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인 강요하는 자기계발 사회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6회] 오찬호 작가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2015년 01월 22일 01:03 오후

    Print Friendly

    ‘성깔있는 진보 미디어’ 칼라TV가 제작하는 논픽션 책 팟캐스트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는 르포르타주와 논픽션 책을 다루고 있고, 매주 월요일 업로드 된다. 김현진(에세이스트)과 송기역(시인, 르포작가)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책 소개 및 저자와의 인터뷰 외에, ‘신간 논픽션 브리핑’, ‘김현진의 라디오 에세이’, ‘논픽션 작가 열전’, ‘인문학 강의’, ‘내 인생의 밑줄 쫙 별표 땡땡’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6회 방송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의 저자 오찬호와 북토크를 진행했다. <편집자>
    ———————

    1분 1초도 취업과 연관되어 있지 않으면 의미 없는 시간

    “저는 아직도 장그래 씨의 시간과 제 시간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웹툰 <미생>의 장백기가 장그래에게 한 말이다. 이력서의 마지막 한 칸까지 빈틈없이 채울 수 있는 완벽한 스펙을 탑재한 장백기는 고졸 출신의 낙하산인 장그래가 자신과 같이 입사한 것이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백기가 거기까지 가기 위해 이 악물고 보낸 시간을, ‘자신처럼’ 보내지 않은 장그래를 자신과 같은 급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장백기에게 장그래는 무임승차를 한 파렴치한인 것이다. 장백기와 같이 ‘차별에 찬성’하는 젊은이가 많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의 오찬호 작가는 KTX 여승무원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비윤리적이라고 말하는 대학생들의 생각의 근원이 무엇일까 파헤치고 싶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인권과 평화라는 강의를 할 때였어요. 정규직 파이가 커지고, 노동의 질이 높아지면 사회는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주장하며 KTX 여승무원 정규직 전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한 친구가 질문을 하는 거예요.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요구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 아니냐고. 비윤리적이라는 거예요. 날로 먹는 거라면서요. 처음에 저는 그렇게 얘기하는 친구가 동료 친구들에게 비난을 받을까봐 그 친구를 보호하려고까지 했어요. 그런데 웬걸? 다른 학생들도 그 친구에게 동조하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했죠. 이 학생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능력주의가 밑바탕에 있는 것인데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이유가 뭔가를 밝혀보고 싶었죠.”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의 부제는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이다. 저자가 이십대에게 괴물이라는 과격한 표현을 쓴 이유는 뭘까? 그리고 누가 한국의 이십대를 괴물로 만들었을까?

    1분 1초도 취업과 연관되지 않으면 요즘 이십대에게는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 오찬호 작가는 말한다.

    “중간고사에 A+를 받은 학생이 졸업을 유예하기 위해 F를 달라고 해요. 기업에서 졸업자보다 졸업예정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학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취업의 문을 넘는데 불가능한 요소들을 줄이는 거죠. 통상 8학기제인 대학에서 9학기를 등록하는 학생이 50%를 넘어요.”

    취업난의 무게가 이십대들에가 무척 크다. ‘취업 9종 세트’라고 있다.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입상 경력, 인턴 경력, 사회봉사’에서, 이제는 ‘성형수술’까지 무려 9종의 스펙을 갖춰야 취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요즘 이십대에게 이러한 ‘자기계발’이 강요되고 있는데, 이것은 자신을 위한 자기계발이라기 보다는 타인에게 평가받을 나의 상품성을 개발하는 것이다.

    무임승차 혐오 정서가 사회전반에 퍼져 있다

    엄청난 노력과 자기통제를 통해 거의 초인에 가까워지려는 이십대들은 타인의 상황이나 실패에 대한 공감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너만 힘드냐? 내가 제일 힘들다.’가 되어 버리고, 사회적 차별에 순응하게 된다. 차별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순간 ‘자기계발의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자신이 차별당하는 것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남을 차별하는 것 역시 정당화한다. 이는 위계화된 학교서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균충, 기균충이라는 말이 있어요. 지역균등제와 기회균등제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을 가리켜 ‘벌레’를 뜻하는 ‘충’을 붙여 부르는 말이예요. 수능점수를 성과로 보기 때문에, 수시도 하대를 하는데, 하물며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들어온 친구들을 멸시하는 것은 당연해지는 것이죠. ‘정시야? 수시야? 어떤 수시야?’라고 물어보는 것이 일상이며 3차 추가합격으로 들어온 친구를 졸업할 때까지 추가합격이라는 꼬리표로 놀려요. 예전의 학벌주의가 과시형이었다면 요즘은 멸시형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죠.”

    세월호 특별법으로 단원고 2학년생에게 대학입학 특례 혜택이 주어졌을 때, 이후에 그들이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하지 않더라도 특별법 때문에 외려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뉴스는, 그래서 단원고 학생들에게 특별전형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요지가 아니라, 대학 특례입학이 특별법의 주요 요구사항이 아니라는 취지였기는 했지만, 기가 찬 내용이었다.

    사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학 특례 입학이 들어간 것도 웃지 못 할 웃기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이 도대체 뭐 길래 그것이 혜택인가 싶다. 그러다가도, 우리 사회의 현실은 사실 ‘대학이 뭐 이상’이니까…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교양도 있고 의식도 있는 지인이 ‘세월호 특별법에 대학특례 입학이 들어가면 반대한다.’라는 말을 해서 충격을 받았다. 싱글에다 자식도 없는 친구가 대학 특례 입학을 그토록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임승차 혐오다. ‘일베’와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이십대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무임승차 혐오의 정서’가 사회 전반에 폭넓게 퍼져 있는 것이다. ‘나보다 덜’ 노력한 사람은 그만큼 ‘덜’ 대우 받아야 하고 ‘나와 같은 급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정서가 바탕에 깔려있다. 그들이 보기에는, 약자들의 요구가, 의무는 다하지 않고 지나치게 권리만을 요구하며, 인생을 날로 먹으려고 지나친 보상을 바라는 것일 뿐인 것이다.

    차별 찬성

    이대로 놔두면 세월호는 반드시 다시 침몰한다

    자신의 순위가 자신의 존재를 말해주는 사회에 사는 이십대가 기성세대가 되면 어떻게 될까? 오찬호 작가는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고 한다.

    “현재 10년째 자살률이 세계 1등인데, 이십대가 4-50대가 되었을 때 자살률이 그대로 1등이면 3-40년간 자살률이 1등인 셈이잖아요. 그런데도 ‘자살에 사회적 원인이 뭐가 있어?’ 라며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며, 아픈데 아픈 줄 모르고, 불행한데 불행한 줄 모르는, 디스토피아인데 유토피아라고 생각하는 사회가 될 수도 있어요.”

    “사회 구조의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과 사회문제가 악화되는 것은 반드시 연동되어 있습니다. 정의, 인권을 외쳐봤자 아무 소용 없고, 오직 성공해야 하니까 부모의 지원을 받아야 하고, 부모의 지원을 받으려면 철학과 같은 인문사회학은 선택할 수 없거든요. 성공, 대기업 취업이 최고의 과제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가장 극단의 상상까지 밀어붙여야 우리 사회가 정신 차릴 수 있다고 보거든요. ‘이대로 놔두면 세월호는 반드시 다시 침몰한다.’는 말을 많이 하고 다닙니다.”

    IMF 이후, ‘잘 못 살면 끝장이구나.’ 생각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완벽하게 경쟁에 최적화되어 왔다.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희박한 성공의 가능성에 더욱 기대게 되었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수천수만의 사례는 노력 부족이라는 간단한 말로 정리되고 있다.

    이런 현상보다 더 위험한 것은 우리사회의 비판 기능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속도를 줄일 수 있는 것이 대학이어야 하는데, 외려 대학은 취업에 방해되는 것을 제거하는 취업사관학교가 되어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학이 기업화되면서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의 전사로 길러지고, 완벽한 경쟁완전체가 되어 가고 있다. 경영학과의 수가 늘어난 것도 대학의 기업화와 사회가 기업의 논리를 체득하게 되는 것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192개 4년제 대학에 경영학 계열 학과가 640개 정도이며, 한 학교에 3-4개씩 있다. 게다가 경영학 복수전공자도 많다. 학생들이 자신의 과를 말할 때도 경영학과라면 자랑스레 말하는 반면 독문과 같은 인문계열을 과를 말하는 것도 꺼릴 정도라고 한다.

    경영학과의 파이가 커지니까 교수의 숫자도 늘어나고, 교수회의 등에서의 힘도 커져 교양과목에서도 경영학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대학의 글쓰기 수업에는 취업에 필요한 자기 소개서 작법을 가르치고, ‘인생의 적성’이라는 수업에서는 대기업이 요구하는 인적성을 다루는 지경이다.

    자기계발서와 힐링서는 환상문학이다

    한쪽에서는 이십대들에게 경쟁을 강요하고, 또 한쪽에서는 경쟁에 지친 이십대들을 위로하는 힐링서들이 나오고 있다. 자기계발서가 채찍질이라면 힐링서들은 항생제, 아편인 셈이다.

    “소변이 마려운 사람에게 자기계발은 ‘물을 많이 마시지 말았어야지’라고 질책하며 화장실에 가서 빨리 줄을 서게 만드는 것이고, 힐링은 ‘여기 다 마렵다. 너만 호들갑 떨지 마라’고 하는 것일 수 있어요. 환상문학이라고 하는 분도 있어요.”

    실패할수록, 좌절할수록, 자기계발서와 힐링서의 시장을 커질 수밖에 없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채찍질이나 힐링, 두 가지 중에 하나이거나, 둘 다이다.

    자기계발의 악순환과 힐링의 아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찬호 선생이 말하는 대안은 무엇인지 들어보자.

    대안 중독증 사회에서 희망을 기대하지 않는 사회학자

    “대안 중독증 사회입니다. 대안을 말하지 않으면 비판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바로 전형적인 조직 논리입니다. 원래 룰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원래대로 가자고 하는 것이 조직 원리에요. 누군가의 비판이 모이고 모여서 여론이 형성되고, 여론이 커지면 정치가들에게 전달되어 변화가 오는 것인데, ‘대안이 뭔데?’라고 묻는 것은 문제제기 자체를 봉쇄하고, 자본주의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아주 손쉬운 방식이죠.”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는 자기계발 담론에 따르면 가급적 기존의 룰에 따르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사회를 바꾸는 것은 불확실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일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계발이 성행하는 사회에서는 확실한 대안이 없으면, 굳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태도가 일상화 된다.

    “현실의 비판를 10번 들었을 때와 100번 들었을 때와의 대안은 다릅니다. 계속 현실의 문제를 제기하면 대안이 제시되어 있지 않아도 뭐가 나쁘다는 것은 알잖아요. ‘아,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구나.’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대안이죠. 대안 찾기에 급급하는 것도 실무적인 자기계발 논리죠. 대안이 없으면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3-40대가 되면 자본주의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하게 되는데, 요즘은 이십대가 되기 전부터 자본주의에 적응하기 위해 공부를 한다며 오찬호 작가는 안타까워한다.

    “자본주의에 대해 의심할 수 있는 시기가 이십대잖아요. 그런데 기성세대는 ‘돈이 최고더라. 너네도 진작부터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라’를 강요하고, 20대에 부릴 수 있는 객기를 부리지 못하게 하고 있잖아요. 20대의 발칙함이 사라졌어요. 발칙함을 보장해주는 특권이 있었는데 그것이 사라졌어요. 본인이 살아가야할 사회니까, 정치 사회에 무관심하면 결국 스스로에게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사회학을 공부하면 희망적으로 이야기 할 수 없어요. 희망을 얘기해서 해결됐다면 사회는 진작에 바뀌었겠죠. 희망을 기대하지 말아야지만 문제의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늘 일상에 존재하는데 그것을 자꾸 밀어내고 있는 것 같아요.”

    희망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오찬호 작가의 말에서 외려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서두에서 언급한 <미생>의 장백기의 “저는 아직도 장그래 씨의 시간과 제 시간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는 말 뒤에 다음 말이 이어지는 것처럼….

    “그래도 내일 봅시다.”

    오찬호 작가는 다음 책으로 컴퍼니가 된 대학의 묵시록이라고 설명될 수 있는 ‘진격의 대학교’라는 저서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론적 논의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에피소드가 발생하는지 살폈다고 한다.

    제6회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신간 논픽션 브리핑 따북’ 코너에서는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한티재/하승수)와 『십대 밑바닥 노동』(교육공통체 벗/ 배경내 외)가 소개되었고, ‘김현진의 라디오 에세이’에서는 김현진 작가가 생각하는 ‘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논픽션 작가 열전’에서는 ‘귄터 발라프’를, ‘내 인생의 밑줄쫙 별표 땡땡’ 코너에서는 백은주가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을 소개한다.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듣기 ☞ http://www.podbbang.com/ch/8412

    필자소개
    자연인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