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원전, 평화헌법, 집단자위권'
일본에서 두 행사에 참여하고 지켜보면서
    2015년 02월 23일 09: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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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로 몇 시간을 달려도 산을 구경하기 힘든 드넓은 중국과는 달리 일본은 몸체는 길지만 몸통은 가는 구조를 갖고 있어서 오사카에서 느껴지던 봄기운이 삿뽀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신 설국雪国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덥혀 있죠.

오사카와 삿뽀로의 판이하게 다른 기후처럼 지역마다 사람들의 기질도 많이 다릅니다. 대수롭지 않게 도로를 횡단하는 오사카 사람들과는 달리 도쿄 사람들은 마치 빅브라더가 감시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길게 줄을 서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립니다.

한쪽에서는 우익 단체의 방송차량이 아베의 평화헌법 수정 기도를 지지하는 주장을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고 건너편 도로에서는 50여명이 채 안 되는 시민들이 미군기지 반대, 원전 재가동 반대, 집단자위권 강화반대 등의 구호를 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며 외치고 있습니다. 한국의 미래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2월 14일 포근한 교토의 토요일. 일본 친구의 소개로 오늘 일정은 오후 1시부터 시작했습니다. 평소 인권, 원전 반대, 헌법9조 사수 등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던 친구는 제게 교토의 상징인 유명 관광명소(기요미즈데라清水寺, 긴가쿠지金閣寺 등)관람을 권하는 대신 토요일에 진행되는 각종 강연회와 집회 전단을 건넸고, 그 중 우선 두 행사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먼저 윤동주 시인이 수학했던 도시샤(同志社)대학으로 갔습니다. 윤동주 시인 사망 70주기와 기념비 건립 20주기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약 150여 좌석의 대학 예배당(chaple)은 행사 시작 전에 이미 만석이 되었고 양쪽 끝 통로와 뒤쪽으로 서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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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 기념 행사의 모습

참석자들은 약간 명의 한국 유학생을 제외하곤 모두 나이 지긋한 일본 사람들이어서 좀 놀랐습니다. 게다가 대학 재단이사장이 직접 사회를 보고 총장, 관련 학과 학장 등이 참석해 이 행사에 대한 학교 측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재단이사장을 비롯한 일본 측 발언자들은 한 목소리로 윤동주 시인의 고단했지만 꺾이지 않았던 삶을 통해 국경을 넘어선 인간성 회복과 어려운 한일 관계의 복원에 대한 희망을 표시했습니다.

행사 후에는 한국에서 노구를 이끌고 건너온 고은 시인이 “윤동주 시의 처녀성”에 대해 강연했습니다. 고은 시인은 윤동주 시인과 막역한 사이였던 고 문익환 목사와 자신과의 과계를 바탕으로 강연을 전개했는데 윤동주 시인의 짧으면서도 순수했던 삶에서 그의 시가 내뿜는 강력한 에너지의 근원을 찾았습니다. 행사 후 알게 됐는데 참석자들 중에는 고은 시인의 일본 팬들도 꽤 참석했다고 합니다.

고은 시인의 강연이 좀 길어져 이후 행사는 포기하고, 원래 가려고 했던 집단자위권 강화 반대와 헌법9조 수정 반대 강연회 및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서둘러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윤동주 시인 추모행사와 시간이 겹쳐서 강연회는 이미 끝나고 거리행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7~80여명의 강연회 참석자들 중 50여명이 거리행진에 참여했는데, 이날 행사의 주최 단체 사람들과 구호를 외친 4~5명을 제외하곤 모두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른들 뿐이었습니다. 가끔 일본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젊은 활동가들이 많은 한국에 대한 부러움 같은 것을 내비치는 것을 느꼈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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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수호, 원전 반대 집회 모습

한 시간 정도 거리행진을 하는 동안 경찰은 집회의 안전과 주말 도심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비지땀을 흘렸고 시위대는 경찰의 안내를 따라 한 번의 신호등 위반도 없이^^ 합법적으로 거리행진을 마쳤습니다.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과 또 사람 수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다양한 현수막과 피켓들이 신기했는지 가던 발길을 멈추고 사진도 찍고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집회 참가자의 대다수가 은퇴한 사람 또는 가정주들이고 젊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가면 사회문제에 관한 강연회도 적지 않고 급진적인 학생들 모임도 존재한다는데 아직 사회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거 화려했던 일본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기억하고 있는 제 친구도 짙은 아쉬움을 표시했습니다.

그렇다고 노익장을 과시하는 일본의 사회운동을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민첩하지도 투쟁적이지도 못하지만 신념의 내면화 자기화로 무장한 이들은 주위의 차가운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일본 보수정권의 재무장을 저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은 연대의 정신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힘입니다. 실제로 그들이 맞서고 있는 문제는 모두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집단자위권 강화, 평화헌법 수호, 원전문제 등등 우리와 무관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서로의 장점과 아쉬운 부분이 잘 들어맞습니다. 더군다나 한국과 일본 공통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필자소개
중국의 현대정치를 전공한 연구자. 한국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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