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은 있는가?
    국민이 정부 믿지 못하는 사회
    노회찬과 함께 한 네덜란드-벨기에 여행기 -2
        2015년 04월 09일 10: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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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과 함께 한 7일간의 네덜란드-벨기에 여행기 -1 링크

    3월 14일 토요일

    드디어 오늘 노회찬 대표의 동포강연이다. 장소는 동포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암스텔뻬인으로 잡았다. 국제적으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국의 일산 분당 같은 곳이다.

    암스테르담 바로 밑에 있어서 한인 동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이고 한글 학교도 가깝다. 토요일이면 한글학교로 아이들을 보내는 날이고 한글학교가 끝나는 시간을 맞춰서 강연을 오후 2시에 잡았다.

    노회찬 전대표는 마이크를 잡고 능숙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래 내용은 강연 요지.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베이징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의 수준을 보면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다. 그의 견해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정치만 놓고 보면 한국 정치가 국민들의 기대치에 못미치는 게 사실이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자. 세계적으로 여러나라에서 국민들이 자기 나라 정부에 얼마나 신뢰를 보내는 지 조사해 봤더니 한국은 24%밖에 안되었다. 다시 말해 국민들 네 명중의 세 명은 대한민국 정부(입법, 사법, 행정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해석)를 믿지 않고, 단 한 명만 믿는 것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가장높은 나라는 스위스였다. 국민의 80%가 정부를 신뢰한다고 했다. 스위스 사람 다섯 명 중 네 명은 정치권, 행정부, 사법부가 하는 이야기를 일단 신뢰하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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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필자 제공

    국민이 정부를 믿지 않는 한국 사회

    주한독일대사와 만나보니 독일 검사 출신인데 독일에서 동료 검사들이 송별회를 할 때, 한국에는 검사들이 할 일이 많으니까 당신만 갈 게 아니라 자기들도 다 가야겠다고 했다. 그래도 자신들은 안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단다. 검찰이 수사해서 발표한 걸 국민들이 안 믿는데 가서 일을 해봐야 뭐하겠냐는 거다.

    나도 한국 검찰에 비판적이지만 독일대사가 얘기하니까,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검찰의 수사결과를 믿냐고, 그리고 거대한 권력형 비리 같은 것도 믿냐고 물었다. 그는 거의 대부분은 믿는다고 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우리보다 독일 검찰의 신뢰도가 높다는 것을 인정했다.

    국민들이 검찰을 안 믿는 예는 중요한 사건마다 정치권이 제기하는 특별검사제도다. 검찰이 버젓이 있는데 특별검사제를 하자고 할까? 생각해보시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있는데 다른 나라와 경기할 때, 대표팀은 안 부르고, 특별팀을 보내면 국가대표팀은 필요 없는 다. 이만큼 한국사회에 사법정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묻는데, 그건 한국사회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다. 정의란 무엇이냐는 책이 십만권 이상 팔렸다고 해서 구해서 읽어보았다.

    원래 저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무슨 책이 십만권 이상 팔렸다면, 영화 관객이 천만명 이상 모였다면 의무적으로 봐야 한다. 직업상 봐야 된다. 정치인이 그런 걸 모르면 되겠나? 그건 직업병 같은 거다. 그 책이 잘 팔린 이유는 제목 때문이다. 한국 독자들은 정의가 뭘까 궁금해 한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부정의가 판치고 있다.

    그런데 신문에 보니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여름휴가 지참 서적에 이 책이 들어 있더라. 과연 그가 이 책을 가져 가서 읽었는지 궁금하고, 퇴임할 때 쯤 친인척들이 검찰에 줄줄이 불려가 포토존에 서던데 이대통령에게는 [정]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어울릴 것 같다.

    한국 사회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있는데, 결국 돈 쓰면 죄를 지어도 풀려 나오고 돈 없는 게 죄라서 좀도둑은 엄하게 벌한다.

    변호사들에게 조사해보니 80% 이상이 재판에서 형량 결정할 때 전관예우가 있다고 했다. 판사, 검사 출신 변호사들을 쓰면 그만큼 유리한 판결을 받는다는 거다. 한 예로 대법원장이 되고 싶었던 대법관이 판사직을 그만 둔 후 3년간 변호사 생활을 아주 모범적으로 했다. 세금신고 다 하고, 미래 생각해서 사건도 가려서 받았다. 그래서 3년간 수임료가 60억원이었다. 이 분이 주변 눈치 안 보고 변호사 일을 했다면 얼마나 벌었을까?

    보수도, 진보도 자기혁신을 해야

    정치권의 문제도 한국의 보수정당 중 진짜 보수는 30%라는 거다. 나머지 70%는 그저 반공이다. 때려잡자 공산당! 외치며 그저 보수 흉내만 낸다. 노무현 정부 때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를 만들려고 하니까 한나라당이 반대했다. 그럼 고위공직자 비리 장려처를 하자는 말인가? 그런 거 반대하는 거 보면 보수가 아니라 수구다. 제대로 된 보수라면 그런 거 찬성해야 한다.

    영국에서 한 노벨상 수상자가 노벨상을 경매에 내놓았다. 이 사람이 인종차별 발언을 해서 해고되었고 수입이 없으니까 노벨상이라도 팔겠다고 나선 거다. 영국에 갔을 때 영국 보수당과 만나 물어보니 자기네는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노동당보다도 더 엄격히 반대한다고 했다. 이런 게 진짜 보수다.

    선진국에서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어디서 나는가? 경제에서 파이를 누가 더 많이 가져가야 하는지(세금문제) 복지예산의 규모나 내용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데 철학과 정책이 달라서 싸우는 것이 보수와 진보의 경쟁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나 부패, 인종주의 같은 데서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없다. 진정한 보수라면 비리 감싸고, 국정원 동원해서 박근혜 대통령 지지하는 게 말이 되나?

    분배가 요즘 중요한 쟁점인데, 복지만 많이 한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장 안 좋은 의사는 ‘병 주고 약 주는’ 의사다. 정부가 해고를 많이 만드는 경제정책을 펴면서 실업수당도 2배로 늘리면 되겠나? 애초에 병을 예방해야 하고 그래도 병이 나면 잘 고쳐야 한다. 한국에 자영업자는 육백만 명으로 전체 경제인구의 28%다. 미국은 7%이다. 미국보다 네 배 더 많은 것으로서 한국의 노동시장이 줄어들다 보니 거기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자영업자가 된 것이다.

    전국의 미용업 종사자가 60만 명이라고 들었다. 하루 손님이 이십명은 와야 수지가 맞는데 60만명이 20명을 받으려면 하루 천2백만 명이 미용실에 가야 된다는 얘기다. 한국 여성인구가 2400만명이니까 이틀에 한번꼴은 미용실을 가줘야 한다는 거다. 이게 되겠나? 미용사가 너무 많은 거다.

    그럼 미용사 수를 줄일 수 있을까? 그렇다고 미용사 시험에 토익을 넣을 수도 없지 않나? 다른 산업 부분에서 고용이 발생되어야 한다. 결국 미용실해서 아이들 학원비, 반찬값이나 버는 거고, 삼년 동안 오십만 원 받으면서 노예노동하고 비싼 가위 삼백만원 짜리 강매를 당하고 있다.

    고용을 늘리지 않고 오히려 일자리를 없애는 정부 정책의 문제기 때문에 복지로 해결될 게 아니고, 1차 분배가 잘 되어야 한다. 이명박 때도 그랬고, 박근혜 때도 대선에서 그들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서는데 민주진보세력은 고작 “그들은 믿을 수 없다, 독재자의 딸이다”라는 말로 대응했다.

    이제는 민생문제의 해법을 놓고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 구도로 가야 하고, 진보세력도 부족하지만 앞으로 더 힘을 늘려서 그 역할을 해야 한다.

    70년대 유신 때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이에 맞서 싸웠는데, 대학생일 때 어느날 새벽 하숙집 주인아저씨가 깨워서 박정희가 죽었다고 말하고 냉장고에서 소주 꺼내서 함께 마신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는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벌써 죽으시면 어떻게 하나 생각했다.

    전두환 군사독재 때도 용접을 배워서 노동현장으로 갔다. 일단 돈을 벌어야 사니까, 그리고 오래 싸워야 하니까 그랬다. 그런데 7년만에 전두환도 물러갔다. 민주노동당 만들 때 10년 후면 국회의원 두 자리 수 만들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큰소리 쳤다. 물론 속으론 나 스스로도 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얘기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일 것 아닌가?

    그런데 창당 4년만에 국회의원 열 석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 당이 더 커졌어야 하는데 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역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좋은 방향으로 변해왔다. 우리 국민들을 믿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가도록 계속 실천해 나가면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더 민주화되어야 통일도 가능할 것이다. 북한도 많이 망가졌지만,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선거운동하고 댓글로 장난하면서 북한에게 통일하자면 되겠나? 한국이 정치민주화에 이어 경제민주화까지 이룰 때 통일은 더 가까이 올 것이다.

    실망스러운 한국의 현실, 희망은 있나?

    이렇게 강연 1부가 끝나고 2부에 질의응답을 받았다.

    진보의 교육문제 해결방안에 대해서 노대표는 한국은 대학서열화 때문에 입시과열이 되고 있음을 주장했다.

    “한국에는 공교육에 지출되는 교육비는 30%, 사교육에 지출되는 교육비는 70%다. 비유하자면 도둑이 들었는데, 경찰이 오는 게 30%, SECOM 같은 사설보안업체가 오는 게 70%다. 그만큼 기형적이다. 대학도 국공립대보다 사립대가 훨씬 많다. 사립대에 정부 지원을 할 수 없으니 우선 국공립대를 통합해서 운영하면 대학서열화를 없앨 수 있다. 기업도 학벌에 관계없이 채용하고 승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굴뚝투쟁, 철탑농성 투쟁 같은 노동자들의 극단적인 투쟁을 꼭 해야 하는 건지 다른 방법으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할 수는 없는 지 하는 질문도 있었다.

    “나도 그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회사가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게 문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공장에서 농성하는 걸 경찰이 진압할 때, 몸에 휘발유를 붓고 가까이 오면 불 붙인다고 하다가 경찰이 달려들자 몸에 불 붙이고 죽은 사람들 많이 있었다.”

    노대표의 목소리에 감정이 묻어났다.

    “참 안타까운 일이죠.’ 그래서 나는 그런 거 말리고 다녔다. 한진중공업 김진숙씨 크레인 위에 올라가 농성할 때, 빨리 내려오라고 심상정 의원과 나는 40일동안 단식농성해서 몸무게가 15킬로그램이나 줄기도 했다. 나는 노동자들이 굴뚝에 올라가서 싸우는 것보다 노동자의 대표를 국회로 보내서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게 좋다고 설득해왔다. 국회의원 선거를 비례대표제로 바꾸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국회에 들어가고 극단적인 투쟁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치는 사회의 이해관계 충돌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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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청중은 노동운동 내에서 공연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이 있고, 통합진보당 폭력 사태에서 보듯 진보라고 말하는 자들도 내부의 강자가 약자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데 해결 방안은 있는지 물었다. 그것은 진보가 아직 미성숙해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이고, 진보가 자성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한국 내에 외국인 인권문제도 심각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노대표는 평소의 소신대로 성실하게 답변을 해 주었다. 한 방청객은 1992년 대학생 때 백기완 대통령후보 선거운동을 했을 때, 찌라시를 시장에서 돌리는데 그 내용을 이해하는 국민들이 별로 없었는데, 노회찬 대표의 강연은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쉬운 말이라서 좋았다며, 진보세력이 이렇게 많이 국민에게 친근하게 변했다는 걸 보게 되어 감개무량하다는 말을 전했다.

    다른 청중은 노대표의 강연 1시간 20분 정도는 절망적인 얘기들이었고, 나머지 10분이 희망에 대한 얘기였다면서 한국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네덜란드에 온 지 7년이 지났는데, 한국의 친구들이 한국은 절망적인 상황이니까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면서 구체적으로 희망을 어떻게 찾을지 얘기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대표는 아직 진보정당에 희망은 있다고 답했다. 많은 이들이 차라리 새정치연합에 들어가서 정치를 하는 게 어떠냐고 권하는데, 새정치연합은 아무리 못해도 2등은 하고 100석 정도는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낡은 정치행태를 바꾸기 어렵다고 했다. 새정치연합이 잘못하면 3등도 되는 선거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대통령 선거 때 새누리당은 모두가 합심해서 꼭 이기려고 노력하는데, 새정치연합은 대통령 후보측 사람들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는 뒷짐지고 있었다. 나머지는 국회의원 자리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은 2등만 하면 되고 자기는 국회의원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뭉친 정당에서 어떤 개혁을 할 수 있을까?

    진보정당이 지금은 작지만 국회의원 20명만 확보해서 교섭단체가 될 수 있다면 세월호사태때 교섭단체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간의 협상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고, 협상은 좀더 잘 되었을 것이다.

    또 정치가 바뀌려면 비례대표제가 되어야 한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정당명부 투표에서 받은 투표율은 13.4%였다. 만약 선거제도가 독일식 비례대표제였으면 국회의원 40명이 진보정당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만큼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면 진보정당은 성공할 수 있다.

    노회찬 대표의 롤 모델은 누구인지 묻는 질문도 있었다. 노회찬은 호치민을 좋아한다고 했다. 위기에 놓였던 베트남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서 민족통일을 이룬 그의 강한 면 뿐만 아니라 영웅으로 우상화 되지 않고, 옆집 아저씨처럼 다정한 사람으로 기억되어 호 아저씨라고 불리우고 있다. 그리고 그는 검소한 사람이었다. 베트남은 다른 나라에 정부관료나 경제계에 부패가 적은 데 그것은 바로 호치민의 영향이다.

    강연회가 끝나고 노회찬 대표의 대담집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와 2011년작 “진보의 재탄생-노회찬과의 대화”,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 책 싸인회가 있었다. 강연에 온 청중 절반 이상이 책을 들고 싸인을 받으러 줄을 섰다. 두 권씩 사는 분들도 있었다. 그만큼 노회찬 대표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크다는 걸 보여줬다.

    노회찬 대표가 강연에서 얘기했듯이 그가 새정치연합에 간다면 국회의원 하기는 쉬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동운동이나 진보정당운동을 하다가 보수정당에 갔다가 다시 진보정치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 분단과 한국전쟁, 반공과 지역감정, 소선거구제와 노동경시 사회, 진보정당이 성장하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환경에서도 노회찬은 진보정당을 본 궤도에 올리기 위해서 20여년을 분투하고 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정치인 노회찬의 진보정당의 꿈이 꼭 이뤄지기를 바란다. 그는 강연 끝날 즈음 이런 말을 했다. 한 사람이 꾸는 꿈은 그저 꿈으로 끝나겠지만, 여러사람이 꾸는 꿈은 현실로 이뤄질 수 있다. 그는 함께 꿈꿀 사람을 지금도 찾고 있다. <3부에서 계속>

    필자소개
    네덜란드 거주 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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