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동파 파이터 김남훈 이야기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김남훈의 『멜로드라마 파이터』
        2015년 03월 12일 10: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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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깔있는 진보 미디어’ 칼라TV가 제작하는 논픽션 책 팟캐스트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는 르포르타주와 논픽션 책을 다루고 있고, 매주 월요일 업로드 된다. 김현진(에세이스트)과 송기역(시인, 르포작가)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책 소개 및 저자와의 인터뷰 외에, ‘신간 논픽션 브리핑’, ‘김현진의 라디오 에세이’, ‘논픽션 작가 열전’, ‘인문학 강의’, ‘내 인생의 밑줄 쫙 별표 땡땡’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9회 방송은 『멜로드라마 파이터(텍스트)의 저자 김남훈과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진행자 송기역 작가, 그리고 병상에 있는 김현진 작가 대신 방송을 진행해준 정윤영 작가가 함께한 북토크쇼 실황을 내보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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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 이겨도 싸운다

    “뿌잉뿌잉! 육체파 창조형 지식 근로자, ‘육창근’ 김남훈이라고 합니다. 입으로, 머리로, 몸으로, 글로도 먹고 사는 전방위 육체파 창조형 지식 근로자입니다.”

    준비된 것이 분명한 자기소개가 유쾌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남자, 프로레슬러란다. 제9회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는 『멜로드라마 파이터』의 저자 김남훈의 등장으로 에너지가 넘쳤다.

    “링에서도 싸우지만 링 밖에서는 기존의 틀과 싸우거든요. 그래서 파이터에요.”

    그런데 파이터면 파이터지 왜 멜로드라마 파이터인가? 멜로드라마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줄거리에 변화가 많고 통속적인 정의감이 들어 있는 오락 본위의 극’

    멜로드라마의 정의를 보니 프로레슬링과 멜로드라마의 접점이 보인다. 프로레슬링에는 멜로드라마스러운 시나리오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 유일의 악역 레슬러인 김남훈에게 프로레슬링은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지만 매번 링에 올라가야 하는, 슬픔이 있다.

    “프로레슬러 자체가 슬픔이 있어요. 각본을 따라가야 하거든요. 자유의지보다는 정해진 (악인) 역할만 각본대로 따라가야 하는 그런 슬픔이 있어요. 그래서 멜로드라마를 책의 제목에 붙여봤어요.”

    근원적인 슬픔을 피할 수 없는데도 악당 레슬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레슬링에는 ‘베이비 페이스’라는 선역이 있고 ‘힐’이라는 악역이 있어요. 한국 레슬러들은 전부 베이비 페이스뿐이었요. 그래서 악역을 하기로 했어요. 악역은 상대 선수를 존중하지 않는 레슬러가 아니라 상대보다 나를 더 존중하는 레슬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링이라는 공간 안에서 누구를 특별히 싫어하고 증오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악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제 악역에 인격을 부여했어요.”

    챔피언이 꿈은 아니었다

    프로레슬러는 김남훈의 소년시절부터 꿈이었다고 한다. 꿈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그의 꿈은 프로레슬러가 되는 것이었지, 챔피언이 되는 건 아니었다. 공부에 비유하자면 재미있어서 한 것이지 1등이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이라는 오래된 경구가 오롯이 떠오른다.

    “28살에 프로레슬링에 입문해서 1~2년 후에 바로 데뷔했어요. 소년시절의 꿈을 이룬 거죠. 어린 시절부터 간절하게 꿈꿨던 세상에 한번 올라가 봤다는 점이, 오롯하게 나만의 뭔가를 만들었다는 성취감이 그 후 인생을 사는데 큰 에너지원이 되었어요. 어릴 적 꿈을 이뤘다는 자부심이 아주 컸어요. 프로레슬러가 제 인생에서 어른의 라이센스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요즘 이십대들이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입상 경력, 인턴 경력, 사회봉사’에서 ‘성형수술’까지 무려 9종의 스펙을 갖춰야 한단다. 그렇게나 빵빵한 스펙으로 취업을 해도 50대 이전에 정리해고 당하기 십상이다. 아파트 대출금도 다 못 갚았는데 말이다.

    다르게 사는 법을 배우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채 대다수의 중산층이 그렇게 산다. 하지만 김남훈은 달랐다. 그래서 행복하다 말한다.

    “첫 번째 사냥감 증후군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야생동물이 태어나서 어미를 따라다니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혼자 사냥을 해야 하잖아요? 한 번이라도 사냥에 성공하면 그 성취의 기억이 다음 단계를 계속하게 만들어준다는 거예요. 지금의 이십대들은 자신만의 사냥감을 잡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싶어요. 최저임금 수준의 아르바이트로, 학자금 대출로, 취업난 등등으로 요즘의 이십대에게는 첫 사냥을 할 기회가 좀처럼 안 주어지는 것 같아요. 공부를 잘해서 좋은 직업을 가져도 계층 간의 수직이동은 불가능한 사회잖아요. 이런 사회가 되기 이전, 아무런 계획 없이 살아도 밥은 먹겠지 라는 낙관을 가질 수 있는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게 행운인 거 같아요.”

    “제가 어마어마한 프로레슬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링에 처음 올라간 날, 알 수 있었어요. 내가 동경해마지 않았던 그런 레슬러는 안 될 거라는 걸 알았어요. 나 김남훈이라는 사람이 어느 정도 영역까지 가능할까, 이성적으로 생각했어요. 누구나 김연아가 될 수 없어요. 김연아가 될 수 없어도 행복할 수 있어요. 관객석에 있어도 행복할 수 있죠. 고소득 고학력이 최고의 지름길은 아니에요. 그것 외에 다른 변수가 생겼을 때 적응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삶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행복할 수 있어요.”

    멜로 드라라

    아뿔싸, 김남훈은 성공하고 말았다

    ‘아뿔싸, 난 성공하고 말았다’라는 말이 있다. 김남훈에게 딱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스펙, 안정된 직장, 고액 연봉, 높은 지위 등, 흔히들 말하는 성공은 아니지만 김남훈이 몸으로 터특한 삶의 방식이, 그 뻔한 성공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김남훈이라는 이름을 인터넷 검색하면 프로레슬러, 오토바이 마니아, 마케팅 회사 대표, 빵집 사장 등 많은 이력 중에 스포츠 해설가가 가장 상단에 올라와있다. 그가 스포츠 해설가 데뷔에 성공한 이야기도 남다르다.

    “우리나라에서 해설가가 되려면 가슴에 훈장이 필요해요. 국제 경기에서 메달을 따거나 업적이 있어서 훈장을 달아야 돼요. 해설가가 되기 위해 방송국에 수없이 이력서를 냈으나 잘 안 됐어요. 그래서 UCC를 만들었죠. <격투기 완전정복> 시리즈를 서른 편 정도 만들어서 인터넷에 뿌렸어요. 기대 이상의 효과를 봤고, 모 정부기관이 추천하는 우수 UCC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결국 그 영상덕분에 방송국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해설가로 데뷔했죠.”

    “헐크 호건이 나올 때가 있었어요. 어린 시절 <아이큐 점프> 잡지에 있는 헐크 호건의 브로마이드를 찢어서 벽에다 붙여놨었는데 그 사람이 나오는 경기를 해설을 하고 있다니, 울컥 하는 거죠. 감동적이고 행복하죠. 통장 입금을 보고 사는 박제된 어른이 아니라, 박제된 삶이 아니라, 프로레슬링 해설은 제게 젊음을 유지하게 해주는 샘과 같아요. 유년기의 즐거움을 계속 떠올리게 해주니까요.”

    얼굴이 알려지자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나랏돈 받으면서 악플 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저한테 악플 단 분들은 참 순수했어요. 국가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돈 받고 한 것도 아닌데 이해해 주자 싶네요. (웃음) 인터넷은 진보의 공간이었고, 댓글이 나름의 의사소통 역할을 했는데, 국가가 물을 흐려 놓으면서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정의로운 일을 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마음으로만 응원하면 아무 일도 안 생겨요

    공부와는 담 쌓게 만드는 엘리트 체육 교육에서 비롯된 편견 때문에 김남훈은 ‘프로레슬러인데 똑똑하시네요.’라는 말을 꽤 듣는다. 그렇다. 김남훈은 똑똑하다. 그리고 (의외로) 진보적이고 사회비판적이다. 약자와의 연대에도 부지런하다.

    “엄청남 명예와 부를 누리는 것도 아니지만, 40대 남자가 대한민국에서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고 있으니 복이죠. 이렇게 복을 누리는 것은 나 혼자 잘나서가 아니라 도움을 받은 거예요. 특정할 수 없는 곳에서도 도움을 받은 거죠. 복 받은 남자로 어려운 곳에 손을 내미는 것뿐이예요.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 안 해요.”

    약자가 고통 받는, 링 바깥의 현실에 대한 김남훈의 연대는 육체파답게 만져지는 싸움이다.

    “난 마음으로 응원한다는 말을 가장 싫어해요. 길 가다가 누가 쓰러졌을 때 붙잡고 일으켜 세워주거나, 괜찮은지 물어보던가 해야지, 마음으로 응원하면 뭐해요? 마음으로 응원하면 아무 일도 안 생겨요. 트위터, 페이스북에 그런 내용을 올리는 이유도 다른 사람들도 하시라는 거죠. ‘알티’라도 하고, ‘좋아요’라도 누르라는 거죠.”

    “마음으로 응원한다는 말은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말일 뿐이에요. 남에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죄책감을 씻어내는 말일뿐입니다. 행동하는 지식이 필요해요. 저 김남훈은 많은 분의 도움, 배려로 복을 누리며 살고 있고, 누린 만큼 손을 내미는 염치를 아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김남훈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투강도몽(鬪强導夢 ; 강하게 싸우며 꿈을 이룬다)’이라는 한자어가 손님을 맞이한다. 비장한데 일면 유머러스하다. 꿈을 향해 순수하게 정진하며 꿈의 정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꿈을 밟아가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그가 부럽다.

    다음은 그의 블로그에 실린 『멜로드라마 파이터』 소개 글이다. 김남훈스럽다.

    이 책은 당신이 직장에서 성공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겁니다.

    이 책은 당신이 이성에게 주목받는 것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겁니다.

    이 책은 당신이 부모님에게 사랑받는 것에 대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DNA 염기서열 한 조각까지 불태우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청춘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려드리지요.

    저자가 100% 환불 보증합니다.

    단, 스위트롤 이대점에 오셔서 제 얼굴에 직접 책을 던지셔야 해요. ^^

    * 제8회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신간 논픽션 브리핑 따북’ 코너에서는 『해방일기 10』(김기협/너머북스)와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최혁준/책공장더불어)이 소개되었고, ‘논픽션 작가 열전’에서는 ‘히로세 다카시’를, ‘내 인생의 밑줄쫙 별표 땡땡’ 코너에서는 여자야구단 <아이리스>의 감독 박외숙이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지두 크리슈나무르티/물병자리)를 추천한다.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듣기 ☞

    팟빵 : http://www.podbbang.com/ch/8412

    아이튠즈 : http://goo.gl/oQzx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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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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