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소수를 부자로 만들고,
성숙은 다수를 행복하게 만든다”
[책소개]『성숙 자본주의』(우석훈/ 레디앙)
    2015년 03월 14일 10: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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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숙 자본주의’인가?

자본주의를 ‘전복’시킨다거나, ‘극복’한다거나, 몰라볼 정도로 ‘뜯어고치자’는 것이 통상 진보 또는 좌파 경제학자들의 입장이다. 시장의 기능을 중시하지만, 시장 실패 또한 예견돼 있는 것이므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개입(또는 합리적 규제)을 옹호하는 케인지안도 신자유주의 전성시대에서는 진보적 경제학자로 분류된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케인즈 경제학을 ‘수정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자칭 C급 경제학자이며, 진보적 경제학자로 분류돼 왔던 우석훈 박사가 ‘성숙 자본주의’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다. 우석훈은 새 책 『성숙 자본주의-퇴행과 성숙, 기로에 놓인 한국경제』에서 “2008년 이후로 전 세계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케인즈 시대로 복귀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을 만들 것인가, 그 사이에서 우리 모두는 고민 중”이라며, 자신은 한국 경제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성숙 자본주의’를 제시한 것이다.

“나는 우리가 좀 더 성숙한 사회로 가기를 바라고, 그걸 위한 경제적 기반으로 성숙 자본주의가 지금부터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것도, 자본주의를 고쳐서 쓰는(수정) 것도 아니고, 그것을 성숙시켜야 한다는 그의 논의가 적잖은 독자들에게는 낯설게 다가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저자의 이런 주장은 학계의 논쟁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 ‘선진화-성숙’ 담론은 통상적으로 기득권 세력이나 주류 경제학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선진화 담론에 패퇴한 민주화 세력

저자는 한국 경제가 덩치로 보면 이미 선진국 수준에 진입했으며, 선진국의 한 징표인 ‘저성장’ 추세를, 문제가 아니라 정상적인 ‘상수’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또 이처럼 덩치만 커진 한국 경제 내부의 불합리와 불균형을 해소해 성숙 단계로 건너갈 수 있을 때 우리 사회가 외형이나 규모가 아닌 질적인 선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금이 ‘그 시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한국’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해 이 책에서 간단히 언급한 것은 바로 이 시기 부분에 대한 설명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보수 진영은 한국 자본주의의 출발점을 일본 식민지 시대로 본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반면, 진보 진영에는 그 이전에 이미 자본주의가 자생적으로 싹트고 있다는 ‘자본주의 맹아론’을 펼치고 있다.

저자는 이 논쟁은 앞으로도 오래 갈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논쟁의 양쪽 당사자들 모두가,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자본주의가 질적인 변화를 겪었으며, 시스템으로서의 자본주의는 박정희 시대 또는 유신 시대 경제와 연관시켜 그 출발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한국 자본주의 기원론을 새삼스레 꺼낸 것은 박정희 이후 현재까지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거대 담론인 산업화 시대/세력과 민주화 시대/세력, 그리고 그 이후의 시대/세력을 언급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산업화 세력으로부터 권력을 가져 온 민주화 세력이 집권 10년이 지난 후 권력을 다시 내줬는데, 담론 싸움에서 민주화 세력이 선진화 담론에 패퇴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2006년 초 박세일이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본격화된 ‘선진화’ 담론이 민주파의 담론을 이겼다는 이야기다.

산업화 → 민주화 → 선진화로 이어지는 발전 단계에서 선진화 담론이 민주화 세력의 민주/반민주 구도를 ‘올드’하게 만드는 프레임 효과를 얻었다. 뿐만 아니라 선진화 담론은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와 결합되면서 대중들을 다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면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선진화 담론은 서구에 대한 국민들의 잠재적이고 집단적인 ‘열등감’으로 인해 보다 강력한 무기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엄청난 표 차이를 보이면서 이명박이 대선에서 정동영을 이긴 것이 이를 반증한다는 것이다.

성숙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저자는 이와 유사하게 조응하는 경제 시스템 변화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우선 자본주의 일반의 성장이론과 연관시켜 경제 시스템의 변화를 구분하고 있는데, 개발 단계 → 성장 단계 → 성숙 단계가 그것이다.

서구의 경우 초기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 단계(개발 단계)와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통한 급속 성장 단계(성장 단계), 이후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 국가의 시장 개입, 노동시간 단축 등 ‘인간적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이룬 단계(성숙 단계)가 바로 이 과정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인 성숙 단계의 주요한 징표가 ‘저성장’이다.

서구의 경우 이 과정이 300년을 거치면서 진행됐지만, 한국은 압축적으로 이 단계를 거쳐 왔으며, 한국 사회는 이제 ‘인간의 얼굴은 한 자본주의’, 즉 ‘성숙 자본주의’를 향해 새로운 경제사회적 균형점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성숙 자본주의’ 논의 과정에서 케인즈의 ‘수정 자본주의’와는 달리 거시 경제 변수의 조정을 통한 정책 개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저자는 이명박 정부야말로 케인즈 방식의 토건 정책에 충실한 정권이었다며 그 결과는 실패 아니었냐고 되물으면서, ‘정부의 성장 촉진 정책’의 효과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숙을 위해. 경제정책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작은 눈으로 더 작은 규모의 문제점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자율, 고용률, 성장률 같은 거시 지표를 책상 위에 늘어놓고, 경제 관료나 경제 수석 몇 명이 이리저리 끼워 맞추면서 국민 경제를 이끌어가기에 한국 경제는 덩치가 너무 커졌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여기서 저자는 재미있는 비유를 등장시킨다.

그는 거시 지표 몇 개를 이리저리 조립하면서 정책을 생산해 내는 ‘편의성’은 “작은 조종기를 타고 거대 로봇의 머리에 착륙해서 조종하는 <로보트 태권V>의 훈이 혹은 <마징가 제트>의 가부토 코지(쇠돌이)와 같은 심경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경제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작은 컨트롤 박스에 앉아서 그걸 운전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경제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거대한 판타지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오히려 “실제로는 그렇게 잘 조정되지는 않고, 제어 불능과 폭주를 반복하는, 신지가 타고 있는 <에반게리온> 초호기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한국 경제라는 거대한 시스템 위에서 경제 관련 관료 몇 명 혹은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실장 정도가 이걸 조율하고 이끌 수 있다는 것, 이미 지금처럼 거대해지고 복잡해진 상황에서, 이건 경제 판타지라고 이해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거듭 주장한다.

지금 여기서 필요한 것들

그럼 저자가 이야기하는 ‘성숙 자본주의’로 단계로 이전되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서 어떤 선택과 실천이 필요한가? 다른 방식으로 질문을 해보자. 경제 규모 세계 2위인 중국을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성숙’은 계량경제학의 계측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한국경제가 그 동안 덩치를 키우기 위해, 성숙 이전 단계인 개발과 성장 단계에서 일부러 만들었던 수많은 ‘인위적 불균형’은 이제 우리 경제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없게 만드는 질곡이 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성숙 단계에 이르는 경로에서 가장 중요하게 거쳐야 할 문 가운데 하나가 이 같은 ‘불균형의 해소’이다. 대표적인 ‘인위적 불균형’으로 노사 간 불균형을 들 수 있다. 저자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본가들에 의한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이라는 융단 폭격은 과거 미국의 록펠러사가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기관총을 쏘아 댄 것과 같은 야만이자 인위적 불균형의 산물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은 다른 건 몰라도 경제적인 의미에서 보면 길을 잃은 나라다. 덩치로는 이미 선진국이 되었는데, 그 안에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은 때때로 봉건적, 때때로 비민주주의적, 그리고 때때로 가부정적인 나라이다.”

성장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

저자는 이와 함께 성숙 단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을 목표가 아닌 결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더 이상 ‘성장 강박증’에 빠지지 말고 거기서 벗어나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장은 국민경제의 한 요소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2만 달러, 이명박 시대 747, 박근혜 시대의 4% 성장, 4만 달러, 70% 고용률 같은 목표 설정은 <로보트 태권V> 속 컨트롤 타워에서 조종석에 앉은 소수들이 생각하는 판타지일 따름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 판타지는 부작용도 크다.

대통령이 목표 성장률을 정해 주는 순간 중앙 정부의 모든 조직은 그것에 맞게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고, 단기적 성과를 내기 위한 토건 중심 정책을 중심에 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시안적이고 목표 중심 정책은 ‘성장’과 별로 상관없는 정책으로 평가되지만, 실제로는 성숙과 성장을 담보하는 필수적인 힘인 문화와 인문학 등에 투자를 소홀히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철학이나 문학에 돈을 들인다고 해서 이게 당장 경제성장의 지표 효과로 나타나지도 않고, 이걸 간접적으로라도 평가할 방법은 사실 별 마땅한 게 없다. 개인의 삶에서 인문학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국가 전체 아니 국민경제 차원에서 인문학이 갖는 의미는 전혀 다른 얘기이다. 사실 내생 성장론에서 얘기하는 지식 경제의 핵심 중의 한 축이 문학이나 철학과 같은 기초 지식 아니겠는가?”

경제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경제성장을 목표로 정해 놓고 헤매다 보면 정작 경제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정채인가 망각하고 만다. 이 교과서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실천하는 게 성숙한 경제로 나가는 첫 번째 관문이다.

저자는 또 경찰과 군대라는 국가가 가지고 있는 물리력과, 사법부가 형벌권을 우선 앞세우면서 사회의 갈등과 문제를 푸는 단계를 넘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성숙의 핵심 포인트 가운데 하나로 잡고 있다.

‘탈박근혜’ 경제 지금부터 준비해야 다음에 이긴다

저자는 현재 한국 경제가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로 성숙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권위적 시대의 경제로 퇴행해 나갈 것인가, 기로에 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두에 서서 한국 경제를 퇴행시키는 주인공은 박근혜 현 대통령이다.

저자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퇴행 세력을 물리치고 야권이 권력을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현실을 우려하면서, 지금부터라도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그들을 물리치고 자본주의를 성숙시킬 수 있는 세력의 집권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탈박’ 경제를 구상하고,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통령이 뭘 하고 있는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협박조에 가까운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나 겨우 아는 시기를 지내고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희망을 품고 싶다. 이 퇴행의 시대, 생태적 사회 그리고 생태적 경제는 아예 바라지도 않는다. 퇴행의 거대한 기운을 뚫고 성숙의 단초를 찾는 것, 그게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미래의 최대치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또 현재 한국 사회에 전망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복지와 증세 논쟁에 대해 “단기적으로 볼 때는 부차적”인 사안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

저자에게 중요한 것은 “토건의 시대를 넘어서 한국 자본주의가 근본적인 형질 변경”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지난 대선 이후 “한국경제에 던져진 가장 큰 질문”이라는 것이다. 토건 시대를 넘어서서, 내부의 불합리와 불균형이 시정된 성숙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숨결이 느껴지는 정책

저자는 성숙 자본주의에 대한 자신의 기본 시각과 함께 성숙 자본주의를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정책을 만드는 구체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는 경제의 거시 지표와 개인의 삶이 완전히 괴리되어 있다며, 거시 지표의 포괄적 경제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거듭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대상을 세분화한 맞춤형 미시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실의 경제 문제를 다루다 보면 수많은 지표와 통계들 속을 헤매게 된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누구를 위한 정책을 다루고 있는지, 그 대상을 잊게 된다. … ‘숨결이 느껴지는 정책’, 오랫동안 내가 구호처럼 사용하는 용어였다. … 그 정책이 영향을 미치게 될 사람들의 삶이 호흡처럼 느껴지게 하자, 그런 생각을 계속 했었다. … 이런 시행착오 속에서 내가 생각한 것은, 대상을 좀 더 작게 나누어서 그야말로 소그룹별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지역이 풀려야 한국 경제가 풀린다.”며 중앙 정치 무대와 지방 토호세력 간에 연결된 부패와 불균형의 ‘커넥션’을 해체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지역 경제를 풀어나가는 데 핵심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포항, 울산, 부산, 광주, 전주, 태안 등을 직접 방문하여 지역 경제의 실상을 들여다보고 그 대안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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