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의 맨얼굴,
    우리가 뽑았다는 자각?
    [책소개]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리처드 솅크먼/ 인물과사상사)
        2015년 04월 04일 11: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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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언제나 ‘위대한 선택’을 한 국민과, ‘아쉽게도 그른 선택’을 한 국민, 딱 두 종류의 국민이 있을 뿐이다. 지지 후보를 당선시킨 진영은 기세등등하게 선견지명을 자랑하고, 선거에서 패배한 진영은 침묵하면서 국가의 미래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한다.

    그러나 시간은 언제나 그를 뽑지 않은 사람들의 편이다. 당선자는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비상식적인 정책을 강행하고,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 집단을 배반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쯤 되면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이 틀린 게 아니었는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국민의 위대한 선택이 점차 ‘치명적인 선택’이었음이 드러나면, 그를 반대했던 진영은 다시 반격의 기회를 노리며 집요하게 수권授權의 칼날을 간다.

    대의민주주의를 통한 선거 정치는 항상 이런 과정의 무한 반복이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무능과 배신만을 이야기했지, 그 비판의 칼날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을 뽑은 것은 과연 누구인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정치인을 욕하면서도 스스로 약간은 켕기는 느낌을 받는다. 선택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반인의 반응이다. 그렇지만 ‘유권자 책임론’을 드러내놓고 말하는 이 또한 아무도 없다.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의 저자 리처드 솅크먼은 과감하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도전한다. 그는 9·11 사태 이후 부시 정부의 전횡과, 정부의 선전과 선동에 무방비로 속아 넘어가 전횡을 가능케 한 미국 국민들에 대한 실망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솅크먼은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난제에 도전하기 위해 각종 여론조사 자료를 언급함은 물론, 미국의 건국 시대로 내려가 과거 미국의 정치는 어떠했는지까지 살펴본다. 그리하여 그는 유권자로서의 국민은 늘 그르지도 않았지만, 늘 옳지도 않았음을 밝혀낸다. 그리고 국민의 현명한 판단을 가로막는 수많은 우민화 장치(언론 조작, 감정에 호소하기, 우리 내부의 편향성 등)의 범람 속에서, 어떻게 ‘현명한 유권자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기를 호소한다.

    어리석은 유권자의 다섯 가지 특징

    다음은 저자가 말하는 ‘어리석은 유권자의 다섯 가지 특징’이다.

    하나, 완전한 무지
    뉴스의 주요 사건들을 모르고 정부의 기능과 책임을 모름.

    둘, 태만함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를 찾는 일에 소홀함.

    셋, 우둔함
    사실이 무엇이든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 함.

    넷, 근시안적 사고
    국가의 장기적 이익에 반하는 공공 정책을 지지함.

    다섯, 멍청함
    두려움과 희망을 이용한 정치 선동에 쉽게 흔들림.

    우리가 이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멀쩡한 사람도 어리석게 만드는 오늘날의 선거 풍토나,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사실에 대한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가 완전히 현명해지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그런 맹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국민들은 현명한가’라는 질문을 늘 던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리석은 투표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요즘 사람들은 자신들이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은 세대라고 한다. 왜 우리는 이처럼 큰 착각에 빠져 있을까? 이 오류는 전례 없는 정보 접근성을 실제적인 정보 소비로 오인한 데서 유래한다.

    우리의 정보 접근성은 실로 경이적이다. 오늘날 우리는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전개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이 엄청난 자원을 제대로 이용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여론조사 결과도 참담하다.

    미국에서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플라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34퍼센트만이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어떤 나라가 핵폭탄을 투하했는가?”라는 질문에는 다수의 미국인이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나라가 자국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70퍼센트 정도가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믿고 있었다

    유권자는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1975년의 한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40퍼센트가 ‘공무법Public Affairs Act’에 대해 견해를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여기서 문제는 실은 그런 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론조사 요원들이 만들어낸 법이었다. 사람들이 질문 답할 때, 얼마나 추측에 의존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질문이었다.

    유권자들의 실수는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술 취한 사람의 열쇠 찾기’라고 알려진 것이다. ‘그곳이 가장 밝은 곳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열쇠를 가로등 아래서 찾는 술 취한 사람처럼, 유권자들은 정보를 수동적으로 입수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는 사안에 관련된 확실한 정보보다 후보자에 관한 개인적인 정보를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입수한 개인 정보는 그전에 알았던 사안에 관한 사실을 차단하기 쉽다.

    셋째는 유권자들이 ‘가짜 확신’을 제공하는 ‘예·아니오’ 질문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애매한 것을 싫어하고 복잡한 것에는 질색한다.

    넷째는 유권자들이 행동과 결과의 관련성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특정 대통령의 임기 동안 경제가 나아지면, 유권자들은 이런 상황을 위해 대통령이 무엇을 했으며 하지 않았는지는 따져보지 않고, 무턱대로 그 공을 대통령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신화

    대통령과 관련된 신화에서 가장 흔한 것이 자수성가 신화다. 대통령이 된 인물들이 대체로 가난한 집안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것은 흥미롭다. 역사가 에드워드 페슨Edward Pessen의 연구에 따르면, 대통령의 4분의 3이 상위 중산층이나 상류층 출신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부자였던 조지 워싱턴부터 시작해서 많은 대통령들이 대단히 부유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고위 관직에 오르는 데 장애가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부자들이 서민처럼 행세하는 것은 놀랍도록 간단했다. 조지 H. W. 부시는 돼지껍질로 된 스낵Pork rinds을 먹었다고 자랑하는 지경까지 갔다. 그의 아들 조지 W. 부시는 자신의 이미지를 투박한 시골뜨기로 만들었다. 그는 텍사스주 크로퍼드에서 휴가를 보냈다. 허리에는 웨스턴 스타일의 큼직한 버클이 달린 벨트를 찼다. 게다가 예일대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평균 학점이 C였다고 자랑했다. 대중은 오로지 정치인들이 자신들과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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