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김형식 사건을 돌아보며
    [프로파일러의 범죄 이야기] 나쁜 놈을 변호하며
        2015년 02월 25일 10: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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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나쁜 놈’이라고 해도, ‘정의’는 평등한 것이다

    필자는 작년 10월 31일자 글(관련 글 링크)을 통해, 이른바 ‘서울시의원 김형식 청부살인 사건’에서 1심 법원이 김형식에게 선고한, ‘유죄’ 평결에 대해 그 불합리와 부당함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후 드러난 사건 수사/재판 과정에서의 중요한 관련 사실들은 그러한 필자의 주장을 더욱 확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할 때 이 사건은 한국 형사사법체계의 가장 어두운 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초기부터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보강수사 및 기소한 검찰,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들, 1심 재판부, 그리고 종편을 중심으로 한 언론들 등등.

    감히 말하건대 이번 사건과 관련된 거의 모든 주역들에게, 스스로 본인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마음 속 깊은 성찰을 할 것을 권하고 싶다. 형법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 무시되고, 증거채증의 원칙이 휴지조각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주 기초적인 논리와 상식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도 본인들이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만 믿는다면 과연 그들은 무엇을 ‘정의’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사실 이 사건의 경우, 실체적 진실을 알기위해서 그리 큰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종편을 중심으로 한) 언론에서 의미 없이 짖어대는 것에 눈과 귀를 막고,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증거와 상황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면 이 사건은 매우 이해하기 쉬운 사건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사건 수사와 재판의 가장 큰 문제점이 드러나는데, 이 사건은 초기부터 특정한 어떤 의도에 의해서 목적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특정한 결론(사건에 대한 예단)이 주입되어진 정황이 여럿 포착된다.

    주지하듯이 실제 이 사건은 사건 수사의 진행사항이 거의 실시간으로 언론에 노출(의도적으로 유출)되었는데, 문제는 그렇게 누출된 증거와 정황들이 실체적 진실에 기초하지 않고 특정한 목적에 의해 여러 차례 가공된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청부살인의 동기와 관련된 사항, (사망)피해자의 사인에 대한 사항, 제출된 증거에 대한 사항 등에서 상당 부분 교묘하게 왜곡되었거나 편집되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에서 국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강요된 인식 중에서 가장 큰 것이, 김형식과 피해자의 관계에 대한 부분일 것이다. 즉 피해자는 부패 정치인에게 부정한 청탁을 하는 지역 토호이고 김형식은 그 청탁을 받고 민원을 해결하는 부패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맞다. (김형식은 부패 정치인이고 이 부분은 현재 검찰 수사 중으로 여러 증거와 본인 진술, 정황으로 볼 때 유죄임은 명확하다.)

    이 둘 사이에는 그런 관계가 상당 부분 존재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사실이 왜 청부살인의 동기가 되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 전무하다. 그런데 사건 초기, 언론에 많이 노출된 상업지역(호텔) 용도변경이나 채무와 관련된 정황 들이 오히려 실제 사실과 매우 다르다는 것이 1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진술을 통해 밝혀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그러한 주장들 중 상당 부분은 사실에 대한 오해이거나 혹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것들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김형식과 피해자 사이에는 살인 청부의 동기가 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문제는 사건 초기부터 수사팀과 언론들은 이 사항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면서 부패한 정치인에 의한 청부살인이라는 드라마틱한 소설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실제로 피해자는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 것이 부검보고서와 판결문에 나온다. 또한 팽씨는 여러 진술을 통해 죽일 의도도 없었고 그래서 손도끼의 뒷부분으로 (치명적이지 않게) 가격했고, 금고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피해자가 소지한 돈만 훔쳤고, 실제 살아있는 피해자를 확인하고 현장에서 이탈한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현장 상황과 이용된 범행 도구, 범행 수법, 피해자의 사인과 팽씨의 이전/이후 행적 등만 면밀히 살펴서 사건을 재구성한다고 하면 이 사건은 ‘청부 살인’이 아닌 ‘강도 후 실혈 치사사건’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건 초기, 부검을 통해 이러한 증거들과 정황들을 알고 있었던 수사팀은 ‘강도 후 치사’에 가까운 현장 증거들과 부검 증거들은 의도적으로 언론에 제공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소설에 도움이 되는 사항들만 언론에 공급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현장과 사체에서의 증거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이해당사자인 팽씨의 진술로 사건을 해결하려 한 것이다.

    주지하듯이 팽씨는 사건의 핵심 관련자이다. 현장 증거가 더 실체적 진실에 가깝겠는가? 아니면 이해당사자의 진술이 더 실체적 진실에 가깝겠는가? 당연히 전자가 기본이고 후자는 참고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수사팀은 전자는 감추고 후자를 적극적으로 부각한 것이다. 글쎄 왜 그랬을까?

    또한 제출된 증거의 경우에도 사건 초기 언론에 크게 발표된 ‘카톡’대화 내용만 보더라도 명백한 증거 왜곡이 보인다. 실제 1심 재판 가정을 통해 제출된, 전체 카톡 대화를 보면 그 내용은 맥락이 전혀 다르다. 즉 몇 마디만 따로 떼어내면 살인 청부로 읽힐 수 있는 내용이지만 전체 문장과 문장을 이어서 단락으로 읽으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수사팀은 언론에 아주 일부만 그것도 자신들의 소설에 적합한 일부만 제공한 것이다. 이건 분명한 의도가 있는 왜곡일 것이다.

    또한 유력한 증거로 제출된 ‘매일기록부’의 경우에도 주지하듯이 초기에는 존재 자체를 부인하다가 이후 제출되었고 원래의 상태와는 달리 상당부분 훼손되고 조작될 가능성이 드러났다. 이는 피해자가 여러 유력자들에게 상납한 근거가 되는 장부라서 여럿에 의해 (원본과는 달리) 조작되었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데도 이를 의심 없이 증거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지금 내 손에는 김형식과 팽씨에 대한 1심 판결문이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 ‘정의’는 없다. 불완전하고 왜곡된 증거와 정황, 이해당사자의 일방적 진술과 부정확한 사실들만 있다.

    김형식 사건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형사재판의 목적은, “평균적으로 가장 범인일 것 같은 사람”을 찾아내서 벌주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범인을 찾아서 벌주는 것이다. 그럴 바에야 여론조사를 해서 유무죄를 판단하면 되지 왜 어렵고 힘들게 재판을 하는가? 그렇기에 무죄의 가능성이 단 1%만 존재해도 유죄로 판결할 수 없는 것이고, 간접 증거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서 채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건의 관련자들 그 누구도 이러한 원칙과 상식을 무시하고 있다. 엄격한 증거에 입각하지 않고, 마치 그럴 것 같이 예단된 주장에 근거해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졌고, 결과는 참담하다. 김형식 개인의 유무죄를 떠나 이 사건 수사와 재판은 한국 형사사법체계의 부끄러운 민낯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다. 세상에 이런 수사와 재판이 어디에 있는가? 눈 뜬 장님들, 삼척동자가 수사와 재판을 해도 이보다는 낫겠다.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하지만 이번 사건은 김형식의 유죄 여부와는 무관하게 한국 수사/기소/사법체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건이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다른 형사사건을 수사/기소/재판 등을 하게 된다고 할 때 특정한 의도에 의해 유죄를 받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수사 관행, 기소 관행, 재판 관행에 따라 수사와 기소, 재판이 이루어진다면 굳이 힘들여서 어렵게 수사를 하고 증거를 찾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건과 관련된 범죄를 저지를 만한 특정의 사람을 예단해서 대충 잡아서 대충 수사해서 대충 기소하고 재판해서 유죄판결을 받으면 사건은 끝나는 것이다. 이게 무슨 정의로운 사회인가? 이럴 때 재판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사실 이 사건의 깊은 배경에는 숨은 정치적 의도와 함께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역주행을 볼 수 있다. 대통령은 나라를 검찰/경찰국가로 만들려고 한다. 청와대에는 정치검찰과 정치경찰들로 득실하다. 거기에 (종편을 중심으로 한) 언론은 진실 추구라는 언론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지 오래이다. 오로지 정권 입에 맞는 보도와 자극적인 내용 일색이다. 파쇼체졔가 다른 것이 아니다. 국민의 눈과 입을 막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재단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적인 것이다.

    그리고 부패한 야당 정치인 김형식은 이것에 당한 것이다. 언론은 초기부터 그들 특유의 몰아가기 수법으로 김형식 범인 만들기에 총력을 쏟아왔다.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 추구는 그들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사건 자체에 대한 자극적인 접근은 물론이거니와 사건의 본질과는 무관한 김형식의 과거 운동권 경력까지 깊숙이 파고들었지만 정작 그 어떤 언론도 이런 형사사건을 다루는 데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 자체 혹은 사건과 관련된 증거를 찾고 분석하려는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일단 김형식을 범인으로 예단하고 그 다음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현장과 사체’라는 명확한 직접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간접증거(팽씨의 일관(?)된 진술)를 유죄의 증거로서 무식하지만 강력하게 밀고 나갔던 것이다.

    거기에는 정권에 부역하는 자들 즉, 종편에 고정 출연하는 패널들(검찰 출신 변호사들, 경찰행정학과 교수들, 범죄학자들 등등)이 크게 한 몫 했다. 결국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인데도 김형식은 이미 범인이었고 범인이 되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건 재판과정을 통해 드러난 사실이지만 그토록 맹신했던 “팽씨의 일관(?)된 진술”이라는 것이 사실 경찰과 검찰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팽씨의 진술은 초반과 중반, 후반이 달랐고, 몇 회에 걸친 ‘피의자 진술조서’는 회 차를 거듭할 때마다 중요한 부분에서 수정되기 일쑤였고, 수사팀이 말하는 일관된 진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정의가 없는 민주주의는 허구이며, 민주주의 없는 정의는 공포이다.” 

    필자소개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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