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나와 상관없는 일?
[책소개] 『부장님,그건 성희롱입니다』(무타 카즈에/ 나름북스)
    2015년 02월 14일 12: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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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와 대학, 군대를 막론하고 연일 벌어지는 성희롱 사건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저속한 말로 수치심을 주거나 강제로 스킨십을 하는 등 가해 남성의 파렴치한 행위를 접하며 많은 현대인이 공분하지만 이런 ‘사건’은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고 의식 수준과 교양이 높아진 현대 사회에서 왜 이런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일까?

이 책, <부장님, 그건 성희롱입니다>에서는 대부분의 성희롱이 ‘회색 지대’에 속한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성희롱인지 아닌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던 말과 행동이 대처 방식에 따라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때 가해 남성은 자신이 성희롱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는 성희롱에 대한 인식이 의도적인 괴롭힘이나 강제 추행, 강간 같은 악랄한 범죄로 굳어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성희롱은 아주 사소하거나 일상적인 것들이 훨씬 많다. 저자는 이런 현실에 초점을 맞춘다.

“성희롱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성희롱에 해당되는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그런 분들은 종종 성희롱을 새까만 유죄거나, 혹은 결백한 무죄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계신 듯합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비현실적입니다. 사실 성희롱은 어느 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즉 회색 지대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62쪽)

이 책에 등장하는 실제 성희롱 사건의 사례에서 가해 남성들은 억울함을 주장한다. 이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은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언행이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사건에 대한 남녀의 해석이 왜 다른지 모르는 상태에서 착각은 쌓이고 피해는 불어난다. ‘상대가 싫어하는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다. 즉, 성희롱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모두에게 비극을 가져온다.

“성희롱 사건에서 남성이 상대가 싫어하는지 몰랐다고 말하는 경우는 흔합니다. 그것은 대부분 둔감해서라기보다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희롱은 단순한 강요, 명백한 추행으로 나타나기보다는 미묘한 상호관계 속에서 일어납니다. 현실에서 성희롱은 더욱 복잡한 형태로 진행되며, ‘판에 박힌 듯’한 성희롱을 하는 남성은 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34쪽)

저자 무타 카즈에 교수는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언제까지고 성희롱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어떤 평범한 남성도 언제든 ‘성희롱 가해자’가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최소한 ‘몰라서’ 성희롱을 저지르는 경우를 방지하고자 남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주로 직장 내 성희롱 사례를 차근차근 분석한다.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붙이는 것보다 성희롱에 대해 배우게 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일본의 저명한 페미니스트인 우에노 치즈코 도쿄대학 명예교수는 이 책을 추천하며 “남성에게 좀 지나치게 상냥할 정도”라고 평하기까지 했다.

성희롱

남자의 망상도 진짜 연애도 성희롱이 될 수 있다

남자 입장에선 ‘아닌 밤중에 날벼락’처럼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되는 경우가 있다. 교제하던, 혹은 상호 합의 하에 관계를 갖고 있던 여성으로부터라면 상대가 변심했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을 음해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연인 관계였다고 남성 쪽이 주장하는 경우 여성 쪽은 전혀 그런 마음이 없는데 남성 혼자 굳게 믿는 사례를 ‘망상계’로 분류해 착각을 바로잡는다.

여성이 예의를 갖춰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을 두고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고 단정하거나 이성으로 의식하지 않아 취하는 스스럼없는 태도를 유혹으로 받아들이는 등 ‘망상’ 때문에 남성이 성희롱을 저지르는 사례를 다뤘다.

직장 상사에 대한 존중, 대학 교수를 향한 존경을 이성이 보내는 신호로 받아들여 일방적인 접근을 시도한다면 이는 성희롱 적신호라는 것.

“여성이 마음을 담아 하는 서비스를 자신에게 개인적인 호감을 가진 것으로 믿어 버리는 남성은 널려 있습니다. 단란주점,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이나 마담이 다정하게 대해 주면 돈을 쏟아 붓는 남성도 있다지만, 이는 물장사에만 한정된 일이 아닙니다. 상냥하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식사나 음료 서비스를 하는 승무원, 환자들에게 밝은 웃음으로 다정하게 대하는 간호사, 매주 집을 찾아와 친절하게 노년 남성의 식사나 청소를 도와주는 요양보호사. 그녀들에게 성희롱 피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99쪽)

그런데 여성 쪽에서도 남성에게 호감이 있었거나 실제 교제를 했던 사이에서도 성희롱 사건은 종종 발생한다. 본문에서는 이를 ‘리얼계’로 칭하면서 원인과 배경을 자세히 살피고 있다.

쌍방의 애정과 합의에서 비롯된 연애 관계는 언제든 일방적인 폭력인 성희롱으로 변할 수 있다. 더구나 처음부터 연인 사이였는지의 여부는 성희롱 사건에서 판단의 결정적인 기준이 되지도 않는다.

이는 직장 내 성희롱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결코 대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과의 교제 때문에 여성이 일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매우 많다. 애초에 연애가 시작되는 데에 남성이 가진 권력이 매력으로 작용하기도 하며 교제의 파탄으로 피해를 입는 쪽은 주로 부하 직원인 여성이다. 여성의 커리어를 방해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건 명백한 성희롱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젊은 여성 사원이나 학생이 상사나 지도교수에게 끌리는 것은 남성의 위치상 당연히 갖고 있는 직업 능력이나 경험 때문입니다. 젊고 세상 물정 모르는 여성에게 그 남성은 실제 이상으로 특별히 실력 있는 사람, 훌륭한 능력의 소유자로 보이니까요. 지도나 관리 책임이 있는 입장의 남성이 상대 여성의 그런 착각을 이용하는 것은 어리석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지위에 따르는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 성희롱입니다.” (172-174쪽)

“싫다고 말하지 그랬어!” 애매한 침묵은 Yes가 아닌 NO

회식 자리에서 옆에 앉아 술을 권해도 잘 받고, 집까지 바래다 주겠다고 해도 거절하지 않았고, 휴대폰 메시지도 다정하게 주고받았다, 심지어 출장지 숙소에서 내 방으로 오라는 말에도 잘 따랐다… 그런데 ‘교제를 강요당했다’거나 ‘강제로 덮쳤다’는 말을 들으면 남자는 억울하기 마련.

단호하게 거절의 말을 하지 않은 여성을 원망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여자가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불쾌한 성적 권유나 행동을 거스르지 않는 태도를 취하는 것만으로 거부의 메시지를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다.

애매한 답변이나 화제 전환으로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거절했다고 생각하지만 남자에게는 이런 마음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직장 내 권력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의 입장인 여성은 인사 보복도 두렵지만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들거나 함께 일하기 불편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이렇듯 여성이 ‘NO’라고 말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는 것은 상대를 배려해 일을 크게 만들지 않고 잘 수습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NO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처음부터 ‘NO’라고 말하지 않는 쪽이 나쁘다’고 단정 짓는 것은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궤변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131쪽)

또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당황스러운 상황을 애써 무시하거나 없었던 일로 삼아 갈등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은 남성이 둔감함을 내장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여성에게 내재된 반응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물론 시대는 변화하고 여성의 말과 행동도 바뀌고 있다. 여자가 불쾌한 성희롱에 단호한 거절의 말을 할 수 있는 사회 구조와 환경이 되기까지 남녀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당부다.

지위 고하가 분명한 직장 내에서나 교수와 제자라는 상하 관계가 존재하는 대학에서 권력의 작용은 매우 중요하다. 재계약이나 성적을 빌미로 사적인 관계를 강요하는 악질적인 협박이 아니더라도 여성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여성이 만남을 거절했을 때 나중에 절대로 불편한 관계가 되지 않거나 재계약 여부를 고민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남자에게 묻고 있다. 직장 내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접근하려 할 때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력을 가진 현재 위치가 아니더라도 교제가 지속될 수 있는지 반드시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 연애를 감행하려는 남자들을 위해서는 지켜야 할 필수 지침을 따로 제시했다.

“남성의 유혹을 여성이 단호하게 거부했을 때 나중에 불편한 관계가 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나요? 여성은 특별한 관계가 되기를 거부했을 뿐인데, 자존심이 상하고 체면을 구긴 것 같아 화가 난 적은 없습니까? 거절당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을 때, 그 기회를 이용해 그 여직원의 계약을 갱신하지 말까 하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에 힘이 약한 여성들은 힘이 있는 쪽에게 스스로 맞춰 주며 상대방 뜻에 따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힘이란, 가지고 있는 쪽은 그것을 잘 모르기 마련입니다.” (144-145쪽)

여성과 남성 모두를 지키기 위한 직장인 필독서

연애에 얽힌 성희롱 사례를 제외하고도 직장 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성희롱 사례를 한 장에 따로 정리했다. 성을 둘러싼 오해와 갈등에서 그 어떤 남성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전제 하에 현대의 직장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성희롱을 다뤄 세심하게 주의를 당부한다.

“사적인 자리에서 남성이 자신을 섹시한 여자로 생각하는 일이 반가운 일일지라도 직장에서 대놓고 성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여성 입장에서 모욕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냥 여성을 쳐다보기만 해도 죄가 되나? 너무 불편하다.” 이렇게 예민하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의식하지 않는 우연의 시선과 ‘여자’의 값을 매기는 듯한 시선의 차이를 여성들은 잘 구별하고 있으니까요.“ (184-185쪽)

또 이 책은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관리직의 입장이거나 사건 당사자들의 동료로서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서도 쉽고 성실하게 적고 있다. ‘사귀는 사이였는데 여자 쪽이 차여서 분풀이를 하는 것 같다’거나 ‘사내 파벌 싸움에 희생됐다’는 등의 ‘스토리’를 재생산하는 것은 금물. 가해자 편에 서서 섣불리 2차 가해에 가담하거나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직장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다면 더욱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남자가 성희롱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가 알기 쉽게 요약 정리되어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이 가해 남성을 호되게 벌하고 싶어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진심이 담긴 사과와 재발 방지 노력이 회색 지대에 놓인 성희롱을 안전 지대로 돌려놓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상황에 따라 남자가 취해야 할 태도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심지어 소송에 휘말렸을 때의 대처법도 다루고 있다. 변호사 선임이나 재판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조언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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