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만에 만나는 러시아
        2015년 04월 08일 02:46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저는 지금까지 제 고향 레닌그라드에서 6일 동안 지냈습니다. 여기를 떠난 것은 1995년, 어언 20년이나 됐습니다. 한 세기의 5분의 1이라고 할 20년. 그래서인지, 의식, 무의식적으로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게 됩니다.

    확실한 것은, 이 20년 동안 “러시아 자본주의”라는 신생의 괴물은 정말 엄청난 신진대사를 거쳐 못알아볼 정도의 변화를 했다는 거죠.

    대부분 대기업의 사유화가 아직 한참이었던 1995년에, “자본주의”란 대체로 수출입 무역 (자원 수출, 소비재 수입)과 부동산 투기, 고리대업, 그리고 각종의 크고 작은 소매업 가게들을 의미했습니다.

    제 고향은 가판대 천지이었고, 거기에서 판매되는 소비재는 십중팔구 유효기간이 (거의) 지난 수입품이었고, 가게 주인들은 고리대업자들로부터 종잣돈을 빌렸다가 못 갚을 경우 고용암살자의 권충에 쓰러지거나 해결사들의 포로가 돼 고문 당한 뒤에 가장 큰 재산인 아파트를 팔겠다는 각서를 쓰고… 대체로 그런,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가까이 보기도 두렵고 역겨운 무법천지, 투기천지 “자본주의”이었습니다.

    이 정도 기생충적인 자본주의라면 정부가 약간의 무력만 사용하면 바로 투기꾼과 고용암살자 등을 다 쓸어버려 시베리아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좌파의 대부분은 단순한 “소비에트 부활론자”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장”을 흉내내는 일부 인간 오물들을 정리하기만 하면 그런 부활이 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질 정도이었죠.

    1995년의 자본주의는 이제 역사 속 기억으로만 남죠. 지금 제가 보는 제 고향의 자본주의는, 단계론적으로는 대한민국 자본주의와 하등의 차이가 없습니다. 고리대금, 사채업자들을 이제는 거대은행들이 대체했으며, 게중의 가장 큰 놈인 “스베르방크”라는 국가/민간 합영의 은행은 구주 은행 중의 랭킹 3위이며 세계 랭킹은 33위입니다. 이 정도면 “거대금융자본”이라고 할 만하죠.

    스베르방크

    러시아 최대의 은행 스베르방크

    그나마 살아남은 큰 공업체들은 거의 다 은행을 필두로 하는 거대재벌의 소속이 됐지만, 국가는 아직도 상당한 지분을 유지합니다. 그렇다 해도 경영방식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이죠. 은행융자 못갚으면? 고용암살자나 해결사 할 것 없이 그냥 개인도산 절차입니다.

    최근의 (러시아) 신불자 증가 현상을 보면, 정말 한국 뉴스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죠. 거대 자본들은 이제 소매업, 서비스업도 거의 잠식했습니다. 가판대는 거의 없고, 동네 슈퍼도 거의 없어져 거의 다 거대 체인들의 화려한 마트들입니다. 동네 슈퍼는 물론, 개인택시도 거의 없을 정도죠.

    거대 택시기업들은 파격적으로 싼 가격들을 제시해 5분만에 오는 콜택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바람에 그 어느 개인도 이들과의 경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소비재 수입은 여전하지만, 상당 부분은 수입되는 것보다는 서방의 기술과 자본으로 만든 국내 공장에서 서방메이커들의 브랜드로 주문 생산됩니다. 그런 경쟁이 있기에, 90년대를 구가했던 한국 동-남대문시장의 러시아 보따리 장수들의 씨가 말랐죠. “그 때의 그 자본주의”는 이제 정말 과거 기억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지금도 러시아 자본주의는 나름의 특성을 가집니다. 국가관료 주도의 자본주의이며 (“스베르반크”만 해도 국가 지분은 51%입니다), 서방에 대해서는 준주변부적입니다. 특히 후자는 러시아 사회의 어떤 미래성도 역설적으로 보장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수에게 정서적으로 용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자본주의가 업그레이드됐지만, 준주변부적 자본주의인 만큼 여전히 비교적 저임금을 저력으로 삼아 임금을 착취하는 체제입니다. 여기까지는 하도급 기업노동자들의 100만원대 월급을 경쟁력으로 삼는 대한민국 자본주의와 대동소이한데, 한 가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러시아인들은 1990년대만 해도 아직도 쏘련의 유산인 비교적 양질의 무상의료/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쏘련 시대에 배분된 무상 주거도 그대로 가졌죠. 이제 그 유산은 점차 바닥을 드러내죠. 무상의료의 질은 저하되며, 원칙상 여전히 무상인 대학교에서는 실제로 학생들의 절반 이상은 “자비 학생”, 즉 학비를 지불하는 학생들입니다.

    윗세대는 무상 주거를 그대로 가지지만, 쏘련을 거의 보지 못한 아랫세대들이 가족의 둥지를 만들려면 은행의 주택모기지론 받아 20년동안 은행의 노예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100만원의 준주변부적 임금으로 말이죠.

    한 마디로, 명색상의 공업생산량 성장은 돼도 대부분의 러시아인의 실감은 다소 암울합니다. 너무나 빡빡하고, 개개인을 너무나 노동기계로 만드는 삶이죠. 그리고는 그 어떤 질 다른 미래도 보이지 않아요. 무상교육이 무너지는 시대에 100만원짜리 노동자의 자녀가 좋은 대학을 나와 관리자가 될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뭐,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절이 다 지난 것은 대한민국도 매한가지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큰 차이는, 아직도 거의 모든 용들이 다 개천에서 났던 쏘련시대 기억은 생생하고, 또 오늘날 자본가들이 해결사 조직 거느리고 조폭 생활했던 1990년대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거죠. 그런 나라에서는 “사유재산의 신성” 따위는 없습니다. 그 사유재산 형성의 과정부터 하도 뻔해서요.

    거기에다 특히, 자기 나름의 독립적 권역을 형성한 쏘련과 대조적인 오늘날의 서방에 대한 러시아의 준주변부적 입장도, 대부분의 러시아 사람들에게 “자존심이 용납되지 않는” 부분이 큽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젊은 층 사이의 좌파 사상에 대한 선호도는 1990대보다 훨씬 높습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러시아 좌파의 본격적인 성장기라는 느낌이 들 정도죠.

    자본주의와 함께 자본주의를 장송할 사람들이 같이 성장한다는 것은 역사의 단순한 논리입니다. 한국의 1970-80년대 변혁세력의 성장과정을 기억해보시면 알 만하죠.

    단, 걱정스러운 부분은, 1980년대 한국과 거의 마찬가지로 러시아 좌파의 상당 부분은 “자주파”, 즉 서방에 대한 반감을 밑바탕으로 깔고 있는 다소 민족주의적 기풍의 좌파입니다. 이와 같은 계급적 각성의 부족은, 앞으로는 “민족자본과의 타협”을 부추기는 등 상당한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도 러시아의 “민족(주의) 좌파”가 동부 우크라이나 민병대를 지원해주는 푸틴 정권을 “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있는데, 이런 “비지론”은 결국 “계급적 타협”으로 흐를 위험성도 큽니다.

    필자소개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