 죽어야 하는 일부 이외에는 나머지는 거의 다 쏘련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민족은 이미 “조선민족”보다는 쏘련 속의 “고려민족”이었던 셈이죠.

고려인들과 달리 월북한 남로당 당원들은 돌아갈 “조국”이라고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나름대로 배려 받았지만, 나중에 정치적 배제와 함께 이북 출신들의 “텃세”를 실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분단의 상황에서는 가면 갈수록 이북과 이남 사이의 정체성의 동일성에 균열이 심해져간 거죠.

지금은 과연 어디까지 온 것인가요? 서울에 돈 벌기 위해 오는 고려인 4-5세들에게는 한국인들은 “우리민족”이라기보다는 “Хангуки”(칸구기”)라는 타자들이죠. 그들이 “корейцы” (“코레이츠”, 조선인)이라고 이야기하면 이는 동료 고려인을 지칭합니다.

먼 친척이라 할 “Хангуки”들은 돈이 많아 좀 벌 기회를 준단 차원에서 필요한 존재이긴 하지만, 권위주의가 태심하다는 차원에서는 “비문명”으로 보이는데다가 늘 각종의 악행(임금체불 등)을 우리 “корейцы”에게 저지르는 만큼 차라리 “부정적 타자”에 가깝습니다.

고려인들 같으면 거의 전부 다 러시아어를 모어를 하는 만큼 좀 특별하지만, 대부분은 조선어의 일종인 연변말을 쓰는 중국 조선족들이나, 일어를 모어로 한다 해도 일어와 한국어의 가까움 덕에 한국어를 더 쉽게 배울 수 있는 재일조선인들도 남한인들과의 완전한 동일성을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조선족 같은 경우 특히 남한에서 극심한 차별에 시달리는 만큼 중국에 대한 정치적 소속의식은 일차적이며, 재일조선인 같은 경우에는 비록 한국 여권을 소지해도 (남성의 경우 한국 군대를 거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생활습속과 언어 등의 차이는 “외국인처럼” 느낄 만큼 강합니다. 그렇다고는 그들에게 집단정체성이 없는 것도 전혀 아닙니다. 단, 이것은 바로 동포집단, 즉 조선족 내지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이죠.

가끔가다가 “남북한 민족 동질성 회복”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회의합니다. 이건 단순히 이미 극심해진 언어 차이, 즉 수영복과 헤임옷, 스프레이와 뿌무개의 차이만도 아닙니다. 정치 소속 의식만의 차이도 아니죠. 조선시대 “삼강오륜”에 상응하는 기본적인 세계관의 차이입니다.

북조선인들은 투쟁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사회화됩니다. 이는 생존하려고 고투하는 가족일 수도 있고 미제와 사투를 벌인다는 김일성민족일 수도 있지만 좌우간 “나”의 ego보다 이와 같은 집합적 정체성은 훨씬 우선시됩니다.

남한에서는 국가를 신뢰하는 바보가 있으면 간첩으로 보일 정도고, 가족마저도 급속히 와해돼 갑니다. “돈 벌어서 부모들을 잘 모시고 싶다”는 이야기를 아직도 아주 가끔 들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남한에서는 투쟁은 개개인의 생존 사투이지, 집단적인 것이 아닙니다.

남한의 집단이란 어디까지 이해공동체인데, 북조선에서는 그것보다는 거의 태생적이다 싶은 정서공동체입니다. 물론 앞으로는 북조선의 점차적 자본화 속에서는 이런 부분들은 어느 정도 남한과 비슷해질 수도 있지만, 그 때 가서는 이미 언어, 문화적 동질성이란 찾아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통일을 절대 반대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통일로 가야 한다고 보고, 단 모두들의 인권부터 존중해주는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남북을 위시하여 세계 코리안들의 다원성, 다양성을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개화기와 식민지가 만든 동일적 조선 민족은, 지금 복수의 조선/코리안계 민족들로 나누어진 것이죠. 남한인, 북조선인, 재일 조선인, 재중 조선족, 중앙아세아/러시아 고려인, 재미 한국인…이들 사이에 연결고리들도 있지만, 연결고리만큼이나 커다란 차이들도 실재합니다.

그런 차이들, 코리안들의 복수의 정체성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인정해주어야, 약자 인권 존중 위주의 통일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통일은 단일화와 다릅니다. 통일은 일차적으로 패권적 대국들의 조선반도로 투영되는 경쟁으로부터 발생되어지는 폭력이 만든 구조들의 철훼, 즉 평화 과정과 점차적인 상호 이해, 상호 결연의 “과정”부터 의미합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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