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사진과 추억 여행
    [그림책 이야기] 『달려라 오토바이』(전미화/ 문학동네)
        2015년 02월 27일 03: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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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떤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옵니다. 3D 영화로 만든다면 화면을 뚫고 관객들을 덮치는 효과를 낼만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할리우드 액션 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는 뭘까요?

    그 멋진 남자의 앞자리엔 두 아이가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남자의 등 뒤로 아내로 추정되는 여인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액션으로 가장한 코믹 홈드라마인 것입니다. 게다가 텍스트를 보면 또 한 가지 미스터리가 생깁니다.

    오늘도 우리 집 오토바이는 부릉부릉 달려요.
    엄마, 아빠, 동생들, 그리고 나까지
    우리 식구는 다섯이에요.
    – 본문 중에서

    남자, 아내, 아이1, 아이2. 다 더하면 넷인데 우리 식구가 다섯이랍니다. 동생들? 그럼 지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는 어디로 갔을까요?

    달려라 오토바이

    온 가족이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책장을 넘겨서 두 번째 장면을 보면 미스터리가 풀립니다. 다리 위를 달리는 오토바이의 옆모습이 보입니다. 이제 앞모습에서 숨겨져 있던 한 명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그 멋진 남자의 허리를 붙잡은 아내가 등에 아기를 업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일가족 다섯 명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화자가 ‘동생들’이라고 했으니 동생은 두 명입니다. 그렇다면 사내 앞에 앉은 단발머리 소녀가 바로 화자입니다.

    그나저나 다섯 명이나 되는 가족이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로 가는 걸까요? 과연 이 가족 앞에는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오래된 사진과 추억여행

    전미화 작가의 『달려라 오토바이』는 제게 이혜란 작가의 『우리 가족입니다』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가족입니다』가 할머니에 관한 몇 장의 추억 그림으로 저를 울컥하게 만든 것처럼 『달려라 오토바이』는 오토바이에 관한 몇 장의 추억 그림으로 저의 마음에 찌릿한 자극을 건넸습니다.

    아마도 『달려라 오토바이』를 영상으로 만든다면 이럴 것입니다. 엄마가 어린 자녀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들을 보여줍니다. 오토바이 앞에 모여 서서 찍은 가족사진이 엄마와 아이들의 눈길을 끕니다. 엄마는 오토바이 가족사진을 보며 할머니할아버지의 추억을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오래전 사진을 보며 가족끼리 추억을 공유하는 것은 분명 특별하고 뜻 깊은 소통의 시간입니다. 특히 그 시간을 경험한 세대와 경험하지 못한 세대의 소통은 중요합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현재의 엄마 아빠들은 이제야 비로소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추억을 통해 미래의 엄마 아빠가 됩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도 미래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든 말든, 사람은 누구나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생로병사를 겪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말든, 우리는 다음 세대의 타산지석이 되기도 하고 모범이 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놀러온 사람들

    유아기에는 일과 놀이가 구별되지 않습니다. 모두 놀이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이 세상에 놀러왔다는 제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더불어 유아기에는 빈부의 구별이 없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모두 부자로 태어났다는 제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설사 빈부의 구별이 생겨도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한다고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아버지께서 우리 집은 가난해서 너를 대학에 보내줄 수 없다고 말씀하신 초등학교 고학년 어느 날, 처음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떤 어른들은 이 세상에 놀러온 아이들에게 일과 놀이의 차별과 빈부의 차별을 만들어서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반면에 어떤 어른들은 이 세상에 놀러온 아이들에게 더 재미있게 놀고 사랑하고 나누는 방법을 보여주어서 꿈을 선사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하면

    만일 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면, 전미화 작가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아빠엄마가 ‘신나는 오토바이의 추억’을 선물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나는 오토바이의 추억’은 전미화 작가의 엄마아빠에겐 어쩌면 땀과 눈물의 추억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전미화 작가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가족이 함께 추억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전미화 작가의 아빠 엄마도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게 아름다운 일이며 축복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아무리 좋은 차를 타도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게 아름다운 일이며 축복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걸어서 가더라도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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