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즈니스 되어가는 '저항운동'
    [책소개]『저항 주식회사』(피터 도베르뉴 외/ 동녘)
        2015년 03월 14일 10: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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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의 많은 운동가들이 기업의 언어를 구사하고 기업이나 국가의 신경을 긁을 수 있는 부분을 자기 검열하면서 “한때의 저항이 저항 주식회사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저자들은 그 증거로 운동이 기업의 원리와 방식을 받아들이고 기업형 모금 활동에 집중하며 운동을 브랜드화하는 현상을 지적한다. 운동 조직들은 이런 방식이 더 효과적이고 ‘브랜드 이미지’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 속삭이며 타인의 고통을 판매한다. 보라,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과 똑같다. _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왜 자본은 갈수록 날카로워지는데, 저항은 갈수록 무뎌질까?

    2012년 서울환경영화제가 열리고 있던 멀티플렉스 영화관. 누군가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가 든 피켓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다. “내성천 파괴 삼성물산 후원받은 환경영화제 OUT!”.

    어느 서울의 번화가. 언젠가부터 그린피스 같은 유명 비정부기구들이 그곳에 등장했다. 그들은 가판을 차리고 많은 인파 속에서 회원 유치에 열을 올린다. 그런데 지난 2015년 1월 한 신문사의 보도에 따르면, 회원 모집에 나서는 이들 중 다수가 고용된 마케팅업체 직원이다. 비정부기구들은 모집 실적에 따라 업체에 수수료를 지급했다고 한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운동이 기업과 공조하거나 기업처럼 행세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세계자연기금(WWF)은 세계에서 알루미늄과 유리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코카콜라와, 수잔 코멘 유방암 재단은 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패스트푸드 판매업체 KFC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환경보호단체인 시에라클럽은 숱한 ‘환경 범죄’를 저질러 온 미국 가스 산업계로부터 몇 년에 걸쳐 수천만 달러를 받았고, 에이즈 · 결핵 · 말라리아퇴치국제기금은 인간의 목숨보다 이윤에 집착한다고 비판받는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들로부터 지원받는다.

    앰네스티는 더 많은 후원을 받기 위한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목적으로 글로브스캔과 같은 마케팅업체를 고용했는데, 글로브스캔은 펩시, 유니레버, 리오틴트 등 거대 다국적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시민사회운동이, 왜 시민이 아닌 불평등을 조장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과 함께 기업의 돈과 방식으로 활동하는 걸까.

    사회운동과 기업의 모순적인 공생은 어떻게 운동을 해치고, 그 운동에 종사하는 활동가들을 힘들게 만들었으며, 또 어떻게 기업을 이롭게 해 왔을까. 《저항 주식회사》는 저항운동이 ‘비즈니스’가 된 원인을 날카롭게 분석하며 앞선 질문들에 답한다.

    ‘저항 주식회사’로 탈바꿈한 저항운동의 씁쓸한 민낯들

    이 책에서는 기업을 견제해야 할 사회운동단체들이 기업과 함께, 기업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런 행태는 매우 다양한데, 그중 하나는 운동단체들이 월급과 임대료 · 프로젝트 비용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출처와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금을 모으는 것이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대기업과 동반자가 되고, 특급 갑부들과 협력하거나 유명 인사들을 섭외하며, 기업의 돈을 받고 자신의 브랜드를 빌려 준다. 또 기업과 정부 · 시민들로부터 더 많은 후원과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브랜드 가치’를 관리하려 애쓴다.

    저항 주식회사

    2장 ‘기업처럼 보기’와 5장 ‘운동의 제도화’에서는 이와 관련된 숱한 사례가 나온다. 저자들은 이렇게 기업화 된 사회운동단체들을 ‘군산복합체’에 빗대어 ‘비영리산업복합체’로 전락했다고 표현한다. ‘비영리산업복합체’ 내에서는 ‘효율성’과 ‘실용성’이 조직의 최우선 과제가 된다. 그에 따라 하향식 의사결정구조와 상향식 보고 체계로 구성된 관료제 형태가 굳어지면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운동가들은 자율성마저 억압받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저자들이 사회운동단체들의 기업화되고 제도화된 모습 전부를 부정적이라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저항운동에 대한 국가의 탄압이 거세지고 운동의 기반인 시민사회가 개인화 · 파편화된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으며, 체제 내에서 작은 성취를 쌓아가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단체의 재정이 기업이나 국가의 후원에 크게 의존할수록, 단체의 운동가들은 시민들의 후원과 지지를 이끌어내고 그들을 조직할 유인을 잃는다. 자신들이 ‘유의미한 활동’을 ‘효율적’으로 펼치고 있고, 후원받을 가치가 있음을 시민들보다는 정부나 기업에 증명하려 애쓰게 된다.

    단체들은 결국 진보적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민감하고 충실하게 반응할 수 없게 되고, 이것은 단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이탈시킨다. 단체가 기업과 국가의 지원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을 낳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운동단체들은 “힘 없고 취약한 현장과 사람보다 타협과 실용주의,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편익을 더 우선시하게 될 수 있다”.(53쪽) ‘급진적 운동’은 최대한 자제되고, 기업과의 협력 하에 이루어지는 캠페인이나 ‘착한 소비’와 같은 개인의 실천을 장려하는 ‘온건한 운동’만 남게 된다.

    저자들이 보기에 그런 운동은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게 크지 않다. 오히려 책임을 사회구조가 아닌 개인에게 떠넘기고, 소비를 부추기며, ‘좋은 기업’으로 이미지를 단장하고 더 많은 이윤을 올리려는 기업만 배불린다.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체제를 바꾸기보다 유지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저항 주식회사’와 얼마나 다른가?

    이 책은 자연스레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을 떠오르게 한다. 지난 2013년, 오랜 역사를 가진 시민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이 받은 후원의 3분의 1은 기업 기부금이었다. 가장 많은 금액을 후원한 것은 조미료 등을 생산하는 대상그룹이었는데, 소비자시민모임은 ‘화학조미료 안 먹는 날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단체의 후원 명단에는 롯데홈쇼핑·GS홈쇼핑·현대홈쇼핑·CJ홈쇼핑 등 홈쇼핑 업체와 남양유업·농심·롯데제과·한국야쿠르트 등 식품업체도 있었다. 소비자시민모임은 홈쇼핑 상품의 품질을 모니터링했고, 과장·허위광고 등을 지적하며 ‘홈쇼핑 광고방송 사전 심의’를 주장해 온 바 있다.

    또 2015년 2월에는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가 외환은행 대주주였던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비판과 의혹 제기를 자제해달라는 취지의 청탁과 함께 8억여 원을 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단지 기업과의 협력 관계뿐만 아니라 운동 조직 내부 문화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퇴임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전진한 전(前) 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시민단체의 가장 큰 문제는 조직 간부들이 “마치 재벌 총수나 폭군처럼 군림”하고 “젊은 활동가들의 등골을 빼먹는” 문제라며, 젊은 활동가들이 적은 월급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데다 단체에서 의견을 존중받지도 못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저항 주식회사》의 저자들도 언급했던 것처럼 운동의 기업화 · 보수화가 운동단체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국가의 탄압과 공동체의 해체라는 악조건도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정부 정책과 기업의 이윤 추구에 이의를 제기하면 반국가세력으로 몰리기 쉽다. 지난 2013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태국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태국의 ‘물 관리 사업’ 수주를 한국 기업이 맡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 환경운동연합이 사실상 ‘4대강 사업 수출’이라며 반대했다. 그러자 이 전 대통령은 해당 환경단체를 “매우 반국가적이고 비애국적”이라고 질책했다.

    한편 운동가 및 시위 참여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적지 않은 벌금을 물리는 것도 이제 예삿일이다. 이미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 쟁의 현장과 밀양 · 청도의 송전탑 건설 반대,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 등 환경정의 운동의 현장에서 수많은 주민과 활동가들이 겪었던 일이다.

    또 원래도 높지 않았던 한국의 노조 조직률과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의 가입률이 갈수록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조직을 경유하지 않고 인터넷과 SNS를 통해 분노를 전파하고 광장에 모이며, 기부나 공정무역 · 친환경 상품 등에 대한 ‘착한 소비’로만 사회문제에 참여한다.

    그렇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편리한 길을 택하기보다는 시민들을 조직하여 자생력을 갖추고,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에 더욱 날카롭고 정교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건 결국 운동 조직의 몫일 수밖에 없다.

    책의 말미에 저자들은 말한다. “운동의 기업화 경향에 경종을 울려, 운동가들 내에서 논의를 촉발”(235쪽)시키고 싶다고. 그런 저자들의 포부가 만들어 낸 《저항 주식회사》가, 한국 사회운동 진영 내부에서도 자기 성찰과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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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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