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저절로 진보하지 않는다
    [서평]『 진보와 저항의 세계사』(김삼웅 저/ 철수와 영희)
        2012년 07월 14일 12: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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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 노동자들은 금으로 번쩍이는 리마의 어느 집에서 살았는가?
    만리장성이 완성되던 날 밤에 석공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위대한 로마는 개선문으로 가득 차 있다네. 누가 그것들을 세웠는가?
     –  베르톨트 브레히트,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중

    중, 고등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으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네 갈래를 나누어 이 시대에 이 왕이 있던 시기에 이건 어떠하고 저건 어떠하다는 걸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곳에서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 시간에, 그 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기에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세상은 노동하는 사람들이 일을 조금씩 더 적게 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더 잘 살게 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이것은 누군가가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쥐여준 것이 아니다.

    곳곳에서 짓밟힌 한 가지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권력과 싸웠어야만 했다. 더 좋은 세상을 향해 가는 것이 ‘진보’라고 할 때, 세상은 분명 진보해왔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진보는 언제나 권력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통해 이뤄졌다.

    저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권력에 저항해 인권을 이야기한 주요 사건들을 살펴보고 있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흉포하다 하고, 의(義)를 해하는 자를 잔인하다 하는데, 흉포하고 잔인한자는 일개 범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왕이 일개 범부인 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왕을 살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한 맹자, “노예도 사람이다.”라는 스파르타쿠스의 저항, “아담과 이브가 일할 때 영주가 어디있었나.”라는 존 볼의 농민봉기에서 시작한 저항은 지금 세계 곳곳에서 진보를 위한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년간, 아랍에서는 많은 독재자들이 자리에서 내좇겼고, 자본주의의 중심지인 월 스트리트는 99%의 사람들에 점령당했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슬라보예 지젝의 『점령하라』와 같은 책들이 서점을 뒤덮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승만의 동상이 다시 세워지고, 박정희 기념관이 건립되었고, 2012년 총선에서는 완패했다.

    2008년 거리로 가득 매운 그 촛불은 2012년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월 스트리트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내가 염려하는 유일한 점은, 우리가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간 뒤, 1년에 한 번씩 만나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그 때 우리 정말 대단했지” 하고 추억에 젖어 회상이나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겠다고 여러분 자신에게 약속하라. 사람들은 종종 무언가를 욕망하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욕망하는 것을 실제로 추구하기를 두려워 말라.”라고 했다.

    사실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그 때 그 대단했던 추억을 회상하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진보정당이 더 많은 지지를 받기 원하지만 정말 진보정당이 집권하는 것은 원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소행성이 지구에 부딪쳐 모든 생물이 멸종하게 되는 식의 종말은 상상하기 쉽지만, 자본주의의 종말은 도저히 상상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월가의 시위도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80일 정도 지속된 뒤 끝났다.

    우리에게 지금 새로운 세상을 향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상상력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세계사의 전환점이 된 많은 저항운동들과 그 지혜를 제공한다. 아직 우리에게는 저항의 경험이 살아있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의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15세기 초 이단자로 몰려 화형당한 얀 후스는 처형당할 때 “만약 당신들이 지금 거위(후스)를 불태운다면, 100년 뒤에 당신들이 해칠 수 도 구이를 할 수도 없는 백조가 나올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100년 뒤, 루터가 나타나 종교개혁을 이루었다. 역사는 반드시 진보한다. 빠르거나 혹은 느리거나.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민중의 투쟁 위에서 일어날 것이다.

    필자소개
    학생. ddilgooc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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