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의식’과 '주인행세'
    [청춘일기] 생각하는 것 넘어서 움직이는 게 필요
        2015년 03월 06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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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일기 박나회씨의 앞 글

    두 달간의 교복점 아르바이트는 끝이 났다. 아르바이트 기간에 날짜 개념을 잊고 살았다. 교복점에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진 이후부터 개학을 실감했다.

    개학을 앞두고 일주일 정도는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다. 예약했던 교복이 공장에서 늦게 나오기도 했고, 교복의 원단 색이 틀리게 나와 학교에 교복을 입고 가지 못하게 된 학생도 생겼다.

    예약한 학생들의 교복을 관리하는 것은 사장님의 소임이었지만 아르바이트생에게 미루기 일쑤였다. 그러나 중요한 업무를, 두 달 남짓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미룬다는 것이 우리는 몹시 못마땅했다.

    예약 장을 관리하는 친구가 자주 빠지게 되어 예약한 학생들의 교복이 늦게 작업된 것이 화근이었다. 학생들의 개학이 하루 밖에 남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맞춤 교복을 예약했던 친구의 교복이 개학을 한 이후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학부모들이 교복점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이 모든 일의 책임자인 사장님에게 변상을 요구하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항의에 사장님은 아르바이트생들의 실수가 있었다고 변명했다. 사장님은 그들이 떠나간 후 우리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꼼꼼하게 잘 해주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사실 사장님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실수를 했고 그 실수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들이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본질적인 책임은 우리들의 ‘주인’이 질 수밖에 없었고 우리들의 월급을 깎을지 말지를 고민 중이라는 사장님에게 우리는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일하는 곳의 ‘주인’(사장)이 최소한 우리에게 책임을 미루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그것이 주인이 가져야 할 책임의식, 곧 주인의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회에 나와 만난 주인들은 나에게 ‘내 매장처럼’ 혹은 ‘내 회사처럼’ 생각하며 일해주길 원했다. 그들은 실수하는 직원에게는 가차 없었고 월급을 줄 때면 이십분, 삼십분 초과 된 시간 수당을 바빠서 어쩔 수 없었던, 일한 정(情)으로 무마되어 버릴 수 있는 것쯤으로 처리했다.

    그런데 얼마 전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생들과 이야기를 하던 내 모습에 흠칫 놀랐다. 이렇게 힘든 일은 처음이라며 동생들이 불평하자 나는 내가 겪은 수많은 아르바이트 경험을 거론하며 아직 힘든 것은 시작도 안했다는 양, 이정도의 일로 불평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때 나는 매장에 비친 거울 속 내 모습에서 그동안의 내가 만난 ‘주인’ 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내가 겪은 경험이 자명한 진리인 양 으스대는 꼰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은 아니지만 주인처럼 일하기를 강요당하는 사회에서 어설픈 주인들을 만나며 나는 ‘주인의식’은커녕 ‘주인행세’하기 바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확한 임금을 주고, 아르바이트생의 실수에도 모든 책임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사람을 진정한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일하는 곳에서 내 자신이 주인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마음은 ‘갑’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알바

    편의점 알바 자료사진

    스스로 가치평가를 할 수 있는 자, 삶을 자기극복을 통해 조형하려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 많은 욕구들의 긴장적 대립을 제어하고 자기극복 및 자기지배를 할 수 있는 거리의 파토스의 소유자이자, 자신과 다른 유형들을 차별화시킬 수 있는 거리의 파토스의 소유자.

    언젠가 니체에 대한 수업을 듣다가 마주하게 된 글이었다. 니체가 말하는 주인의식은 내가 그동안 체감했던 주인의식과는 다른 설명이었다.

    우리 사회에서의 주인의식에 대한 인식은 ‘주인’을 위한 기제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이나 잘 나가는 사람들의 성공신화의 한 요소로 사용되기 바빴다. ‘주인’의 자리로 가기 위해 무작정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해왔으니. 이해가 되지 않을 뿐더러 진짜 ‘주인’이 없는 세상에서 ‘주인의식’을 강요당하는 세상에 산다는 자체가 끔찍하게 여겨졌다.

    니체가 말하는 ‘주인의식’은 주인을 위한 것도 아니고 주인을 위해 일하는 이들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삶을 이끌어 나가는 개개인을 위한 의식이다. 또한 니체는 이러한 주인의식이 타산적이거나 계산적인 생각이 전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오직 ‘주인’이 되려면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생각이 아닌가. ‘주인’이 되기 위한 목적이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식을 통한 깨어있는 ‘의식’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러한 ‘의식’이 부족했다. ‘주인’에 대한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도 내가 행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의식’부족이었다.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대화의 주제는 여지없이 신세한탄으로 넘어가 버렸다. 한 친구는 아파서 반차를 써도 책임감이 없다며 눈치를 주는 회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목적이 수단이 되는 세상만을 욕할 수는 없다. 세상 탓만 하고 살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그 세상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당한 요구를 하지 않고 눈치만 보는 삶을 사는 우리에게 ‘주인의식’이 함양되어 있기는 한 걸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깨어있는 의식이다. 나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의식이 아니다. 나의 가치를 알기 전에 다른 사람의 가치를 알 수 없는 것처럼 깨어있는 의식을 갖기 위해서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생각하는 것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다. 책임을 지기 전에 내가 가져야 할 권리를 찾아야만 한다.

    주인의 개념과 주인의식의 개념 사이에서 더 큰 가치를 부여해야만 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안다. 더러워서 때려치우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올바르고 정당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할 수 있는 나와 너,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필자소개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해 문화재단 입사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는 생애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 교복전문점에서 한 달 꼬박 쉬지도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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