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개의 문> 김일란 감독 인터뷰
    그리고 경찰 포함한 관객들과의 대화
        2012년 07월 11일 04: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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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저녁 관악구에서 지역 시민사회 단체 활동가와 노동조합, 진보정당 당원들과 개인들 400여명이 모인 ‘공동체 상영’이 진행됐다. 고 이소선 어머니의 생애를 다룬 <어머니>에 이어 <두 개의 문>을 단체로 관람했다. 멀티플렉스 1, 2관 모두 빼곡히 가득 찼다. 그리고 9일, <두 개의 문>은 개봉 3주 만에 3만 명을 돌파했다.

    공동체 상영이 있을 때마다 직접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기꺼이 참석하는 김일란, 홍지유 두 감독 중 김일란 감독이 함께했다. 상영 뒤풀이 자리에 오랜 시간 함께 했던 김 감독과 취중 인터뷰를 진행했다.

    장여진 : 영화를 매우 꼼꼼히 봤는데도 제목이 왜 <두 개의 문>인지 이해가 안 된다. 영화 한 장면 중, 경찰특공대가 망루에 올라가는 두 개의 문 중 어디로 진입해야 할 지 몰랐다고 짧게 나올 뿐인데 이렇게 제목을 지은 이유가 있는 건가

    김일란 : 영화에도 나오지만 경찰특공대원들은 망루의 구조와 내부 상황을 전혀 몰랐다. 이것은 경찰과 농성자 모두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남일당은 건물 두 개가 붙어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경찰특공대는 망루가 설치되지 않은 건물로 진입했다.

    망루가 설치된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문 중 하나의 문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그 중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다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자고 하는 핵심을 보여준다.

    어떤 분들은 영화 제목의 의미를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 등으로 이야기해 주는 내가 생각하는 의미는 ‘이러한 현실을 방관할 것이냐 개입할 것이냐’, ‘언제까지 국민들이 이러한 정부 만행을 관용할 꺼냐 안 할 꺼냐’이다.

    장여진 :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매우 건조하고 객관적인 영화라는 평이 많다. 이렇게 기획한 의도는 무엇인가

    김일란 : 2009년 8월 재판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처음 재판장에 들어갈 때 경찰특공대 진술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철거민에 대해 악의적인 진술을 할 꺼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철거민을 편들거나 불리하게 하는 진술보다는 본 데로 들은 데로 이야기 하더라.

    그들의 진술을 들으면서 경찰특공대에 대해 상상했던 편견 같은 것이 깨졌다. 그러면서 다른 측면에서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1심이 끝나고 피해자가 가해자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겠다라고 생각했다.

    장여진 : 용산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나 당시 농성했던 분들이 영화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인가? 최대한 객관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나?

    김일란 : 처음부터 끝까지 객관적이지 않게 만들었다. 일종의 착시다.(웃음)

    객관적으로 보이는 건 사실 관계와 팩트 중심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지, 영화는 철저히 철거민들의 편에 있다. 당사자가 이야기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 대척점에 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객관성을 담보한 것 같다.

    장여진 : 감독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

    김일란 : 영화 맨 뒤에 나오는 박진씨의 코멘트다. ‘언제까지 국민들이 이 사태를 관용할 것이냐’라는 말과 용산참사가 ‘몹쓸 교훈’이 됐다는 말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가장 가깝다. 스토리의 가이드라인이 돼기도 했다.

    장여진 : 경찰 진술 중 기억에 남거나 주요한 대목이라 생각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김일란 : 경찰의 직접적인 진술보다 박진씨가 말한 ‘경찰특공대원도 희생자다’라는 말이다. 마음 아픈 장면이다. 이 말이 영화의 진의를 오해하게 될까봐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희생된 경찰과 철거민 분들의 죽음의 무게가 같다는 말이 아니라 이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가게 된 맥락인 것이다. 과잉진압이라 하는 것도 경찰특공대와 철거민 모두의 안전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여진 : 이 영화를 통해 관람객들이 어떤 걸 느끼길 바라는가

    김일란 : 우선 죄책감을 가지게 하고 싶지 않다. 이 영화를 통해 무언가 새로운 희망을 모색하자는 취지이다.

    장여진 : 가장 기억에 남는 상영관은 어디인가

    김일란 : 매번 감동이다. 극장이 늘 꽉차 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에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더라. 광주에 광주극장이라는 예술 영화 전용 상영관이 있는데 800석 규모다. 홍지유 감독이 갔었는데 그 중 766석이 찼다더라. 광주 지역의 거의 모든 진보적 활동가가 다 참석했다는 말이다. 오늘 3만 관객 돌파했는데 이렇게 일찍 올 줄 몰랐다. 이러한 관객들의 관심을 실제적인 운동과 어떻게 만나게 할지 그런 것을 모색하고자 한다.

    장여진 : 용산참사와 관련한 향후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김일란 : 현재 탄원서를 받고 있다. 용산참사 당시 부상 입으신 분의 항소심이 있는데 이를 연기시키고 더불어 8월 15일 광복절특사로 특별사면 되길 요청하는 것이다. 또한 9월 국회에서 용산참사와 관련한 국정조사를 요구할 계획이다.

    '두 개의 문' 관람객들의 모습

    김일란 감독과의 대화는 몇 시간 동안 더 이어진 술 자리에서 계속됐다. 영화에는 등장하진 않지만 법정 증언대에서 눈물을 흘리다 잠시 퇴장했다가 다시 돌아와서 증언한 정보과 형사 이야기와 헛웃음이 나올 만큼 황당한 용산경찰서장의 진술까지 영화에 모두 담지 못했던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현재 투쟁중인 철거민과 현직 경찰도 함께 관람

    뒤풀이 자리에는 공동체 상영에 참여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했다. 현재 철거민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함께살자 봉천구역세입자대책위원회’소속 주민들과 서울대 조교들, 김세균 교수, 진보정당 당원들, 전교조 소속 선생님들, 여성학을 전공하는 동기들, 그리고 현직 경찰도 있었다.

    전교조 선생님들과 단체 관람을 한 직후 함께 뒤풀이에 참석한 관악구 소재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모 교사는 “영화평만 보고 눈물이 났다. 영화 보내는 내내 펑펑 울 각오하고 왔는데 눈물을 쥐어짜내는 영화가 아니더라”며 “사실관계 속에서 어떠한 결론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관람했다고 밝혔다.

    또한 최 교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한 경찰특공대원이 “다 죽어!”라는 철거민의 외침을 “다 죽어버리겠어”라는 의미로 진술했다가 이후 “다 죽는다!”(즉 화재로 다 죽겠 되었다는 의미)로 다시 말을 바꾼 장면을 꼽았다. 최 교사는 그 진술에 대해 “그 분은 철거민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첫 진술을 다르게 말하게 됐다고 밝혔다. 진술을 번복할 수 있던 것은 양심에 의거한 것으로 그의 번복된 진술이야말로 사실에 기초한 진실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동석한 정 모 교사는 “용산 참사 당시 내 마음은 좀 더 개입하고 싶었다. 집회나 농성할 때 함께 참여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그때 좀 더 열심히 할걸’이라는 마음 속의 부채 의식으로 떠안게 됐다.”며 “이제 이런 문제에 더이상 비켜서면 안 된다.”고 밝혔다.

    '두 개의 문'의 김일란 감독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하는 현직 경찰도 공동체 상영을 통해 함께 관람했다. 경찰대학을 나와 경감으로 재직 중인 전 모 경감은 “다소 억울한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직 경찰이 영화를 관람했다는 사실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가진 김일란 감독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어떠한 부분이냐고 물었다.

    전 경감는 “영화 초기에 유가족 동의 없이 부검을 실시한 부분에 대해 영화에서는 의혹점으로 제기했지만, 사실 형사법상 부검에는 유가족 동의가 필요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유가족은 부검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이라고 설명했다.

    현직 경찰로서 <두 개의 문>을 관람한 소회가 궁금하다는 김 감독의 질문에 그는 “영화를 보기 전 페이스북을 통해 윗 선에서 의경들에게 <두 개의 문>을 보지 말라는 공문을 내렸다는 소문이 퍼졌다. 동료 경찰들과 21세기에 여전히 이런 작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워서 진위를 알아 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굉장히 다행이라 생각했다.”며 “바로 이런 것이다. 경찰의 실책이나 잘못이 터져 나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자기합리화를 하게 된다. 경찰 조직에서 일하면서 나도 모르게 지속적으로 자기방어 논리가 생긴다.”고 밝혔다.

    즉 경찰의 실책이나 잘못이 아닐 것이라는 전제 하에 진위를 살피게 된다는 것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직업이라도 자기가 속한 조직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전 경감과 함께 참석한 대학원 동기는 “개인의 잘못으로 탓할 수 없다. 개인이 그러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조직문화와 구조가 있기 때문”이라며 영화에 등장한 개별 경찰들을 탓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뒤풀이 자리는 새벽 2시가 넘는 시간까지 계속 이어졌다. 매일 상영관을 돌며 많은 관람객과 비슷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반복했을 김일란 감독은 이번 뒤풀이 자리에서도 지친 기색 없이 쉴 새 없이 많은 이들의 궁금증에 답해주고 또 의견을 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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