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공주의,
    한국 사회의 보수적 접착제
    [책소개] 『반공의 시대』(김동춘 외/ 돌베개)
        2015년 03월 07일 04: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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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독일은 냉전의 맥락에서 분단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된 지 25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의 분단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독일은 1990년에 통일을 이루었다. 이후 통일 독일과 한국의 양자관계는 크게 진전되었고 이와 함께 분단의 경험과 통일 방안에 대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동안 두 나라 간의 학문적, 사회정치적 교류에서 독일(서독)과 한국 역사의 중요한 측면 하나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바로 1945년 이후 양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학문적 발전 과정에서 반공주의가 수행한 역할이다.

    한국에서 반공주의는 국내 정치뿐 아니라 남북관계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독일에서는 냉전이 종식되고 ‘소련의 위협’이 사라진 이후 반공주의의 영향력이 상당 부분 감소했지만, 지금도 반공주의의 유산은 독일 정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반공주의처럼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비교연구적 접근을 취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한국과 독일의 이데올로기적 균열을 극복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 「책을 내면서」 중에서

    분열과 갈등, 냉전의 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 연구

    이 책은 한국의 김동춘 · 박태균, 독일의 기외르기 스첼 · 디르크 호프만 등 저명한 사회학자들 16명(한국 12명, 독일 4명)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반공주의가 양국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그 부정적 유산들과 이데올로기적 균열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공동으로 연구한 성과물이다.

    독일의 비정부기구인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주최로 열린 워크숍을 토대로 반공주의의 역할에 관한 주요 측면을 다뤘으며, 이런 논의를 진행하는 데 있어 현재의 사회정치적 문제에서 가지는 의의를 고려해 한국에 초점을 맞췄다.

    이 책은 비교연구적 분석틀을 제시함으로써 반공주의에 대한 양국의 학문적 담론을 보완하고, 한국과 독일에서 각각 진행되고 있는 사회정치적 논의에 기여하고자 기획되었다. 실험적 성격의 이 공동 연구를 계기로 더욱 활발한 공론장이 형성되어 통일과정의 전제조건인 사회통합에도 건설적 기여를 하는 데 이 책의 목적이 있다.

    보수-진보, 여당-야당의 간극과 사회적 분열이 날로 심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건설적 태도와 충분한 지식, 관용을 바탕으로 이데올로기적 차이에 대처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자는 이 책의 취지는 그 자체로 주목할 가치가 있다.

    반공주의 논의의 핵심 주제

    이 책은 분단국가라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성격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문제들을 한국과 독일 부분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이는 과거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역사와 한국을 비교해봄으로써 다양한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반공의 시대

    반공주의의 탄생과 다양한 양상

    반공주의는 근대 공산주의와 함께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출간된 이후 태동했다. 특히 러시아혁명처럼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운동이나 사상이 등장한 이후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반공주의는 냉전기에 소련의 위협을 과장하는 미국의 외교 노선과 국내 정치의 원칙을 집약해주는 용어였지만, 유럽에서 냉전이 종식됨으로써 일단 유럽에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과거의 반공주의가 오늘날에는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옷을 입게 되었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가져온 모순이나 위기에 대한 반발 또는 저항도 종교적 극단주의, 테러, 인종차별, 사회적 보수주의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을 따름이다.

    반공주의는 나라마다 매우 다양한 양상을 지닌다. 한국의 반공주의는 조선이 일본의 제국주의적 지배에서 해방된 직후 냉전체제와 더불어 형성되었다.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 민간독재나 군사독재의 형태로 반공주의 정권이 형성되고 유지되었다.

    독재정권은 시민권 제약을 정당화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을 활용했다. 한반도의 북쪽이 소련과 공산정권에 점령되었기 때문에 국가안보는 곧 반공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형태의 반공주의가 바로 파시즘이다. 20세기 각국의 파시즘은 대체로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부르주아 세력의 두려움을 집약하고 있다. 특히 반공주의는 공산주의자들이 무엇을 하든 그것에 무조건 반대하겠다는 부정적 결단이며, 그것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다.

    1945년 이전의 일본 제국주의 파시즘 또한 강한 적색공포에 기초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적 기반인 천황제는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는 반역사상으로 간주했으며, 그것이 치안유지법에 집약되어 있다.

    한국의 반공주의

    한국에서 반공주의가 법적으로 공식화된 것은 1961년 이후다. 권위주의 시대 내내 반공주의는 비민주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기제 역할을 했다. 4/19혁명 이후 장면 정부가 반공법을 시도했으나 저항에 부딪혀 포기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정치의 주류는 여야를 떠나 반공주의에 의존해왔다.

    5/16군사쿠데타 직후 ‘군사혁명위원회’는 6개항의 성명에서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는다고 발표했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1년 7월 13일 반공법을 제정해 공산 계열의 정치활동을 엄금했으며 유신독재체제 내내 반정부활동을 규제하는 데 이용되었다. 인혁당, 남민전, 민청학련 사건 등은 바로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반독재운동을 억압한 대표적인 사례이며, 이후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하는 동시에 희생자에 대한 국가배상을 명령했다.

    한국 사회의 보수적 접착제는 반공주의이며, 그 구체적 실현은 국가보안법 제도다. 한국 사회에 지배적 이념으로 뿌리내린 반공주의는 정치적 유산인 동시에 정치적 도구다.

    반공주의가 몇 차례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현상유지되는 까닭은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보수 세력이 집권하기 때문이다. 보수 세력은 북한의 도전에 맞서 반공주의를 제시하면서 국내적으로는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를 통해 권력을 재생산하는 데 성공해왔다.

    반공주의 제도가 지속되는 것은 공산주의가 사유재산이나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며 개인의 창의적 잠재력을 부정하는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이며, 이에 따라 저소득층 역시 반공주의를 지배 이념으로 받아들인다. 저소득층 부모는 현재 경제적으로 취약하지만 자식 세대는 시장의 자유활동을 통해 신분이동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반공주의를 용인하는 것이다.

    나아가 1987년의 민주화 역시 지배 이념에 대한 신뢰를 흔들지 못했으며 민주화 과정이 권위주의 세력과의 합의에 따른 것인 만큼 민주화 세력은 반공주의 개혁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로써 암묵적으로 정치적 중간 세력 또한 반공주의를 지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듯 한국에서 반공주의는 한국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 정책을 집약한 것이며, 따라서 반공주의는 분단된 한국의 국가정체성과 외교?국내 정치의 기본 원칙, 지배집단의 논리와 심리 그리고 정치적 갈등과 저항운동의 기원을 설명해주는 시금석이다.

    반공주의는 냉전기에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서방 진영에 속했던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한국에서만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자유주의자, 파시스트, 사회민주주의자 등 다양한 집단에서 다양한 형태의 반공주의가 나타났지만 한국에서는 주로 국가 이데올로기, 우익의 체제 이데올로기로만 존재했다.

    특히 2014년 말에 일어난 통합진보당 해산사건에서 볼 수 있듯 분단전쟁을 거친 한국에서의 반공주의는 다른 어떤 서방 국가나 제3세계 진영의 국가보다도 내부의 적을 절멸시키는 데 주력하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 성격을 갖고 있다.

    일당지배, 권위주의적 리더십(총통), 강력한 이데올로기, 모든 자유에 대한 억압, 강제수용소, 정의의 부재, 집단주의 등 그 형태와 내용에서 파시즘, 공산주의와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는 전체주의야말로 지난 수십 년간 가장 성공적인 반공주의 전략이었다.

    한국의 반공주의는 북한과 동전의 양면을 구성한다. 반공주의는 분단이라는 현실적 조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북한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은 동독과 많은 면에서 다르다. 북한은 동독과 달리 권력 세습이 이루어지는 독재체제로 폐쇄되어 있고, 국제사회로부터 인권과 사회, 경제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게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핵무기도 개발해왔다.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체제에 갇혀 있다. 국가보안법은 반공 강화라는 명분 아래 정치적 반대 세력의 정치활동에 필요한 자유를 억압하는 데 이용되어왔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사회주의 계열의 정당이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사실은 좌익정당을 비롯한 정치적 반대 세력의 억압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 보안법으로 말미암아 사회주의 계열의 정당이 존립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반공주의에 대해 좀더 깊이 성찰해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반공주의가 무엇을 의미하고, 왜 추구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를 좀더 정확하게 검토하고 설정할 필요가 있다. 반공주의가 단순히 공산주의를 적대하는 것 자체에 머물러서는 원래 의도와 달리 사회적 역기능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반공주의가 사회 내적 비민주성과 부조리를 정당화하고 은폐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그 본질과 거리가 먼 불행한 상황의 원인이 될 것이다.

    서독이 독일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서독인들이 동독의 공산주의를 미워하는 강력함에 기초했던 것이 아니라 서독 사회가 다원성의 가치 속에서 자유와 정치적, 사회적 민주주의, 인권을 진지하게 추구한 데 있었다. 독일 통일이 한국의 모델이 될 수 없다는 일각의 지적은 일면 타당성이 있으나, 분단극복에서 서로 다른 토양으로 작용하는 사회적?문화적 조건에 대한 비교연구의 가치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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