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교육운동 방향,
    학생과 컨텐츠 중심으로
    [민경우의 교육담론] 교육에 대한 다른 접근 필요
        2015년 04월 13일 03: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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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국민학교) 6학년 실과 시간에 호주에 사는 토끼 종류를 외운 적이 있다. 진절머리를 치며 외웠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적지 않는 과목과 수업에서 학창 시절 내내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금은 다를까? 고등학교 사탐은 사회문화.법과정치.경제.윤리와사상.동아시아사.한국지리.세계지리 등으로 세분되어 있다. 학생들 논술을 봐줄 겸 위 교과서들을 살펴봤다. 내용은 30~40년 전 필자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 배웠던 내용과 거의 차이가 없다. 30~40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교과 내용도 한심했지만 왜 그렇게 세분해 놓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학원을 하다 보니 적나라한 이해관계가 보일 때가 있다. 사회과목이 저렇게까지 세분된 것 또는 수학(내가 가르치는 과목이 수학이라)에서도 불필요한 내용이 과감히 삭제되지 않는 것 모두 결국은 그것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학교 또한 사회의 일부이니 어떤 집단의 이해관계가 많이 반영되는 것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현재의 기형적인 구조는 어떤 집단의 이해가 과도하게 반영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다.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집단은 해당 과목의 교수나 교사들이다. 가령 인문사회과목의 경우 인기가 줄어들고 대학 구조조정의 목소리가 높아지니 해당 교수나 교사들이 교과에 기대어 명맥을 유지하려는 것 같다. (나중에 쓸 기회가 있겠지만 현재의 인문사회과학 대부분이 낡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대학 구조조정 중 핵심은 대학의 공공성이냐 대학의 시장화냐가 아니라 낡은 인문사회과학에 편승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는 세력을 퇴출시키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철저히 학생들이 희망과 이해관계는 배제된다.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문제이다.

    쓸데없는 과목을 배우고 이를 통해 시험을 보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수학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중1 때 작도라는 단원이 나온다. 작도 단원은 단원의 특성상 한번 그려 보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를 굳이 시험 범위로 잡아 출제하려니 기기묘묘한 문제들을 출제한다. 가르치는 입장이나 시험을 보는 입장이나 난감하기 짝이 없다. 아마 수학교과에 이를 게재할 때 학교 현장에서 직면할 문제에 대한 고려가 없었을 것이다. 교수들은 별 생각 없이 이를 수록하고 참가한 교사들은 별 고민 없이 이를 수용했을 것이다. 중1 통계 단원도 마찬가지이다.

    중1

    학생들과 함께 위 단원을 공부하고 시험을 치러본 교사면 이들 단원이 주는 스트레스와 비효율성을 알 것이다. 이런 단원이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는 그런 고민이 없거나 그런 고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피해보는 사람들(학생들)보다는 보다 영향력 있는 다른 세력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흥미 있는 사례가 있다. 광명의 한 혁신학교에서는 중1 작도의 경우 자와 컴퍼스를 가지고 작도를 해보는 것으로, 통계의 경우는 사회교과와 연관 지어 막대그래프 따위를 그려 보는 것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너무 멋지고 훌륭하다. 이를 통해 교사들은 학생들의 시험 스트레스도 덜고 작도와 통계 단원에서 의도했던 바를 보다 잘 달성할 수 있었다. (바람이 있다면 아예 이 단원을 빼도록 강력히 건의했으면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수업의 질이다. 진로 지도 교육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비인기(?) 과목의 교사들을 몇 개월의 연수를 통해 진로 지도 교사로 재배치하는 경우가 있다. 이해는 된다. 문제는 여기서도 교사, 학부모, 학생들 중 교사의 권리만이 과도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진로지도는 교육의 최전선이다. 따라서 진로지도 영역에서는 교사들 중 최정예 교사가 배치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컨텐츠의 질이 학생들의 미래를 결정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이다.

    학교나 공공기관에서 하는 진로지도 교육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바리스타, 메이크업 따위처럼 과거 실업계에서 하던 진로지도가 기본을 이룬다. 솔직히 말하면 진로 지도를 하는 교사나 강사 본인이 재교육 대상이다. 재교육을 받아야 할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그 교육이 제대로일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결정적으로는 교육운동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전교조 운동의 방향은 공무원 연금이 아니라 무너진 학교 현장을 되살리는 일 그것도 무상급식이나 체벌과 같은 제도적 문제에 앞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와 컨텐츠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사교육을 줄이자는 운동도 이해는 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컨텐츠와 질이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국 학교의 시험 문제를 모두 거둬 이를 평가해야 한다. 가령 수학에서 단순 연산 위주로 무성의하게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교사들을 찾아내고 이를 근무 평점에 반영해야 한다.

    학생들은 지금도 구구단을 외우듯 13*3.14 따위를 외운다. 학교에서 이따위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물론 이를 외워서 풀 정도로 숙련되지 않으면 문제를 풀 수 없도록 출제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 같다면 이런 문제를 출제하는 교사는 성폭력에 준하는 수준에서 처벌해야 한다고 본다.

    교사들은 자신의 고용을 걸고라도 교과 쪼개기가 아니라 교과 통합에 나서야 한다. 사회과목을 모조리 통폐합하는 것은 물론 수학과 사회, 과학과 사회 과목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려야 한다. 만약 그 과정에서 본인에게 불이익이 온다면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선생이고 교육의 진정한 공공성이다.

    내 자신의 경험, 그리고 3년여의 학원장 생활을 통해 나는 공부와 재미가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식은 인류의 본성과 직결된 매우 핵심적인 테마이다.

    학생들은 게임에 열광하듯 흥미 있고 수준 높은 강의에 열광한다. 멋진 수학 문제를 풀며 중학생들이 박수치는 광경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경이로운 지식의 세계 앞에서 그렇게 어른이 된다. 수학 시험이면 자는 게 일이던 어떤 녀석은 이번에는 몇 문제 풀었노라고 기뻐하던 모습에서 자신을 가르쳐 준 교사에 대한 강한 신뢰와 애정을 느낄 수 있다.

    21세기에 맞는 교과와 컨텐츠가 무엇인가를 고민하자.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자. 그리고 여기에서 교사나 교수들, 관료들이 문제가 된다면 그들과 맞서 싸우자. 여기에는 어떤 성역도 있을 수 없고 어떤 권위도 통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교육운동의 방향이다.

    필자소개
    민경우
    전 범민련 사무처장이었고, 현재는 의견공동체 ‘대안과 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서울 금천지역에서 ‘교육생협’을 지향하면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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