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의원, 협찬 같은 거 절대 하지 마”
    [복기, 의정활동 4년-5] 사무실에 도둑 들다
        2015년 03월 13일 10: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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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로잔치에 ‘현숙’이 온다고?

    의원 임기가 시작되고 나서 처음으로 들른 지역 행사는 – 내 기억으로는 – 진미동 사무소에서 열린 경로잔치였다.

    진미동에는 해마다 청년회 회원들이 정성을 모아 경로잔치를 여는 좋은 전통이 있었다. 다만 행사 자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동네 안에서 후원금을 모으는 것으로는 역부족이어서 기업이나 한국노총 노조 쪽에 손을 벌리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돈을 내는 쪽, 그리고 돈 낸 쪽과 연관이 있는 세력이나 정치인에 힘이 실리게 된다. 기부가 가진 역기능이다. 공공 예산으로 해결하려면 형평상 마을마다 경로잔치를 지원해야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했다.

    일회성이라 노인복지라 보기도 어려웠다. 그렇다면 최선의 방법은 민간의 십시일반인데 이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토박이가 아닌 나는 잘 몰랐지만 진미동에는 개발로 인해 갑자기 부유해진 사람들이 몇몇 있다고 들었다. 어떤 주민들은 “그 사람들이 너무 쩨쩨하다. 후원을 잘하지 않는다”고 원망하기도 했다.

    잔치가 열리기 전 받아든 행사계획서에는 가수 ‘현숙’이 출연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게 진짜인가? 현숙 씨 팬은 아니지만 인기가수가 온다니 신기했고, 그의 출연료를 낼 만큼 후원이 걷히는지 의아했다. 그러나 실제로 온 사람은 현숙과 닮은 이미테이션 가수였다. 이름이 ‘현숙’이라더니? 동사무소 관계자는 이미테이션 가수의 이름이 ‘현숙이’라고 했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다른 한 켠에서 청장년층끼리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로 갔다. “직장 다니느라 동네 일은 잘 모른다”고 하던 어떤 아저씨가 반갑다며 술을 권했다. 비가 내렸고 운치 있었다.

    그는 “이 보수꼴통 동네에서 당선되느라 수고했다. 앞으로 잘 해 달라”고 당부했다. 잔치 도중 나는 곧 인사철이고 동장님이 바뀐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동장님은 진미동을 떠난 후에도, 심지어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도 경로잔치에 참석해 깊은 정을 표현했다.

    내가 “다음 동장님으로 누가 오시느냐”고 물었더니 옆에 있던 그 아저씨가 검지를 입에 갖다대며 “쉿! 그런데 신경을 쓰면 안 돼!”라고 제지했다. 그때는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했지만 후에 헤아리니 아마 “인사 개입 비슷한 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동장 인사에 시시콜콜 관여하는 시의원들이 진짜로 있었다.

    그분은 또 “어디 가서 협찬 한답시고 돈 내고 다니지 마라. 그러기만 하면 김 의원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기분 좋은 충고였다. 이런 분들이 50대를 거쳐 60대쯤 되면 마을 분위기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7월 5일, 상임위원장 선거로 원 구성을 마무리했다. 이미 대세는 갑 지역 한나라당+친박연합+무소속 일부의 주류파의 손에서 나왔다. 선거를 하기도 전에 뚜껑이 열려 있었다.

    기획행정위원장에 갑 지역 한나라당 김상조 의원, 산업건설위원장에 한나라당 출신 을 지역 무소속 김태근 의원, 의회운영위원장에 친박연합 이수태 의원이 나섰다. 상임위원장 선거는 의원의 의사와 무관하게 해당 상임위원 모두가 투표용지에 올라간다. 그러나 투표는 해당 상임위원들이 호선하는 게 아니라 본회의에서 의원 전원이 했다.

    기획행정위원장 선거에 나선 김상조 의원은 나를 불러 각별히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집행부에 볼 일이 있을 때, 대뜸 국장급부터 부르면 거만하다는 인상을 줘요. 그러니까 과장급을 부르는 게 더 무난하고… 김 의원은 초선이고 젊으니까 계장급을 불러보는 것도 괜찮아요. 일단 그렇게 해보면서 나중에 또 판단하면 되니깐……”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사회단체보조금 내역을 건네주기도 했다. “아 이거 골치 아픈데, 칼을 빼들어도 막상 정리하기가 쉽지 않아요. 김 의원 아는 사람 중에도 이 단체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있을 텐데, 정리하려고 하면 압력이 만만치가 않아.”

    “잘 나오지도 않는 사람이 무슨 상임위원장”

    처음에 나는 이왕에 결정적인 거 열심히 하시라고 이들을 찍어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내게 “김태근 의원이 산업건설위원장을 하겠다는 건 우스운 일”이라고 말하며 맹렬히 비토 하는 게 아닌가. “흥, 지난 의회 때 의회에 잘 나오지도 않던 사람이오. 그 사람이 무슨 상임위원장.” 누구는 찍고 누구는 안 찍기도 뭣해서 상임위원장 선거에서도 모조리 무효표를 던지고 말았다.

    김태근 의원은 상임위원장이 되자 그럭저럭 의회에 나왔지만 종종 불참하여 부위원장이 대리 진행하는 사례가 속출했고, 후반기에는 정말로 5분쯤 나와서 출석체크만 하고 퇴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 그는 재선은 물론 2014년도에 삼선을 하셨으니 의원들 본인이나 일부 지역주민들에게나 회의 활동은 중요치 않게 여겨질 법도 했다.

    기획행정위원장 선거에서는 김상조 의원 15표, 친박연합 소속 박세진이 1표를 얻어서 김 의원이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무효는 7표였다. 1표를 얻은 박세진 의원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출마하겠다고 한 적도 없었고, 자신이 자신을 찍은 것도 아니었다. 출마 의사가 전혀 없는 의원까지 투표용지에 올라가니 이런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산업건설위원장 선거에서는 김태근 의원이 15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의장, 부의장과 상임위원장이 모두 15표를 얻어 당선된 것이다. 이 15표는 전반기 의회의 주류세력을 의미했다. 그리고 김성현 의원, 박교상 의원, 임춘구 의원, 김재상 의원(한나라당/도량, 선주원남)이 1표씩 나왔다. 이들도 출마 의사를 피력한 적 없는데 누가 찍었을까.

    기획행정위와 산업건설위의 위원장을 선출하고 나서 상임위별로 회의를 개최했다. 상임위 부위원장을 포함한 의회 운영위원을 선임하기 위해서다. 이들 자리는 전체 의원이 아닌 상임위별로 호선되었다. 구미시의회 조례상 의회 운영위원은 10명 이하로 구성되는데, 관례상 부의장과 두 상임위의 위원장과 부위원장, 각 상임위에서 2명씩 추가로 선임한 의원, 이렇게 9명으로 구성되었다.

    산업건설위원회 부위원장에는 을 지역 무소속인 강승수 의원(고아, 선산, 무을, 옥성)이 선임되었다. 김태근 위원장처럼 강 의원 역시 건설업체 출신이어서 전문성을 내세우곤 했다. 기획행정위원회에서는 한나라당 윤영철 의원이 부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주류 측이 을 지역 한나라당에 대한 배려로 부위원장 한 자리를 내놓은 격이었다. 기획행정위원회에서 추가로 선임할 의회 운영위원으로는 친박연합 박세진 의원(도량, 선주원남)과 내가 뽑혔다.

    그렇게 해서 뽑힌 의회 운영위원 중 부의장과 기획행정위원장, 산업건설위원장을 뺀 나머지 의원을 투표용지 명단에 올려놓고 전체 의원이 다시 본회의장에 모인 가운데 의회 운영위원장 선거를 진행했다.

    의장 선거 1차 투표에서 4표를 기록했던 친박연합 이수태 의원이 12표로 당선되었다. 같은 친박연합의 윤종호 의원이 4표였다. 무효 5표. 그런데 김수민을 찍은 표가 둘이나 있었다. 나도 개표위원으로서 개표를 하며 이 두 장의 용지를 보고 떨떠름했다. 그나마 1표는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출마 의사도 밝히지 않은 의원까지 투표용지에 올리는 이런 제도는 사라져야 한다. 어떤 지방의회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 의장에 선출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고 한다.

    끝나고 의회 운영위원들끼리 모여 의회 운영위 부위원장을 선임했다. 산업건설위에서 선임해 운영위원으로 온 윤종호 의원이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친박연합은 이로써 주류연합에 가세한 대가로 의회 운영위원회의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받은 셈이었다. 이수태 의회 운영위원장은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지만 초선 의원이었는지라 위원장 당선이 작은 화제가 되었다. “친박연합 측이 원구성에서 효과적인 플레이를 했다”는 평도 이어졌다.

    원 구성이 끝나고 의회의 의원사무실 배정이 있었다. 의원사무실은 2인 1실이었다. 누구와 쓸지 다소 고민 중이었다. 진보 성향 의원과 같이 쓰느냐, 아니면 다른 연결고리를 갖고 앞으로 연대할 만한 의원과 같이 쓰느냐.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들은 각자의 방으로 갔고, 어떤 의원들은 룸메이트를 이미 정해두었다.

    나머지 의원들을 가나다 순으로 배치했더니 공교롭게 나와 민노당 김성현 의원이 짝지어졌다. 그것도 2층 전문위원실 옆방이었다. 전문위원실은 의원들의 정책 및 회의 활동을 직접적으로 보좌한다. “진보 성향 의원 두 명이 전문위원실을 적극 활용하려고 그 방을 잡았다”는 소문이 났다.

    짐승 사는 세상

    7월 10일 풀뿌리사랑방에서 조촐한 개소식을 열었다. 옆집 카센타 아저씨도 잠시 모셨다. 그날 몇몇 참석자 분들이 ‘사람 사는 세상’ 소속이라고 소개하자 카센타 아저씨는 “저는 짐승 사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농담이지만 뼈아픈 현실을 찌르는 소개를 하셨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난 13일 사랑방에 출근했더니 뭔가 횅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노트북과 엑스박스 게임기가 사라졌다. 가족들에게 “누가 치웠냐”고 물었더니 “오늘 안 보였다”는 답만 돌아왔다. 도둑을 맞은 것이다!

    여름이라 사무실 뒤쪽 창문을 열어놓고 있었는데 그쪽으로 도둑이 들어왔다. 사무실 뒤의 작은 뒷마당에 가보니 담장 밑의 나무 심는 화단에 사람 발자국이 있었다. 노트북은 대학 졸업 선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이고, 엑스박스는 집에 있던 걸 사무실에 옮겨 설치한 것이다. 바로 얼마 전 카센타집 아들에게 “가끔 놀러와서 게임하라”고 했건만.

    인동동, 진미동은 원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동네고 평소 치안이 아주 불안했다. 신고를 받고 온 경찰관은 “여기 시의원 사무실입니까? 시의원 사무실도 털리나. 나 이것 참…”하며 황당해 했다.

    소를 잃었으니 외양간을 고쳐야 했다. 뒤쪽 창문에 방범용 창살을 달았다. 건물주 아저씨는 그날 마침 이사를 가고 있는 2층 입주자가 수상하다고 했다. 평소에도 행실이 좋지 않았다며 2층 복도에 놔둔 물건들도 몇 차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2층 입주자들은 이삿짐을 거의 트럭에 싣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물건이 없어졌다. 짐 좀 살펴 봐야겠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듬해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내가 그때 이삿짐 트럭을 뒤질 위인도 아니었지만 의심하는 기색을 꺼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2011년 가을 어느 날 경찰서 강력반에서 연락이 왔다. 범인도 찾고 물건도 찾았다는 것이었다. 가보니 노트북과 게임기가 모두 있었다. 다만 게임기는 보관 중 고장이 나서 다시 사용할 수 없었다. 범인은 인동에 살던 다른 사람으로, 생활고를 겪던 장애인이었다. 훔친 물건을 팔지는 않은 채 집안에 모아두고 있었다가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7월 14일,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공동 선언’에 참여했다. 오후 2시 해평면 구미보 옆이었다. 내가 구미에 내려온 것이 2010년 전후였고 그 이후 선거를 뛰느라 해평면에는 간 적이 없었으므로 그날 처음 구미보를 봤다.

    YMCA 활동가가 “덥다. 누가 기자회견 시각을 오후 2시로 잡았느냐”며 불평했다. 구미YMCA, 구미 경실련, 구미시 농민회, 구미 참여연대, 민주노총 구미시협의회, 전교조 구미지회 등이 동참했고 신부님, 수녀님, 목사님, 스님 등 종교계에서도 참여했다. 환경운동으로 유명한 지율 스님도 함께 했다.

    제도권 정치인으로는 김성현 의원과 내가 참석했다. 아직까지도 구미 지역 사정에 밝지 않던 나는 민주당이 불참하는 것이 의아했다. 구미 민주당은 시민사회단체와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김수민

    2010년 7월 14일, ‘4대강 사업 중단 요청 구미지역 종교인- 시민사회단체 공동선언’에서

    그즈음 나는 주민자문회의 위원 모집에 나섰다. 위원들에게 나의 의정활동을 고정적으로 자문하는 역할을 맡기려 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나름대로 신선해 보였는지 한 지역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응하는 주민들은 극소수였다. 틈만 나면 사람을 잡고 부탁을 해도 “나는 잘 모른다”고 손을 휘젓기 일쑤였다. 늘 기득권세력의 간섭이 아닌 주민으로부터의 민주적 통제를 원했다. 하지만 지방정치는 많은 시민들에게, 특히 젊고 개혁적인 사람들에게 관심 밖이었다. 그들이 비운 자리를 토호를 비롯한 일부 주민들이 채웠다.

    7월 16일과 19일 21일에는 상임위원장단 선출 이후 첫 상임위 활동이 있었다. 집행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였다. 보고용 책자를 받아든 후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에 문의해가며 쟁점이 될 만한 사항과 질문 내용을 챙겼다. 집행부와 질의, 응답을 펼치는 첫 기회였다.

    필자소개
    전 구미시의원. 스스로를 정당인보다는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녹색당 소속. 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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