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기다리는 시대를 넘어
[에정칼럼] 망각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
    2015년 03월 18일 02: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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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두가 나질 않아요. 그대에게 가는 길이 이렇게도 멀고 험할 줄은 몰랐어”

요즘 즐겨듣는 노래의 첫 구절이다. 나는 대통령과 연애를 할 것도 아닌데도 가끔 이 노래를 들으면 ‘대통령님’이 떠오른다. ‘도대체 엄두가 나질 않는다. 대통령에게 나의, 우리의 목소리가 닿는 길이 이리도 멀고 험할 줄이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예견했다. 그런데 왜 이리 지치고 힘들까?

지난 1월 KAIST 미래전략대학원 주최로 ‘한국인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여기서 발표된 20~34세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는 많은 이들 특히 6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청년들은 ‘바라는 미래상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는 응답(23%)보다 ‘붕괴, 새로운 시작’(42%)이라고 답했다. 이 결과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한들 나에게 더 나은 살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 것이고, 오히려 컴퓨터를 포맷하듯이 모든 것을 깨끗이 지우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났다고 말하는 것 같다. 청년들에게 현실사회에서 나에게 더 나은 삶이 주어지는 것은 기적인 것이다.

TV 에서도 기적을 이야기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오디션 프로그램. 그 중 나름 원조격인 케이블 프로의 사회자는 외친다. “기적을 노래하라!!” 이 프로그램의 우승자에게는 말 그대로 기적과 같은 혜택이 주어진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매년 기적을 기대하며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 몰려든다. 정부도, 매체도 ‘기적’만이 나를 바꿀 유일한 꿈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두가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져서 나를 구원해주길 바라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래서 감히 나는 지금을 기적을 바라는 시대라고 명명하고 싶다.

그러면 어쩌다 우리는 기적에 목을 매게 되었을까? 그건 현실사회를 직시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할 정부와 그 활동을 견제해야 할 정치인들조차 기적의 신드롬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한 사회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일관성을 가지고 꾸준함과 시간을 투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모든 사회문제를 ‘경제성장’이라는 만능열쇠로 풀어낼 수 있을 리라 혹은 그렇게 믿어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방학숙제로 내준 일기를 밀려본 사람은 안다. 밀린 일기들을 하루 만에 다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결국에는 거짓 이야기로 가득하게 되고 만다는 것을. 이것은 국가도 마찬가지다. 매번 반복되는 기업의 비리와 정경유착은 이 거짓이야기들의 결과물이다.

정부가 끊임없이 쌍팔년도식 ‘경제성장’을 외치는 동안 미뤄둔 숙제들은 고스란히 민중의 몫으로 남겨지고 있다. 제주 구럼비 바위 발파 3주기 평화행진, 후쿠시마 원전사고 4주기 탈핵희망버스, 쌍용차 해고 노동자 복직투쟁을 위한 희망행동까지 3월만 해도 매주, 매일이 바쁘다.

얼마나 더 버티고 견뎌야 이 문제들이 우리사회에서 논의되고 정의롭게 풀려나갈 수 있을까? 이제 민중은 지쳐간다. 그리고 지친 민중은 이제 기적만을 바라게 되었다.

답답한 현실에서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기적을 바라는 사람이 많을수록 또 하나의 우려가 생긴다. 바로 ‘잊혀짐’이다.

올해 4주기를 맞은 후쿠시마를 추모하는 행사는 이전보다 조촐하게 끝이 났다. 지난해보다 그리고 그 전해보다 후쿠시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매체도 적었고, 행사를 준비하는 단위도 줄었다. 희망을 안고 영덕을 찾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확실히 시민들에게서 잊혀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쌍차도, 후쿠시마도, 밀양도 모두 기적의 바람 속에서 조용히 잊혀져간다. 민중은 응답없는 정부에 외면과 망각을 택하고 있다.

이제 곧 세월호 1주기다. 벌써 1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아직 정식 출범도 하지 못했다.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지난해 11월에 국회를 통과했으나 정부의 예산처리가 늦어지고 있다. 정부는 또 자신의 숙제를 민중에게 미루고 있다. 그리고 잊어주길 바라고 있다.

나 또한 생각한다. 나 역시 기적을 바라는 사람 중 하나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대규모 민중행동을 통한 사회변혁을 여적 꿈꾸고 있다니. 그래서 기적이 아닌 현실의 작은 실천을 생각해 본다. 그것은 망각하지 않는 것이다. 기억하고 변화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로 발현되어야 한다.

민중들의 바쁜 일상 속에서 적어도 정치인들은 평온한 한해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민중의 삶의 궤적과는 다르게 정치인들의 삶의 궤는 선거의 메커니즘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2016년 국회의원선거,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선거의 연속이다.

그래서 작은 제안을 해볼까 한다. 숙제를 미루는 정부와 선거철에만 정치를 하는 무능한 정치인들을 심판하기 위해 “잊지말자! 민중달력”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너무 아프기에 잊혀져야 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을 꼼꼼히 아로 새겨 끝까지 책임을 묻기 위해 그래서 기적이 아닌 현실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

그렇게 잊지 않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면 언제가 그 ‘님’에게도 닿지 않겠는가!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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