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작가, 화려함 뒤의 그늘
    [인터뷰] 방송작가 만나 그들의 현실을 듣다
        2015년 02월 12일 10: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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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방송작가를 하던 선배가 있었다. 방송작가를 지망하던 동기도 많았다. 방송작가인 선배는 동기들에게 ‘도시락 싸들고 말릴 거다’라고 했었다. 자세히 말해주진 않았지만 그저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바닥’이 아니라는 것이 선배의 말이었다.

    현재 여자 동기 다수는 방송작가가 됐다. 그들은 입을 모아 그 때 선배가 했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야 알겠다고 했다.

    선배가 자세히 풀어내지 못했던 방송계 ‘민낯’을 막내작가가 된 동기들에게 처음 전해들은 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않고 이틀은 기본으로 밤을 새워 일했다. 그리고 그들은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120만 원 정도 돈을 손에 쥐었다. 그렇게 일해서 겨우 막내작가 딱지를 떼고 나니 생리불순, 불면증은 기본이고 자궁근종, 갑상선저하증 등에 시달렸다.

    한 번은 갓 서브작가를 단 친구가 내게 자궁에 혹이 생겨 잠시 일을 쉬고 싶다고 회사에 말 했더니 ‘그깟 걸로 쉬냐’며 오히려 프로답지 못 하다는 말을 들었다며 무척이나 서러워했다. 아무래도 그들 사이에서 그런 질병쯤은 훈장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그 정도 병도 없다면 방송작가라 할 수 있겠나! 뭐 이런 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막내작가를 시녀 부리듯 하는 행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가, 과중한 업무로 생긴 질병에 대해 치료비를 달라고 말하지 않는가, 월 50만원을 받으면서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하나. 결국엔 왜 방송작가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지 않는지에 대한 문제까지.

    이번 인터뷰로, 그들은 왜 함께 싸우지 않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다.

    방송2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밤샘…
    두통약 7알 씩 털어 넣으며 견뎠다

    공중파 교양프로그램에서 일하는 4년차 서브작가를 만났다. A는 방송 일을 시작하고 생긴 질병으로 수술을 받고 쉬고 있는 중이다.

    오랜만에 본 A는 많이 불과 몇 년 전에 비해 많이 야위어 있었다. 사실 여자들은 ‘부럽다’고 말할 일이긴 하지만 일단 그 이유를 물었다. A씨는 ‘말도 마’라며 근 몇 년간의 일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처음 들어간 프로그램이 4개월짜리 케이블 채널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4개월 내내 기본 10시간은 일 했고,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집에 못 갔다. 하루에 5시간 자면 많이 잔 거였는데, 자도 편집실에서 엎드려 자거나 씻기는 해야 하니까 근처 찜질방에 가서 대충 눈만 붙이고 나오는 정도였다. 방송작가 일 시작하고 반 년 동안 10kg이 빠졌다. 밥을 못 먹어서 그랬는데 밥 먹는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쁠 때도 있었지만 몸이 힘드니까 밥도 먹기 싫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두통약을 하루에 7개씩 먹었다. 약 때문에 배가 안고플 지경이었다.

    그런 상황이 오래되니까 갑상선저하증 등 그 외에 생명이 위협이 있을 정도의 병에 걸렸다. 의사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냥 몸이 힘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만 하고. 그런데 입원한 상태에서도 병원에서 일했다”

    그래도 그렇게 했으면 일은 많이 늘었을 것 같다고 했더니 A의 반응은 싸늘했다.

    “막내 때 일로 배우는 건 없었던 것 같다. 상황 대처능력을 배웠다면 배운 거다. 당시엔 내가 구성안이나 대본을 쓰지도 않았으니까. 그냥 잡일만 했던 것 같다. 잡일하면서도 실수하면 욕 엄청 들었다.

    한 번은 해외 촬영을 갔는데 스태프가 묵을 숙소를 내가 너무 비싼 곳을 잡았다. 그랬더니 팀장이 나한테 ‘병신 같은 년’이라는 욕을 하더라. 다른 작가들은 ‘불쌍하지만 네가 뒤집어써라’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A가 겪은 일은 방송계 내에서도 특이한 일이기는 하다. 내가 다른 방송작가들에게 A가 겪은 일에 대해 말해주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럼에도 분명 방송계에는 이러한 특이한 사건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그가 겪은 회식 문화도 기가 막힌다.

    “부장이 회식 자리에 오면 술 따를 때 남자 피디가 따라주면 되는데 꼭 여자 작가들, 특히 막내작가를 부장 옆에 앉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런 거 싫어하는 부장도 있다. 메인작가나 피디는 부장 술잔이 비어 있으면 막내작가에게 술 따르라고 눈치를 준다. 부장이 한 말에 안 웃으면 웃으라고 눈치주고. 그런 거 눈치껏 잘하면 메인작가도 예뻐하고, 부장 눈에 들면 그 작가 코너나 그 팀에 대해 좋게 평가한다. 작가가 부장에 맘에 들었으면 회사 전체가 예쁨 받는 거니까. 속된 말로 어린애들 옆에 앉혀서 재주 부려라 이거다”

    몇 년 전 모 방송국 옥상에서 방송작가가 투신자살한 일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방송작가라는 화려한 직업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났다. A는 알게 모르게 이런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지난 추석 때 아는 막내작가가 죽었다고 들었다. 방송작가 하려고 여기저기 많이 지원했었는데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고 하더라. 지방에서 올라와서 방송 일 처음 시작했는데 1년 좀 넘게 했나. 죽기 한두 달 전부터 일이 갑자기 많아진 것 같았다. 피디가 그 작가랑 연락이 안돼서 사는 고시원에 가보니 죽어있었다고 하더라. 프리뷰 하다가 모니터 앞에서 죽었다고 했다.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다음날 그 작가가 쓰던 책상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아무도 그 작가에 대해 얘기 안했고 회사는 여전히 밝았다.

    암암리에 그런 일 많다. 근데 ‘또 죽었대?’ 하고 만다. 별 감흥이 없다. 내 경우도 이번에 일하다가 쓰러졌는데, 잘못하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

    월 50만원, “처음엔 내가 얼마 받고 일하는 지도 몰랐다”

    실례를 무릅쓰고 얼마를 받는지 물었다. 방송 일이라는 특수함을 감안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업무를 본다면 상응하진 않더라도 이해 갈 만한 수준의 임금은 받겠거니 했다. 방송사라는 거대한 조직에 속해있으니 받을 만큼은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A는 방송작가는 어디 소속도 아니라고 했다. 근로계약서는 ‘본 적도 없고’ 과중한 업무로 생긴 질병에 대한 치료비 지급 여부를 묻자 콧방귀를 뀌었다. 내 질문이 황당하다는 거다.

    “야간 택시요금, 식대도 없다. 첫 프로그램을 할 때 국제전화 쓸 일이 많았는데 핸드폰 요금도 안 줬다. 업무에 필요한 퀵서비스도 다 자비로 해결했다. 영수증 처리를 하긴 했는데 못 받았다. 4개월 동안 한 푼도 못 받고 프로그램 종영 후 한 두 달 있다가 한꺼번에 돈을 받았는데, 통장에 200만 원 찍혀 있더라. 200만 원이 무슨 돈인지도 모르겠다. 임금을 안 정해놓은 것 같기도 하고 프로그램 끝나고 남은 돈을 준 건지…”

    A는 당초 자신이 월에 얼마를 받고 일하는 지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말한다. 왜 묻지 않았는지 묻자 “돈 얘기부터 꺼내면 건방져 보일까봐”라고 답했다.

    임금이 얼마인지를 묻는 건 노동자로서의 권리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하다만 꽤 많은 고용주들이 면접에서 임금을 묻는 구직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때가 있다. 언제나 선택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구직자 입장에선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고용주는 때로는 그런 구직자의 간절함을 악용하거나, 권리를 주장하는 이를 돈만 밝히는 요즘 것들이라고 손가락질 한다. 그럼에도 이런 것들에 대해 왜 항의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막내작가일 땐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같이 일하던 언니들에게 이런 점을 물어보기는 했는데 다들 ‘막내 때는 배우는 거니까 돈 얘기는 안하는 게 좋다. 나중에 챙겨줄 거다’라고 했었다”

    관련해서 한 방송사의 간부급 인사가 외주사에게 막내작가들 급여 등 처우 개선을 하라고 요청을 하여 일부 외주사에서 일정한 처우 개선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그 간부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면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방송작가 노조? “밥벌이 끊길 일 있나”

    방송작가는 업체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이 일자리를 구해 프리랜서로 일한다. 때문에 근로계약서는 본 적도 없고 당연히 4대보험 적용도 받지 못한다. 때문에 그들은 메인작가나 팀장이 그 날 당장 해고하면 “네”하고 나가야 하는 신세다. 물론 쉽게 해고되는 만큼 쉽게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길 수 있기는 하다.

    한편으론 메인작가나 팀장, 피디에게 따지고 들어 방송 쪽에 소문이 들면 재취업이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군말 없이 짐을 싸야 한다.

    방송 쪽엔 각 그룹마다 노동조합이 있다. 최근엔 연예인 코디네이터나 조연출이 한국노총 소속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왜 방송작가는 노조를 만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염증을 느끼면 집단으로라도 항의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 물음에 A는 “밥벌이 끊길 일 있냐”고 답했다.

    “작가는 피디와 다르게 한 프로그램 시작하면 들어갔다 빠지는 느낌이다. 뭉쳐서 ‘하지 말자’ 했다가 소문나서 갈 데가 없어져 버릴까봐 섣불리 이의제기 같은 건 하지 못 한다. 그런 거 선동했다가 다른 데서 안받아주면 어떻게 하나. 피디 노조 있는 것도 방송사나 소속이 다 있어서 움직이는 거지. 소속 없는 애들이 하면 밥벌이 할 수 있겠나”

    방송작가는 고용될 때부터 방송국 소속도, 방송국이 계약한 외주업체 소속도 아니다. 프리랜서로 분류되는데, 때문에 재고용을 위해 상사에게 잘 보이는 게 1순위다.

    밥벌이를 위해 피디, 메인작가, 팀장에게 잘 보여야 하고, 이들과의 관계도 돈독히 해야 한다. 그래야 나를 해고하지 않고 계속 고용할 테고 나중에 다른 프로그램에 또 불러주기 때문이다. 재취업이 쉽지만 고달픈 이유다.

    외주사 피디, 메인작가, 팀장도 ‘완전 갑’은 아니다. 방송국에 잘 보여 계속 방송국과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 속에서 ‘완전 갑’은 결국 거대 방송사다. 때문에 앞서 부장의 빈 술잔을 어린 막내작가들이 눈치껏 따라야 하는 회식 문화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일부 혹은 절반은 막내작가가 술을 따르는 등의 방송국 비위를 맞추는 일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실력이 좋거나 운이 좋거나 친한 팀장이나 피디가 있으면 입봉이 빠르다. 어쨌든 팀장, 피디가 갑이니까. 불러줘야 메인작가가 되는 거다. 10년 넘게 메인작가 못하는 작가들도 있다. 아는 언니도 작가 9년 차인데 아직 서브 작가다. 실력이 좋아도 인맥이 안 돼서 불러주는 곳이 없으면 그렇다. 어디든 사회생활이 그렇긴 하지만, 특히 이쪽은 인간관계가 중요하니까 두루두루 알고 지내고 관계 정리를 잘해놔야 한다. 사실 실력은 거기서 거기다. 피디, 팀장이 같이 일하기 편하고 까탈스럽지 않은 작가를 불러가는 거다”

    ‘원래 그렇다’는 체념들

    방송, 영화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열악함과 부당함을 견디고 일하는 동력은 일에 대한 ‘열정’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 쪽은 원래 그렇다’, ‘어쩔 수 없다’며 상황을 체념하기도 한다. 또 그런 체념을 무기력하다고 비판하기도 어렵다.

    방송국에 사용돼야 하는 외주업체, 외주업체에 사용돼야 하는 방송작가, 이 구조 속에서 한 개인이 부당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엔 너무 대가가 크다. 방송을 만드는 꿈을 영영 접어야 하는 상황을 감수하며 싸워보자고 하기엔 지금의 구조가 너무 견고하고 쉽게 부서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친 후에는 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느냐, 왜 노조를 만들지 않느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보편적 인식을 뛰어 넘은 것이 바로 영화 <국제시장>의 사례다. 모든 스태프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았다. 감독 혼자 내릴 결정은 아닐 것이라는 짐작된다. 앞서 A가 밝힌 방송사 한 간부의 막내작가 처우개선 요구도 잠시나마 그들의 숨통을 트이게 하기도 했다.

    또 다른 공중파에서 일하는 5년 차 서브작가는 앞서 A가 이야기한 문제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부당한 것에 대응하면 프리랜서라는 것 때문에 안 써준다. 고분고분한 사람 쓰려고 하지. 막내나 서브작가 말고 힘 있는 작가나 피디가 방송작가가 받는 처우 전반에 대해 쓴 소리를 한다면 모를까”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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