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나는 당신이 한 일을 알고 있다! ④
‘3명이 더 있다’ 알고도 재수사 포기한 박상옥과 검찰
    2015년 04월 02일 10: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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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나는 당신이 한 일을 알고 있다! -3 링크

정말 ‘3명의 고문경관이 더 있다’는 사실을 2월 27일 처음 알았을까?

불과 4일 만에 서둘러 ‘짜맞추기 수사’를 마친 후, 1월 24일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2명의 고문경관을 기소하는 것으로 사건은 그렇게 정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고문경관 조한경과 강진규가 신창언 부장검사에게 면회를 신청한다.

2월 27일 신창언을 대신해서 두 고문경관을 면회한 안상수는 이 자리에서 조한경과 강진규로부터 ‘고문 경관이 3명 더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처음’ 듣는다. 안상수로서는 정말 충격이 컸을 것이다.

안상수는 나중에 『안검사의 일기』를 통해 당시 상황을 떠올린다. “범인 3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에서 검사로서 자존심도 한없이 상했다. 수사기간이 불과 4일뿐이었고 대공분야에서 산전수전 겪은 조한경 등이 워낙 완강히 버텼으므로 나로서는 범인이 3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 수도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나의 무너진 자존심이 되살아날 수 없었다.”

물론 이 변명은 신뢰하기 힘들다. 최환 당시 공안부장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 조사과정에서 “이후 두 명을 기소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나 안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두 명 밖에 없어?’라고 하자 ‘3명이 더 있는 것 같다’고 하였고, 총장을 만나 이야기하였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관계기관대책회의 은폐·조작 의혹”)라고 진술한 바 있기 때문이다.

설사 안상수의 그런 변명을 수용하더라도 당시 검찰 수사팀의 문제가 해소되는 게 결코 아니다. 당시 검찰 수사팀은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성명을 발표할 때까지 그 어떠한 수사도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상수는 훗날 “2월 27일 조한경과 강진규를 통해 ‘고문경관이 3명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상부에 보고했고 3월 초에는 수사계획서도 제출했지만, 윗선에서 수사재개 지시가 없어 더 이상 수사를 하지 못했다”, “관계기관대책회의의 외압 때문에 검찰도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본인도 이러한 자신의 변명이 늘 찝찝했던지 20년이 지난 2007년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는 “차라리 내가 그때 진실을 폭로했으면 어땠을까”라며 사실상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바 있다.

“재수사가 안 되면 옷 벗을 각오까지 했다”고?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도 최근 “안상수 검사로부터 3월초에 들었다”면서 2명이 아니라 5명이라는 사실을 당시에 이미 알고 있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3월 12일 여주지청으로 발령난 사실을 근거로 “이후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잘 모른다”는 식으로 회피한 바 있다.

그러나 1차 수사가 불과 4일 만에 끝났음을 상기해볼 때 ‘새로운 사실’을 인지한 후 최소 열흘 이상의 시간이 있었다는 점에서 박상옥도 검찰의 직무유기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박상옥은 여주지청으로 발령난 이후에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에서 새롭게 드러난 엄청난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박상옥 후보자측은 새로운 해명을 내놓았다. 동아일보의 “박 후보자는 여주지청으로 간 후에도 수사팀과 수사 상황을 공유했고, 2차 수사팀에 합류하자마자 이틀 만에 고문경찰관 3명을 구속했다”는 보도 내용이 그것이다.(“박상옥 ‘박종철 2차 수사팀’ 합류 이틀만에 3명 구속”, 2015. 3. 19)

물론 이는 “후보자는 추가 수사가 있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정기 인사가 있어 수원지검 여주지청으로 발령이 났다”, “5월 2차 수사가 개시되기 전까지의 상황은 후보자는 알 수 없었다”고 한 1차 해명(2. 5 경향신문 참조)과 상반된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을 바꾼 것은 박상옥이 이 시기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 진상이 점차 드러나고 있는 데 따른 당혹감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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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TV 방송화면

그런데 이번에 내놓은 해명은 최소 두 가지 의혹을 추가로 제기하게 만든다.

하나는 ‘3월 초 추가 공범 인지 후 수사계획서 작성에 함께 참여했다’는 해명의 진실 여부이다. 이는 안상수가 『안검사의 일기』에서 “신창언 부장검사와 둘이서 작성했다” 고 말한 부분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이번 청문회에서 확인될 것이다.

또 다른 의혹은 “1차 수사 때 공범을 밝히지 못한 게 검사로서 부끄러워 재수사를 못하면 옷 벗을 각오를 했다고 한다”는 해명의 진실성 여부이다. 3월 초부터 이미 관계기관대책회의의 개입으로 재수사 지시가 계속 내려오지 않는 상황이었고, 5월 8일 신창언 부장검사가 조한경 등을 면회한 후 재수사 방침은 최종적으로 포기된다.

『안검사의 일기』에는 이 날을 5월 12일로 기록하고 있지만, 박처원 등 공판에 출석한 조한경의 증인신문 조서(92. 5. 4)를 보면 5월 8일로 나온다.

당시 변호인은 “87. 5. 8. 신창언 부장검사가 찾아와 결심이 섰느냐고 물어 공소사실대로 재판받겠다고 하자, 공소장을 꺼내 사실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하자, 증인은 연행시간이 몇 분 차이가 있다고 하였으나, 위 검사는 구성요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이니 그대로 일사천리로 시인하는 것이 좋다고 하여 증인은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을 담아 조한경이 이미 작성한 자술서(87. 5. 28)를 읽어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검찰은 아무리 늦어도 이때 이미 재수사를 포기하고 공소내용대로 재판을 진행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한경과 강진규의 ‘고문경관이 3명 더 있다’는 ‘양심선언’은 이렇게 묻힐 뻔했다.

그렇다면 검찰이 5월 8일 재수사 방침을 포기한 이후 ‘3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박상옥 검사가 진실을 알리기 위한 ‘양심선언’은 고사하고 사직서를 쓰는 시늉이라도 했던 걸까. 그런 일은 없었다. “옷 벗을 각오까지 했다”는 박상옥의 해명은 당연히 신뢰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검찰이 이렇듯 진실을 덮는 데 함께 하고 있을 때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정말 ‘옷 벗을 각오 정도가 아니라 온갖 수난을 당할 각오’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두 교도관이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검찰 수사팀은 ‘고문경관 3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일단 최환 당시 공안부장이 한 1차 수사결과 발표 직후 ‘안상수로부터 “3명이 더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는 증언의 사실여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해보자. 그렇더라도 당시 언론보도 등을 종합해보면 2월 초순부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고문경관이 가족과의 면회 과정에서 3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발설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사실은 곧 교도관을 통해 법무부와 검찰로 이미 보고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바, “2월 27일에 고문경찰 조한경과 강진규를 면회하는 과정에서 처음 알았다”는 안상수 당시 검사의 증언, “3월 초에 안상수를 통해 들었다”는 박상옥의 증언이 사실인지는 아직 확정되었다고 볼 수 없다.

3월 초 수사계획서 작성 시 박상옥이 함께 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이 수사계획서에 ‘윗선 개입 여부(범인은닉) 수사계획’이 포함되어 있었을지도 지극히 회의적이다. 고문경관 조한경이 1992년 5월 4일 박처원(당시 치안감)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을 때 87년 2월 27일의 상황을 증언하는 대목이 나온다. “검찰에서 그런 것(윗선의 범인은닉 여부-필자)은 묻지도 않았고, 그런 것을 내가 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우리 사건에 대한 것만 물어봤습니다.” 이로써 당시 검찰 수사팀에게 경찰 윗선이 축소은폐조작에 개입한 문제는 수사대상으로 조차 인식되지 않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직무유기를 넘어 범인은닉까지

한편, 당시 영등포교도소에서 ‘고문경찰이 3명 더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안계장 안유로부터 전해 듣고 비둘기(비밀서신)를 날려 외부로 처음 알림으로써 김승훈 신부의 폭로를 이끌어내는데 핵심 역할을 한 이부영(당시 민통련 사무처장)은 “담당 신창언 부장검사와 안상수 검사도 교도소 안에서 있었던 검찰 신문에서 두 경찰관을 회유했다고 했다.”고 증언한다.(민통련이 걸어온 30년, 한겨레신문 2015. 3. 16)

옛 남영동 대공분실 4층 박종철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비둘기’에도 ““안검사는 어느 쪽이 유리한 지 잘 알아서 판단하라”는 등 검사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는 등 검찰의 은폐의도를 간접적으로 시사”, “가족 면회는 제한하라. 교도소 직원 명단을 제출하라는 등 위협적 분위기를 조성”이라는 대목도 등장한다. 이는 『안검사의 일기』에서 밝히고 있는 안상수의 증언 내용과 사뭇 다르다.

당시 검찰이 ‘3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취한 조치나 태도가 무엇이었는지 역시 상반되는 두 증언이 지금까지도 공존하고 있는 현실은 이번 기회에 정리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모든 의혹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더라도 2월 27일 안상수가 조한경, 강진규를 면회하면서 ‘3명이 더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검찰이 한 역할은 마땅히 했어야 할 사건 수사 재개와 사건의 진상규명이 아니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 기간 검찰은 2월 27일에 안상수가, 3월 4일, 3월 27일, 5월 8일에는 신창언이 합쳐서 무려 4번의 면회를 했다. 그럼에도 검찰이 한 일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새로운 사실’을 윗선에 보고함으로써 또는 경찰에 알림으로써 경찰과 안기부를 비롯한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조한경과 강진규를 회유 협박하도록 도운 것 말고는 없다.

경찰과 안기부를 비롯한 관계기관대책회의는 검찰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파악하고는 축소은폐조작의 진상이 폭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비상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두 고문경관 각각에 대해 5천만원짜리 예금통장 두 개(도합 1억)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온갖 회유와 협박을 통해 눌러 앉히는데 성공하게 된다.

검찰의 이러한 행위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입을 열었던 두 고문경관에게도 명백한 ‘배신’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조한경과 강진규가 “원래 공소내용대로 재판을 받겠다”며 다시 입을 닫기로 결심했을 때 그들이 느꼈을 회한과 분노, 충격과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검찰은 직무유기를 넘어 범인은닉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계속>

필자소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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