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쿠시마, 기록된 시간
    세월호, 기록되지 않은 시간
    [책소개]『관저의 100시간』(기무라 히데아키/ 후마니타스)
        2015년 03월 07일 04: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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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동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그리고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위험에 빠졌다. 그때 국가권력의 중추인 총리 관저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이 책은 사고 발생 직후부터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사고대책통합본부가 세워진 15일 저녁까지의 ‘100시간’에 주목한다.

    전대미문의 사고가 터진 바로 그 순간, 아사히신문 기자 기무라 히데아키는 가장 먼저 도쿄전력 본사에 도착해 2주간 머물렀고, 이후 후쿠시마 현장을 누볐다.

    사고 발생 6개월 뒤, 그는 자신을 비롯한 언론이 ‘발표된 내용’ 너머의 심층에 다가가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그가 독자에게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고자 선택한 방법은 사실을 말하는 것, 관계자와 직접 부딪쳐 새롭게 확인한 상세한 사실을 전하는 것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인간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될까? 끔찍하고 마음은 아프지만 내 것은 아닌 고통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가오는 3월 11일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4주기이다. 냉정하게 말해, 이는 남의 일이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재해였지만, 거기서 끄집어낼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결국 후손에게 전해질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깨달을 수만 있다면, 남의 고통은 또 다른 남에게 대가 없는 교훈을 준다. 그때 비로소 이 고통은 그들만이 아니라 나의 것이기도 한 고통으로 자리매김한다.

    대공황이라는 재난은 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폐해와 분배의 중요성에 대한 경종을 울렸고, 양차 대전의 비극은 민주주의의 불가피함을 일깨웠다. 더 가깝게는, 세월호 사건을 겪어 내면서 한국 사회의 발전 모델이 심판대에 올랐고, 쌍용자동차 해고 문제를 통해 고용 불안이 낳은 사회적 결과의 민낯을 목도할 수 있었다.

    이처럼 큰 고통을 남기는 거대한 사회적 사건은 직관적인 통찰을 준다. 그러나 이를 더욱 가치 있게 새기려면 사건 그 자체에 집중한 좋은 기록이 필요하다.

    관저의 100시간

    월성 원전 1호기 연장 결정, 원전 사고는 과연 남의 일일까?

    지난 2월 27일 새벽 1시 10분, 원자력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월성 1호기 계속운전 허가안’이 통과되었다. 1983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이래 30년의 설계 수명이 다해 이미 2012년에 가동이 중단된 월성 1호기가 2022년까지 운영될 길이 열렸다.

    연장 가동되더라도 편익보다 비용이 더 크다는 분석(2014년 7월 국회 예산정책처), 월성 1호기가 폐로되더라도 올해 전력 설비 예비율은 18.3%(한전에서 밝힌 적정 설비 예비율은 12%)라는 예측이 무색할뿐더러,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과도 거리가 먼 결정이다.

    무엇보다 이 같은 심의 및 결정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일본의 원전 사고 당시의 경험을 살펴보면서 한국의 원전 정책 및 이를 결정하는 이들의 행태가 어떤지를 비교하는 일은 한층 더 중요해졌다.

    기록된 시간 :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후쿠시마,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

    진원이 산리쿠 앞바다로 추정되는 동일본 대지진과 그에 따른 쓰나미는 대재난으로 이어졌다. 사태가 더욱 심각해진 것은 이 여파로 후쿠시마 제1원전의 교류 전원이 차단되면서 냉각 시설이 작동되지 않아 노심용융(멜트 다운) 위험에 빠지면서부터였다.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곧바로 현지에 설치돼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원자력재해대처센터(오프사이트센터)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결국 초동 대응을 맡게 된 것은 당시 간 나오토 총리가 이끄는 총리 관저였다.

    그때 바로 그곳, 국가권력의 중추이자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처하는 컨트롤 타워였던 총리 관저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는 우리를 사건의 본질로 인도하는 호기심이다.

    ‘사고는 왜 발생했는가’, ‘대응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대화가 오갔나’, ‘그때 잘못된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과 인간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분리시킴으로써 ‘비판’을 가능케 한다. 논평과 추측에 자리를 내주지 않은 채, 다만 ‘있었던 일’을 정직하게 다룬 기록이 귀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아사히신문> 특별보도부가 기획 연재한 ‘프로메테우스의 덫’의 르포 기사(2012년 1월 13일~2월 6일까지 총 35회분)를 바탕으로 관계자의 실명 증언을 더욱 보강한 끝에 ‘관저의 100시간’을 구축해 냈다.

    이를 통해 긴급한 상황에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원자력안전·보안원, 문부과학성,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의 원자력 관련 관료 조직이 피난 경로 예측 시스템(SPEEDI)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피폭 피해를 키우는 모습, 원자로 폭발은 없다고 장담하다가 이에 대비하지 못한 채 폭발을 지켜보게 만든 전문가 집단의 무능, 사태를 해결하기보다는 현장에서 철수하는 데 급급한 도쿄전력의 무책임 등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진실’에 이르기까지 사실들로 이루어진 계단이 필요하다면, 이 책은 가장 밑에 놓여야 할 계단이다.

    일본 저널리즘의 저력,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한 저널리스트의 고군분투

    사건을 ‘공유된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 기록의 기능이며, 여기서 기록자, 특히 언론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저자는 전대미문의 사고가 터진 바로 그 순간 가장 먼저 도쿄전력 본사에 도착해 2주간 머물렀고, 그 뒤로 후쿠시마 현장을 누볐다.

    사고 발생 6개월 뒤, 그는 자신을 비롯한 언론이 ‘발표된 내용’ 너머의 심층에 다가가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주류 언론을 향해 ‘거짓말한다’거나 ‘속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하는 일본 시민들을 지켜보며, 원전 사고란 언론에게는 ‘두 번째 패배’였음을 고백한다.

    그런 그가 독자에게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고자 선택한 방법은 사실을 말하는 것, 관계자와 직접 부딪쳐 새롭게 확인한 상세한 사실을 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저자의 표현대로 “발로 뛰어다니며 1년차 기자들이나 하는” 식의 고군분투 끝에 묶어 낸 이 책은, 언론에 대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저널리스트로서 내놓은 대답이기도 하다.

    서문의 말미에 저자는 ‘미나마타병 의사’로 알려진 하라다 마사즈미가 자신에게 남긴 말을 소개한다. “분노를 구실로 펜을 들어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 전할 수 없다. 분노를 세상에 알리고 오래 남기는 것은 냉철한 펜이다.”이 책 본문에는 분노할 수밖에 없는 실상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엄격하게 있는 그대로 기술된다.

    저자는 냉정한 ‘사고 조사 검증 보고서’의 집필자로서 본분을 끝까지 망각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심경과 분노를 토로한 것은 단 한 번, 이 책 후기의 가장 마지막 부분이다. 이 책은 객관과 분노의 제자리를 거스르지 않음으로써, 적는 이가 읽는 이에 앞서 판단하지 않는 기록의 가치를 보여 준다.

    기록되지 않은 시간 :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경 진도 앞바다

    작년 4월, 한국 사회도 큰 재난을 겪었다. 적어도 일본의 경험이 자연재해에 기인했다면, 세월호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탓이었기에 안타까움은 비할 바 없이 컸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긴 이 사건의 실상이 사고 발생 시각을 특정하는 것조차 논란이 될 만큼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출판사에서 이 책의 번역 출간을 결정한 것은 세월호 사건이 있기 전이었다. 당시 조금은 단순하게 ‘원전’에 대한 경고라는 의미에 좀 더 주목했다면, 출간을 앞둔 지금 이 책의 의미는 새롭게 다가온다.

    이 책 말미에는 <아사히신문>과 교도통신의 보도, 도쿄전력의 발표를 토대로 하여 분 단위로 작성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일지(2011년 3월 11~15일)가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이 같은 사실을 발판 삼아 관계자의 실명 증언을 확보해 기존 사실을 재차 검증함으로써 더욱더 정확하고 풍부한 사실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떠난 이들이 누구였는지를 전하는 동시에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며 ‘재난 체험’을 다룬 글들은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나 세월호 범정부사고대책본부의 시간을 다룬 기록은 여전히 찾아볼 수 없다. 사건 자체를 객관화해 직시하는 단계를 건너뛴 우리 사회가 과연 이 사건을 충분히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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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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