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거운 감자,
    국민모임 신당과 노동정치
    [기고] “바람이 불면 연을 날려야 한다”
        2015년 02월 06일 05: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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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현장조직인 ‘공공현장’ 소식지 <공공현장 63호>에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국민모임 신당추진위원회와 정동영 그리고 노동정치의 어제와 미래에 대한 글이 실렸다. 많은 고민꺼리와 토론지점을 제공하고 있는 글이라 판단하여 공공현장 측의 동의를 얻어 레디앙에 게재한다. 일독을 권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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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인가? 기회인가?

    지난 1월 29일 『국민모임』이 <신당 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대통합진보신당 건설을 위해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새정치민주연합 내 진보그룹 등 기존 정당 세력과 노동정치연대, 계급정당추진위 등 노동정치세력, 새로운 정치를 지향하는 국민회의 등에 원탁회의를 제안했다.

    지난해 12월 24일 105명의 이름으로 선언문을 발표한 『국민모임』이라는 게 있다. 정식명칭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모임』이다. 종교계, 교수, 문화예술계, 언론계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처럼 한 곳에 모였다.

    그들 중 일부는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을 건설할 때 보수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보내거나, 아니면 필연적으로 개량주의에 빠질 것이라며 비난하던 사람들이다. 한 쪽은 우에서 좌로, 다른 한 쪽은 좌에서 우로 이동하여 만난 셈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체제에 제동을 걸고, 이익과 효율보다 생명과 인간의 가치, 사람 사이의 공존공생과 연대를 더 소중히 여기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논란이 뜨거워진 것은 민주당의 전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며 결합했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에 진정으로 서민과 사회적 약자, 노동자들이 기댈 정당은 사라졌다.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좋은 정치, 좋은 정당의 출현에 밀알이 되고 밑거름이 되겠다.” 라는 게 그의 말이다. 진보정당들의 고립되고, 분산된 상태에서 뜨거운 감자가 던져진 셈이다.

    사실 정동영 개인으로 보면 호의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각종 투쟁현장에서 보인 그의 진심은 거짓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이 찜찜함의 실체는 무엇일까?

    신당추

    국민모임 신당추진위 출범 회견 모습(사진=참세상)

    실패로 끝난 6월항쟁 주역들의 정치

    잠시 필름을 12년 전으로 돌려보자. 2003년 1월 9일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가 분신했다. 막 노무현 정부가 탄생한 직후였다. 조정환 교수는 「노무현의 승리와 배달호의 죽음 속에서 생각하는 유시민의 참여민주주의」라는 글을 썼다.

    “배달호는 유시민의 역사의식의 경계 밖에 있다. 유시민에게서 1987년 6월의 요구는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완성해야 할 과제로 받아들이지만 1987년의 7~9월의 요구는 남의 일, 예컨대 권영길이나 민주노동당이 풀어야 할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2004년 총선에서 6월항쟁 주체가 의회권력을 장악하여 항쟁을 혁명으로 끌어올린다면 그것은 권위적 보수주의자들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로부터의 커다란 진보를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6월항쟁의 이 혁명적 국민통합이 7~9월에 대한 배제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혁명을 필요로 하게 될 불구적 혁명으로 남게 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 글은 거의 예언에 가까웠다. 참여정부는 철저히 노동배제 정책을 폈다. 6월항쟁의 주역들은 청와대와 국회에서 공공부문 파업권을 제약하는 필수유지업무를 통과시키고, 비정규악법을 만들었다. 심지어 포항의 건설노동자 하중근 열사는 백주대낮에 경찰에 의해 맞아 죽기도 했다.

    6월항쟁 주역들의 정치는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났다. 비록 이합집산을 하긴 했지만 오늘의 새정치민주연합은 그 후예들의 당이다. 그리고 정동영은 이제야 그 당의 한계를 알고, 탈당했다. 물론 과거를 잣대로 사람의 변화를 폄하하고자 함이 아니다.

    정동영과 현재 국민모임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의 한계가 명확함을 먼저 보고, 그 다음을 말해야 한다는 전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합집산, 고립분산, 그리고 좌충우돌

    최근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SYRIZA)가 압승을 거두자 부러운 시선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1989년 선거동맹체로 결성한 시나스피스모스(SYNASPISMOS, 좌파운동생태주의연합)가 중심이 되어 유로코뮤니스트, 좌파사민주의자, 범좌파, 생태주의자 등 다양한 12개 정파와 함께 2004년 결성한 것이 시리자다.

    이들은 2010년 그리스 경제 위기 후 사민주의와 우익 정권의 긴축정책에 맞서며 지지층을 넓혀 왔고, 지난 2013년 7월 단일 정당으로 출범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1월 총선에서 역사적 승리를 거뒀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한국에서도 시리자는 다가오는 희망의 근거로 이야기될 것”이란 논평도 내 놓았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지금은 서울시 교육감이 된 조희연 교수가 <노동 중심의 진보·좌파 연합정당>을 구상하면서 이와 유사한 제안을 한 것이 2013년 9월이었다. 물론 실현되지 않았다. 그나마 남은 진보세력을 규합하고자 작년 내내 추진했던 ‘진보혁신회의’도 좌절되었다. 남은 것은 지방선거에서의 동반 궤멸이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의 광역의원은 지역선출 705명 중 1명, 비례의원은 84명 중 3명 당선으로 0.5%, 기초의원은 전체 2,989명 중 52명으로 1.74%에 머물고 있음을 기억해 두자. (2010년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비중은 4%, 기초의원 비중 5.6%였다)

    진보정당들의 재편을 논의하는 모든 시도가 물거품이 된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 현실에서 민주노총 성명이 말하는 ‘희망의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희망의 근거를 만들려면 그런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 데 그동안의 과정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문제는 현재 진보정치 내에도 재편을 위한 자체 동력이 없다는 점이다. 맡겨놓으니 안 되겠더라. 지금이야말로 ‘주체적인 구성의 정치’가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는 때다. 이런 시기는 잘 오지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구성의 정치가 필요한 시기다.”라는 『국민모임』의 지적이 아픈 이유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마나한 얘기들은 그만하자

    민주노총은 『국민모임』의 “동력과 추진 기조가 자유주의와 맞닿아 있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본류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엄중히 판단하고, 노동자 계급 정치 관점에 따른 민주노총의 입장과 태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2015. 1.29 중집)며 일단 거리를 두고 있다.

    비록 『국민모임』의 선언문에는 반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나, 정동영 등의 결합으로 볼 때 우려가 더 크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어쩌라구?” 하면 “지나온 진보정당운동 및 노동자 정치운동에 대한 평가와 정리를 바탕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기조와 방향이 근본적으로 재모색되어야 한다. 2015년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 속에서 조합원의 정치, 계급의식을 강화하고, 정세교육과 정치토론을 일상화한다.”라는 정도의 답만 돌아온다. 이대로라면 진지한 검토나 논의가 불가능하다. “노동자의 투쟁이 곧 노동정치다”라는 원론적인 말만 돌아온다.

    물론 논의가 원탁회의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이미 진보정당의 분당 이후에 진보정치의 재편을 위한 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여러 가지 우려가 있다. “현장에 뿌리를 두지 않고 유리된 채 진행되고 있다.” “자기 성찰과 진단이 없는 재편과 통합 위주의 논의다.” “상층의 선거 대응 중심으로 논의되어 걱정된다.” “정동영류의 결합과 기존 진보정당의 태도 등을 볼 때 이념의 우경화가 예상된다.” “또 다시 실패할 확률이 높다.” 등 귀 기울일 얘기들이다.

    지난날의 아픔들이 흔쾌한 결합을 주저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객관적인 조건이 좋다고 해도 주체세력의 부족으로 인해 역사를 바꾸지 못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현장과 지역에서의 새로운 진보정치를 담당할 주체형성은 전략적 과제다.

    그러나 비록 원한 것은 아니지만 진보정치 지형에 최대의 변수가 생겼다면 이에 눈감고 중장기 전략만을 말하는 것은 너무 한가하다. 이념문제뿐만이 아니라 주체형성 전략을 포함하여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진보정당의 방향에 대한 숱한 과제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일정한 파급력을 가지고 진행 중인 새로운 움직임에 눈감는 것은 맞지 않다.

    더구나 노동계의 참여를 적극 기대하고, 촉구하고 있는 데 일부 정동영과 유사한 사람들의 참여를 이유로 ‘때’를 놓치는 것은 한가함을 넘어 무능함으로 이어질 것이다.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귤이 화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다. 그리스 시리자의 압승이 부럽다면 배울 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영국에선 과거 보수당과 자유당의 양당 체제였다가 노동당이 생겨났고, 그 노동당이 자유당을 대체하고 보수당과 노동당 양당 체제 속에서 집권도 했다. 브라질 노동자당은 13년째 집권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부럽다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천천히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와 동시에 기나긴 여정의 시작으로 보고 적극적인 대응방향을 논의하자. 진보정치의 재편에 대해 노동이 책임지고, 마지막 승부수라는 결기를 가지고 적극적인 대응을 조직하자.

    현재의 흐름을 명확하게 대중적인 진보정당의 건설로 이끌기 위해, 아래로부터의 실천적인 운동이 그냥 없어지지 않게, 또다시 들러리를 서는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 지혜를 모으자. 국민모임 안의 범민주개혁세력의 연합에 의한 야권재편을 모색하고자 하는 흐름을 넘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로 이끌어 내는 데 힘을 모아 보자.

    이 기회가 새정치연합 이탈파의 새로운 놀이터가 되거나 진보정당이 장식품에 그치는 위기가 되지 않도록 해 보자.

    “비록 지혜가 있으나 정세에 올라타느니만 못하고, 비록 농기구가 있다 하나 때를 기다리느니만 같지 못하다.”(雖有知慧 不如乘勢, 雖有鎡器 不如待時)라는 말이 맹자에 나온다. 그만큼 시기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비록 우리가 주체가 되어 형성된 흐름은 아니지만 그대로 방치한다고 길이 열리지는 않는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 희망의 정치를 한번 만들어 보자.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 서울지하철노조 선거에 출마한 어느 후보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바람이 불면 연을 날려야 한다.”

    필자소개
    공공부문 현장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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