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 나와는 무관한 것?
    [책소개] 『조효제 교수의 인권오디세이』(조효제/ 교양인)
        2015년 03월 01일 12: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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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인권의 기원이 된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와 성경보다 많은 언어로 번역된 ‘세계 인권 선언’, 군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와 반(反)이슬람 정서가 끓어오르는 오늘의 유럽까지,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의 답을 찾아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흥미진진한 여정을 시작하자.

    남태평양 외딴섬에서 홀로 지낸 로빈슨 크루소에게 인권이 있었을까? 인권 보호라는 명분 아래 다른 나라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은 정당한가? 대중의 알 권리와 공인의 사생활 보호는 어느 쪽이 앞서는가? ‘일베’와 ‘종북’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을까? 살인범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면 피해자의 인권은 어디서 찾으란 말인가?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정치·경제·사회 문제의 핵심에는 예외 없이 인권이 있었다. 그러나 인권이란 말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공허한 미사여구 혹은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일로 느껴질 뿐이다.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인권이 다 무슨 소용인가. 이런 항변은 과연 타당한가? 《조효제 교수의 인권 오디세이》는 인권을 둘러싼 온갖 오해 섞인 의문에 명쾌하게 답하고, 인권 인식의 일대 전환을 우리 시대의 절박한 과제로 제시하는 책이다.

    왜 인간 존엄은 이 시대 모든 권리의 핵심인가?

    이 책은 인권, 다시 말해 ‘인간답게 살 권리’의 참뜻을 찾아 세계 곳곳을 탐사한 지적 오디세이의 기록이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끊임없는 투쟁 속에 지평을 넓혀 온 인권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만나게 되며, 인권이 21세기 새로운 유형의 편견과 억압을 격퇴할 수 있는 진정한 무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인권이 발견되고 확장되어 온 과정을 조명함으로써 사람들의 보편적 행복에 인권이 중대한 기여를 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독일, 폴란드,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일본, 러시아, 코스타리카, 파나마, 스웨덴 등에서 저자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세계의 인권 현실을 알려준다.

    폴란드의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을 생각하고, 세계 최초로 군대 제도를 없앤 나라 코스타리카에서 작은 나라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인권 외교의 가능성을 본다.

    이러한 통시적, 공시적 고찰에 이어 이 책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살피고, 인권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한다. 전 세계를 ‘피케티 신드롬’으로 물들인 《21세기 자본》을 통해 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인권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상상하고, 학생 인권과 교사 인권은 대립된다는 오해에 맞서 교육에서 인권과 자율성이 서로 분리될 수 없음을 역설한다.

    이 책은 자유권, 평등권, 사회권, 연대권 등 다양한 인권 개념과 인권 담론도 일상의 언어로 풀어서 들려준다.

    사상이나 신앙 때문에 억압받지 않을 권리, 자기의 생각과 신념을 자유롭게 말할 권리 같은 소극적인 권리를 넘어 차별받지 않을 권리, 품위 있는 삶을 누릴 권리, 약자들끼리 서로 연대할 권리까지, 인권의 지평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 마땅히 누려야 할 모든 자유와 권리를 포괄한다.

    이 책은 인권이 나와 무관한 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측면을 아우르는 보편적 문제임을 깨닫게 해준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

    인권 운동을 만나고 인권 공부를 하면서 인권의 기본적 접근 방식인 ‘최저 기준(minimum standard)’ 원칙을 알게 되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려면 ‘적어도’ 이런 것들은 지켜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요구가 최저 기준이다. …… 최대치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엄청난 특혜를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인간에게 이 정도도 안 해주느냐, 최소한의 기준조차 지켜주지 않으면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겠느냐고 절규하는 주장인 것이다. ……

    필자가 인권의 최저 기준 원칙에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인권이 이처럼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요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심한 반대에 직면해야 하고, 왜 그토록 실천이 어려운가 하는 점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 정도의 최소한의 인권 요구조차 받아들여지기가 그토록 어려운가.

    사창가 길목에서 처연하게 절망에 빠져 있는 인간의 침묵의 절규, 기업들이 일 년에 접대비로 사용하는 돈이 7조 원이나 되는 나라에서 세 모녀가 생활고로 자살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 민간인 학살의 진상 규명을 둘러싸고 벌어진 온갖 왜곡과 방해, 멀쩡한 병사가 기합과 구타로 죽어 나가는 그런 병영을 바로잡는 것이 왜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말이다.

    그런데 공부를 할수록 필자가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 최소한의 인권 요구조차 제대로 지켜지기 어려운가를 묻는 것은 순서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의 의미, 즉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인권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을 대다수 사람들이 이해하고 동의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하는 것이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왜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켜주지 않는지를 묻는 것은 공허한 질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솔직히 말해 우리 사회는 인간 존엄성의 최소한의 공통 분모에 대한 합의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사회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왜 인권이라는 ‘보편타당한’ 가치가 지켜지지 않을까라고 질문하기 전에,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기본 질문부터 매번 다시 해야 하며, 왜 사람들이 인간의 존재론적 가치에 대해 서로 다른 믿음을 품고 있는지부터 물어야 하는 것이다. …… 우리는 인간이 무엇인가,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라는 오래된 인간학적 수수께끼 그 자체와 늘 씨름해야 한다. – <들어가는 글>에서

    인권오디세이

    “만일 인간의 권리와 만고불변의 진리를 변호함으로써 독재 혹은 무지의 희생자를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면, 그 때문에 내가 설령 전 인류의 경멸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무고한 사람의 감사와 안도의 눈물만으로 나는 충분히 위로받았다 할 것이다.” _ 체사레 베카리아

    ‘세계 인권 선언’의 숨은 공로자들

    이 책은 먼저 ‘인권’의 뿌리를 찾는 역사적 여정에서 시작한다. 이 길에서 독자들은 ‘자유를 위한 투쟁’의 상징이 된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 보복의 차원이 아닌 공리적 형벌을 주장하여 근대 인권의 기준점을 제시한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신해혁명의 투사이자 세계 여성 인권 운동에 한 획을 그은 중국의 여성 혁명가 탕췬잉, 현대 인권의 분기점으로 꼽히는 1948년의 ‘세계 인권 선언’에 이르기까지, 인권을 한 단계 발전시킨 역사적 사건과 저작,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더불어 인간의 역사란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 온 ‘인권 발견과 확장의 역사’였음을 깨닫게 된다.

    ‘세계 인권 선언’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문헌이자 현대 인권 발전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 꼽힌다. 저자는 특히 ‘세계 인권 선언’의 탄생과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공로자들을 주목한다.

    ‘세계 인권 선언’은 흔히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주도하여 유엔이 이루어낸 성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국제 인권 비정부기구(NGO)들과 칠레, 레바논, 중국, 이집트, 인도, 파나마, 필리핀, 우루과이를 비롯한 중소국들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공로자들 중에는 놀랍게도 재외 한인 단체도 있었다.

    엔지오들은 전쟁이 끝날 무렵 유엔의 창설이 가시화되자 그 과정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이들은 유엔을 강대국들의 클럽으로 만들려는 패권적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비서구 국가들과 연대하여 인권과 소수 민족 보호, 식민 해방 원칙을 유엔헌장 정신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안전보장이사회보다 총회의 권위를 높여야 한다는 수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회의에 유엔 참관인 자격으로 참여했던 마흔두 개의 국제 엔지오 중에는 재미 한인 동포들이 1938년에 결성한 중한민중동맹단(中韓民衆同盟團)도 포함되어 있었다. – 1장 인권의 뿌리를 찾아서 · 28~29쪽

    중소국들은 정치적 자유를 중시한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인권 선언에서 한발 나아가 의식주, 사회보장, 의료, 적절한 생활 수준, 노동, 휴식, 교육, 문화 등 경제적 · 사회적 권리를 인권 목록에 확실히 포함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이로써 ‘세계 인권 선언’은 이전의 인권 헌장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인권 헌장이 되었다.

    ‘세계 인권 선언’에 유교의 가르침이 상당히 반영된 점을 지적해야 하겠다. 흔히 위계적 · 봉건적 · 전통적 입장 때문에 유교의 세계관과 근대 개인주의적 인권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골이 깊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고정관념을 바꾼 사람이 중국 대표 장펑춘이었다. …… 그는 기독교 자연법적 인권관을 선언에 명시하자고 주장하는 많은 위원들의 요구를 뿌리치고 인권을 인간의 이성과 양심에 근거한 ‘인본적’ 개념으로 확정 짓는 데 큰 구실을 했다. …… 장펑춘은 유엔 대표단들에게 인권의 바탕에는 인(仁)이 있다고 설명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람(人)이 둘(二) 있을 때 서로 간에 취해야 할 자세가 바로 인(仁)이며, 그것이 곧 인권이라는 것이다. – 1장 인권의 뿌리를 찾아서 · 30, 31쪽

    엔지오, 중소국들, 비서구권의 기여가 없었더라면 ‘세계 인권 선언’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 지금보다 훨씬 내용이 짧고, 경제·사회권은 대단히 엉성하고 식민 지배를 인권의 이름으로 거부하는 논리도 부족했을 것이다. 특히 인권이 도덕적 규범으로 호명될 수 있는 절박함이나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짠함’이 크게 줄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본다면 인권에서 비주류적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류에 속한 사람은 약자, 소수자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계 인권 선언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제일 중요한 교훈이다.- 1장 인권의 뿌리를 찾아서 · 32쪽

    ‘일베’와 ‘종북’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을까?

    인권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에 “권리와 권리가 충돌할 때 어떤 권리가 우선하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대중의 알 권리와 공인의 사생활 보호 권리가 충돌할 때, 노동자의 권리와 사용자의 경영권이 충돌할 때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최근 현직 부장 판사의 ‘막말 댓글’ 사건과 한 공영방송 기자의 ‘일베’ 활동 논란은 타인의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 즉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타인에게 실제로 해를 끼쳤거나 법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 한 개인적으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내보이는 속마음까지 검열해선 안 된다는 주장과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이런 문제는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저자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원칙적으로 권리들 간에는 서열을 매길 수 없으므로 모든 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하며, 핵심적 권리와 주변적 권리를 구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권리 간 충돌 문제를 해결할 절대적 기준은 없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잊지 말아야 할 최저 기준은 있다.

    권리 간 충돌 문제는 일률적 잣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원칙, 상식, 균형 감각을 발휘해서 황금비를 찾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원칙인지, 어떤 상식인지를 면밀히 따질 필요는 있다. 인권의 원래 취지는 인간의 본질적 이익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적 다수결 원칙으로도 인권을 침해하진 못한다. 그렇다면 권리 충돌이 발생할 때 되도록이면 약한 사람과 소수자의 눈높이에 인권의 눈금을 맞춘다는 원칙과 상식을 지켜야 한다. – 4장 인권 공화국으로 가는 길 · 312쪽

    특히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더 신중해야 한다. “생각의 자유부터 투표할 자유까지 이어지는 전체 과정이 긴 사슬을 이루면서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롭게 말할 권리’는 민주주의의 거대한 사슬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히 있다.

    남을 해치면서까지 내 권리를 주장할 순 없다. 표현의 자유가 아무리 중요해도 아동 음란물을 제작할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다. 아무리 확실한 권리라 하더라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일정한 한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오늘날 인권이 대단히 매력적인 담론으로 떠오르면서 이런 초보적 사실조차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스테판 에셀이 《분노하라》에서 명쾌하게 정의했던 유명한 구절을 기억해보라. ‘세계 인권 선언’에서 말하는 자유란, “닭장 속의 여우가 제멋대로 누리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다.” – 4장 인권 공화국으로 가는 길 · 310쪽

    왜 먹고사는 문제가 국가의 책임인가?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 “왜 부자들에게 공짜로 복지 혜택을 주어야 하는가?” “자유 경쟁 사회에서 왜 개인의 빈곤을 국가가 해결해야 하는가?” 이른바 ‘무상 급식’ ‘무상 복지’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많은 이들이 내놓는 비판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시각은 인권 자체에 대한 오해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인권이라 하면 열 사람 중 아홉은 고전적인 인권 개념을 떠올리기 쉽다. 1세대 인권으로 불리는 ‘자유권(시민적 · 정치적 인권)’을 중심으로 하여 인권을 이해한다. 범죄, 처벌, 재판, 언론, 표현, 사생활, 집회, 결사, 사상, 양심, 정치 참여 등과 관련된 자유권은 인권에서 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출현한 권리들이다. 사람들이 자유권과 인권을 동의어로 받아들이는 건 어쩌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 의식주, 의료, 사회보장, 복지, 노동, 여가, 교육, 문화 등 ‘사회권’을 인권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은 아직도 낯설다. – 4장 인권 공화국으로 가는 길 · 354쪽

    인권은 단순히 “~로부터의 자유”를 보장받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같은 기본적인 시민적 · 정치적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독재 정권 시절에는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는 것이 곧 인권 문제였다.

    그러나 인권 개념이 형성되던 초기부터 사회권(사회적 · 경제적 권리)은 인권의 일부였다. 또 우리가 부러워하는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는 구성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체제로서 만들어진 것이다. 저자는 복지를 정부가 베풀어주는 시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가를 바라보는 기본적 관점의 교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세기 복지 국가는 시민권 사상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국가가 시민들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무언의 약속이 애초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국가 권력의 출현에 동의했다는 사회 계약적 국가관이 시민권의 출발이다. 이런 논리 구도 하에서 시민과 국가는 상호 간 권리와 의무 관계를 계약으로 설정한다. 이런 관계 속에서 모든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욕구를 국가가 충족시켜줄 의무가 있고, 시민은 그것을 ‘고마운 은혜’가 아니라 당당한 ‘권리’로서 요구할 자격이 있다. 시민권에 근거한 국가-국민 관계를 구체적으로 체험한 역사가 짧은 한국인들은 사회보장이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라는 점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 4장 인권 공화국으로 가는 길 · 356쪽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나라 경제가 괜찮아질 때까지, 예산이 확보될 때까지 복지를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도 설 자리를 잃는다.

    “대통령부터 일반 서민까지 정말 쌀 한 톨 없어서 모두 굶어 죽을 지경에 놓인 상황이라면 사회권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현실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 그런 나라가 있다면 국제 사회가 나서서 도와줄 의무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국가는 어떤 식으로든 일정 수준의 사회권을 보장할 책임을 져야 한다.”

    모멸의 사회에서 인간 존엄의 사회로

    어린이집 아동 학대, 군대 내 폭력, 감정 노동자들이 ‘고객’에게 당하는 인권 침해, 직장 내 성폭력, 사주 일가의 노동자 인권 침해 사건인 ‘땅콩 회항’ 사건에 이르기까지, 학교와 일터 같은 우리가 속한 다양한 조직에서 일어나는 인권 침해가 자주 언론의 머리기사를 차지한다.

    그러나 정부나 해당 조직에서 내놓는 재발 방지 대책은 허점투성이이거나 말뿐인 경우가 허다하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곧 다시 비슷한 사건이 반복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권 친화적 조직을 위한 ‘팬더(PANTHER) 원칙’을 제안한다. ‘팬더 원칙’이란, ‘참여(Participation)’ ‘책무성(Accountability)’ ‘차별 없음(Nondiscrimination)’ ‘투명성(Transparency)’ ‘인간 존엄(Human dignity)’ ‘자력화(Empowerment)’ ‘법의 지배(Rule of law)’까지 모두 7가지 원칙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모든 제도는 명백히 그렇지 않다고 입증되지 않은 한 당연히 차별적일 거라고 간주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행정가 조너선 맨의 경고다. 차별을 당하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차별의 현실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차별당하는 사람일수록 그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방법을 모르거나 그렇게 할 처지가 못 되거나 용기가 없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아파트 경비원들은 자신이 차별당하고 있지만 혹시 불만을 표시했다가 해고될까 봐 숨죽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 4장 인권 공화국으로 가는 길 · 373쪽

    모든 조직은 ‘인간 존엄’의 원칙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체면과 위엄을 지켜주자는 뜻이다. 학생이 치욕적인 언사와 체벌을 받거나 왕따를 당해 몸과 마음이 멍들 때, 성적으로 줄을 세워 멀쩡한 아이의 자존감을 그 싹부터 잘라버릴 때, 청소 노동자 아주머니가 창고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식사를 해야 할 때, 공중파에서 조선족의 말투를 우스개로 만들어 조롱할 때, 치매 노인이 기저귀 한 장으로 하루 종일 버텨야 할 때 인간 존엄은 사전 속에나 존재하는 말로 추락한다. – 4장 인권 공화국으로 가는 길 · 374쪽

    재난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21세기 들어 전 세계에서 발생한 선박 사고 중 사망자와 실종자 수로 따져 열 번째 안에 든 사건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고들은 대부분 자연 재해로 일어난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02년 세네갈에서 르줄라호가 침몰하여 1,863명이 희생되는 초대형 참사가 발생했지만 주 원인은 폭풍이었다.

    세월호 사건은 이른바 ‘인재’로 인한 선박 침몰 중 세계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대형 사고였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월호 사건은 국가가 자국민 보호의 책임을 방기한 결과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이 같은 재난과 관련해 소환되는 인권이 바로 ‘재난 보호권’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허리케인 카트리나, 멕시코 만 원유 유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거친 뒤 자주 거론되는 인권이 바로 ‘재난의 경감 및 구호를 받을 권리’이다. 줄여서 ‘재난 보호권’이라고 부른다. 재난 예방과 재난에 노출될 위험 요소를 줄여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위해 요인을 완전히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취약성 요인을 가능한 한 줄여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재난 보호권의 핵심이다.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취약성을 악화시켜 세월호의 재난 리스크를 높인 당사자들은 모두 인권 유린의 가해자이자 방조자”라 할 수 있다. 선장도, 해경도, 청와대도 결코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사건 후 대중들이 대한민국 헌법 10조를 인용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세계 인권 선언’ 3조는 더 직설적이다. “모든 사람은 생명을 유지할 권리, 자유를 누릴 권리, 그리고 자기 몸의 안전을 지킬 권리가 있다.” 원래 ‘인신의 안전’은 자의적인 국가 권력으로부터 내 한 몸 지킬 자유를 의미했지만 오늘날에는 재난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로까지 확대되었다. 이것을 위해 국가는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그것을 촉진하고 충족할 의무를 져야 한다. 이것이 사회 계약적 인권의 핵심이다. 세월호의 침몰을 지켜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국가는 어디 있느냐고 고통스럽게 자문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었다. – 3장 21세기 인권의 확장 · 234쪽

    《21세기 자본》과 ‘인권 경제학’의 탄생

    2014년 세계 경제학계는 ‘피케티 신드롬’으로 뜨거웠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심층 구조와 작동 방식을 분석하고, 부(富)가 소수에게 집중되어 세습되는 문제를 파헤치며, 불평등의 심화가 정치적 파탄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가치관에 근거하여 최상위 부유층에 글로벌 누진세를 매기자는 대안을 제시한다.”

    조효제 교수는 경제학자인 피케티가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바탕으로 삼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21세기 자본》의 서문은 프랑스 혁명 시기 1789년 8월 26일에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1조에 나오는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공동선(common good)에 입각한 경우에만 사회적 구분이 허용될 수 있다.”

    피케티는 이 문장을 책 속에서 여러 번 변주하며 “만인의 평등권이라는 이상과 사회 불평등이라는 현실이 공존하는 모순을 공정하게 다룰 수 있는 정치 제도를 상상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조효제 교수는 《21세기 자본》을 계기로 ‘인권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상상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평가한다. 또 피케티 외에도 세계 경제학계와 사회학계에서 민주 정치, 인권, 경제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음을 소개한다.

    민주주의를 해야 인권이 좋아지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면 인권도 후퇴한다. 경제가 발전해야 인권이 좋아지고 경제가 나빠지면 인권도 나빠진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시행하거나 경제가 발전해도 불평등이 심해지면 인권은 다시 추락한다. 사회적 응집력이 떨어지면서 온갖 사회 문제가 창궐하고 그것을 공권력으로 통제하려 들 때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포용성이 높은 민주 제도만으로는 인권 보장이 안 된다. 경제적 포용성이 높은 경제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인권이 꽃필 수 있다. 민주주의건 경제 발전이건 자원 재분배와 소득 불평등 해소가 동반되어야 인권이 실제로 보장될 수 있다는 말이다. – 3장 21세기 인권의 확장 · 240~241쪽

    유럽의 ‘세련된’ 극우와 반(反)이슬람 정서

    이 책에는 저자가 2010년부터 2015년 초까지 독일, 일본, 스웨덴, 코스타리카, 파나마 등 세계 각지에서 직접 목격한 다양한 인권의 현장이 담겨 있다. 체코 프라하에서는 과거 공산주의 시절의 사회 계급 구조와 불평등이 민주화 이후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나치의 절멸 수용소가 있었던 폴란드의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에서는 20세기 최악의 인권 유린의 피해자였던 유대인들이 현재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저지르는 반인도적 박해를 생각한다.

    특히 저자가 전하는 유럽의 인권 현실 가운데 갈수록 심각해지는 외국인(특히 이슬람 이주자들) 혐오와 차별 문제는 2015년 1월 7일 프랑스에서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과 이후 독일,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 유럽 곳곳에서 일어난 반(反)이슬람 시위를 떠올리게 한다.

    네덜란드를 포함해 스웨덴, 덴마크 등 사회 분위기가 자유분방하다고 알려진 나라들에서도 이주자들이 늘면서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이 때문에 유권자들이 우경화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럽의 경제가 나빠지면서 외국인들이 복지 혜택을 공짜로 즐긴다는 불만이 폭넓게 유포된 것이 사태 악화의 한 원인이었다. 이보다 더 깊은 이유로 정치 이념의 문제가 있다. 개인 및 소수 집단의 권리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와 다수결 원칙에 따른 민주주의가 개념상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발전 과정을 겪은 후에 결합한 것이 오늘날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인데, 이 사상이 이주자들의 대량 유입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다수결 원칙에 따라 자국민의 우위를 인정할 것이냐, 아니면 소수 민족의 권리를 존중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냐가 늘 부딪치고 있는 현실이다. – 2장 아우슈비츠에서 코스타리카까지 · 129~130쪽

    덴마크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슬람이 유럽 사회의 조화를 깬다고 믿는다. 옛 동독 지역 주민의 4분의 3 이상이 이슬람 종교 활동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인들 절반이 이슬람과 테러리즘이 동일하다고 본다. 프랑스 국민 중 열에 네 사람이 무슬림 주민들이 프랑스의 정체성을 위협한다고 걱정한다. 오스트리아 국민의 과반수가 이슬람이 서구식 삶의 양식을 저해한다는 데 동의한다. 이런 대중적 정서에다 극우파의 능란한 변신에 힘입어 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 2장 아우슈비츠에서 코스타리카까지 · 151

    심지어 새로운 극우파는 ‘인권’의 언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스웨덴민주당은 소매치기의 손목을 자르는 식의 ‘야만적’인 이슬람 문명을 개명된 유럽이 용인해서야 되겠느냐면서 유권자들의 말초적인 정의감을 자극한다. 네덜란드의 자유당에서는 무슬림들을 흔히 파시스트라고 부르곤 한다. 이런 예를 보면 “누가 인권을 주장하느냐 마느냐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인권을 내세우는지가 인권에서 더 중요한 판단 기준임을 알 수 있다.”

    ‘군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의 인권 외교

    이 책에 실린 외국의 인권 현실 가운데 라틴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 이야기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2014년에 코스타리카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경찰은 있으나 ‘군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의 현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는 코스타리카 모델에서 “군에 의존한 안보를 줄이면서 인권 · 평화의 소프트 파워와 외교력으로 대체하는 방향”을 상상한다.

    코스타리카는 1948년 12월 1일 공식적인 군대 해체를 선언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피게레스가 군대 폐지에 앞장선 이유를 두고 자신을 위한 정치적 노림수였다거나 하는 식의 여러 이야기가 있고, “냉혹한 국제 정세 속에서 이상주의적이고 유치한 발상”이라는 지적과 비판도 많다.

    그러나 인구 470만 명에 국토 크기가 우리나라 경상도와 전라도를 합한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 코스타리카는 인권 외교를 통해 자국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었다.

    코스타리카에는 남북 아메리카 전체를 관할하는 미주 인권 협정에 따른 국제 기구인 미주인권재판소가 있다. 1979년 설립될 때 미국과 캐나다가 서로 유치하려 했지만 결국 코스타리카로 낙착되었다. 또 이곳엔 유엔 평화대학이 있다. 유엔 총회에서 조약 기구로 설립한 독특한 교육 기관이다.

    코스타리카는 외교 수완과 주도력도 뛰어나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실을 창설하는 데 큰 공을 세웠던 기록이 있다. …… 중남미의 역내 외교에서도 핵심 역할을 수행하곤 한다. 중미를 휩쓸던 내전과 분쟁을 종식한 에스키풀라스 평화 협정은 코스타리카의 중재가 없었더라면 어려웠을 것이다. …… 프린스턴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물질적 국력보다 외교적 국력이 훨씬 큰 나라가 코스타리카다. – 2장 아우슈비츠에서 코스타리카까지 · 164, 165, 166쪽

    군대 폐지는 인권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군대 폐지는 군과 관련된 모든 활동의 종식을 뜻한다. 방위 · 군수 산업, 무기 체계의 끊임없는 업그레이드와 투자, 국민 동원 시스템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코스타리카는 군사적 수단이 아닌 외교를 통한 평화적 안보를 상상하고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군대 폐지는 국민들의 삶의 질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군대가 없으므로 안보와 평화를 ‘탈군사화’와 중립화라는 개념적 지렛대와 연결해놓았다. 이것을 통해 도덕적 우위의 이미지를 창출하고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외교 노력으로 뒷받침한다. 이른바 ‘평화 배당금’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군사비를 교육, 보건 의료, 환경, 문화에 투자할 수 있으므로 인간 개발 지수가 올라간다. 코스타리카 노동자들의 숙련도와 생산성이 라틴아메리카 최상위 수준인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요즘 새롭게 각광받는 행복 지수에서도 상위를 차지한다. 국민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인권과 평화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 2장 아우슈비츠에서 코스타리카까지 · 179~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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