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이주민센터,
"억수로 잼있게 운영되고 있심더"
[나의 현장] "요래 살랍니더, 재밌고로...상처 주고 받는 운동 아니어야"
    2012년 07월 16일 01:46 오후

Print Friendly

* 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을 역임한 김광식 위원장이 지금은 현장의 노동자로 일하면서 울산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몇 번의 닥달 끝에 기고 글이 왔다. 온통 경상도 사투리였다. 이걸 손을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왜 사투리를 표준말로 바꿔야 하나?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이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그 이의 사투리일터인데 <편집자> 

3주전 레디앙 정종권 편집장에게 전화가 왔었심더. 울산에서 이주 노동자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센터의 설립배경, 진행사업, 에피소드 등을 원고로 작성해서 레디앙에 실어줄수 없겠냐꼬..

수년전 함께 정당 활동을 하며 알았던 양반이고 좋아하는 동지이기에 덜컥 알겠다꼬 써 보내겠다꼬 해놓고, 글도 못쓰는 게 이래저래 몸둥이 아파서 일주일 보내고 이주민센터와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님이 대표로 계시는 노동교육원 조직부장(?) 역할 한다꼬 일주일… 오늘 현장 집회가 끝나고 근무하는 곳에 회식 잠깐 들맀다가 부리나케 달려와 끄적이고 있심더.

이주노동자 지원센터, 정확한 명칭은 ‘울산이주민센터’임더. 2002년 북구청장 공약 사항으로 2003년 3월 조례 제정이 되고, 그해 6월에 설립된 북구비정규직노동자 지원센터 소장으로 있던 시절에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노동 법률 상담으로 출발하게 되었심더.

2003년 겨울 이었심더. 공장으로 출근을 하던 중 얇은 청자켓을 입고 웅크리고 출근하던 이주노동자들을 보게 되었고 몇 날을 고민하다가 그 당시 사무장이었던 전필원과 상담실장 정민주와의 논의 끝에 지역에 있는 달천, 모화공단을 돌면서 상담 리플렛을 배포하고 짧은 영어(헬로, 그래도미투유)와 몸 동작으로 거의 몸부림(?)을 쳐가며 설명하고, 만나서 관계를 시작했심더.

우리도 낮선 땅, 낮선 상황에서는 다르지 않겠지만 이들과의 처음 만남은 어색함과 경계의 낯선 분위기 그 자체이었심더.

마음을 열고 서로 통하는 사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로는 그래하지만 그게 어떻게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교? 말이 통하나, 종교가 같나, 고향이 같나, 같은 것은 딱하나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 뿐이었심더.

그러나 전필원 사무장 특유의 지랄난 친화력과 살가움으로 한 명, 두 명 안면을 트여갔고, 한 번, 두 번 공단 방문을 통하여 접촉을 계속하면서 임금 체불이나 산재 문제로 상담이 꾸준히 들어오기 시작했심더

인도네시아 쓰나미에 따른 이주노동자 모금캠페인

딱 상담만 하믄 좋을낀데..사람이 또 욕심이 생기서..

함께 놀러도 가고, 가끔 술도 마시고, 페스티발을 열기도 했심더. 그렇게 지내는 가운데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와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심니꺼, 12월 마지막날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네팔, 캄보디아, 베트남 친구들이 센터에 모여서 송년회에 맥주한잔 하믄서 놀다가 방글라데시 친구 하나가 쓰나미 피해로 집안식구가 피해을 입었고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겁니더.

그래서 우리 이주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모금도 하고, 그당시 울산의 번화가 성남동서 모금 운동을 벌였심더. 울산이 따듯한 남쪽 지방이긴 하지만 이틀을 모금운동을 했는데 그날따라 얼마나 추운지 다들 얼어 죽는 줄 알았심더.

하지만 이틀 동안 삼백만원 모아서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에 전달했심더. 모금 운동을 시내에서 해보니 초 잡은 순서가 있드만요, 돈 많은 사람보다는 돈 없는 사람이 성금 잘내고, 나 많은 사람 보다는 젊은 사람이, 남성보다는 여성이 잘내는데, 백원짜리라도 돈 통에 손넣는 사람이 우찌그리 이뻐 보이는지..

이주노동자들과 매년 여름캠프를 열고 있다.

1218 이주페스티발, 자신의 끼를 맘껏 펼치는 이주노동자들

상담하믄 별의 별 사람들 다 있심더. 오른쪽 눈 다쳐서 수술하고 일 못할 상황인데 왼쪽 눈 보이니까 일하라카는 사장님(?), 미등록 노동자들 채용해서 도급업체 운영하면서 상습적으로 부도내는 사장님, 미등록 이주노동자임을 약점으로 잡아 이사 가야 되는데 전.월세 보증금 안내주는 주인집 아저씨, 체불 임금으로 노동부 조사 받으러 오면서 미등록 노동자 신고해서 경찰 동원해서 현장 체포 하게 만든 사장님,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노동부 근로감독관도 조사함서 이주노동자와 동행한 센터 상근 활동가들에게 사업주 편을 들믄서 애국심을 강조하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 감독관도 있었심더..

2003년 울산 북구비정규직노동자 지원센터에서 이주노동자 법률 상담을 시작해서 북구 사회복지관 소속에 1218(세계 이주민의 날임)이주노동자 지원센터로 지금은 독립된 비영리 단체로 울산이주민센터로 명칭을 두고 있심더

자원봉사자가 진행하는 이주노동자 한글교실도 매주 열린다.

치과 진료장면. 매주 일요일 이주노동자에 대한 치과, 내과진료 무료진료가 진행된다

발전 많이 했심더, 우리 센터는 정부 보조금이나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심더(더러버서).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반인권적이고 폭력적 단속을 종용하고 있고, 기업은 돈 쪼매 후원하면서 마켓팅 전략으로 활용함더.

저는 2003년에서 2006년까지 운영하고, 잠시 다른 일을 하다가 2008년부터 다시 운영하고 있는데, 순수하게 후원회원과 건치, 건약, 내과 선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과 봉사로 억수로 잼있게 운영되고 있심더.

일상적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과 생활 법률 상담을 합니더. 저는 공장에 일하믄서 짬짬이 대한민국의 훌륭한(?) 제도인 월차, 조퇴, 외출등을 성실히 사용하믄서 활동하고 사무장, 상담실장이 센터를 지키고 있심더.

일요일은 24명의 치과 선생님들이 2명씩 나눠서 자원봉사로 치과진료를 하고 있고 20명의 치위생사 선생과 울산대 치위생과 학생들의(인원 많심더) 봉사, 11명의 내과선생들과 15명의 약사들이 각1명씩 나와서 내과진료를 진행하고 일요일 행정봉사 2명, 학생 2~5명의 지원으로 가장 바쁜 일요일을 보내고 있심더. 한글교실도 운영하고 있고예..

6월 3일, 차별없는 세상을 향한 시민걷기 함께라서 행복한길에서 이주노동자와 함께

지난 6월 3일 차별없는 세상을 향한 시민걷기 행사인 ‘함께라서 행복한 길’을 북구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울산장애인부모회, 울산이주민센터가 공동주최했는데, 이주노동자가 200명이 넘게 참석하고 장애인과 비정규 동지들, 시민들이 1200명 참여해서 완전 행복하게 꽃이 핀 동천강 길을 걸었었심더. 요즘 지역집회 하믄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끼는데 지역주민과 함께 즐겁게 걸었으니 얼매나 행복했겠심니꺼.

요래 살랍니더, 재밌고로.. 운동하면서 상처받고 주고 이거 아닙니더.

내도 성질이 더러버서 버럭버럭 하지만 주는 것이 이래 행복한지 나누는 것이 이래 즐거운지 예전에 몰랐었네 진정 난 몰랐심더 해보면 압니다.

노동운동, 정치운동 하면서 제발 쳐물어 뜯고 살지맙시더(이런 말 쓰도 되는강.. 안됨 빼소) 딱 한 번 살다가는데 즐겁게들 행복하게들 사이소. 나중에 또 글 쓸라는지는 모르겠지만 요만 끝낼랍니더. 죽으면 썩는몸뚱아리 부지런히 놀리면서 삽시데이^^

필자소개
전 현대자동차노동조합 위원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