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세월호의 아이들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금요일엔 돌아오렴』
        2015년 03월 23일 10: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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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깔있는 진보 미디어’ 칼라TV가 제작하는 논픽션 책 팟캐스트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는 르포르타주와 논픽션 책을 다루고 있고, 매주 월요일 업로드 된다. 김현진(에세이스트)과 송기역(시인, 르포작가)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책 소개 및 저자와의 인터뷰 외에, ‘신간 논픽션 브리핑’, ‘김현진의 라디오 에세이’, ‘논픽션 작가 열전’, ‘인문학 강의’, ‘내 인생의 밑줄 쫙 별표 땡땡’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0회 방송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를 쓴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의 작가들 중 김순천, 박현진 작가와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진행자 송기역 작가, 그리고 병상에 있는 김현진 작가 대신 방송을 진행해준 정윤영 작가가 함께 했다. 제10회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는 시즌1의 마지막 방송이었으며 잠시 공백 뒤에 더 새롭고 풍성한 기획으로 시즌2를 진행할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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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 살아온 것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상황에서 기록을 결심하다

    곧 4.16 세월호 사건 1주기이다. 3박4일 수학여행을 마치고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되어있었던 많은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아이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 죽음의 의미는 반드시 살아남아 이 사회 속에서 존중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이 만들어졌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서는 눈물이 너무 쏟아져서 일단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는데 기록의 과정은 더 힘들었을 거 같다. 김순천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피해학생들이 가장 많았던 안산 선부동, 와동, 고잔동 중에 제가 선부동에 살아요. 가까이서 직접 아이들의 죽음 목격을 했어요. 길거리 다녔던 아이들 250명이 사라진 것이잖아요. 충격이 컸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이었어요.”

    “처음에는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그런데 유가족 곁에 머물다보니 기록을 통해 남겨야 한다는 생각 들었어요.”

    우리 모두 세월호 사건 앞에 무기력했다. 사람들이 산 채로 그 차갑고 어두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온 국민이 실시간 생중계로 목격했다.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죄스러웠다. 이 사건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하겠지만, 하지만 어떻게? 잊지 않기 위한, 기억하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기록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 큰 아픔 속에 있는 유가족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고 김순천 작가는 말한다.

    “유가족에게 다가가기가 제일 힘들었어요. 이미 기자들한테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불신이 너무 심했어요. 기록한답시고 안 그래도 힘든 분들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늘 긴장했어요. 너무 큰 고통 때문에 말씀을 잘 못하시는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너무 힘든 거예요. 아직도 말씀을 못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고통을 반추시키며 기록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고민이 많았어요.”

    “어떻게 만나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여태까지 살아온 것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팽목항과 진도 체육관에 갔어요. 기록해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한 줄도 글을 못 쓰겠더라고요. 아이들 250명의 영혼을 감당할 수도 없고, 내가 그럴만한 존재가 못 되는데 싶었어요. 그렇다고 아이들의 영혼을 피해가지도 못 하겠더라고요. 도망가더라도 내 괴로움이 덜어질 거 같지 않았어요. 밖에서 아파하는 것보다 그분들과 함께 있는 게 오히려 더 편했어요.”

    4월 16일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던 것은 박현진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국회에서 부모님들이 노숙농성할 때부터 함께 했어요. 부모님들이 소리도 안 내고 울고 있었어요. 우리는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낸 죄인이라서 소리도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신다면서…. 매일 국회의사당 역에 내리면 담배를 2갑 샀어요. 국회의 흡연 구역에 하루 종일 그냥 서 있었어요. 유가족 분들이 담배 피우시면 불도 부쳐주고, 혼자 우시면 어깨도 좀 두드려 드리고 그렇게 옆에 있었어요. 한 일주일쯤 지났을 때 6반 부모님이 처음으로 옆에 와서 앉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뭐랄까… 인정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그때부터 부모님과 대화도 나눌 수 있고, 서서히 기록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박현진 작가는 2학년 4반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씨를 인터뷰했다.

    “수현이 아버님은 사건 초기부터 진상규명에 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셨고 블로그를 만드셔서 관련 자료를 많이 공개하셨어요.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어려운 상황 속에서 부모님들이 적극적으로 진상규명이라는 방향을 찾고, 그것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실 수 있는 용기를 어떻게 내실 수 있었나 싶어서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김순천 작가는 2학년 3반 김소연 학생의 아버지 김진철 씨와 2학년 1반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택 씨를 인터뷰 했다. 르포 작가로 그동안 소외된 현장, 저항의 현장, 고통스런 용산참사 현장 등, 어렵고 힘든 곳에서 기록 작업을 해온 김순천 작가의 내공도 세월호 사건 앞에서는 무력했다.

    “제가 그래도 내공이 있다는 얘기를 듣는 편인데, 세월호 사건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계속 분향소를, 단원고를, 장례식장을 왔다 갔다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계속 말 없이 왔다 갔다 하니까 어떤 부모님이 저한테 ‘원하는 거 있으면 단 한 가지만 이야기해라. 들어주겠다.’ 하셨어요. 이렇게 제일 처음 말을 걸어주신 분이 지성이 아버님이었어요. 그렇게 물어주시니까 제게 엄청난 힘이 됐어요. 그때 처음으로 이제 기록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지성이 아버님은 지성이를 너무 사랑하셨어요. 길거리 캐스팅을 받을 정도로 참 예쁜 아이였는데 그렇게 가버렸어요. 초기에 지성이 아버지가 조도, 동거차도, 서거차도 등… 주변 섬을 돌아다니셨어요. 사건이 태평양 한가운데 난 것이 아니라 섬이 둘러싸여 있던 곳에서 났잖아요. 누구나 구조를 요청하면 살릴 수 있는 곳에서 사건이 난 거잖아요. 어민들이 그래서 많이 도와줬고, 그 어부들의 증언을 듣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놓으셨어요.”

    금요일엔

    보호자 같은 딸 소연이

    김순천 작가는 김소연 학생의 아버님 김진철씨도 인터뷰 했는데 김진철씨에게 소연이는 딸이자 보호자였다고 한다.

    “소연이가 세 살 때 소현이 엄마와 헤어지셨거든요. 그때부터 아이를 혼자 키우게 되셨어요. 그때부터 소현이를 위해 살겠다고 생각하시고 안 해본 일이 없대요. 그렇게 힘든 노동을 하시다가 손가락을 잘리셨어요. 수술을 받으려면 보호자가 필요하잖아요. 아무도 없기 때문에 소연이가 중 2때부터 보호자 역할을 했대요.”

    “소연이는 아버지가 고생을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철이 일찍 든 거 같아요. 상장도 많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장학금을 받아 졸업식 때는 아버지 친구 분들에게 삼겹살을 사줄 정도였대요. 소연이는 중학교 교사가 꿈이었어요. 선생님이 되어서 아버지를 모실 테니 ‘아버지, 걱정 마시고 조금만 고생해주세요.’라고 했대요.”

    “어린 아이잖아요. 한창 또래 친구를 만나서 놀 때잖아요. 여러 친구를 만나고 사귀고 그럴 나이에, 주말이면 ‘아버지, 빨리 옷 입어. 놀러가게.’ 그랬대요. 소연이 아버지가 일만 하시고 놀러갈 틈이 없으니까 일부러 아버지하고 놀았대요.”

    그렇게 각별한 사이였기에 소연이가 그렇게 되자 소연이 아버지는 많이 힘들어 하셨다. 술을 마시고 구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다고 한다.

    “아버님이 술을 그냥 드신 게 아니라, 돌아가시려고 드신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자살 시도예요. 그게 몇 번 있었어요. 지금은 그런 시기가 좀 지나고 소연이를 위해서 뭔가를 하셔야하겠다고 생각하신 거 같아요. 이번에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걸었잖아요. 완주를 하셨어요. 완주를 하시면서 자기가 소연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아버지를 완성시키는 아들 수현이

    더 이상 세월호 사건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는 부모들은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씨는 진상규명이 아들 수현이가 내준 숙제라고 생각하고 매일매일 할 일이 너무 많다. 박현진 작가는 박종대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수현이 아버님은 본인을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세요. 만나 뵈면 말씀을 길게 하시는 편은 아니고 짧게, 짧게 말씀을 하시지만, 분명하게 말씀을 하세요. 다른 부모님 같은 경우에는 마음이 많이 아프셔서 기억이 또렷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그런데 아버님은 그날 몇 시쯤이 아니라 몇 일, 몇 시, 몇 분 쯤라고 말씀을 하세요. 그렇게 항상 정확하게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이어리에 기록을 자주 하신대요. 1년에 다이어리를 3권씩 쓰실 정도로 평소에 기록을 많이 하시던 분이예요.”

    “어느 날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수현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시다가 아버님이 갑자기 눈을 감으시고 한참동안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계시더라구요. 아이 이야기를 하다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이 있는데 눈물을 안 흘리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아버님 슬프시면 슬프실 때 눈물도 흘려야 됩니다.’ 라고 했더니, ‘내가 지금 울고, 내가 지금 슬픔에 빠져 있으면 수현이와 다른 아이들, 그리고 희생된 분들의 진상규명에 해가 될 거 같다. 나는 지금 누구보다도 냉정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라고 하셨어요. 스스로를 그렇게 몰아붙이셨어요.”

    “실제로 수현이 아버지는 무뚝뚝한 분이 아니에요. 수현이 아버님이 만든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수현이가 어릴 때부터 여행도 함께 많이 가서 사진과 동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어요. 통상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가 그렇게 돈독하지 않은 경우가 많잖아요. 특히나 수현이는 사춘기였고. 그런데 수현이와 수현이 아버님은 그렇지 않았어요. 시간만 나면 둘이서 사진기를 하나씩 매고 사진도 찍으러 다니고 등산도 자주 했어요.”

    “수현이 아버님이 ‘수현이는 아들이기 이전에 내 삶의 친구였고 내 삶의 동지였다.’ 라고 말씀을 하실 정도로 부자 사이가 좋았어요. 그런 것을 보면 실은 정이 많으신 분인데 사건이 터진 이후로 본인을 그렇게 몰아붙이는 걸 옆에서 볼 때 안타까움이 많았죠.”

    “수현이는 굉장히 밝고 정이 많은 친구였어요. 수현이 아버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수현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사랑해라는 말이었대요. 부모님한테도, 수현이 누나한테도, 사촌동생들, 친구들한테도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했대요. 솔직히 남학생들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잘 안 하잖아요. 그런데 수현이는 평소에 사랑한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할 정도로 정이 많은 친구였다고 하고요. 사춘기 때는 투닥투닥 거리고 그런 일도 많을 텐데 친구들하고 싸우는 일이 거의 드물었대요. 항상 남한테 배려를 해주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그랬대요.”

    “수현이 아버님이, ‘아들인데 내가 아들을 볼 때마다 내가 배우는 게 더 많았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따뜻한 친구였어요. 수현이 아버님 표현에 의하면 무뚝뚝한 아버지와 따뜻한 수현이가 서로를 완성시켰대요. 그렇게 서로를 완성시키는 사이였는데, 수현이가 떠난 다음에 자기의 반쪽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아픔을 겪었다고 하세요.”

    “수현이 아버님은 수현이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아세요. 친구들 이름부터, 수현이가 뭘 좋아하는지, 몇 살 때는 뭐에 관심이 많았고, 음악은 누구 음악을 들었으며, 이런 것들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알고 계시더라구요. 정말 이 부자는 돈독한 관계였구나 하는 것을 말씀을 들을 때마다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사고’가 아니고 ‘사건’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떠난 수현이의 동영상

    박수현 군은 JTBC에 보도된 동영상을 찍은 친구다.

    “수현이 아버님은 수현이가 뭍으로 돌아오기 전에 하나 확신한 게 있었대요. 수현이가 굉장히 어른스러운 친구였기 때문에 뭔가 실마리를 남겨두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대요. 수현이가 뭍으로 돌아왔을 때 수현이 휴대전화가 있었고 그것을 새벽에 혼자 보셨나 봐요. 혹시나 수현이 어머님이나 주변사람이 보면 가슴이 아플만한 사진이나 동영상이 있지 않을까 염려되어서 혼자 동영상을 봤는데 기존에 알고 있던, 사고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지 못하던 내용이 동영상에 들어 있었잖아요. ‘아, 이 동영상은 수현이가 나한테 이게 그냥 사고가 아니고 밝혀져야 될 것들이 많은 그런 사건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떠난 것이다.’는 생각이 드셨대요.”

    “그 동영상을 어떻게 해야 하나를 가지고 고민을 많이 하셨대요. 만약 동영상을 언론을 통해 공개를 하면 부모님들이 그것을 보시고 상처를 입으실 거고, 괜히 이걸로 인해 수현이의 이름이 많이 왈가왈부 되는 것이 두렵기도 하시고… 그런데 수현이가 동영상을 남기고 떠났다면 거기에는 분명히 의미가 있을 것이고, 아버지인 본인께서 그것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싶어서 언론에 처음 공개를 하시게 되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수현이 아버지가 연 ‘고 박수현이 체험했던 세상’이라는 블로그에서 수현이의 버킷 리스트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세계여행, 2000권의 독서, 아버지에게 수제 기타 만들어 드리기 등이었는데 그 중에 ‘유명한 뮤지션들 사인 받기’가 있었어요. YB 윤도현, 국가스텐 등 많은 뮤지션들이 수현이 아버님께 싸인을 한 사진을 보내줬어요. 수현이가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를 부모가 대신한다는 것 자체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 과정에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수현이를 잊지 않고 있구나, 우리가 수현이를 계속 기억하고 있구나 하는 그런 위안을 많이 받으셨다고 해요.”

    2차 작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미완의 기록

    수현이는 밴드활동을 했는데, 같이 활동을 했던 7명의 아이들 중에 4명이나 희생을 당했다고 한다. 생존 학생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학생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되짚게 만들 거 같아서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박현진 작가는 말한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엔 304명의 유가족 중 13명만의 기록이 들어 있다. 이에 대해 김순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반 유가족과 실종 유가족 기록을 하려고 했어요. 시도는 정말 많이 했는데 잘 안 됐어요. 많은 유가족들 중에 일부만 인터뷰를 했기 때문에 2차 작업을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실종자 가족의 경우는 기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이미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상황이고 그 고통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렇게 아픈 상황이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어요. 우리의 기록은 우리의 준비 상태와 유가족 분들의 상태가 같이 결합되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거잖아요.”

    용기를 내서 읽으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쏟아지는 눈물과 가슴 아픔으로 몇 번이나 읽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는 책이다. 김순천 작가가 말하는 독자들의 반응은 그 눈물과 아픔을 보담아 주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글을 하나 읽었어요. 책을 신청을 해서 책이 왔는데, 그 독자가 맨 처음 한 일이 그 책을 꼭 껴안아줬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어요. ‘아, 이 책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 사람의 몸으로, 인식을 하는 책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어요.”

    “독자 중에 아이들이 편히 쉬라고 베개를 선물하는 경우도 있었구요. 또 북 콘서트를 하면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들이 많이 오잖아요. 분위기 되게 좋고, 박수도 많이 쳐주시고, 그리고 너무 힘든 작업 했다고 말씀도 해주시고, 유가족 분들이 얘기를 하면 공감도 많이 해주시고 해서, ‘이 과정이 진짜 필요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북 콘서트에는 기록했던 유가족과 함께 다니는 거잖아요. 거기서 같이 호흡하고 감정을 하나로 느끼고, 이런 과정이 참 좋더라구요.”

    친구 중에 마음이 무거워질까봐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고 싶지 않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렇다. 안 그래도 팍팍한 삶인데 굳이 아프고 힘든 얘기를 왜 읽고 싶겠나. 하지만, 우리의 삶이 팍팍하기 때문에 더욱 읽어야 하지 않을까? 외면하면 삶은 더욱 팍팍해지기만 할 것이므로… 박현진 작가는 용기를 내달라고 말한다.

    “많은 분들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을 아픔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세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거는 부모와 자식 간에 참 따뜻한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펼쳐 나가고 싶은 꿈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이 책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아프다고만 생각하시지 마시고, 누군가의 사랑이야기, 누군가의 꿈에 관한 이야기라고 읽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기억이라는 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흐려질 수밖에 없잖아요. 이 책에 있는, 그리고 이 책에는 담기지 못했지만 다른 단원고 친구들, 일반인 희생자 분들, 생존자분들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차원에서 책이 읽혔으면, 그런 차원에서 용기를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들이 그런 말씀을 많이 하세요. 간담회나 북 콘서트 때문에 전국을 많이 돌아다니시잖아요. 그때 한 분, 두 분이 찾아오시면 그분들이 다 가족 같고, 내 편 같으시대요. 그분들 보면 아픈 마음도 치유되고 무거운 짐도 내려놓을 수 있을 거 같다고 하시더라구요. 앞으로도 간담회가 계속 전국에서 이어질 거 같은데요. 그런 자리에 시간을 내주셔서 참석을 해주시고, 주변에 세월호와 관련해서 잘못된 정보를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렇지 않다고 설명을 해주실 수 있는, 그런 작은 역할들을 조금씩 해주셨으면 참 고맙겠습니다.”

    김순천 작가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기록을 하면서 부모님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하셨다는 것을 느꼈어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타인으로 확장이 된 거예요. 여태까지 사회적인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생업에 바빠 외면했는데, 자신들이 고통의 위치에 놓여보니까 그래왔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고 하셨어요. 이 책이 고통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부모님들이 성장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세월호와 함께 성장하는 삶을 다 같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영혼을 맑게 만들기 위해 이 책을 읽기를 바랍니다.”

    김순천 작가와 박현진 작가는 세월호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소설가 박민규도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글에서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는 말을 했다. 세월호는 국가가 국민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저버렸던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국가의 진상 규명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을 한다고 지성이 아버지 문종택씨는 말한다.

    “저희에게 기소권까지 다 줘도 진상규명은 안 된다고 봐요. 이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는. ….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는 순간 이 정권이 무너집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밝힐 수 없는 겁니다. 다음 세대들에게 자료를 남겨주려면 우리가 할 일은 최대한 밝혀야 하는 거죠.” (p.188)

    세월호 전과 세월호 후는 분명 달라져야 한다. 달라지기 위해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은 잊지 않는 일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 정도밖에 없다. 기억하기 위해서, 잊지 않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여기 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내 삶의 무게가 더 무겁다고 여겨져 선뜻 용기를 못내는 사람들이 이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제10회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신간 논픽션 브리핑 따북’ 코너에서는 『성노동자, 권리를 외치다』(밀사, 연희, 지승호/철수와영희)와 『이창근의 해고일기』(이창근/오월의봄)가 소개되었고, ‘논픽션 작가 열전’에서는 ‘히로세 다카시’를, ‘내 인생의 밑줄쫙 별표 땡땡’ 코너에서는 고정란(1인출판사 대표, 편집인)이 추천하는 『우리 도시를 떠나 살 수 있을까』(보리/ 아비요)를 추천한다.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듣기 ☞

    팟빵 : http://www.podbbang.com/ch/8412

    아이튠즈 : http://goo.gl/oQzx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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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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