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1의 그 사건은
    일본 청년들에게 무엇이었나
    [책소개] 『조용한 전환』 (후쿠시마 미노리/ 교육공동체벗)
        2015년 03월 21일 12:02 오후

    Print Friendly

    3.11과 일본 청년 세대

    이 책은 ‘3.11’과 ‘청년 세대’라는 두 개에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다. 3.11이라는 미증유의 사건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즉, 근대 자본주의 사회와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 가도록 우리를 흔들어 깨웠는데, 여기에 누구보다 기민하게 반응한 쪽은 청년 세대였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려 할 때 사회는 항상 청년 세대를 호출해 왔다.

    하지만 3.11을 전후한 일본 사회에서 청년 세대의 위치는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일본의 청년 세대는 사회를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되는 세대이기는커녕 도리어 사회적으로 그다지 쓸모없는 존재로, 심지어 민폐를 끼치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 기성세대들은 이들에게 프리타, 니트, 파라사이트 싱글 등 부정적인 딱지를 지속적으로 붙여 왔다.

    청년들은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자기 책임론을 강요당해 왔고, 자신들이 뭔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자민당 정권 55년 체제가 막을 내린 2009년을 전후로 다양한 분야에서 청년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 속에는 기성의 지식인 못지않은 스케일을 가지고 지금의 일본 사회를 진단하고 미래를 디자인하는 청년들도 있었지만,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청년들도 있었다. 이들이 일제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 놓으면서 기성세대가 이야기하는 청년론이 아니라 청년들에 의한 청년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3.11이다.

    필자는 3.11을 전후 70년의 사회 구조, 삶의 방식과의 결별로 본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3.11은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사건과 반드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다룬 청년들의 목소리와 실천들은 시간적으로는 2011년 이전에 시작된 것들이 많다. 그러니까 3.11 이전부터 일본의 청년들은 이 사회로부터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것을 느껴 왔고, 조금씩 다른 사회, 다른 삶의 방식으로 이행하려 하고 있었는데, 그런 움직임이 마침 3.11을 만나면서 시대적, 사회적 맥락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3.11이 준 충격을 청년들이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떤 행동으로 옮겼는지를 살펴본다.

    조용한 전환

    일본 청년 담론의 최전선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에 있어 왔던 기존의 청년 담론을 살펴보고, 지금 일본의 청년들(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의 청년 세대들)을 둘러싼 주요한 키워드인 주거와 관계성, 교육과 노동, 여성과 결혼, 서브컬쳐와 민주주의, 후쿠시마 등을 중심으로 청년들의 움직임을 살핀다.

    1장 <포스트 3.11, 일본의 청년 담론을 묻는다>와 2장 <일본의 청년들이 데모를 하기 시작했다>에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일본의 청년들이 지진 피해 지역으로 가서 볼런티어 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그리고 근래 일본에서는 드물었던 대규모 집회인 탈원전 데모에 참가하면서 어떻게 정치를 받아들이는지를 살펴본다.

    3장 <길 위의 생활자에게 배우는 삶의 방식>과 4장 <셰어하우스, 청년들의 더불어 살기 실험>은 주거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홈리스들의 주거 방식을 대안적 주거 방식으로 제시하는 사카구치 교헤의 활동을 소개하고, 가족이라는 틀을 벗어나 셰어하우스에서 타인과 함께 살며 관계성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움직임을 주목한다.

    5장 <니트론의 현재>에서는 기존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만 했던 니트들의 하류 지향적 삶의 방식에 “기성세대가 끝없이 추구해 왔던 ‘상류 지향’에 대한 거부이고, 기존 사회에 대한 일종의 소극적인 저항”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6장 <획일성 속에서 추구하는 ‘개성’이라는 퍼포먼스>는 일본 취업 활동에 대한 이야기로, 2011년 있었던 ‘취업 활동을 때려 부수자’라는 청년들의 시위와 소설 《누구》를 통해 ‘신졸일괄채용’이라는 일본의 취업 활동 관행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7장 <곤카츠, 불가능의 언설>에는 기성세대로부터 ‘결혼 활동(곤카츠)’을 강요당하거나 빈곤 때문에 생존 전략으로서 결혼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 놓인 여성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기존 청년 담론에서 소외되어 온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결혼과 가족에 대해 다시 묻는다.

    8장 <하위문화 속에서 발견한 ‘민의’>와 9장 <망각에 저항하라>에서는 하위문화에서 민주주의적 요소를 발견하고 사람들이 3.11을 망각하지 않도록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역발상을 제시한 젊은 청년 지식인들을 주목한다.

    저자는 특히 일본 청년 담론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아즈마 히로키, 사카구치 교헤, 우노 츠네히로의 사상을 세 장(3, 8, 9장)에 걸쳐 소개하는데, 한국의 청년 지식인들과는 다른 색깔을 가진 일본 청년 지식인들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청(소)년 담론, 어제와 오늘

    청(소)년 담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던 시기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 이른바 ‘신세대’ 담론의 등장과 함께 원조 교제, 가출, 일진, 왕따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고 이해할 수 없는 ‘요즘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언어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것들 중 대다수는 지나친 리얼함으로 오히려 현실을 과장하거나 현학적 접근들로 현실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청(소)년은 어떤 존재인가. 십 대들은 여전히 미래의 희망(“우리 아이들을 지켜 주세요”)이지만 말 걸기도 무서운 병증의 환자(중2병 현상)이기도 하다. 이십 대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안타까운 청춘(88만원 세대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들(이십 대 개새끼론)이다. 기성세대들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호출되는 그들은 20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청(소)년 담론 안에 없다.

    한편 세대론에서조차 배제된 자들이 있다. 청(소)년 세대를 특정한 틀에 가두려 할수록 이들의 목소리는 소외된다. 대학 반값 등록금 정책이 정치적 이슈가 될수록 대학을 다니지 않는 청년들의 목소리는 작아지고,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밖 청소년들의 다양한 삶의 결까지 담아내지는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유스리포트는 ‘미래 세대로서의 청(소)년’에게 부과되는 사회적 기대나 통념을 걷어 내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존재로서 청(소)년들의 삶을 증언하고자 한다. 청(소)년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과 고민을 교육, 노동, 성, 사랑, 폭력, 가난, 소외, 관계 등 다양한 범주에서 조명할 것이다.

    기존의 청(소)년 담론의 주제가 되지 못했던 비주류, 소수자의 이야기도 담을 것이다. 또한 삶의 한 단면만을 놓고 평가하는 손쉬움을 포기하고 그들의 삶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배경을 함께 읽고자 한다. 그것은 문화적 다양성의 관점에서 청(소)년 문화가 사회적으로 소통되고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때로는 누군가가 대신해 그들의 목소리를 전할 것이며, 때로는 그들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섣부른 진단이나 분석은 하지 않으려 한다. ‘혐오론’이든 ‘희망론’이든 청(소)년을 특정한 프레임에 가두려는 욕망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출발선에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을 읽는 것은 곧 우리 시대, 우리 사회를 읽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