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도 일어날 뻔한 일?
        2015년 02월 02일 09:48 오전

    Print Friendly

    딱 1주일 전에 제게 생긴 일이었습니다. 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동아세아 약자 보호 담론” 관련의 회의를 마치고 노르웨이로 귀환하는 도중이었습니다. “약자”를 이야기해야 하는 회의이었지만, 물론 그 참석자 중에서는 약자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들이 중산층 이상의 출신이자 백인인 서구인 동아시아학자 이외에는, 일본과 중국의 명문대 교수들이 와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영어로 발표를 하는 자리이었죠.

    회의 시간의 약 30%는, 서구인 중산층이 특별히 좋아하는 동물보호 문제 (동물도 약자입니다!)나 고대 유적 보호 문제에 대한 토론으로 소모됐습니다. 비정규직 관련의 발표는 단 한 건이었죠. 발표자는 정규직 교수이었지만요. 좌우간, 이 회의를 마치고 오슬로로 돌아가려는 길에, 제가 한 번 봉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지하철, 공항으로 가는 길…한 역에서 제가 탄 차량에 돌연히 터키나 아랍계 출신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탔습니다. 그의 얼굴 표정에는 모종의 비장한 희열 같은 것이 역력히 보였습니다. 그 벨트 뒤에 긴 칼을 차고 있었고요.

    그는 타자마자 그 칼을 빼고 저를 포함한 거기에 앉은 몇 명의 백인들을 아주 자세히 응시했는데, 일단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심산인지 결국 칼을 다시 벨트 안에 넣고 무슨 종교음악 같은 것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얼굴을 본 뒤로는 제 등에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긴 칼에 제 목이 날아가는 것을, 벌써 상상하기 시작한 거죠.

    그러나 웬일인지 문은 계속 닫히지 않았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약 5분이 지나자 그 문 안으로 중무장한 경찰 몇 명이 막 들어왔습니다. 들어오자마자 그 중동계 남성을 잡아 끌고 나갔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드디어 폐문이 되고 열차가 출발했습니다.

    신고가 이미 접수돼 지하철 곳곳에서 포진된 무장경찰들이 기회를 기다렸듯 이런 “잠재적 테러리스트” (?)를 사냥했던 모양입니다. 그 남자가 누구이었는지, 이 칼로 뭘 하려 했는지, 그리고 잡힌 뒤의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됐는지, 저는 끝내 알 수 없었습니다. 열차가 떠나고 만 거죠.

    오슬로 도착이 늦어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막차가 이미 떠난 상태이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택시를 탈 수밖에. 물론 학회 참석차 외유한 만큼 그 택시값도 결국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의해서 보상돼야 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물론 대학도 아니고 이 “약자 보호”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대재벌 폴크스바겐 재단의 돈으로 보상될 셈이죠.

    그래도 비싼 택시인지라, 일단 최저가를 약속하는 업체를 골라 탔습니다. 운전기사는 파키스탄 출신의 이민자이었습니다. 노르웨이인 택시 운전기사는 이 시간대에 일하는 것을 본 적은 없습니다. 대체로 돈에 궁한 아시아,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몫이죠.

    차를 타고 가는데, 도중에 운전기사는 제게 돌연히, 본인이 받아야 할 돈이 애당초에 약속한 값보다 약간(한화 5만원 정도) 더 커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고, 주말이고 야간인 데다가 오슬로 교외의 위성도시로 가기 때문에 규정상 가격이 더 높아야 한다고, 막 제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게 이 가격차는 아무 의미도 없었습니다. 어차피 모든 것을 폴크스바겐 돈으로 보상 받을 처지에 말입니다. 그러나 이게 자본주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의 체질화된 습관인지, 왠지 “바가지”로 느껴지고, “더” 내기 싫었습니다.

    저는 항의하기 시작하고, 운전기사는 하는 수없이 회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회사의 판단은, 운전기사의 말은 맞지만 일단 애당초에 약속한 가격을 지키는 게 업체의 노선인 만큼 더 이상 요구하지 말고 그냥 손님을 모시고 가라는 거이었죠.

    회사 대표자의 목소리는 외국인 액센트 없는 아주 완벽한 노르웨이어이었습니다. 토박이이었나 봅니다. 운전기사의 얼굴 표정은 아주 시무룩해졌지만, 그는 업체의 지침(?)에 별 반대하지 않고 그냥 갔습니다.

    단, 제가 지불을 하고 차 내렸을 때에 제게 분노에 찬 목소리로 몇 마디 했습니다. “내가 사기 치려 한 줄 아시오? 아니오. 나중에 규정을 참조해보십시오. 내 말은 다 맞았습니다. 나는 그냥, 내 아이 먹여 살리려고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지금 이 이상한 가격으로 갔다 온 것은, 제게 아무 이득이 없습니다. 회사가 공항의 택시 관리자로부터 보상 받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 주겠어요?”

    저는 그 말 속의 분노에 깜짝 놀랐는데, 이미 늦었습니다. 카드로 지불한 뒤로는, 추가적 요금을 카드로 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카드단말기는, 요금기의 숫자만 받아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게 노르웨이 현금이 하나도 없어 결국 운전수에게 사과만 하고 헤어져야 했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아이팟으로 규정을 참고했습니다. 운전기사의 말은 다 맞았습니다. 그가 바가지를 요구한 것도 아니고 반대로 제가 업체들 간의 출혈 경쟁을 이용해서 규정보다 약간 더 싸게, 그것도 남의 돈으로 택시를 탄 거죠. 그 날 밤에 잠 잘 수 없었습니다. 너무너무 미안했습니다.

    우리 (즉 구주의 중산층 백인 고학력자)들이, 우리들을 그들(즉 이만자 계통의 새로운 무산계급)의 눈으로 본다면 과연 어떻게 보일까요?

    어릴 때부터 물려받은 문화자본 덕에 대학교수 등등의 “편리한 자리”들을 두루 다 차지하고, 각종 회의 후원 등 대자본과 국가가 주는 혜택들을 두루 다 차지하고, 남들이 아이를 먹여 살리려고 피나도록 노동하는 그 사이에 실제 약자와 무관한 “약자 보호” 이야기나 남의 돈으로 하고, 그러면서도 노동자가 무슨 요구라도 하면 싫은 소리부터 하는 “짠” 고객의 노릇을 한, 이런 모습들은 과연 그 분들의 눈으로는 어떻게 보일까요?

    이슬람계의 일부 청년들이 칼을 차고 지하철에 소요하는 등 “극단주의적”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과연 오로지 광신적 종교 때문일까요? 오히려 이와 같은 하루하루의 소외, 피착취의 경험으로부터 오는 절망의 결과는 아닐까요?

    일상 속에서는 그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가해자들입니다. 우리가 호의호식하는 하루하루는 그들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죠. 폴크스바겐이 우리에게 주는 연구비가, 결국 그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대공장들의 노동자들로부터 수탈한 잉여가치의 일부분이라는 점부터 생각해볼 만합니다.

    물론 그들의 비극을, 개개인의 칼질이 해결하지 못할 것도 뻔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봐도 이게 맞는 길은 아니겠죠. 한데, 제 목은 그렇게 해서 칼에 날아가도, 저는 항의할 만한 입장에 서있지 못합니다. 남의 피땀을 빨아먹은 만큼 천벌을 받는 것일 뿐이니까요.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