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지구화 경제,
    불평등 바꿀 사회운동 필요
    [책소개] 『국가 대 시장』(허먼 M. 슈워츠 / 책세상)
        2015년 01월 24일 12: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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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와’ 시장 – 국가 ‘대’ 시장

    흔히 지구화는 전후 질서인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를 계기로 1970년대에 시작된 전 지구적 시장 압박으로 이해되곤 한다. 과연 지구화는 이렇듯 20세기에 비롯된 현대적 사건일까·

    미국 버지니아대 정치학 교수로 경제사와 지리경제학을 통합해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연구해온 허먼 슈워츠는 《국가 대 시장》에서 이러한 통념에 도전한다. 그의 시각에 따르면 지구화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며, 우리가 오늘 목도하는 것은 2차대전 이전의 세계경제에 존재하던 패턴의 재출현이다.

    지구 자본주의의 오랜 역사를 추적하는 슈워츠는 어떻게 시장과 국가가 “오랫동안 서로에게 양식을 대주었는지” 보여준다.

    ‘지구화’의 특성과 전개 과정에 대한 권위 있는 입문서로 평가받는 이 책은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중심으로 지구화의 역사적·지리적 범위, 즉 지구화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총체적으로 다룬다.

    이것은 국가‘와’ 시장이 서로 의존하고 공생해온 역사이자, 국가 ‘대’ 시장이 긴장과 갈등을 빚어온 역사이다. 또한 지구적 불균형 및 금융의 변덕과 투쟁을 벌이며 ‘지구 정치경제’가 출현하고 변화를 겪어온 과정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지구화가 출현한 500여 년 전 유럽의 해상무역에서 시작해 19세기 서유럽의 산업화와 20세기 초 영국 헤게모니의 붕괴, 미국 패권과 위기, 중국의 부상, 세계 금융위기 등 최근의 상황까지 아우르며 면밀하게 분석한다.

    지구화의 아주 오래된 역사는, 가령 100년 전 신흥농업국 외채위기와 오늘날 신흥공업국 외채위기 사이의 유사점을 통해 지구 경제의 불안정성을 성찰하게 하는 등 현재를 더 잘 이해하게 해준다.

    이 책은 또한 역사 속에서 시장과 국가의 구조는 그 배후에 자리 잡은 사회 세력 관계의 변화를 통해 계속 바뀌어왔음을 확인하게 한다. 우리 시대의 사회 변화는 지구 시장이 강요하는 불평등 구조를 바꾸려는 초국적인 노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하는 슈워츠의 통찰은, 한국 사회가 이 어려운 과업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어떻게 구축해가야 할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지구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지금, 새로운 질서에 대한 모색은 500여 년에 걸친 ‘역사’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주류 국제경제학의 상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통찰

    지구 자본주의의 역사와 구조에 대한 여러 쟁점을 두루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주류 국제경제학이나 세계체제론 등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독자적인 관점과 통찰을 보여준다.

    첫째, 흔히 20세기 후반에 처음 등장한 현상으로 이해되는 지구화를 이 책은 16세기에 일부 서유럽 국가들의 해상 활동으로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는 지구 경제의 연속선 위에서 살펴본다. 특히 20세기 초에 지구 경제를 사실상 한 차례 붕괴시킨 영국 헤게모니의 위기와 1970년대 이후 미국 헤게모니의 동요를 대조함으로써 우리 시대를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해준다.

    둘째, 비슷한 역사적 시각을 열어주었던 세계체제론과는 또 다른 이론 자원, 즉 독일 경제학자이자 농장주였던 튀넨이 《고립국》에서 제시한 농업 중심 이론과 이것을 현대 산업사회에 맞게 다시 전개한 폴 크루그먼의 지리경제학을 동원해 구조결정론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지구 경제의 구조와 동학을 역동적으로 설명한다.

    셋째, 일관되게 ‘시장’과 ‘국가’를 두 축으로 삼아 지구 경제의 역사를 살피는 가운데, 양자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즉 국가가 시장의 승전가 속에 점점 더 별 볼일 없는 배역으로 밀려났다고 보는 상식에 도전한다. 슈워츠에 따르면, 시장을 창출하고 확대한 주역은 다름 아니라 국가들이며, 시장과 국가 사이의 긴장도 양자의 뿌리 깊은 상호 의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국가 대 시장

    지구 경제의 출현 ― 시장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오랫동안 세계 어느 곳에서나 경제의 중심은 ‘농업’이었다. 아직 국민 경제가 존재하기 전, 경제활동의 기본 단위는 상설시장이 개설된 소도시를 20여 마일의 농경 배후지가 둘러싼 형태의 소규모 경제들이었다. 자급자족하는 소규모 경제들의 세계에서 시장은 사회의 다른 부분과 분리될 수 없었다.

    농업 중심의 소규모 경제들로는 재정 자원이 제한되어 국가권력의 확장을 뒷받침할 수 없었기에 국가는 끊임없이 경제활동 재편을 도모했고, 가장 먼저 성공한 나라가 중국이었다. 중국 왕조들은 산출량 증대와 운송 시스템 개선에 힘입어 ‘경제의 화폐화’에 성공했다.

    반면 유럽은 귀족과 상인의 저항 탓에 경제의 화폐화에 실패했으나, 이 실패로부터 지구 경제 출현의 사회적 토대가 등장했다. 경제의 화폐화를 관철하지 못한 중앙 권력이 귀족, 상인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사적 소유권을 보장하는 법률, 국가의 폭력 독점, 화폐를 통한 조세 수취 등이 가능해진 것이다. 슈워츠는 이를 “법률가, 화포, 화폐 그리고 신의 타협”이라 부른다.

    특히 영국에서는 해외무역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동맹을 구축한 귀족과 상인 주도로 국가권력과의 타협이 이루어졌다. 귀족과 상인 동맹이 아시아 원격 무역으로 확보한 금속화폐는 영국 국가기구의 세수가 되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시장의 확대가 국가권력을 확대시키고 다시 국가권력이 지구 시장 확대를 뒷받침하는 구조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구 시장의 첫 번째 무대는 인도양 경제였다. 상인 공동체들이 할거하던 이곳에서 포르투갈이 무역 독점으로 금속화폐를 거둬들인 후, 무역의 혁신을 내세운 네덜란드가 그 뒤를 이었으나, 결국 중개무역을 더 혁신한 영국이 인도양 경제를 평정했다.

    영국이 이러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더 많은 시장, 더 많은 권력을 좇아야 할 운명이 됐을 때 활로를 열어준 것이 산업혁명이었다. 서유럽 국가들의 치열한 세력 경쟁에 의해 시장(혹은 시장력)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인류 역사 내내 사회에 단단히 끼워 맞춰져 있던 시장이 비로소 사회의 다른 부분과 분리돼 지속적인 확대 과정에 돌입했다. ‘지구 경제’가 출현한 것이다.

    튀넨 모델과 크루그먼의 제조업 집적화 이론

    지구 자본주의가 시작되면 시장력이 강하게 작동하면서 국가의 조건과 역량, 선택을 좌우하게 된다. 시장의 공간 법칙의 측면에서, 이 책은 특정 지역의 부와 다른 지역의 빈곤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구조결정론의 위험을 경계하면서 튀넨이 제시한 모델을 주목한다.

    튀넨은 하나의 소도시만 존재하며 수상 운송이 불가능하고 토지 비옥도가 동일한 세계를 가정한다. 그는 이 경우 소도시를 둘러싼 일련의 동심원 형태로 서로 다른 농작물을 경작하는 여섯 개의 생산 지대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첫째 동심원은 자본과 노동력을 대거 투입하는 원예나 낙농업 지대이고 가장 외곽의 동심원은 넓은 목초지에서 가축을 사육하는 조방적 목축 지대다.

    이 책은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 지구 경제를 튀넨 모델의 전 지구적 확대판으로 바라본다. 영국을 비롯한 북서유럽이 튀넨 모델의 소도시가 되고 나머지 세계가 농업 생산 지대들로 재편됐다는 것이다. 100년 전 영국 헤게모니 아래서 진행된 지구화는 이러한 농업 생산 지대의 확장 운동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의 중심은 제조업과 서비스산업이다. 여기에 맞게 튀넨의 구상을 새로 전개한 것이 폴 크루그먼의 제조업 집적화 이론이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교통이 발달해 운송비용보다 규모의 경제가 더 중요해지면 제조업은 특정 지역에 집적되는 경향을 보이고, 소수의 기존 산업 중심지 외의 지역은 산업화에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고부가가치 신제품은 고소득/고숙련의 기존 산업 중심지에서 생산되고, 가격 경쟁 제품은 중심지 바깥의 저소득/저숙련 지역에서 생산된다. 제조업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확산 과정에서 불평등한 공간적 위계 구조는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이것이 20세기 말에 재개된 지구화의 기본 논리다.

    적응하거나, 도전하거나 ― 시장의 법칙과 국가의 대응

    이 책의 접근 방식은 시장의 공간 법칙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대응을 부각시킨다. 지구 시장의 틀을 짜고 국내 시장을 탄생시키는 것은 국가들이다. 국가는 시장력 강화에 기여하거나 지구 시장 구조를 변형한다. 적응과 도전 중 어느 전략을 택하든 국가의 역할이 관건이다.

    후발 발전을 추구하는 사회는 경제발전을 위해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고 신규 생산자에게 자본을 제공하며 노동력을 공급해야 한다. 개별 자본가는 책임질 수 없는 자본의 대대적 동원은 국가의 몫이다.

    또 제조업 생산성을 높여 지구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려는 경우, 신생 제조업체는 경쟁력이 없는 초기에도 제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 논리로만 보면 수익을 낼 수 없는 비합리적 행위로, 국산품 판로 보장이나 보조금 지급 등 이 경우에도 국가가 나설 수밖에 없다.

    국가의 이런 적극적인 역할에 의해 지구 경제의 역사적 전개에 변화가 나타나는데, 이러한 변동은 일정한 주기에 따라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슈워츠는 좁은 의미의 기술 변화를 ‘경성 기술 혁신’, 사회 제도의 변화를 ‘연성 기술 혁신’이라 부른다. 혁신의 두 측면이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지구 경제의 새로운 국면이 열릴 수 있다. 두 측면을 시의 적절하게 결합해 지구 시장의 생명을 이어온 것 역시 국가의 업적이다.

    이런 지구 경제의 순환은 패권국의 주기적 교체라는 정치 순환과 연동된다. 패권국은 경성 기술 혁신을 뒷받침할 연성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이러한 혁신의 결과 등장한 새로운 사회제도와 세력 배열을 지구 전체로 확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패권국과 나머지 세계 사이에 상호보완적인 무역 및 금융 구조가 구축됐다.

    그러나 이러한 지구 경제 구조는 기존 선도 부문이 쇠퇴하고 도전국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성-연성 기술 혁신이 추진되면서 ‘아래로부터’ 점차 와해된다. 또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상호보완적 관계도 ‘위로부터’ 점차 와해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 중심의 지구 경제가 바로 이러한 궤도를 밟으며 붕괴했다. 이 책은 100년 전 경험과의 대조를 통해 우리 시대 지구 경제의 행로를 조망한다.

    ‘지난번’ 지구화 ― 영국 주도 지구 경제의 성쇠

    튀넨 소도시의 유럽 대륙으로의 확대, 제조업 중심부에 농산물과 원자재를 공급하는 농업 생산 지대의 확대. 이 책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나타난 이 두 가지 지속적인 흐름이 20세기 초 지구 경제 붕괴 전까지 전개된 ‘지난번 지구화’의 핵심이다.

    우선 북서 유럽 국가들이 영국을 추격해 산업국 대열에 합류했다. 산업혁명이 지구 시장에 경쟁 압박을 가하면서 벨기에, 프랑스, 미국, 러시아, 중국과 일본으로까지 치열한 산업화 경주가 전개되었다.

    이 책은 이들 후발 발전 주자의 산업화가 국가 주도로 추진됐음을 강조한다. 발전 경쟁에 늦게 참여할수록 필요한 자본 규모가 늘어나고, 국가는 더욱 대규모로 더욱 강력하게 경제발전을 지휘해야 했다. 더 늦게 산업화에 착수한 나라일수록 더 강한 국가 주도 발전 노선을 취한 것이다. 한국 사회가 경험한 국가 주도 산업화 과정의 원형이 여기에 있다.

    두 번째 흐름과 관련해서는, 수많은 사회가 농산물·천연자원 수출국 대열에 합류했다. 당시 제조업은 1차 산품 가공 성격이 강했고, 튀넨 소도시가 확대될수록 농업 생산 지대도 확장됐다.

    우리 시대의 지구화가 값싼 노동력의 무제한 공급을 찾아 제조업이 확산된 것이라면, 이 시대의 지구화는 토지의 무한한 공급을 찾아 수출 농업이 확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식민 통치에 의존한 당시의 대규모 영농은 상품, 자본, 인구의 거대한 이동을 낳았고 지구 생태계를 변화시켰다.

    제조업 중심부와 농업 생산 지대 사이에는 상호보완적인 무역 및 금융 연계 구조가 구축되었는데, 이 구조는 심각한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외채를 도입해 고부가가치 작물로 전환하려는 신흥농업국들의 시도는 지급불능 상태로 이어지곤 했다.

    슈워츠는 100년 전 신흥농업국 외채위기가 현재의 신흥공업국 외채위기와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지구 경제를 안정시켜주는 무역·금융 연계 구조가 지구 경제의 불안정성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농업 지대에서 외채위기로 나타났던 이 불안정성은 20세기 초에 영국 주도 지구 경제의 붕괴로 폭발했다. 이런 경험은 신흥공업국 외채위기 후에 찾아온 2008년 금융위기를 돌아보는 데 요긴한 지침이 되어준다.

    영국의 헤게모니는 미국과 독일의 경성-연성 기술 혁신에 밀려 와해되기 시작했다. 영국이 지구 시장 경쟁에서 밀리면서 영국 주도 지구 경제를 뒷받침했던 상호보완적인 무역·금융 구조가 무너진 것이다.

    미국이 새로운 구조를 탄생시키기에는 미흡한 상황에서 주요 국가들은 경제 블록을 구축해 각자도생의 길에 나섰다. 세계 무역은 붕괴했고, 화폐 흐름도 막혔다. 영국-북서 유럽이 튀넨 소도시 역할을 하면서 농업 생산 지대를 확장시켰던 지구 경제가 이로써 종말을 고했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예외적 현상이었다 ― 다시 부상한 지구화

    대공황과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브레턴우즈 체제’라는 미국 중심의 새로운 경제 질서가 등장했다. 금-달러본위제를 국제 통화 시스템으로 채택한 이 체제 아래서 달러에 대한 화폐 주권과 거시경제 조절 정책이 가능해졌고, 민주적 국민국가를 뒷받침할 국민-대중 경제가 구축되었다.

    오늘날에는 이 전후 질서를 신자유주의 지구화 이후 인류가 돌아가야 할 ‘황금기’로 이야기하곤 하지만, 슈워츠는 브레턴우즈 시기가 지구 경제의 역사에서 예외기에 불과했으며, 1970년대 이후 지구화에 의해 지구 경제가 다시 본 궤도에 오른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적 자본주의가 일시적·예외적 현상일 뿐이라는 불길한 진단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지구화가 다시 부상해 결국 이 체제를 무너뜨리고 100년 전과 유사한 질서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추적한다.

    금융 이동이 억제되었던 브레턴우즈 체제에서는 초국적기업이 지구화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미국계 초국적기업이 해외직접투자로 시장 확보에 나서자, 서독과 일본이 이들을 추격하는 선두로 부상함으로써 20세기 말에 부활한 지구화의 중심지 역할을 할 북미-서유럽-일본의 ‘3극’이 형성됐다.

    한편 브레턴우즈 체제가 농업과 서비스산업을 세계시장의 압박으로부터 격리시킨 탓에 과거의 농산물·원자재 수출 국가들은 후발 산업화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들 국가에서는 국가 개입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고, 국가와 초국적 기업의 경쟁에 따라 후발 산업화의 성패가 갈렸다.

    기존 제조업 중심부의 초국적기업 활동과 옛 농업 주변부의 후발 산업화 노력이 맞물리면서 우리 시대 지구화의 골격이 짜였다. 제조업의 전 지구적 확산을 통해, 브레턴우즈 질서 대신 저생산성-저임금 노동과 고생산성-고임금 노동이 나뉘는 위계 구조가 들어섰다.

    20세기 말의 지구화는 브레턴우즈 체제 ‘안에서’ 잉태된 것일 뿐만 아니라 이 체제를 ‘깨고’ 재개된 지구화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미국의 국가권력이 있다.

    미국 정부는 제조업 경쟁 압박이 심해지자 변동환율제로 화폐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는 등 브레턴우즈 체제를 무너뜨렸다. 이후 국제 금융시장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추진된다. 미국은 또 GATT 체제 대신 WTO를 수립함으로써 농업과 서비스산업의 세계시장 개방을 주도했다. 제조업에서 밀리던 미국은 서비스산업의 탈규제와 사유화를 통해 생산성 우위를 복구했다.

    위기의 지구 경제, 불평등 구조를 바꿀 사회운동이 필요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구화의 위기와 이후의 행로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미국 헤게모니 시대는 끝나가는가, 이번 지구화도 붕괴할 것인가, 혹은 중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구 경제가 수립될 것인가· 이 책의 마지막 두 장은 이 물음에 답하려는 시도다.

    미국 헤게모니의 ‘아래로부터의’ 와해에 대해서는 슈워츠는 유보적이다. 미국은 일본 자동차산업의 혁신을 성공적으로 흡수했으며 정보처리 같은 신산업과 서비스산업에서 유럽, 일본을 압도한다.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흔들 만한 대규모 혁신은 나타나지 않았던 셈이다.

    반면 미국 헤게모니의 ‘위로부터의’ 와해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 시대 지구화의 결과로 100년 전과 흡사한 국제 무역 및 금융 연계 구조가 구축됐다. 미국이 금융 중개 역할을 맡고, 신흥공업국, 특히 중국의 무역흑자 재순환이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금융기관이 이 자금을 주택담보대출로 푼 덕분에 미국 시장은 신흥공업국 수출품을 흡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상호보완적 구조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2008년 미국 주택시장 거품 폭발과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 드러났다. 이 균열은 ‘양적 완화’로 봉합돼 있는 상태지만, 이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책이 새로운 관점으로 추적한 지구 경제의 역사는, 시장과 국가의 구조는 그 배후에 자리 잡은 사회 세력 관계의 재배열을 통해 빈번히 변화해왔음을 보여준다.

    이를 바탕으로 슈워츠는 “대중적 사회운동이 다시 등장하지 않으면, 우리 세대가 지나기 전에 대공황 이후의 정치가 만들어낸 규모의 사회 보호와 시장 조절이 실현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구 자본주의가 “일단 생겨난” 세상에서 사회 변화란 지구 시장이 강요하는 공간적 불평등 구조를 바꾸려는 초국적 노력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 슈워츠가 제시하는 뼈아픈 통찰이다. 실로 어려운 과업임이 분명하지만, 이러한 인식에서 우리의 미래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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