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되어도 진보정치 혁신 어렵다"
    [연속기고①] 통합진보당 사태 보는 진보신당 당원 시각
        2012년 07월 12일 11: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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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1총선 이후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통합진보당의 내분과 갈등이 막바지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번 주 마감되는 당직선거를 계기로 내부 갈등이 진정될 지,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이다. 통합진보당의 내분은 통합진보당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정치 전반, 나아가서는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적 사회운동 전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레디앙은 통합진보당 사태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 나름의 평가와 시각을 담은 릴레이 기고글들을 실을 예정이다. 기고글들은 진보신당의 정치신문 R과 칼라TV에도 같이 게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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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진보당의 당직선거 결과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간 펼쳐진 통합진보당 사태의 마침표를 찍는 전기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강기갑 후보로 상징되는 혁신이 성공하면 통합진보당을 다시 대표적 진보정당으로 인정할 수 있고, 구 당권파의 아집처럼 보이는 강병기 후보가 당선되면 새로운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는 거다.

    따라서 소위 혁신파가 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응원을 보내는 것이 진보의 혁신을 진정으로 바라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통합진보당이 제대로 혁신되는 것,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불편한 관계에 있는 진보신당이라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진보정치의 대표주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통합진보당을 인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통합진보당의 침몰은 곧 진보신당의 침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진보신당과 통합진보당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고 진보정당에 대한 가치판단을 할 때 진보신당과 통합진보당을 나눠서 평가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리 진보신당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날선 비판을 해도 그것이 진보신당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이어질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진보신당의 입장에서 통합진보당을 비판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진보신당에게는 통합진보당의 미래를 염려하고 도래할 파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교훈을 찾아 새로운 진보정치를 만들어 나가야 할 사명이 있다. 앞서 언급한 이유로 통합진보당의 운명은 곧 진보정치의 이정표를 바꾸는 것이 되는데, 이것에 한데 묶여 함께 역사의 저 편으로 사라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미래를 전망하며, 새로운 진보정치를 위해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어떻게 뜯어 고쳐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선되어야 할 것은 통합진보당 사태와 그 결말에 대한 냉정한 평가일 것이다. 무슨 일이 왜 일어난 것인지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전망은 늘 주관적인 것에 머무르고 말기 때문이다.

    진보신당 상상Talk 녹음 현장. 가운데 인물이 필자인 김민하 국장

    이것을 좀 더 효과적으로 진행해보기 위해서 나는 하나의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보려고 한다. 강기갑 후보가 당선되고 최고위원회를 소위 혁신파가 장악하면 통합진보당은 보다 혁신된 진보정치를 할 수 있는가? 강기갑 전 의원이 대표로 있는 통합진보당은 미조직비정규노동자들과 이 땅의 모든 소수자들의 지지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

    물론 위의 질문은 ‘없다’는 대답을 하기 위해 던지는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느끼시기에 ‘없다’는 이유도 뻔한 것이겠다.

    ‘또 그 소리군!’ 하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기저기서 듣던 소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얘기이리라 생각하고, 또 이 얘기를 하지 않으면 우리의 갈 길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기 힘들기 때문에 고장난 녹음기마냥 이 얘기를 또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진보정당이 오른쪽으로 갈 필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는 아니다

    첫 번째는 소위 혁신파가 내세우는 혁신의 방향이 진보의 혁신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읽고 ‘또 그 지겨운 얘기군!’ 이라고 하는 독자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통합진보당의 혁신이 진보적 이념이 아닌 자유주의를 선택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으며 이는 애국가 논쟁, 재벌개혁론, 진성당원제에서의 후퇴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은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미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이것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얘기이기 때문에 참고 들으셔야 한다. ‘혁신이 우경화라서 문제라고 하려는 것 아니냐?’라고 하신다면 그건 맞는 말씀이다. 문제는 우경화가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필요한 시기라면 진보정치가 우경화를 선택하는 시기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세기 초중반, 파시즘을 막기 위한 자유주의와의 연대를 선택한 사람들을 비겁하다고 말할 수 없고 히틀러의 집권을 사실상 방치한 독일의 공산주의자들을 옹호하는 것도 올바른 평가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것은 앞의 질문을 역전시켜서, ‘그렇다면 지금은 진보정치의 우경화가 필요한 시기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하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진보정치의 우경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한다면 중도를 표방하는 정당이 현실적인 문제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를 꼽을 수가 있다. 민주통합당이 빌빌대고 있다면 진보정치가 우향우를 해서 현실 정치와 정책에 대한 실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민주통합당의 현실적 영향력에 기대를 걸었던 중도층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야 좌측에서부터 중도까지 지지층을 넓게 포진시킬 수 있는 국민정당화 전략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현실에서 실력은 오히려 민주통합당 측이 보여주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희망버스’로 대표되는 한진중공업과 김진숙 지도위원의 케이스가 좋은 예다. 진보진영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우 오랜 세월동안 싸워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듯이 광범위한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제 민주통합당이 나서자 사정은 달라졌다. 시민들과 연예인까지 합류한 이 투쟁은 김주익 열사가 목숨을 끊은 85호 크레인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기적처럼 내려와 정동영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 과정에 진보정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손학규 고문이 ‘저녁이 있는 삶’을 얘기하고 문재인 고문이 ‘핵 발전소 폐기’를 얘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민주통합당 소속의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러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어 화제인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진보정당보다 민주통합당이 현실적 문제를 훨씬 더 잘 해결해줄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것이다.

    즉,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국민정당, 포괄정당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민주통합당이다.

    통합진보당의 혁신파가 내세우는 진보정치의 혁신이라는 것은 이것과 거의 동일한 전술을 구사하면서 자신들이 민주통합당보다 이것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외치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 당장은 민주통합당과 비슷하니까 국민들이 일시적으로 지지를 표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정적인 국면에서 국민들은 진보정치를 선택하기 보다는 민주통합당을 그냥 선택할 것이다. 과연 이런 것이 민주통합당 내의 좌측 블럭을 강화시키는데 참여하지 않고 진보정당으로 따로 남아있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근거가 될 수 있겠는가?

    민주당과 구분되는 정치적 독립성이 확고하게 필요한 이유

    혁신파가 승리하더라도 이것이 진보정치의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두 번째 이유는 결국 이것이 민주통합당과의 선거연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소위 ‘종북 논란’이 부담스러워진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통합진보당이 국민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면 야권연대를 파기할 수 있다’고 말한 이후 통합진보당 내외에서 제출된 우려의 목소리 중 특히 이른바 혁신파 정치인들의 것을 들어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강기갑 후보는 ‘반드시 혁신에 성공해 야권연대를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심상정 원내대표는 ‘중단 없는 혁신으로 야권연대를 복원하고 진보적 정권교체의 역사적 소명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냥 이 발언 그대로도 2012년의 대선에서 통합진보당이 하겠다는 역할을 쉽게 그려볼 수 있다. 민주개혁정부의 탄생에 일조하고 가능하다면 내각참여나 일부 기관의 권한 등을 분점하겠다는 계획일 것이다.

    여기서 또 누군가 이렇게 물을 것 같다. ‘결국 선거연합이 나쁘다는 얘기 아니냐?’ 그렇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선거연합이 언제나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201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정치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프랑스의 예를 들어보고 싶다. 이번 프랑스 총선에서 화제가 된 것은 올랑드 대통령을 배출한 사회당의 약진이기도 했지만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의회 진출이기도 했다. ‘진보적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분들은 올랑드 대통령의 탄생에 좀 더 많은 의미를 두고 싶겠지만 나는 국민전선의 의회 진출이 좌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훨씬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결선투표제 덕분에 좌파들이 마구 활개를 치는 정국이 조성되어 왔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테랑 대통령은 대중적인 진보정치인이었고 사회당은 오랫동안 프랑스 진보정치의 상당부분을 흡수해 왔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대개 그랬듯 사회당도 오랫동안 국가 통치의 일부를 책임지면서 지속적인 우경화가 이루어졌고 이는 진보정치의 무기력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극적으로 나타났던 것이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펜이 결선에 진출했던 2002년 대통령 선거였다.

    극우주의자들이 잠시 ‘대안’으로 거론될 수 있는 순간이 오자 정국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정부 내에서 우파들이 득세하기 시작했고, CPE투쟁으로 요약되는 대중의 불만이 터져 나왔으며, 그럼에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등장했고, 경제위기가 도래했으며, 이런 상황에서 조차 프랑스의 진보정치는 무기력증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결국 2008년 사회당에서 좌파당이 분당되어 나왔고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좌파전선’이라는 이름으로 후보를 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좌파전선의 장 뤽 멜랑숑은 국민전선보다 낮은 지지율을 받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다시 요약해 말하자면 진보적 색채의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이 정부가 대중의 욕망을 충분히 채워주지 못할 경우 대중들은 다른 대안을 찾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진보정치로부터 새로운 대안을 발견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은 극우정치라는 것이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양한 국가에서 이와 같은 극우주의가 여러 형태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통찰을 뒷받침 한다.

    한국의 정치세력들은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울까? 2012년에 ‘진보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민주‧평화‧개혁세력이 중심이 되고 진보세력 일부가 정권에 참여하는 정부가 수립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필연적으로 실패한 정부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대중들에게 심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상황에는 체제의 한계가 반영되어 있으며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킬 총론적 기획을 현실에서 구현할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주지 않으면 결국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을 한’ 결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결과는 이미 2002년의 참여정부가 보여준 바 있다.

    2012년에 등장할 민주정부가 실패하고 나면 대중들은 필연적으로 다른 대안을 찾게 될 것이다. 이때 진보정치가 대안을 제출할 수 있을 정도의 선명성을 확보하고 있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과연 2012년의 민주정부 구성에 참여하고 나서도 통합진보당이 대중들에게 ‘우리는 진보정당이므로 민주정부와는 다르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닐 것이다. ‘진보적 정권교체’와 함께 흥한 진보정치는 민주정부의 쇠락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

    그래서 진보신당은? 

    앞서 얘기했듯 이러한 문제를 책임져야 할 주체는 통합진보당 뿐만이 아니다. 이런 시기가 왔을 때 좌측에 영향력 있는 진보정치가 없다는 것, 그 자체가 극우정치 성장의 자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 해야 할 것은 여의도 정치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고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의 코디네이팅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명확한 깃발을 드는 것이다.

    민주정부와 그 친구들의 좌측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정도의 진보정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의 혁신파는 이것을 사실상 거부한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분명히 이렇게 묻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진보신당은 무엇을 잘했다는 것인가?’ 미안하지만 잘한 것이 없다. 이렇게 밖에 대답할 수 없어서 유감스럽다. 진보신당이 겪어온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불행에 대해서는 굳이 길게 서술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이 땅의 좌파들과 민중 여러분에게 이렇게 살아서 대단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하지만 그래도 할 것은 해야 한다.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물음은 ‘민주정부와 통합진보당의 좌측에 새로운 진보정치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하는가?’, ‘통합진보당 사태로부터 새로운 진보정치가 얻어야 할 교훈은 어떤 것이 있는가?’와 같은 것들이다.

    이것에 대해 길게 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으나, 지금 릴레이 연속 기고를 하는 중이기 때문에 이 다음 글을 기고하시는 분으로부터 고견을 들어보기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필자소개
    진보신당 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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