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모 이코노미쿠스
    자신의 속물성 의식해야 거기서 벗어날 희망 존재
        2015년 03월 23일 09: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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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한국에서 살았을 때에 한 중견 작가 분과 친했습니다. 글쎄, 친했다는 말은 좀 어폐가 있겠죠. 그 분은 저보다 수십 세 더 많으셨으니 차라리 “배우고 따랐다”는 표현은 더 맞을지도 모릅니다.

    망년지교라고 할까, 좌우간 종종 뵙고 말씀 나누고 한국 문단의 이런저런 비화를 듣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는 한 번 크게 쇼크를 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생활적 한담을 나누는 사이, 그 분은 “나는 요즘 경제적 활동을 그다지 못해서, 참.. 해외여행 따위를 꿈꿀 처지는 안 되지만…”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가만히 듣다가 왠지 표현이 너무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경제적 활동?’ 사업하시는 분도 아닌데, 이게 뭔 뜻일까? 여쭈어보는 것도 실례일 것 같아 망설였지만, 표현은 너무 이상해서 그냥 둘 수 없어 그래도 여쭈어봤습니다. 돌아온 답은 “소설을 써서 발표한 지 오래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 듣고 저는 아주 깊은 충격을 받아, 그 분을 한참동안 뵙지 못했습니다. 이상하죠?

    남한 사람 보기에는 이상하지만, 저로서는 아주 당연했습니다. 그때까지의 제 상식으로는, 작가란 인민들을 계몽하고 인륜과 인도의 고상한 이상을 창작을 통해 실천하는 “지사”였다는 거죠. 그런 작가는 만대에 <전쟁과 평화>와 같은 기념비가 돼야 할 소설을 “경제적 활동”으로 지칭하고 그러시다니…

    저로서는 그때만 해도 이게 독신죄에 가까운 표현이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저의 인식 틀은 유치하기 짝이 없었죠. <전쟁과 평화>를 쓰신 분에게 농장과 농노/소작인은 과연 어느 정도 많았을까요? 그를 열심히 흉내내곤 했던 쏘련 작가동맹 맹원들에게는 국가에서 받는 봉급은 얼마나 됐는가요? 항산이 보장된 작가들이야 계몽주의적 항심을 갖기가 쉬웠지만, 한국의 평균적 문학 창작 종사자의 월 소득은 100만원에 미달합니다.

    몇 안 되는 베스트셀러 작가나 유명 작가 이외에는 사실 직업적 작가들은 생계 곤란자들이죠. 그런 분이 소설 발표를 경제적 활동이라고 표현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는데… 왜 저에게는 이 말은 그렇게도 이상하게 들렸을까요? 생각해보니 제게는 그때까지만 해도 남한형 Homo economicus, 즉 “경제형 인간”은 아직도 생소했다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Homo economicus란 쉽게 이야기하면 이익 추구적 동기로 사는 인간입니다. 단, 여기에서는 ‘이익’이란 꼭 금전의 액수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징 자본을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후기 경제에서는, 이미지는 자본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이미지 자본이랄까요?

    그러니까 예컨대 인텔리 같으면 텔레비전에서 출연한다는 것은 엄청난 이미지 자본 축적입니다. 단숨에 몸값은 막 뛰죠. 마찬가지로 “관계”라는 것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하나의 자본에 해당됩니다. 어느 조직의 “높은 사람”을 단 몇 분 동안 단독으로 상대했다 해도, 언젠가 대인 경쟁의 결정적 순간에 이게 긍정적으로 작용될 수 있단 말이죠. 그런 걸 일컬어 “관계 자본”(network capital)이라고 합니다.

    이외에는 예를 들어 유명 외국 대학에서 특강하고 거기에서 또 유명한 외국 학자 아무개를 만났다는 것도 사회자본/상징자본/관계자본 상의 득이고….이런 것입니다. 남한에서는 인생의 주기란 쉽게 이야기하면 금전적 자본을 포함한 각종 자본의 축적 과정입니다.

    학력자본, 문화자본(한국의 그 유명한 교양주의 열풍!), 그리고 물론 사회/관계자본… 서로 경쟁하면서 이런 자본을 축적해나가는 것은 남한에서는 “표준적 인생”이죠. 그렇지 않았던 마지막 시대는 아마도 운동권 학생들이 자기 돈 내고 야학운동 벌였던 80년대이었는데, 이제 같은 운동권의 출신 상당 부분은 고액의 강의료를 받아가면서 강의 다닙니다. 시대가 이렇게 바뀐 거죠…

    제게는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Homo economicus는 상당히 이질적인 인종으로 보였습니다. 처음 한국 텔레비전에 갔을 때만 해도, 이게 죄가 아닌가, 인민들에게 계몽 대신 아편과 같은 오락을 공급해주는 자들에게 봉사해주는 게 흠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자주 하고 망설이곤 했습니다.

    처음에 전교조 선생님들에게 강의하고 강의료를 받았던 순간의 수치심도 지금도 기억납니다. 구 민주노동당 신문에 처음 칼럼을 썼을 때에 아예 고료를 사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Homo economicus로 산다는 게 타락으로밖에 안보이고 변질로밖에 안보였지만, 몇 년 지나고 나서는 거의 제게도 당연지사가 된 셈입니다. 표현이야 다르게 하겠지만, 제게도 이제 책 출간은 과연 “경제적 활동”이 다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Homo economicus에게 맞추어진 체제 속에서 사는 이상 그 껍질을 벗어난다는 것은 아마도 힘들 것입니다. 그래도 적어도 Homo economicus로서의 자신의 속물성을 의식이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듭니다.

    예컨대 유명 미국 대학에 강연 갈 때에 “나는 ㅇㅇ대에 간다!”는 자랑스러운 생각을 하는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켜 돌아보고, 이것도 상징자본의 축적을 향한 Homo economicus의 본심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이야기죠.

    결국 Homo economicus로서의 자신의 진면목을 직시해야 그걸 벗어날 희망이라도 생길 것입니다. 개인적 차원으로 본다면 혁명이라는 것도 결국, Homo economicus로서의 삶과 결별하는 게 아닐까요?

    필자소개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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