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치아, 세상을 읽게 하다
    [책소개]『책공장 베네치아』(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책세상)
        2015년 03월 14일 10: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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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를 변화시킨 매혹적인 책과 출판의 역사

    아랍어 코란이 처음 출판된 곳은 어디일까? 처음으로 탈무드가 인쇄된 곳은? 그리스어와 아르메니아어로 쓰인 책이 처음 출판된 곳은? 휴대가 간편한 포켓북이 처음 만들어지고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곳은? 답은 하나, ‘베네치아’다.

    세계 최초로 악보집과 건축 화보가 출판된 곳, 최초의 요리책과 게임책, 포르노책, 의학·군사학·지리학 책이 출판된 곳도 바로 베네치아다. 16세기 베네치아는 상업적 인쇄, 출판, 서점이 생겨나 번영을 누린 ‘책의 수도’였다.

    세계 최대 인쇄소와 다국적 출판사가 있었고, 다양한 언어로 책을 만들어 세계 각국으로 번역, 유통시킬 수 있는 체계를 갖춘 거대한 ‘책공장’ 베네치아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지식을 대중에게 보급하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정신을 전 유럽으로 확산시킨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발명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사람이 있다. 출판계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리는 알도 마누치오. 그는 오류투성이였던 당대 출판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전문편집자이자 출판의 근대화를 실현한 사업가이며 기술적 혁신을 이룬 발명가였다.

    최고의 지식인이기도 했던 마누치오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어로, 또 고전 저작뿐만 아니라 당대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책들을 출판했으며, 종교적·교육적 목적을 넘어선 ‘취미로서의 책읽기’라는 혁신적 개념을 제시했다.

    포켓판을 처음 만들고 필기체 활자를 처음 인쇄한 것도, 쉼표와 어퍼스트로피 등 구두법을 혁신하고 출판사 로고를 처음 디자인한 것도 마누치오다. 출판 역사의 걸작으로 꼽히는《폴리필로의 꿈》을 출판하고, 페트라르카의 저작으로 당시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10만 부 판매 도서라는 베스트셀러를 ‘발명’해내기도 했다.

    한 권의 책을 세상 모든 이에게 읽히겠다는 생각을 최초로 했던 사람 마누치오와 그가 건설한 ‘책세상’의 모습, 오늘날 우리가 책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시작된 책의 여명기이자 혁명기였던 르네상스 시대 출판의 역사, 근대 이행기 베네치아를 무대로 한 책과 지식의 생산 및 유통 그리고 문화와 지성의 풍경,《책공장 베네치아―16세기 책의 혁명과 지식의 탄생》이 전하는 이야기다.

    베네치아 출신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는 이 매혹적인 책과 출판의 여명기를 과거와 현재, 역사적 고증과 문학적 상상력을 교차시키며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세계의 진정한 혁명을 가져온 ‘책’에 대한 예찬이자, “책을 둘러싼 출판업자와 서적상, 기독교도와 이교도, 성서와 음란물, 자국인과 외국인의 갈등과 타협의 변주곡”이 우리를 500여 년 전 ‘베네치아 책세상’으로 안내한다.

    책을 팔려는 자, 베네치아로 가라

    15세기 중반 활판 인쇄술을 발명해 지적 혁명의 단초를 마련한 것은 독일의 구텐베르크지만, 출판 산업을 주도한 문명 확산의 중심지는 16세기 베네치아였다. 중세 지중해 무역의 강자였던 베네치아는 문명의 전령인 책의 인쇄를 통해 자국의 상업혁명을 전 유럽에 걸친 지식혁명으로 이끌었다. 16세기 초반 유럽에서 출간된 책의 절반가량이 베네치아에서 인쇄되었을 정도이다.

    지식인의 결집, 풍부한 자본력, 뛰어난 영업 활동. 이 책의 저자가 꼽은 출판의 활성화를 위한 조건이다. 16세기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가장 산업화된 도시의 하나였던 베네치아는 이 모든 조건을 갖춘 최적의 장소였다.

    인근의 파도바 대학교는 지적 자원을 제공했으며, 부유한 상인들은 자금을 동원했고, 만들어진 책들은 선박을 통해 해외로 수출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베네치아는 자유와 다양성의 도시였다.

    독일인,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들이 자유를 찾아 흘러들었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도 함께 유입되었다. 박해를 피해 도망친 종교개혁가들을 받아들이고 1553년까지 검열을 실시하지 않는 등 개방적이고 유연했던 베네치아의 공기는 다양한 외국인 공동체와 종교 집단이 번성하는 토대가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다채로운 사상을 담은 여러 언어,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출간될 수 있었다.

    코란과 탈무드가 처음으로 출판되고, 역시 ‘세계 최초’라는 이름을 단 포르노·의학·미용·요리·악보·건축·게임·군사학·지리학 책들이 베네치아에서 출판된 것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거대한 다국적 출판 시장이었던 베네치아에는 유명 서적들을 영어로 독일어로 체코어로 요청하는 주문이 세계 각국에서 쇄도했고 베네치아는 이를 만들어 빠른 시간 내에 각국으로 책들을 배송할 수 있는 유통 체계까지 갖추고 있었다.

    타지인들로 구성된 출판 주식회사 ‘베네치아 콤파니아’가 결성되었고, 주요 도시들을 판매 거점으로 활용하는 국제적 판매망도 조직되었다. “산업화, 세계화, 마케팅. 르네상스 시대에 베네치아는 이미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15세기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발상지라면 16세기 베네치아는 전 유럽으로 확산시킨 주역이었고, 그 중심에 ‘책’이 있었다.

    책공장 베네치아

    책의 모든 것을 혁신한 출판의 제왕, 알도 마누치오

    “회화에 라파엘로가, 조각에 미켈란젤로가 있다면 출판에는 알도 마누치오가 있다. 그로 인해 출판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다.”

    저자의 표현대로 출판의 역사는 마누치오 전과 후로 구분된다. 이전의 출판업자들이 상업적 고려로 책을 인쇄하는 기술자에 가까워 오류투성이 책들을 펴냈다면, 마누치오는 원고 감식안을 갖춘 깐깐한 편집자였고 번역가였으며 여러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을 조직해 책세상을 건설한 지식의 설계자였다. 시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마케터였으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1495년부터 1515년까지 20년 동안 그는 132종의 책을 출판했다. 핀셋으로 활자를 꺼내 일일이 식자판을 조립하던 시절에 이룬 성과다. 그리스 고전 등 많은 고전 문헌이 그에 의해 되살아났으며, 당대의 저작들도 완성도 높은 편집으로 출간되었다.

    그가 출판한 페트라르카의《칸초니에레》는 약 10만 부가 팔리며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출판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판본으로 일컬어지는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걸작《폴리필로의 꿈》도 마누치오의 손에서 출판되었다. 에라스뮈스는 마누치오를 직접 찾아와《격언집》출판을 부탁했는데, 에라스뮈스가 출판사에 매일같이 출근해 교정을 보고 하루에 세 장씩 인쇄해 아홉 달 만에 완성본을 출간했다고 한다.

    마누치오는 발명가이자 혁신가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종이책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요소를 도입한 이가 바로 마누치오다.

    그는 2단 인쇄를 처음 시도했고, 로마체와 이탤릭체를 처음 인쇄해 유행시켰다. 쉼표와 어퍼스트로피, 세미콜론과 악센트 부호를 도입해 구두법을 혁신했으며(그는 어퍼스트로피의 아버지로 불린다), 쪽번호를 처음 매기고 출판사 로고를 처음 사용했으며, 화려한 가죽 장정 방식을 확산시켰다. 포켓북이라 불리는 작은 판형으로 고전을 처음 인쇄한 것도 마누치오다.

    그로 인해 책 휴대가 편리해지면서 기도나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로 책을 읽는다는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즐기기 위한, 취미로서의 책 읽기라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인쇄술의 발명, 번성한 도시 베네치아라는 시공간을 무대로 마누치오와 그의 동료들은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책과 출판의 원형을 창조했다.

    탈무드와 코란, 다채로운 외국어 책들의 향연

    코란은 베네치아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이후 500여 년 동안 전설로만 존재하다가 1987년 여름 어느 날 산미켈레 섬 수도원 도서관에서 서지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발견의 주인공인 안젤라 누오보는 여성인 탓에 회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스승의 도움을 빌려야 했는데, 저자는 이날의 정황을 흥미롭게 재구성해 들려준다.

    이슬람교의 성서인 코란이 기독교 문명의 베네치아에서 출판된 것은, 당시 이곳이 정치적 종교적 분쟁의 와중에도 문화와 사람의 경계를 허문 열린 도시였음을 말해준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도원 회랑 출입이 금지되었던 20세기의 풍경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다양한 문화권의 이주민들이 유입되면서 그들의 종교도 자연스레 베네치아에 들어왔고 종교 서적의 출판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베네치아에서는 국적과 언어를 불문한 다양한 종교 서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대인 구역 게토도 베네치아에서 기원했다. 유대인 공동체가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할 예식서가 필요했는데, 기독교인이었던 다니엘 봄베르크가 랍비들의 성서와 탈무드를 처음 인쇄하면서 히브리어 서적의 출판이 시작되었다.

    또한 베네치아에서는 동양의 예식용 서적들도 인쇄되었다. 고대 크로아티아의 알파벳인 글라골 문자로 된 예식용 서적들, 보스니아 키릴 문자로 된 책, 세르비아어 그리스 정교 예식용 서적 출판도 베네치아에 터전을 잡고 이루어졌다.

    다른 외국어 서적 출판이 활기를 띤 것도 당연하다. 최초의 아르메니아어 책은 야코브에 의해 베네치아에서 1512년에 인쇄되었고, 최초의 그리스어 책《개구리와 쥐의 전쟁》은 1486년 베네치아 무라노 섬에서 인쇄되었다. 마누치오는 로마 교회의 눈을 피해 그리스 정교의 그리스 예식서를 처음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실로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책이 베네치아를 무대로 만개했다.

    지도부터 악보까지, 모든 분야를 선도하다

    ‘세상의 모든 직업을 위한 지침서’, ‘모든 여성을 숭배하게 만드는 다양한 향수 제조 비법’.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문구들은 모두 16세기에 베네치아에서 출간된 책들의 제목이다.

    베네치아에서는 광범위한 분야의 책들이 쏟아졌다. 일례로 역사상 최초의 지도책은 1550년에 출판된 조반니 바티스타 라무시오의《항해와 여행》인데, 역시 베네치아에서 출판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이 ‘콜럼비아’가 아니라 ‘아메리카’로 불리게 된 것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편지가 베네치아에서 출판되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신대륙 발견의 시대가 열리면서 항해를 통해 알아낸 정보를 실은 지도책의 출판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곤돌라 위에서 낭만적인 칸초네를 부르고 류트를 연주했던 베네치아 사람들은 악보를 인쇄하기 위한 노력도 일찍부터 경주했다. 여러 번 인쇄기를 돌리거나 수기로 음표를 적어야 하는 등 악보 인쇄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음표마다 세로로 구획을 나누어 제작한 활자를 사용한 인쇄법이 고안되자, 그 방법이 베네치아에 들어오면서 풍성한 결실을 맺고 악보집이 활발히 인쇄되었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의학, 미용, 식도락을 다룬 책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지정학적 조건과 비옥한 출판 환경,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호기심 많고 역동적인 베네치아 사람들이 합심했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베네치아에서 가장 먼저 시도되었던 것은 놀라우면서도 자연스러운 결과다.

    근대적 작가의 탄생, ‘악명 높은’ 아레티노

    16세기 베네치아에는 근대적 작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또 한 명의 천재, 피에트로 아레티노가 있었다. 희대의 괴짜였던 그는 세련된 지식인이자 도색문학가, 성도착자였으며, 당대 문화산업의 스타로 군림한 인기 작가였다.

    그가 외설적인 목판화에 시를 지어 붙인《음란한 소네트》는 출판 역사상 최초의 포르노 서적이다. 그는 이어서 매춘부의 외설적 대화로 이루어진《6일간의 이야기》를 출판해 도덕주의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며 ‘군주들의 골칫거리’, ‘악명 높은 아레티노’가 되었다.

    다른 곳이었다면 감옥에 갔을 테지만 베네치아에서 그는 수많은 위조 판본을 낳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프랑스혁명 전야에 노골적인 포르노그래피들이 지배층의 위선을 폭로하며 혁명의 단초가 되었듯, 아레티노의 작품은 당대의 허위적 도덕과 사회문제를 비판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아레티노는 매춘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도색문학이라는 장르를 창시했을 뿐 아니라 서간집이라는 새로운 출판 형식을 도입했다. 그의 실험은 내용에 그치지 않는다. 화려하고 값비싼 장식의 대형 판형으로 이목을 끌고, 독자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오늘날의 출판 마케팅에 해당하는 자기 홍보에도 공을 들였다.

    당시 그의 연평균 수입은 오늘날의 통화 가치로 약 1만 유로에 달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은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 자체를 위해 투쟁하는 자의 전투적인 글이었다. 놀랍도록 근대적인 작가의 탄생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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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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