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대신 사람 빌려보는 도서관(하)
    [나의 현장]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되는 짜릿함
        2012년 07월 16일 01: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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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먼라이브러리 ‘숨쉬는 도서관’, 이런 점이 좋다

    숨쉬는 도서관은 일종의 ‘롤플레잉’(role-playing, 역할 연기)으로 사람책은 책으로서의 역할을, 독자는 독자로서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숨쉬는 도서관에서의 롤플레잉은 ① 대화에 나서는 사람책과 독자 모두를 자발성에 기초해 대화에 참여하게 하고, ② 각 개인의 대화 능력, 특히 화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 평균적인 대화의 질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며, ③ 처음 대면하게 되는 사람 책과 독자 사이에 생기는 긴장과 어색함을 완화해주는 장치라 볼 수 있다. 또한 ④ 대화의 목표, 대화 내용의 주제와 범위 등을 설정함으로써 목표지향적이면서 짜임새 있는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요컨대 숨쉬는 도서관에서의 롤플레잉은 대화를 간섭하고 방해할 수 있는 요소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대화에 참여하는 개인들이 상대방과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환경이 사람책과 독자 모두에게 대화를 통한 소통과 공감, 변화를 가능하게 해준다. 숨쉬는 도서관이 지역 사회 내에서 세대 간 소통과 계층 간 소통,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는 대화의 도구로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숨쉬는 도서관의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이야기 전달)이다. 스토리텔링의 힘은 이미 많은 영역에서 증명되고 있다.

    많은 양의 정보나 지식보다 진솔한 하나의 이야기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와 성장이 가능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은 우리 모두가 경험적으로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반 도서관에 꽂혀있는 책들이 각각 지식과 정보, 이야기를 담고 있듯, 숨쉬는 도서관의 사람책들 역시 각각 고유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현재의 직업을 갖게된 사연, 겪었던 고난과 어려움, 느꼈던 기쁨과 환희, 일상의 소소한 것들, 특별했던 경험, 쌓아온 지식, 나만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등이 모두 이야기 재료다.

    ‘결혼을 안해도 나는 엄마다’(미혼모), ‘학교 밖 진짜 공부 – 길 위에서 삶을 배우다’(로드스쿨러), ‘시대의 반항아가 되자’(인디밴드 뮤지션), ‘직업전전 전문가의 비전문적 기록지’(요가교사), ‘무관의 평교사로 산다는 것’(중학교교사), ‘희망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자전거공방 주인) … (등록된 사람책들 더 보기)

    숨쉬는 도서관에는 현재까지 39명의 사람책이 생생한 이야기를 품은 채 등록되어 있고, 떨림으로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 사람책들은 중간매체를 통하지 않고, 마주한 독자에게 직접 눈빛과 몸짓, 숨소리를 실어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보다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지난해 5월에 열렸던 숨쉬는 도서관 진행을 담은 동영상. 숨쉬는 도서관의 실제 사람책 읽기 모습이 궁금하시면 꼭 보시라.

    20대가 20대를 위한 숨쉬는 도서관을 열다

    지난 3월 11일, 20대들이 사람책을 만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날의 화두는 “불안과 사이좋게 지내기”.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20대 역시 자기계발에 대한 불안, 취업에 대한 불안, 관계에서 오는 불안 등 불안투성이 현재를 살고 있다.

    이 불안들을 완벽하게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의 불안을 해소하면 이어서 또 다른 불안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 자리잡은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이같은 상황에 나만 놓여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은 떨쳐버리는 것이 좋다. 잠깐 마음 속 힘듬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사람들 역시 나와 같거나 유사한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평생 함께 해야 하는 것이라면, 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그러면 불안 앞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사이좋게 지내며 내 삶의 건강성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이 날 모인 사람책들과 20대 독자들은 이 화두를 안고 설레는 만남을 가졌다.

    세 번째 숨쉬는 도서관은 사전 모집을 통해 꾸려진 20대 기획단에 의해 준비되고 진행되었다. 숨쉬는 도서관이 열리기 두 달 전, 20살의 문턱을 갓 넘은 대학 신입생부터 취업준비생, 직장인 등 직업과 분야가 다양한 20대 13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기획단의 첫 활동은 각자 갖고 있던 현재의 불안을 털어놓는 것.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불안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같은 20대라는 동질감 때문이었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대화는 솔직해졌다.

    기획단이 이 날 워크숍을 통해 얻은 것은 ‘나만 불안한 것이 아니었구나’는 위로와 연대감이었다.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었지만 결국에는 교육, 직업, 금전, 관계, 미래 등의 커다란 카테고리 내에서 비슷한 불안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혼자서 불안을 짊어지고 있었다는 점을 함께 느낀 것이다.

    세 번째 숨쉬는 도서관의 제목이자 화두인 “불안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몇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세부 카테고리 ‘교육’, ‘경제’, ‘사랑’, ‘돈과 소비’, ‘직업과 취미’까지 정해지자 준비과정은 더욱 탄력을 받았고, 기획단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20명의 사람책을 수집하는데 성공했다. (홍보물과 사람책 살펴보기)

    3월 11일에 열린 세 번째 숨쉬는 도서관의 준비과정과 진행모습. 20대가 20대를 위해 준비한 행사였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었다.

    다음은 20대 기획단에서 활동했던 한 친구의 활동 후기다.

    “이번 20대 사람책 페스티벌 기획단 활동을 했던, 하**입니다. 하루 동안의 페스티벌이 끝나고 난 뒤 쉴 틈도 없이, 직딩의 마인드를 유지하려 하니,,회사벽을 뚫고 나가는 상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곤 합니다.. ^^
    그러다 보니 저 개인적으로도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벌써 시간이 또 흘러가네요. 약 두 달 간의 기획단 활동속에서 다양한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그들과 함께 공유한 시간도 많고, 조모임에 기획단 모임에 매주 토요일 민중의 집 두시가 어느덧 일상의 나침반이 되던 ㅎㅎ 나날들이었습니다.
    거창하기도 하고 진부하다고도 느낀 20대의 불안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하고 나누다 보니,내가 느끼지 않는 부분을 다른사람에게서 느끼게 되고 발견하게 되니,음,, 제 자신이 좀 풍족해진다라고 할까요? 불안으로? ㅎㅎ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불안이라는 것이 죽기전까지 해소 될 수 없는 것이기에, 차라리 나쁜 감정으로 그것들을 대하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나는 힘을 얻었어! 다 덤벼! 이러한 뉘앙스는 아니지만, 힘의 뿌리를 가지고 지속시킬 수 있는 자리를 발견했다고나 할까요, 행사 당일 날도 우리가 만든 따끈한 작업물들을 설치하고 사람책 분들과 독자분들을 만나게 할 장소가 점차 우리의 색깔로 그들이 함께 놀 수 있는 판을 만드는 순간도 굉장히 인상적이였구요.
    결국엔 그 안의 주인은 사람책과 독자분이였다는 것을 독후활동을 하고 있는 풍경에서 자연히느끼게 되더라구요, 사람책과 독자 그리고 나 그리고 너 ㅎㅎ 사람이 남고 사람과 이야기하는 어쩌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짜릿한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이였어요. 다음번 사람책 페스티벌에도 함께 하고 싶어요 ! ㅎ 그럼 봄의 기운으로 다시 또 뵈어요”

    숨쉬는 도서관의 일상활동은 이렇다

    지금 숨쉬는 도서관은 올해 말까지 100명의 사람책을 발굴하고 수집하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있다. 오는 9월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열람 이벤트가 열리기 때문이다.

    마포문화재단의 도움으로 안정적인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고, 보다 많은 지역주민들에게 숨쉬는 도서관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문제는 보다 많은 횟수의 열람 이벤트를 소화할 수 있는 충분한 규모의 사람책 서가를 만드는 것. 규모도 중요하지만, 다양성도 중요하다.

    미혼모나 탈학교 청소년과 같이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오해와 편견을 깰 수 있는 사람책, 담담하게 본인의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책,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인생스토리를 들려줄 사람책, 내가 쓸 물건을 직접 만드는 기술을 알려줄 사람책 등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가능한 모든 것들을 상상하면서 사람책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책을 제보하는 목소리에 귀를 열어두고, 한 주에 한 명 이상의 사람을 인터뷰한다. 지난 주에는 함께 바느질을 하면서 수다 떨기 원하는 동네주부 한 분과 부모세대와 속터놓고 대화하기 원하는 20대 청년 두 명을 인터뷰했다.

    현재 모두 사람책으로 출판과정(사람책 스스로 제목과 서문, 목차 쓰기)에 있고, 출판이 완료되면 첫 번째 (바느질) 실습책과 (두 명의 사람책과 대화하는) 묶음책이 탄생하게 된다.

    다음 주에는 얼마 전 제보를 받은, 오랜 시간 심리상담을 해온 심리상담사와 노동자편에 서서 부당한 사측과 싸우는 노무사를 만날 예정이다.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니 ‘마당발 사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사람책 발굴과 수집, 출판을 도와줄 마당발 사서를 키우기 위해 ‘마당발 사서 되기 워크숍’을 준비 중에 있다.

    한 사람이 한 권의 사람책으로 출판되는 순간은 굉장히 짜릿하다. 스스로 책을 쓰지 않는 이상 세상에 선보이기 힘든 이야기가 버젓이 제목과 서문, 목차를 달고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같은 이야기들이 한 권 한 권 쌓여 50권이 되고, 100권이 되는 일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배부르다.

    사람책과 독자로 시작된 인연들이 그물코처럼 엮여 길가다 인사도 하고, 가끔 술잔도 기울이고, 때로는 함께 일도 하는 상황도 하루빨리 목격하고 싶다.

    어려운 말로 ‘분절화’되고 ‘파편화’된 대도시에서의 개인들의 관계… 개인들 간의 유대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지역운동의 가장 큰 과제임을 되새기면, 숨쉬는 도서관이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은 작지만 소중하다.

     

    필자소개
    마포 민중의 집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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