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나는 당신이 한 일을 알고 있다 ①
[기고]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은폐 사건’과 ‘잘못 알려진 신화’
    2015년 03월 30일 09: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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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민주화의 한 분수령이 된 사건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은폐 조작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지금 정부에 의해 대법관 후보자로 내정된 박상옥 인사청문회를 둘러싸고 재점화하고 있다.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수사검사로 참여했던 이력 때문이다. 이에 레디앙은 박종철 열사의 친구였으며 지금도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학규 국장의 기고문을 연속하여 게재할 예정이다. 민주주의는 과거를 기억할 때 유지 발전하며 과거을 망각할 때 독재와 억압의 어둠은 언제든지 다시 부활하여 우리를 짓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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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계속 시끄럽다.

야당은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당시 수사검사로 경찰과 관계기관대책회의로 대표되는 전두환군사정권의 축소은폐조작에 협력한 인물이어서 민주주의와 인권, 정의를 지키는 최후로 보루인 대법관으로는 부적격이라며 지난 57일간 청문회를 거부하면서 ‘자진사퇴’와 대법원장의 임명제청 철회를 주장해왔다.

반대로 새누리당은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과거 박종철군 고문치사 축소은폐 조작사건에서 한 역할을 둘러싸고 ‘고문경찰관을 단죄한 인물’로 미화하기도 하고, ‘막내 검사여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합리화하면서 대법관의 장기 공백상태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해왔다.

동일한 사건을 기억하는 시각이 너무 다르다. 그렇다면 진정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 무슨 일을 했을까.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말로 잘 알려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그 축소은폐 조작 사건은 우리 사회 민주화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던 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 역할을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당시 박군의 죽음이 온 국민을 충격과 분노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뜨린 이유는 비단 젊은 대학생이 국가기관인 치안본부에서 갖은 폭행과 물고문으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에만 있지 않았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그러한 만행으로도 모자라 이를 축소은폐 조작하여 국민을 속이는 행위를 경찰 차원을 넘어 검찰과 안기부, 관계기관대책회의와 청와대 등 국가기관 전반을 동원해 전방위적으로 진행했다는 점이 더 큰 반작용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87년 1월 14일 새벽 서울대생 박종철(당시 언어학과 3년)은 수배 중이던 선배 박종운의 거처를 파악하려던 치안본부대공분실 소속 경찰들에 의해 일명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되어 물고문을 당하다 사망한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은 당시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 강민창이 고문에 의한 사망 사실을 은폐하고 단순 쇼크사로 조작하여 처음 발표하는 과정에서 사용하여 온 국민의 분노와 조롱을 샀던 표현이다.

박종철 박상옥-1

박종철(왼쪽)와 박상옥

경찰은 박종철군이 사망하자 비밀리에 시신을 화장처리하여 증거를 없애려 시도하지만, 서울지검 최환 공안부장의 거부로 실패한다. 이후 부검을 통해 ‘고문에 의한 사망’ 사실이 밝혀지면서 온 국민을 충격과 분노에 빠뜨리면서 정국은 소용돌이에 빠진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축소은폐 조작사건은 단일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1차 수사, 재수사, 재재수사 등 무려 3차례에 걸쳐 수사가 벌어진 독특한 사건이었다. 그만큼 매번 검찰의 수사가 미진하여 새로운 사실이 폭로되면서 수사가 재개되는 일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당시 검찰 수사팀은 ‘졸속 수사’, ‘짜맞추기 수사’, ‘축소은폐 수사’로 국민적 지탄과 불신의 대상이었다. “검찰이나 경찰이나 똑같다”는 말이 상징하듯 고문을 통해 박종철군을 죽게 한 것도 모자라 이를 축소은폐 조작한 경찰만이 아니라 이를 제대로 밝히기 보다는 축소은폐하여 전두환 군사정권의 위기를 모면하게 하는 데 충실히 복무하고자 한 검찰 역시 국민적 분노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축소은폐 조작사건’ 때 검찰이 고문경관을 단죄했다고?

그런데도 왜 당시 검찰수사팀의 일원이었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게 ‘고문경찰관을 단죄한 인물’로 칭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걸까. 더군다나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의 결정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관계기관대책회의 은폐․조작 의혹”이 공개된 이후에도 ‘당시 검찰은 축소은폐 조작에 앞장선 경찰과 안기부, 관계기관대책회의에 맞서 수사를 잘 했다’는 잘못된 신화를 계속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 걸까.

이런 신화가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는 건 황적준 박사(당시 부검의)가 88년 1월에 부검 당시 일기 공개를 통해 박종철군 고문치사 축소은폐 조작과정에 사건 당시 치안본부장이었던 강민창이 초기부터 개입했다는 사실을 폭로할 때 안상수 당시 수사 검사가 함께 “관계기관대책회의의 개입으로 검찰로서는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없었다”, “지금도 다 못 털어놔 안타깝다”고 한 언론에 인터뷰함으로써 3차 수사를 통해 강민창을 구속시키도록 하는데 기여한 점, 1994년 안상수가 『안 검사의 일기』를 통해 당시 검찰 수사팀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의로운 검사들’로 소개하고, 특히 본인을 ‘고문에 의한 사망’ 사실을 밝혀낸 주역인 양 포장하여 대대적으로 홍보한 게 많은 이들의 뇌리에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안상수는 이후 인권변호사로 활약하고, 나아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해결의 주역임을 내세워 국회의원까지 하게 됐으니 그 신화는 현실적 힘으로까지 발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은 위 내용과 많이 다르다. 검찰이 “사건의 진상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직무를 유기하여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다가 국민에게 은폐사실이 폭로된 이후에야 추가 공범을 포함 치안본부 관계자 등 은폐에 가담한 책임자를 최소한만 기소하여 관계기관대책회의의 부당한 개입을 방조하고 은폐한 잘못이 있다.”(“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관계기관대책회의 은폐․조작 의혹”, 2009,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것이 역사적 진실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사건 당일(1/14) 경찰의 시신 화장을 통한 은폐기도를 여러 외압에도 불구하고 이를 막아내고 부검을 이끌어냄으로써 ‘고문에 의한 사망’ 사실을 밝혀낸 주역은 안상수가 아니라 최환 공안부장이었다는 사실도 공식 확인되었다.

안상수는 당직검사(1/15)로 최환 공안부장의 지시에 따라 부검을 집행한 검사였다는 점에서 아무리 좋게 봐줘도 조연에 불과했음이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안상수는 마치 자신이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규명한 주역인 양 최환 공안부장의 공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 스스로를 ‘정의로운 검사’로 포장하여 이를 무기로 국회의원도 하고, 모당의 당대표까지 했던 것이다.

물론 ‘고문에 의한 사망’ 사실이 밝혀지는 데는 신성호 기자(중앙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인들, 오연상 내과의, 황적준 부검의 등 검찰과 무관한 많은 분들의 공이 모아진 결과였다. 그럼에도 처음 최환 공안부장을 중심으로 한 검찰이 경찰의 시신화장 기도를 막고 부검을 관철시켜 ‘고문에 의한 사망’ 사실을 밝혀낸 것은 분명 ‘잘한 수사’였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이후 검찰은 자신에게 주어진 수사권마저 사실상 포기하고 경찰 자체 수사에 맡겨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축소왜곡 조작하도록 방조한 것을 시작으로, 박상옥이 참여한 1차 수사나 2차 수사(재수사)든, 박상옥이 참여하지 않은 88년의 3차 수사(재재수사)든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오히려 경찰의 축소은폐 조작 기도를 방조하고 협력한 것이 검찰 수사팀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검찰은 당시에도 국민들로부터 “검찰은 왜 조사하지 않는가”라는 이야기를 듣는 원성과 지탄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검찰이 요리조리 피해나갈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권력의 비호 덕분이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 제청 사건’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은폐되어 왔던 당시 검찰과 검찰 수사팀, 그 수사팀의 일원이었던 박상옥 당시 검사가 어떤 ‘잘못된 수사’를 했는지 제대로 밝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제 다음 회부터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참여한 검찰 수사팀이 지난 87년에 무슨 일을 벌였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계속>

필자소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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