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나는 당신이 한 일을 알고 있다! ③
    “경찰에 감쪽같이 속아준” 검찰 수사팀…면죄부 수사
        2015년 04월 01일 09: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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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나는 당신이 한 일을 알고 있다!-2 링크

    “중요한 것은 다 밝혀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고?

    2명의 고문경찰관이 검찰에 송치되기 직전인 1월 19일 박상옥 당시 검사도 검찰수사팀에 합류한다. 1월 20일 고문경찰관 2명이 수감된 영등포교도소로 ‘출장 수사’를 간 수사팀은 안상수가 조한경을, 박상옥이 강진규를 담당하여 23일까지 수사를 진행한다.

    박상옥은 나중에 물고문에 가담한 경찰로 밝혀지는 황정웅, 반금곤, 연행과정에 관여한 경찰들, 최초 목격자 오연상 내과의와 간호사, 그리고 박종철의 하숙집 주인과 하숙집 동료 ㅎ씨 등 여러 주변 인물에 대한 참고인 조사도 담당한다.

    안상수는 『안검사의 일기』를 통해 당시를 회고하면서 “나중에 공범이 더 있었다는 것과 축소은폐 조작 부분이 밝혀져 결과적으로 졸속수사였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며칠 더 수사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밝혀질 상황이 아니었다. 사실 조한경, 강진규가 입을 열어 진상을 밝히지 않는 한 공범이 더 있는지 누가 축소은폐조작을 시도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에 잠도 거의 못 잔 채 중요한 것은 다 밝혀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고 함으로써 마치 당시 검찰수사팀이 최선을 다했지만, “경찰에 감쪽같이 속았던” 양 변명한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일부 ‘공판기록’과 ‘수사기록’은 당시 검찰 수사팀의 수사가 단순한 부실수사 정도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검찰 수사팀이 고문에 가담한 경관이 5명이라고 정확히 알지는 못했을지라도 최소한 2명 이상일 거라는 점, 사건의 축소은폐조작 과정에 윗선의 개입이 있다는 점 등에 어느 정도 접근했음에도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증거가 지나칠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영상 캡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다룬 방송 화면

    부실수사? 검찰의 직무유기!

    검찰 수사팀은 ‘연행시간이 언제였는지’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면서 정작 ‘고문경관이 더 있을 가능성’, ‘윗선이 고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 여부’와 ‘축소조작은폐 과정에 윗선의 개입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확인조차 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확인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한다.

    분명 연행시간 문제는 중요한 사안 중 하나였다. 전날 자정 전후에 연행되었다면 고문 시간이 훨씬 길었을테고 결국 사건 초기 큰 의혹으로 제기되었던 ‘전기고문이 가해졌을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점에 집중하느라 다른 핵심 사안을 놓쳤다고 변명하는 건 다양하게 제기되는 여러 의혹에 대해 그 진실을 밝혀야 하는 수사 검사의 기본자세라고 할 수 없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최대 20일간의 수사기간조차 포기하고 불과 4일 만에 수사를 마친 것은 앞서 경찰에 수사권을 사실상 넘긴 데 이어 또 한 번 수사권을 포기한 직무유기였다.

    범죄수사에서 현장검증이 갖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검찰 수사팀은 고문경관도 없는 상황에서 현장검증을 실시한다. 이는 현장검증이 아니라 형식적인 ‘실황 조사’에 불과했다. 당시에도 검찰의 이런 조치에 대해 ‘얼굴없는 현장검증’이라며 국민과 언론의 반발이 거셌고, 노승환 의원외 20명은 “현장검증 공개리 재실시 촉구서”를 제출하기도 한다.

    고객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무조건 달려가는 서비스정신이 투철했던 것일까.고문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취해진 영등포교도소 출장 수사도 황당한 조치였는데, 나중에 결국 구속되는 황정웅, 반금곤 등 고문경관과 박원택, 유정방 등 상급자에 대한 참고인 조사마저 치안본부 대공3부 사무실(남영동 대공분실)로 출장을 가서 실시한다. 심지어 이정호의 경우는 고문에 가담한 5명의 경찰관 중 한 명이었음에도 참고인 조사조차 받지 않은 채 2페이지짜리 ‘자술서’를 받는 것으로 대체해 버린다. 그마저 ‘현장검증’이 끝난 이후에 진행했다는 사실은 참고인 조사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진행된 것인지 웅변한다.

    검찰 수사팀은 이미 실체적 진실을 파헤칠 의지는 물론 언론에서 제기하는 기본적인 의혹조차 파헤칠 의사조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박상옥도 함께 한 검찰수사팀은 수많은 의혹을 뒤로 한 채, 불과 4일간의 부실 수사를 거쳐 24일 오전에 부랴부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예정대로’ 2명을 기소하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한다.

    상식적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검찰 수사팀

    수사지휘라인에서 배제된 최환 부장검사도 경찰 수사발표가 나온 직후 “안상수에 전화를 걸어 “건장한 청년을 어떻게 2명이 고문하나. 2명일 수 없다, 더 조사하라”라고 말했고, 검사장을 찾아가서도 직접 그런 취지의 말을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구속된 두 고문경관의 진술이든, 참고인들의 진술이든 의심스러운 대목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박상옥을 비롯한 검찰 수사팀이 이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반적으로 물고문은 4-5명이 한 조가 되어 진행하며 급할 경우에도 최소 3명은 물고문 과정에 참여한다는 점(2차 수사 시 황정웅 진술조서), 조한경은 1반 반장으로 총괄담당이고 강진규는 4반 소속이어서 이들 둘 만이 한조가 되어 물고문을 진행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2차 수사 시 조한경 진술조서)은 명확하다.

    또 수사계획서 상에는 박종철에 대한 연행과 조사 담당이 반금곤이었기 때문에 박상옥이 강진규에게 “반금곤이 주범인데 왜 강진규가 주범이 되어 있느냐”고 구체적으로 추궁한 사실이 있고, 이때 강진규가 “답변하지 않자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고 법정에서 증언한 사실이 있는데도 1차 수사자료에는 그런 내용을 아예 기록에 남기지 조차 않았다는 점, “물고문 당시 14호실에 있었다”는 황정웅과 반금곤의 거짓 주장을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 인물이었던 박종철군의 하숙집 동료 ㅎ씨에 대한 ‘참고인 조서’가 지나치게 허술하게 작성되었다는 점(박상옥 담당), 조한경과 강진규가 물고문 횟수에 대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등 물고문 과정에 대해 의심스러운 진술이 많았음에도 그냥 넘어갔다는 점 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는 당시 검찰 수사팀이 물고문에 가담한 경관이 2명이 아니라 그 이상이었음을 이미 알았으면서도 이를 밝혀내고자 하기 보다는 진실을 덮는데 급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인 조서’인가, 소설 습작인가

    박상옥이 담당했던 하숙생 동료 ㅎ씨의 참고인 조서를 예로 들어보자. 참고인 ㅎ씨는 처음 14호실에 들어섰을 때 한동안 “5명의 수사관이 있었고 그 중 한 명이 자신을 조사했다”고 진술한다.

    이는 “2인 1조로 심문관과 부심문관을 두고 수사한다”면서 박종철 수사를 담당한 2인(조한경과 강진규)과 하숙집 동료 ㅎ씨를 담당한 2인(황정웅, 반금곤)이 명확한 역할 분담을 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명확한 정황증거였음에도 박상옥은 철저히 외면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박상옥이 ‘참고인 조서’를 개인적인 소설 습작 쯤으로 착각한 게 아닐까 의심하게 하는 대목도 등장한다. ㅎ씨의 ‘참고인 조서’에는 자신을 조사하던 황정웅과 반금곤이 “황망히 나갔다”, 그때가 “12시 경으로 생각한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황정웅과 반금곤은 14호실을 황망히 나간 적이 없다. 박종철군에 대한 본격적인 물고문을 위해 오전 10시 50분경 이정호를 보내 부르자 기껏 ‘짜증을 내면서’ 나갔을 뿐이다. 따라서 ㅎ씨도 상식적으로 볼 때 ‘황망히 나갔다’고 진술했을 리 없다. “황망히 나갔다”는 표현은 박상옥이 두 사람의 알리바이를 성립시켜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끼워 넣은 작품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시계가 없던 ㅎ씨가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어 ‘12시 경으로 생각한다’고 답했을테지만, 황정웅과 반금곤이 주장하는 11시 25분경과 너무 큰 차이가 나는데도 이를 다시 확인하지도 않는다. 추가 공범을 밝힐 수 있는 유력한 ‘참고인 조사’였음에도 ‘대충 허술하게’ 조사하고 마무리했던 것이다.

    이는 2차 수사 때 진행된 ㅎ씨에 대한 ‘치밀한’ 참고인 조서(5. 21)와 비교해보면 더욱 더 분명하게 확인된다.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최초의 허위보고서는 누가 작성했던 것일까

    박상옥 당시 수사검사는 14일 당일 “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허위보고서(최초의 ‘사고발생경위서’)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홍승상(5과 1계 계장)에 대해서는 참고인 조사조차 하지 않는다. 축소은폐조작에 윗선이 어떻게 개입했는지 접근할 수 있는 유력한 통로였음에도 이를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안상수 검사는 물이 흥건했던 현장에 달려온 유정방, 박원택 등이 물고문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음에도 형식적 수사를 통해 면죄부를 준다. 사건 당시 폐쇄회로를 통해 물고문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을 윗선이 미리 알고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확인조차 생략한다.

    고문경관 조한경이 “과장실, 당직실 등에서 볼 수 있는데, 그날 폐쇄회로를 작동하여 타인이 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라고 진술하고 있었음에도 “폐쇄회로가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박원택의 진술, “우리과(5과)와 내 방에는 없고 3층 2과 과장실에 있는데, 기계가 노후되어 현재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유정방(5과 과장)의 진술을 일체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수용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검찰의 1차 수사가 단순한 부실수사 차원을 넘어 경찰의 발표내용을 그대로 추인하는 ‘추인 수사’, ‘짜맞추기 수사’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검찰 1차 수사팀은 “경찰에 감쪽같이 속은 것”이 아니라 “경찰에 감쪽같이 속아줬던 것”이다. 검찰의 직무유기는 이미 1차 수사 때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필자소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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