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유한 자들의 도시,
    가난한 자들의 도시
    [책소개] 『도시유감』(전상현/ 시대의 창)
        2015년 04월 04일 11: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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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인구의 90퍼센트는 도시에 거주한다

    지금은 ‘국가’가 아닌 ‘도시’의 시대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한국의 도시인구 비율은 2011년 90퍼센트를 넘어섰다.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와 같은 경제지, 갤럽과 같은 여론조사 기관 그리고 머서와 같은 경영 컨설팅 업체에서는 시시때때로 ‘살고 싶은 도시’, ‘살기 좋은 도시’, ‘도시의 삶의 질’ 등을 조사하여 도시 순위를 발표한다.

    가장 최근인 3월 4일 머서가 발표한 ‘2015년 세계 주요 도시 주재원 삶의 질/생활환경’ 조사에서는 서울이 72위였다. 보통 ‘살고 싶은 도시’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 하수도 및 전염병, 의료 서비스, 학교와 교육, 수도부터 전기, 교통 문제와 여가, 임대료, 자연재해 빈도 등 다양한 부문이 고려된다. 현대 도시는 이 모든 것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세계 2,000개가 넘는 경제특구를 포함해 도시는 점점 기업의 논리를 닮아간다. 중국의 선전과 홍콩의 예에서 보듯이 도시는 기업처럼 합병되기도 하고, 미국의 디트로이트처럼 파산하기도 한다.

    도시에는 문제가 수두룩하다 – 양극화, 인종과 계층 분리, 도시 빈민

    도시는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도시 빈민 문제부터 중산층의 도시 탈출에 따른 계층 간 공간 분리 문제에 이르기까지 현대 도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도시의 문제는 복합적이어서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보기가 매우 어렵다.

    이 책은 이와 같이 복합적이고 다양한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도시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도시사회학 에세이이다. 도시계획이나 설계 차원이 아니라 도시화, 교외화 그리고 역사, 경제, 문화, 인구, 밀도, 주거 환경, 교통, 치안 등의 여러 변수가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총체적으로 어떻게 도시의 문제로 드러나는지 다각적이고도 입체적으로 종합해냈다.

    저자는 파리, 선전, 디트로이트, 상파울루의 네 곳을 선정했다. ‘번영의 끝을 본 도시’이거나 ‘번영의 초입에 있는 도시’로 도시 문제의 구도가 확실하고, 문제의 원인이 복합적이나 그중 하나는 상당수 도시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다는 것이 선정 원칙이다. 가급적 대륙별로 고르게 도시를 선택하려 했으나 아프리카의 도시는 아직 ‘번영의 초입’에도 들지 못했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제외했다.

    도시 유감

    ‘도시’는 ‘국가’가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다. 도시는 국가와 달리 이념과 거대한 관료주의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네 도시 이야기, ‘어쩔 수 없이 사는 곳’이 아닌 ‘살고 싶은 곳’으로서의 도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1. 파리 – 부티크 도시의 그늘, 방리외

    프랑스 파리의 방리외는 2005년 폭동 사건으로 우리에게 알려졌지만 이미 지난 30년간 인종과 이민 문제, 공간의 양극화 그리고 산업구조의 변화를 겪으며 시한폭탄 같은 공간이 되었다. 마치 성안의 사람과 성 밖의 사람을 나누는 듯한 방리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과 인식을 바꾸고, 중심 대 주변이라는 프레임을 깨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문화’ 키워드로 도시 재생에 성공한 네덜란드의 항구도시 로테르담과 일본의 구마모토 그리고 ‘환경’ 키워드로 새로운 도시 개념을 창출한 스웨덴의 함마르비를 예로 들어 비전을 제시한다.

    2. 선전 – 다자의 교묘한 공생, 어번 빌리지

    중국에서는 급성장한 해안 도시 선전으로 농민 호적을 지닌 채 이주한 농민공의 주거 문제가 불거졌다. 이들은 주로 공장에서 일하거나 가정부, 소리공 혹은 막노동 같은 3D 업종에 종사하며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지만 도시민이 아니어서 사회적, 제도적으로 차별을 받는다. 교육, 의료 등의 사회보장 혜택도 받지 못한다.

    이런 농민공은 중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자 어두운 이면이다. 선전 인구의 약 70퍼센트, 즉 다수의 농민공이 거주하는 일종의 국민 주택인 어번 빌리지城中村는 좁을 뿐만 아니라 햇빛도 들지 않고 바람도 통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어번 빌리지를 철거하기보다는 새로운 개념의 공공 주택으로 정착될 때까지 선전 정부가 부채 의식을 가지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3. 디트로이트 – 모터 시티의 쇠퇴, 도심 쇠퇴

    ‘가난한 흑인들’의 도시인 미국의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의 쇠퇴 그리고 교외 지역의 무분별한 개발로 백인들이 교외로 빠져나가면서 공간 분리 현상이 심각해졌다.

    이는 대기업 위주의 단순한 산업 구도와 오래된 차별의 역사 그리고 레드라이닝(부동산 투자 적합성 최하 등급인 곳을 지도에 빨갛게 표시한 데서 시작되었지만 공간 분리 구도를 공고히 했다) 같은 시 정부의 뿌리 깊은 인종 분리 정책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흑인들을 ‘가난’과 ‘차별’에서 벗어나도록 하려면, 저자는 우선 방만한 도시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민의 46퍼센트가 통근 수단으로 도보, 자전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밴쿠버의 지속 가능한 도시 계획 모델을 예를 든다. 또 디트로이트보다 더 가난한 도시인 콜롬비아 보고타의 엘 파라이소 도로, 브라질 쿠리치바의 3단 굴절 버스를 예로 절대다수를 위한 공정한 도시공간을 만들 것을 요구한다.

    4. 상파울루 – 계급 도시, 코퍼레이트 어버니즘

    브라질의 상파울루는 공간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치안 문제로 헬리콥터와 방탄 차량을 이용하는 부유층은 자신들만의 게이티드 커뮤니티(알파빌리)에 살고, 저소득 계층은 슬럼인 파벨라나 게토인 코르치수에 산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이 살되 따로 사는’ 이상한 도시가 상파울루다. 문제는 게이티드 커뮤니티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치안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크다. 저자는 건강하지 못한 주거 형식인 게이티드 커뮤니티를 해체하려면 치안 기능부터 확보해야 하며 현실적으로 가능한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바로 총기 규제와 공공질서 확립, 공공공간의 정비와 규율 마련이다.

    마치 잘 지은 건축물처럼 견고하지만 몹시 촘촘해서 냉정하고 또 논리정연하게 쓰인 글과 함께 곁들인 사진을 관람하면, 네 도시로 여행을 떠난 듯이 도시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저자가 인도한 대로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도시라는 문제에도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그 안의 문제에도 깊숙이 파고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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