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새로운 순환,
시리자와 포데모스의 모멘텀
[번역] 데이비드 하비와 『일 메니페스토』의 대담
    2015년 03월 23일 09: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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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하비(David Harvy)는 세계적인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이자 『자본』해설자이다. 그는 『자본의 한계』에서 공간을 자본축적과 자본주의의 위기를 분석하는 것과 결합시킴으로써 물리적 공간이 어떻게 사회적 관계로서의 자본개념과 연관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저작은 또한 마르크스의 『자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필독서이다. 문화사/도시사 연구(『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와 포스트모더니니티에 대한 분석(『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에 있어서도 기념비적인 저작을 남겼다. 이 대담이 실린 『일 마니페스토』(il manifesto) 는 1969년 주간지로 창간되었다가 1971년 일간지로 변한다. 이탈리아 공산당에 대한 ‘좌익적 비판’을 수행하면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신문이었다. 1991년 이탈리아 공산당이 해산된 이후 이 잡지는 당 좌파를 중심으로 구성된 [공산주의 재건당]과 친화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공산주의 재건당]이 또다시 분화하여 [좌파/생태/자유]와 나뉜 이후 이들의 정치적 태도는 아직 모호하다. (남종석)

Verso 출판부 해설 :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최근 『일 마니페스토』와 함께 자본주의에 내재된 모순들과 붕괴가능성 관한 이야기를 나누웠다. 더불어 시리자(Syriza)와 포데모스(Podemos)가 자본에 저항하는 대안운동 가운데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말하였다. 79세의 나이에 새로운 책(『자본의 17가지 모순』, 동녘)을 들고 신선하게 나타난 데이비드 하비는, 여전히 한 눈은 마르크스에, 다른 한 눈은 사회운동에 두고 사회 변동을 독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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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

강의하고 있는 데이비드 하비의 모습(사진=노동자연대)

일 마니페스토: 하비 교수님, 당신의 최근 저작에서 마르크스는 기술적 도그마주의보다 혁명적 휴머니즘을 선택했다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는 혁명적 휴머니즘의 실현을 위한 정치적 공간을 어디에서 감히 발견할 수 있을까요?

하비 : 그것은 우리가 창조해야 하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되찾고 소외되지 않는 존재가 되기를 희구하면서, 세계와 맞서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문제는 다양하게 존재하는 이들 운동과 단단히 손을 잡을 수 있는 역사적 좌파의 무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운동들은 진실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것이거든요. 어떤 경우에는 종교운동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런 노력을 전유해 버리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소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는 정치적으로 전혀 다른 무엇인가로 변해버립니다. 여기서 저는 자본주의의 ‘부패’에 대한 분노가 유럽에서 파시즘의 성장으로 나타난다거나 미국에서 티파티 운동과 같은 급진주의로 나타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일 마니페스토: 『자본의 17가지 모순』은 세 가지의 위험한 모순들(끝없는 성장, 환경문제, 총체적 소외)과 변화의 힘들에 대한 토론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것은 어떤 이행 전략(programme)입니까 아니면 봉기가 다양한 불만들의 유연한 연대에 토대를 두고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까?

하비: 다양한 형식의 저항들이 조우하는 것은 혁명운동에서 언제나 근본적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스탄불의 게지 공원(Gezi Park)에서 보는 것들이나 월드컵 기간 동안 브라질의 거리들에서 일어났던 운동들을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행동주의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저는 그런 행동주의를 다른 어떤 것들과 연결시키는데 있어서 좌파의 무능과 실패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무능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실패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일상성의 정치학을 위해 전통적으로 생산에 초점을 맞추어 왔던 것을 ‘포기하지 못한’ 좌파의 실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관점에서는 일성성의 정치학은 혁명적 에너지가 성장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며 또한 ‘소외되지 않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활동들이 진행되는 그런 곳입니다. 시리자와 포데모스는 우리에게 이런 정치적 프로젝트을 최초로 관측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순수하게 혁명적이지는 않지만 엄청난 흥미를 일깨우고 있는 것이지요.

일 마니페스토: 시리자는 그 단어의 고전적 의미 그대로 ‘치명적인 역할’(tragic role) 하고 있습니다. 시리자는 매우 효과적으로 유로를 구원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유로는 계급적 폭력의 도구 역할을 했는데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리자는 ‘유럽이라는 사고’를 변호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수십 년 사이에 그것은 좌파의 구호 가운데 하나가 되어왔지요. 당신은 그 운동이 충분한 정치적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 아니면 궁극적으로는 실패할 것이라고 보는가요?

하비 : 이 경우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일 수 있는가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시리자는 단기적으로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장기에 있어서 그것은 승리를 쟁취할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시리자는 이제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문제들은 일상적인 의제로 만들었습니다. 그 순간 민주주의에 관해 의문이 생겨납니다. 앙겔라 마르켈이 전 유럽인들의 삶 위에 독재자로 군림하는 때에 민주주의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대중의 여론이 ‘독재정부는 물러가라’고 외칠 그 순간이 올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메르켈과 유럽의 지도자들이 총구를 겨누고 그리스를 유럽으로부터 축출하려 한다면(실제로 그들은 그럴 의사가 있음을 보였지요), 결과는 그 지도자들이 현재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치인들은 종종 엄청난 판단오류를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번 상황이 바로 그런 판단오류입니다.

일 마니페스토: 『자본의 17가지 모순』에서 당신은 혁명운동의 새로운 사이클을 예언합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을 평가해 볼 때 ‘아랍의 봄’은 재앙으로 끝을 맺었고 ‘오큐파이 운동’은 그 스스로를 유효한 정치적 세력으로 변형시키는데 실패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이에 대한 해법이 포데모스와 같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15-M 운동’(스페인의 반긴축 운동을 일컫는다-역자 주)에게 정치적 표현 형식을 제공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비: 시리자와 포데모스는 정치적 공간을 열어 젖혔지요. 왜냐하면 새로운 무엇인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죠? 저 또한 딱 뭐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포데모스나 시리자를 두고 ‘개혁주의’라고 비판하는 ‘반자본주의 좌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딱지붙이기가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이 두 정당들은 몇몇 정책들을 현실의 정치 일정에 올려놓은 최초의 세력들이라는 점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그들이 닦아 놓은 길 위에 서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열어젖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긴축이라는 마술적 주문’을 부셔버리고 트로이카(유럽중앙은행, IMF, 유럽위원회-역주)의 권력을 날려버리는 것을 통해 새로운 시야와 관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해 내었습니다. 이것들은 앞으로 더 전진할 수 있습니다. 현 상태에서 우리가 유럽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와 같은 종류의 정당들은 희망할 수 있는 최상의 것들 가운데 하나이고 우리가 현재 갖지 못하고 있는 좌파적 대안을 새롭게 규정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정당입니다. 그들은 아마 인민주의라는 개념이 의미하는 모든 한계들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인민주의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했듯이, 이것은 운동입니다. 개입의 공간을 열어 놓은 것이지요. 이 공간들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활용할 것인가는 순전히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자 이제 우리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무엇을 하죠?”고 질문할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일 마니페스토: 당신은 신자유주의란 그저 변화의 한 순간이며 위기 이후 자본주의는 그것을 극복하고 자체적으로 새롭게 조직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신자유주의는 새로운 활력을 얻을 것 같은가요?

하비: 저는 단지 신자유주의가 지금처럼 결코 강해지지는 못할 것이라고는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긴축재정이 하층계급이나 중간계급으로부터 부를 지배계급으로 이전시키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이란 말입니까? 2008년 위기 이래로 국가개입으로부터 누가 혜택을 보았는가 하는 것을 데이터로 관측해 보면 상위 1%이거나 오히려 상위 0.1%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우리가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달려 있겠지만 저의 정의는 (그것을 자본가계급의 전략이라고 보기 때문에) 다른 학자들에게 그것이 의미하는 바와는 다를 것입니다.

일 마니페스토: 1970년대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게임의 룰’은 무엇입니까?

하비: 예를 들자면, 대중들의 집단적인 복지와 은행들에 대한 구제가 서로 갈등국면에 있었을 때 우리는 은행을 구제했습니다. 2008년 이후 이들 규칙들은 매우 직접적인 방식으로 적용되었지요. 우리는 은행들을 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집에서 쫓겨난 시민들의 어려움들을, 그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해소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금융위기 해소에만 몰두한 것입니다. 동일한 일이 그리스에도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는 자신들은 만져보지도 못하는 ‘가방에 가득 찬 돈’을 빌렸고, 그 돈은 곧바로 독일과 프랑스의 은행으로 직행했습니다.(역주- 그리스에게 구제 금융으로 제공된 돈은 그리스를 거치지도 않은 채 곧바로 채권자들에게 송금된 것을 의미한다. 구제금융은 그리스를 위한 것이 아니라 채권자인 은행을 위한 것이라는 말–역주)

일 마니페스토: 그런데 왜 그리스는, 그리스에게 돈을 빌려주는 정부들로부터 채권자인 은행들에게로 돈이 이전되는데 매개자가 된 것입니까?

하비: 그 속에 놓여진 구조는 독일정부가 직접 독일 은행을 구제하거나 프랑스 정부가 직접 프랑스 은행을 구제하는 것을 피하도록 한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가 그 사이에 끼어들지 않는다면, 독일과 프랑스 정부가 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점이에요. 은행에 돈을 쏟아 붙는 것이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이에 반하여 그리스의 구제금융 형식을 띠면, 그리스에 대해 매우 관대하게 대하는 것처럼 즉 그리스에게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붙는 것처럼 보여 진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그 돈들은 그리스로는 오지도 않고 바로 채권은행들에게 갔지요.

일 마니페스토: 당신은 최상위 1%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당신은 이것이 유용한 슬로건이라고 보십니까? 이와 같은 호명이 어떤 분석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보나요? 혹은 이것이 단지 우리로 하여금 계급투쟁으로부터 눈을 돌리도록 한다고 보십니까?

하비: 우리가 진정으로 역사지리적 유물론자라고 한다면 우리는 모순들은 언제나 변화하며 이것을 우리의 범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상위 1%’에 대해 말함으로써 ‘오큐파이 운동’은 그 범주를 일상적인 단어로 만들었습니다. 피케티(Pikkety)의 자료나 다른 자료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최상위 1%’는 그들의 부를 극적으로 증가시켰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를 다른 개념으로 표현한다면, ‘최상위 1%’를 말할 때 우리가 ‘세계적인 과두제’(world oligarchy)를 만들어왔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본가계급과 같지는 않지만 자본가계급의 핵심에 있는 집단을 의미합니다. ‘최상위 1%’라는 개념은, 지금 지구적 과두체제가 무엇을 하고, 생각하고 말하는지를 묘사하기 위해 적절한 핵심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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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남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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