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의 조건은 뭘까?
    [그림책 이야기] 『방긋 아기씨』 (윤지회/ 사계절)
        2015년 04월 02일 10:21 오전

    Print Friendly

    2015년 3월 30일,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도 한국 작가들의 약진은 세계 출판인들의 이목을 확실히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도서전에서 주관하는 라가치 상의 수작작 리스트에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에도 한국 작가들의 이름이 즐비합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한국의 신예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아직 출간되지 않은 더미(가제본 그림책)를 가지고 그림책 학교나 단체의 이름으로 도서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국 작가들의 열정과 그 열정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작품들에 둘러싸인 저는 잠시 행복한 미소를 지어봅니다. 그들 덕분에 한국 그림책의 미래는 매우 밝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윤지희 작가가 있습니다.

    웃지 않는 아기씨

    아름다운 왕비님이 살고 있습니다. 왕비님이 사는 궁궐은 크고 화려했지만 마음 둘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쁜 아기씨가 태어납니다. 왕비님은 너무너무 기쁩니다. 아기씨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아기씨가 한 번도 웃지를 않습니다. 왕비님은 아기씨를 웃게 하기 위해 아주 특별한 선물을 합니다.

    왕비님은 이제 아기씨를 웃게 만들기 위해 어떤 선물을 할까요? 과연 왕비님은 아기씨를 웃게 만들 수 있을까요?

    방긋 아기씨

    웃게 만드는 선물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왕비님은 어떤 선물로도 아기씨를 웃게 만들지 못합니다. 만약 상대가 아기씨가 아니라 어른이라면 아주 값비싼 선물로 웃음을 짓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통의 어른들에게는 물질적인 욕망이 아주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값비싼 선물도 아기씨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기씨에겐 비단실로 꽃수를 놓은 최고급 옷이라도 그냥 다른 옷과 똑같은 옷입니다. 제아무리 비싼 재료로 그야말로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라도 아기씨에겐 늘 먹던 음식과 다를 게 없습니다.

    독자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아기씨가 비싼 옷과 싼 옷을 차별하지 않으며, 비싼 음식과 싼 음식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아기씨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인데도,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구나! 사람은 차별이라는 것을 모르고 태어났구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차별이라는 것을 가르쳤구나!’

    아기씨가 웃지 않는 이유

    왕비님이 아무리 값비싼 물건을 선물해도 아기씨는 여전히 웃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기씨가 값비싼 물건에 굴하지 않는다는 것보다 더 궁금한 게 있습니다. 바로 ‘도대체 왜 아기씨는 웃지 않는 걸까?’라는 의문입니다.

    아기씨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왕실에서 태어났습니다. 엄마가 왕비고 아빠가 왕입니다. 갖고 싶은 건 뭐든 가질 수 있고 먹고 싶은 건 뭐든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기씨는 통 웃지를 않습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아기씨가 웃지 않는 이유를 찾아내야 아기씨를 웃게 만들 방법도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문제의 해답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전제조건’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합리적인 의심을 해봅니다. 아기씨가 모든 것을 다 가진 왕실에서 태어났다고 했는데, 과연 모든 것을 다 가진 왕실이 있을까요? 도대체 아기씨가 태어난 왕실에는 무엇이 부족했을까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그림책

    그림책 『방긋 아기씨』는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그림책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독자들 스스로 자꾸만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그림책입니다.

    ‘나는 잘 웃나? 만일 내가 잘 웃지 않는다면 그건 무엇 때문일까? 만일 내가 잘 웃는 사람이라면 그건 또 무엇 때문일까?’

    어릴 때 저는 잘 우는 아이였습니다. 물론 저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왕실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지요. 그래도 저는 왜 그렇게 잘 울었을까요? 얼마나 잘 울었기에 별명이 울보였을까요? 여러분이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그 이유는 질문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해답은 질문을 던진 사람 안에 있습니다.

    다행이 지금은 잘 웃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왕실에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왜 웃고 사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저를 웃게 만드는 사람들 덕분입니다.

    중요한 사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대단한 부자가 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우리는 스스로 대단한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부자인데도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도 말입니다.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자주 잊고 삽니다.

    그림책 『방긋 아기씨』는 웃지 않는 아기씨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행복의 조건을 되짚어보게 만듭니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아름답고 유쾌하고 가슴 찡한 그림책, 윤지희 작가의 『방긋 아기씨』입니다.

    필자소개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