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당신의 갈비뼈가 아니다"
    [서평]『 아내의 역사』(매릴린 옐롬 저/ 책과 함께)
        2012년 07월 14일 02: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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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교육과정에 따라,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소월의 시가 ‘여성적’ 어조를 가지고 있다고 배웠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친구 한두 명과 ‘이런 어조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우린 남자인지도 몰라’하며 깔깔댔다.

    부모님은 ‘여성스럽지’ 않은 나의 면모를 걱정했으며, 그 와중에 일면 ‘여성스러운’ 면모를 찾아내면 내게 ‘역시 천상 여자’라며 안도의 칭찬을 하곤 했다.

    운동을 시작한 내가 ‘과격’해 지는 것에 불만을 표했으며 요리를 좋아하는 나를 두고 흐뭇해했다. 엄마와 함께 빨래를 개고 있자면 ‘너도 나중에 살림을 하게 될테니’로 시작하는 가사노동의 노하우를 전수하곤 했다.

    ‘결혼’이나 ‘육아’와 같은 담론이 여성인 내게 작용하는 맥락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에 있어 결혼이나 육아, 살림과 같은 어휘들은 남성에게의 그것들과 분명히 달랐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야 우리 부모님은 자신들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야 내가 진정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내’ 혹은 ‘어머니’가 되지 않는다면? 글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 남동생의 아내가 전업주부인 것과, 나의 남편이 전업주부인 것은 그들에게 크게 다를 것이다.

    아버지에게 ‘나는 여자라서, 여자니까, 이런 말들이 너무 싫다’고 했을 때가 열 살 조금 넘었을 때였다. 그리고 나는 의아하고 걱정스럽다는 말투로 ‘그럼 남자애들이 별로 안 좋아할 텐데’라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어떤 남성에게든 매력적인 여성이어야 했으며 결혼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고 언젠가는 아이를 낳을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여성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나의 의지나 재능과는 무관하게 나의 ‘올바른 역할’이나 ‘올바른 성격’이 정해져있었다.

    그리고 난 그것이 항상 견딜 수 없게 싫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소위 ‘어른’들, 그리고 남성들에게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했으나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가부장제와 그것을 고스란히 반영한 제도의 비합리성, 그리고 그것들을 아무런 정당한 근거 없이 내게 강요하는 모든 행위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매릴린 옐롬의 <아내의 역사> 는 그 의문에 대해 어느 정도의 해명을 해 주었다.

    비록 이 책이 서구의 역사 속 아내들의 스토리에만 국한되어 있다 하더라도, 인류 역사에서 배제되었던 여성, ‘아내’들의 시간을 복원한 시도는 충분히 유의미했다.

    최근 역사 연구의 경향이 가려졌던 주변부(marginalized)의 역사를 재구성/조명하는 것에 있는 까닭에 보이지 않던 시간의 베일을 벗겨내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시도는 많았으나, 상/하 계급을 막론하고 수없이 존재했을 세계의 아내들의 ‘일상’에 주목한 저작이라는 것은 내게 충분히 흥미로웠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성인 여성은 아내와 동의어(p642)였고, 성인 여성임에도 아내나 어머니가 아닌 사람은 비정상인으로 취급되었다.

    아내이자 어머니의 역할은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어떤 한 사람에게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

    불임 여성은 아내의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죄인이 되었다. 여성은 결혼을 해야 했으며 성인 미혼 남성과는 달리 성인 미혼 여성은 여전히 사회의 큰 관심사다. 조선시대에도 마을의 노처녀는 관아까지 발 벗고 나서 시집을 보낼 정도였다니.

    그러나 이러한 고루한 통념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분명히 존재한다(책은 서구 여성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까닭에 동북아 여성들의 역사까지 다루지는 않는다).

    현진건의 소설에 등장하는 B사감으로 대표되어 온 ‘노처녀 히스테리’는 노처녀(아니 처녀라는 말도 이상한데 늙은老 처녀라니!)들이 열심히 결혼을 통해 완전해 지려고 발버둥치며 노력하는 모습을 담아 낸 SBS의 ‘골드미스 다이어리’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노처녀는 외롭고 힘들며 나이를 먹을수록 매력이 감퇴하고 남자를 갈망하고 사랑에 목마른 존재들로서, 결혼을 통해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혼기를 놓친 여성들은 B사감처럼 외로운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신경질적이 된다거나, 밤마다 성욕에 몸부림치거나, 오늘날의 ‘골드미스’들은 소비욕을 충족시키며 욕망을 분출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대체 결혼이란 무엇이기에!

    옐롬의 저작에는 미혼 여성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은 미혼 여성들이 기혼 여성이 되는 의식인 결혼 제도에서 결혼의 사회적 의미를 발견하며, 역사적 상황에 따라 변화했던 결혼의 상징적 의미나 사회 내의 역할에 주목하는 반면 그 안에서 언제나 제도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했던 여성들의 역사를 ‘구출’하려 노력한다.

    역사적으로 결혼 제도는 여성이 남성이 욕망하는 것을 기꺼이 제공할 의사가 있는 여성들, 남성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 곧 여성의 올바른 덕목이라고 믿는 여성들을 만들었다. 살아있는 한 기혼 여성이 되어야 했던 여성들.

    저자는 서구 태초의 아내 이브로부터, 힐러리 클린턴까지 수많은 여성들과 소통하고 그 활발했던 교감의 대화를 기록했다.

    아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라는 대답에 대한 답변의 역사적 변천사를 그려내고 있는 이 책의 어조는 담담하다.

    저자는 읊조리듯 결혼 제도의 변천사와 당시 여성들의 생활상,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졌던 의무들을 조명한다. 놀라울 정도로 당시 여성들의 삶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이상의 어떤 사족도 달지 않는다.

    그저 철저히 사회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 시간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저자가 힘을 주어 설명하는 맥락은 여성의 결혼이나 육아, 직업활동 등이 철저히 사회적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었으며 수많은 다양한 판타지들을 양산해왔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끊임없이 남편의 보호를 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서약했던 여성들은 전쟁으로 남편들이 전장에서 싸우는 동안 집안의 살림을 도맡아 한 것은 물론 자신만의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되었다.

    전쟁은 뜻하지 않게 여성의 사회 진출과 경제 활동을 환영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우습게도, 전쟁이 끝나고 남성들이 돌아왔을 때에는 다시금 끈질기게 따뜻한 저녁을 남편에게 대접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으로 애국을 실천한 ‘좋은 아내’가 되기를 종용했다.

    아이를 갖는 목적 이외의 성관계는 불경하다고 여겨졌으나, 정부가 산아 제한 정책을 실행할 때면 여성의 피임권이 옹호되었던 것이다.

    재산으로서, 번식의 도구로서, 열등한 존재로서 부당하게 취급되던 여성의 지위는 그 모양과 색을 점차 달리했다.

    결국 저자는 객관적인 정보와 의견을 조용히 펼쳐놓은 뒤, 이렇게 덧붙인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의 어머니를 거울로 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해야 하고, 아들과 딸들에게 어떤 형태의 결혼을 유산으로 물려줄 지 자문해야 한다”(p599)

    이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큰 담론은 결혼 제도의 사회적 상징성이 역사적으로 여성의 육체나 섹슈얼리티, 여성성이나 모성, 순결 이데올로기 등 페미니즘의 거의 모든 주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성의 역사를 새로 쓰기 위하여 생략된 역사를 발굴/복원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생략된 여성의 역사를 계속해서 발굴하는 것이 올바른 부부 관계란 무엇이며 결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현재적 답을 내리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 역설한다.

    결국 이 성찰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등한 결혼’이라는 이상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결혼’이라는 것은 통념적인 결혼보다 훨씬 넓은 것으로, 배우자, 파트너, 동반자, 그리고 모든 연인들이 ‘짝’을 이루는 결합을 통칭한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하나의 커다란 위로는 내가 그동안 내 곁을 스쳐간 많은 연인들에게 “나는 당신의 갈비뼈가 아니다 I’m not a rib from your body”라고 역설해온 것에 대한 지지였다.

    또한 나의 의문이 정당한 것이었음을 말해주는 격려였고 내가 혼자 꿈꾸고 있지 않다는 든든한 동지였다.

    비록 아내의 역사를 다루는 까닭에 여성들 사이의 동성애 등 채 기록되지 못한 역사까지는 볼 수 없었다는 것과 서구사회에 국한된 분석이라 공감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하더라도,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여성들과 소통하려는 저자의 시도가 내게도 닿았음을 밝혀둔다.

    필자소개
    학생. 연세대 노수석 생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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