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전하는 '국민'과
    월성1호기 재가동하는 '정부'
    [에정칼럼] 전력소비 제로 성장시대를 맞는 두 얼굴
        2015년 03월 04일 09:32 오전

    Print Friendly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겪었을 때도 이런 적이 없었다.

    2008년과 2009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각각 2.8%, 0.7%였던 시절, 전력소비량은 2008년 4.5%, 2009년 2.4%로 GDP증가율을 훌쩍 넘어섰다.

    하지만 2010년 GDP 증가율이 6.5%로 경제가 반짝 반등하면서 전력소비량도 10.1%로 정점을 찍더니 2011년 4.8%에서 2012년 2.5%, 2013년 1.8%까지 떨어졌고, 심지어 지난해에는 제로 증가율(0.6%)대로 진입했다.

    그래프_GDP증가율과 전기사용량 증가율

    지난 2년 동안 경제성장률과 전력소비량의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났고, 바야흐로 전력소비 제로 성장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분석은 이렇다.

    지난 1월 28일 산업통상자원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주택용과 일반용, 교육용의 경우는 날씨영향으로 인한 냉난방부하 감소, 세월호 참사로 인한 소비심리 냉각 등의 영향으로 전력소비량이 전년대비 줄었고, 특히 심야전력의 경우 난방부하 감소, 계약전력 감소 및 요금인상으로 11.1%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이 전력소비량 증가율이 0%대로 진입한 요인이다.

    반면 산업용의 경우는 조업일수 감소(2.5일)에도 불구하고 주력업종(반도체·철강·무선 통신기기)의 수출 증가, 국내 설비투자 증가의 영향으로 전년대비 2.7% 증가했다.

    가정(주택용)과 자영업자(일반용)의 삶은 팍팍한데, 대기업(산업용)들만 호황을 누리는 한국 경제의 현실을 전력소비량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빚 내서 집 사라고 부추기는 정부 덕에 가계부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전세 가격이 집 가격의 턱 밑까지 추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세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저금리 탓에 전세 보다는 월세를 선호하는 집주인들 덕분에 월세의 부담은 커져가고, 직장인들의 유리지갑은 바뀐 연말정산으로 털리는 게 이른바 일반 국민의 모습이다.

    자영업자들은 또 어떤가. 하루가 멀다 하고 개업과 폐업을 오가는 수많은 치킨가게가 대변하듯 정년퇴임과 명예퇴직으로 직장을 잃은 50~60대의 마지막 보루였던 자영업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반면에 대기업들은 MB정부가 줄여 준 법인세와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 때문인지 정부의 분석처럼 수출 증가와 설비 투자 증가로 전력소비량도 늘어났다.

    서민 증세와 부자 및 대기업 감세라는 정부의 정책 기조는 전기요금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가정용 전기요금에 비해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 정책이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으니 가정용 전력수요가 줄고, 산업용 전력수요가 늘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래프_산업용과 에너지다소비 제조업종별 전력소비증가율_권승문 작성

    자료: 한국전력통계를 이용하여 권승문이 작성함.

    하지만 한국전력의 계약종별 판매전력량을 보면, 산업용 전력소비량도 확실히 감소추세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0년과 2011년 산업용 전력소비량은 전년 대비 각각 12.3%, 8.1% 급증한 이후 2012년부터는 2.6%, 2013년 2.8%, 지난해 2.7%로 2%대 증가율에 머물고 있다. 2012년에만 GDP증가율(2.3%)을 다소 웃돌았고, 이후로는 GDP증가율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대표적인 전력다소비 제조업종인 석유화학과 1차금속(철강), 영상음향의 전력소비량 추이를 보면, 마찬가지로 2010년과 2011년에 증가율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하락하는 모습이다. 특히 철강업종의 2012년 전력소비량은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률(-1.2%)을 기록했고, 2013년에도 전년 대비 1.7% 증가에 그쳤다.

    문제는 이러한 추세가 경기불황에 따른 단기적인 요인인지, 아니면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요인인지 여부다. 여기서 한전경제경영연구원과 에너지경제연구에서 지난해 발표된 2편의 보고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지난해 8월 <전력 경제경영 Issue>에서 다룬 ‘최근 설비투자 동향과 전력수요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실질 설비투자 지수는 서서히 둔화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이로 인해 계약전력의 증가율도 줄고 있다. 특히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향후 5년 내 계약전력 증가율이 0%대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설비투자 미비는 계약전력 둔화로 이어지고, 전력수요가 정체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또한 장기 전력수요 분석결과 한국의 전력수요 소득(GDP)탄력성은 향후 하락됨에 따라 전력수요가 둔화될 전망이다. 전력수요의 소득탄력성이란 GDP 1% 증가 시 전력수요의 증가율을 의미한다. 즉, GDP증가만큼 전력수요가 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에너지 수급 브리프>에 따르면, 전력소비 감소 추세는 일시적이 아닌 구조적인 변화인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 상승, 수출 증가율 하락, 주 5일제 근무 정착 등이 그 요인으로 분석된다.

    특히 제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에서 수출 경기가 전력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한데, 연평균 15% 수준으로 증가해 오던 한국의 수출 증가율이 2012년 이후 2%대로 주저앉았다. 배경에는 2013년 기준 전체 수출의 26.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對중국 수출의 둔화가 있다.

    중국의 경제 패러다임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수출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에서 내수 서비스 위주로 재편되면서 중국을 경유한 가공·중계무역 중심의 한국 제조업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전력다소비 업종의 장기적 전력소비 추세둔화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앞두고 있다. 이미 지난해 말까지 마무리될 예정이었던 것이 6차 전기본 수립 시 발전사업자 선정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는 감사원의 감사결과와 삼척주민들의 신규 원전 부지 유치 철회를 위한 주민투표, 올해 9월까지 마련해야 할 POST-202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의 정합성 등의 요인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6차 전기본의 전력수요 전망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잇따랐고, 과잉설비 논란도 이어졌다. 경제성장률과 수출 증가율, 설비투자율의 하락 등 전력수요를 떨어뜨리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전력 수요 전망의 대폭 수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그 폭에 대한 논쟁이 예상될 따름이다.

    1997년 IMF경제 위기 당시 국민들이 무능한 정부를 도왔듯이, 2011년 순환정전사태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최근 경제 불황을 겪으며, 국민들은 절전을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부는 국민들이 안전을 염려하는 수명 지난 월성 핵발전소 1호기를 재가동하기로 결정했다. 국민들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정반대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어렵게 구한 원룸 전세방에서 가스 요금을 절약하기 위해 차가운 방바닥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청년의 삶을 박근혜 정부는 알까, 모를까.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비상임연구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