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무 살 균도,
    아빠와 집을 나서다
    [책소개]『우리 균도』(이진섭 / 후마니타스)
        2015년 03월 14일 10: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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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0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을 상대로 한 갑상선암 발병 피해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하며 탈핵 운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진섭 씨는 사실 장애인 활동가 ‘균도 아빠’로 더 유명하다.

    1992년, 고리 원전 근처에서 태어난 그의 아들 균도는 올해 스물네 살 청년이 되었지만 다섯 살 지능에 시시때때로 과잉 행동 장애를 일으키는 발달장애 1급의 자폐아이다.

    아버지는 균도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2011년, 복지관과 집 말고는 갈 곳이 없는 아들을 보다 못해 길을 나섰다. 균도와 같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애환을 알리고 싶어 도보 시위를 시작한 것이다.

    부자는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40일을 걸어 부산에서 서울까지 갔다. ‘균도와 세상걷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도보 시위는 이후 사람들의 성원과 관심이 더해지며 다섯 차례에 걸친 3천 킬로미터 국토대장정이 되었다.

    이 책은 이렇게 한 걸음씩 걸으며 매일 매일 써내려 간 아버지의 여행 일기와 집으로 돌아온 이후의 일상생활을 적어 내려간 페이스북 일기를 함께 묶었다.

    이는 평범한 가정의 한 가장이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로 인해 부모운동가이자 장애인활동가로 거듭나는 성장기이자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변해 가는 발달장애인 균도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여기서 성장한 것은 단지 부자만이 아니다. 균도를 만난 많은 비장애인들 역시 균도를 알게 되면서 달라졌다. 책의 마지막 4부에는 이들 부자와 같이 걸었던 친구들, 그리고 가장 가까이서 균도와 함께해 온 선생님, 엄마, 동생의 글을 실어 이와 같은 이야기에 입체감을 더했다.

    이 책은 장애인 당사자의 불굴의 의지나 부모의 억척스러운 교육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대부분의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의 삶에 그런 기적은 없다고 말한다. 중증 발달장애인에게 장애란 극복할 수 있는 난관이라기보다는 안고 가야 할 삶의 일부이자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도 발달장애인 부모 특유의 문제의식을 담은 이 책의 특징이다. “아름답게 꾸미지 않은 우리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외치며 눈물로 적어 내려간 균도 부자의 웃픈 이야기들은 아름다운 ‘23년간의 육아 일기’가 되었다.

    느리게 자라는 아이

    이 책의 1부는 균도가 태어나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동기와 학령기 발달장애인의 삶과 그 가족의 애환을 담고 있다.

    말은 좀 느렸지만 여느 아이 못지않은 재롱둥이였던 균도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으면서 느낀 부모로서의 절망과 이후 느리게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며 겪은 심적 고통, 그리고 과도한 치료비 부담으로 인한 경제적 고충을 이야기한다.

    지렁이를 먹고 온 사건을 계기로 장애를 받아들이고 장애 등급을 받게 된 사연, 학교와 일대일로 싸우던 목소리 큰 학부모가 부모 운동을 만나게 되면서 사회복지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균도를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펴 준 학교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특수학교에서 직업교육을 받았지만 과잉 행동 장애로 어느 작업장에도 갈 수 없게 된 균도와 함께 길을 나서기로 결심하는 과정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발달장애 아동의 보호를 오로지 부모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부양의무제의 문제점과 바우처 제도의 소득 제한선과 자부담 문제, 그리고 특수교육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1

    균도는 뒤집기 전에 앉았고 기어 다니기 전에 일어섰다. 돌날 아침 균도는 삼촌이랑 걸어서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아이였다. 하지만 돌이 지나도 옹알이만 하고 말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우린 그저 조금 늦는 줄로만 알았는데, 병원에서는 균도를 ‘자폐’라 했다.

    #2

    균도에게 장애 등급을 받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식에게 그런 멍에를 지운다는 게 죄악 같았고 다시는 건너오지 못할 다리는 건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균도가 지렁이를 먹고 왔다. 이제는 균도의 장애를 인정해야 했다. 균도는 발달장애 1급을 받았다.

    #3

    균도는 성우학교 1회 졸업생이 되었다. 학교에서 직업교육을 받았지만 균도에게는 어느 곳도 허락되지 않았다. 아빠는 사회복지사가 되었는데 정작 성년이 된 아들은 갈 곳이 없었다.

    우리 균도

    균도 부자의 3천 킬로미터 국토대장정

    이 책의 2부는 40일간의 1차 세상걷기를 근간으로 2~5차 세상걷기에서 쓴 일기들을 같이 엮었다. 하루 2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매일매일 걸으며 균도가 변해 가는 과정과 균도 부자와 아픔을 함께 나누고 같이 걸었던 장애인 부모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 그리고 신체장애인을 비롯해 한진, 쌍용, 재능 등 다양한 사업장과 연대한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다.

    특히 시설에 고립된 삶을 반대하며 세상과 섞이기를 바라 시작했던 걷기 여행에서 균도가 서서히 변해 가며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된 과정이 인상적이다.

    또한 2부와 3부에 걸쳐 길 위에서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균도와 같은 장애인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보탬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연대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난항 끝에 제정된 장애인아동복지지원법과 발달장애인법은 이들의 염원을 온전히 담지 못한 것으로 또 다른 숙제를 남겨 둔 채 끝이 난다.

    #1

    우리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지치고 아파서 쉴 때도 있었지만 균도가 좋아하니 꾸역꾸역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낮에는 걷고 밤이면 글을 썼다. 난생 처음 써보는 글이었지만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써내려 갔다. 그렇게 적다 보니 가야 할 길이 보였다. 정답은 길 위에 있었다.

    #2

    걸으면서 균도도 점점 달라졌다. 혼자만 먹던 과자를 나눌 줄 알게 되고, 무거운 배낭을 먼저 들 줄 알게 됐다. 언제나 기운차게 앞질러 걷는 균도는 든든한 길동무였다. 균도는 도무지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균도에게 매일매일 정해진 일정은 꼭 지켜야만 하는 약속이었다.

    #3

    걸으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스쳐가는 사람도 붙잡고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덧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몸자보 글귀를 확인하러 다가오는 사람, 아침 첫 손님에게 공짜로 밥을 퍼주는 식당 주인, 같이 걷고 싶다고 찾아오는 부모들이 생겼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물집이 터진 발바닥이 아파 우는 아이를 얼르면서 나도 울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응원과 바람이 더해지면서 어느덧 여행은 균도와 나만의 여행이 아닌 게 되어 있었다. 나는 돌아갈 수 없었다.

    갈 곳 없는 성인 발달장애인의 삶, 사회가 책임질 것

    3부는 세상걷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의 일상생활을 담은 페이스북 일기를 중심으로 성인발달장애인의 실제 삶과 가족의 애환을 다룬다.

    세상걷기가 끝나고 균도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일상은 갑갑하기만 하다. 어엿한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빠 곁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 같으면 가장 찬란한 시기를 보낼 나이에 균도는 집과 복지관 말고는 갈 곳이 없어 어린 시절보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게다가 어느 날 균도는 과잉 행동을 보여 낮 시간을 보내는 주간보호센터마저 쉬게 된다. 균도의 과잉행동장애로 인해 깊어만 가는 아버지의 고민은 사회를 향한다.

    #1

    집으로 돌아왔다. 성년이 된 균도는 여전히 패스트푸드에 열광하고, 위인전과 거울을 끼고 살며, 과자가 생기면 내 손을 뿌리친다. 0.1톤에 달하는 덩치를 하고서도 여전히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먹을 것을 달라 조른다.

    #2

    사진기를 들이대면 균도는 언제나 브이를 그린다. 조금이라도 심심하다 싶으면 인상 게임을 한다. 웃는 얼굴, 우는 얼굴, 화난 얼굴, 심각한 얼굴… 한 아홉 가지는 되는 것 같다. 이런 사랑스러운 균도가 세상에 나가면 돌연변이가 된다.

    #3

    균도가 균정이와 전쟁 중이다. 혼을 내느라 효자손을 들었더니 이번에는 반항하며 나를 때렸다. 균도 엄마가 앉혀 놓고 타이른다. “아빠 아파서 이제 너랑 세상걷기 안 한다.” 그랬더니 이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빈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할게요.” 나는 눈물이 난다. 장애인 문제에서는 당사자도 중요하지만 가족도 중요하다. 장애인 가족이 어찌 사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이런 가족들을 누가 보듬어 줘야 할까?

    장애인 운동은 어떻게 탈핵 운동이 되었나

    4부는 균도 부자와 함께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가장 가까이서 균도와 함께해 온 동생과 엄마의 기쁨과 슬픔, 균도와 학창 시절을 함께하며 웃픈 일화들을 적어 내려 간 담임교사의 애환, 그리고 1차부터 5차까지 여정을 함께한 장애인 활동가의 글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균도 부자의 모습을 담았다. 또 김현우, 구자상의 글은 한수원을 상대로 한 원전 소송의 과정과 승소의 의미를 다루며 장애인 운동이 어떻게 탈핵 운동이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1

    1차 걷기를 시작하기 사흘 전 직장암이 발견됐다. 3차 걷기 이후 이번에는 균도 엄마가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다. 균도는 고리 원전 근처에서 자폐를 안고 태어난 아이였다. 나는 2012년 7월 한수원을 상대로 건강권 소송을 제기했다.

    #2

    4차 걷기는 고리 원전 근처에서 평생을 살아온 우리 가족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원자력발전의 책임을 묻는 행진이기도 했다. 우리는 발달장애인법 원안 통과, 부양의무제 폐지와 더불어 탈핵을 외치며 동해안 원자력 발전소들을 따라 걸었다. 나는 이를 ‘원자력 밟기’라 불렀다.

    #3

    균도에게는 엄마가 지어 준 별명이 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균도가 과잉 행동을 보일 때 엄마는 끓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이 노래를 불러 준다. 그러면 균도는 노래를 따라 부르다 말한다. “엄마, 사랑해요.” 균도의 노래는 장애아를 낳았다는 죄책감으로 문드러진 엄마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끝나지 않는 여정, 길 위의 부자

    이들 부자가 1차 세상걷기를 끝내고 난 2011년, 장애아동복지법이 제정되었고, 5차 세상걷기를 끝내고 난 2014년,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됐다. 또 강원도 원전들을 따라 걸은 4차 세상걷기 전에 제기한 갑상선암 소송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장애아동복지법에서는 여러 조항들이 강제 조항에서 임의 조항으로 수정되었고, 발달장애인법은 발달장애 가족에 대한 소득 보장 조항이 빠진 껍데기 법안이 통과되었다.

    균도는 지금도 복지관과 집 말고는 갈 곳이 없으며 시시때때로 과잉 행동 장애를 일으켜 복지관조차 못 갈 때가 있다. 아버지는 갈 곳 없는 균도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내걸고 다시 한 번 걸을 계획이다.

    또 항소한 한수원과 벌일 2심과 암에 걸린 주민들을 모아 벌일 공동소송 역시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자식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기를 소원하는 한 많은 아버지에서 사회에 그 책임을 묻는 장애인 활동가로 변신한 그는 오늘도 균도의 손을 잡고 길 위에 있다.

    #1

    나는 서울에 도착하면 꼭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울지 않으려 해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부모님들을 보면 어쩔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균도는 물었다. “아빠 왜 우나요?” 아빠는 울고 있는데 옆에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이. 그런 모습이 우리의 처지를 대변한다고 기자들은 연방 셔터를 눌러 댔다. 그래도 난 내 이야기를 토해 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울어야 그 열매가 열릴까?

    #2

    발달장애인법이 19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됐다. 하지만 소득보장은 빠진 껍데기 법안이었다. 우리는 원안 통과를 외치며 삭발식을 하기로 했다. “아빠 균도도 할래요.” 이번엔 균도가 삭발을 자청했다. 내 손으로 균도의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균도의 커다란 흉터가 드러났다. 태어나자마자 살려고 사투를 벌이던 균도의 얼굴이 떠올랐다. 난 또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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