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뇌에서 '양심'을 본 적은 없다"
        2012년 07월 11일 10:1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국내에서 아는 사람은 없겠지만, 쏘련 초기에 보이노-야세네츠키 (Войно-Ясенецкий, 1877-1961)라는 꽤 재미있는 종교 활동가 및 의료전문가가 살았습니다.

    마취 그리고 염증 전공의 외과의학 전문가로서 이미 1920년대에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의학만으로 뜻하는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없어 일찌감치 종교에도 투신해 나중에 몇 군데에서 정교회 주교직을 맡아 수행했습니다.

    그와 쏘련 권력층의 관계는 상당히 재미있었고, “종교 탄업 국가 쏘련”이라는 우리들의 고정적 이미지와 잘 맞지도 않습니다.

    일면으로 그는 도합 11년간 유배생활을 하는 등 상당한 고초도 겪었지만, 또 일면으로는 그의 의학적 공로에 의해서 그가 1946년에 스딸린상을 수상하는 등 실은 공인된 ‘권위자”이기도 했습니다.

    40년대 후반에 “남조선에서의 인민들의 의지에 대한 미제의 신식민주의적 폭력”을 규탄하는 등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을 취한 그는, 사실 많은 면에서 기독교 사회주의자에 가까웠고, “노동자 정부” 그 자체를 반대하지도 않았고 단 스딸린주의적 종교정책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죠.

    보이노-야세네츠키

    하여간, 정교회와 볼셰비키들의 관계가 혁명 초기부터 좋지 않았고 보이노-야세네츠키 개인에 대해 “붉은 군대 상이병들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다”는 오해도 있고 해서, 그가 1921년에 한 번 “혁명 재판”을 받은 적은 있었습니다. 검사가 그에게 “사람을 수술하는 당신, 도대체 하나님을 그 안에서 봤느냐? 못봤다면 왜 하나님을 믿느냐”고 묻자, 보이노-야세네츠키는 왈:

    “나는 인간의 뇌를 많이 수술했다. 한데 나는 그 안에서는 물질적 ‘지능’을 본 적은 없다. 그리고는, ‘양심’도 그 어디에서도 못봤다”.

    그는 그 때에 무사히 풀려났지만, 그후에도 1930년대말까지 쏘련 정권과 이런저런 트로블이 있었습니다. 한데, 스딸린상을 크렘린궁에서 받았을 때에도 고집스럽게 신부복을 입고 갔던 그의 신념을, 그가 한번도 포기한 적은 없었고, 실은 쏘련당국이 그에게 신념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단, 그 신념이 “반동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것을 (별 근거없이) 우려했던 거죠.

    그러면, 인간의 뇌 속에서 지난 세기의 가장 위대했던 한 외과의사가 보지 못했다는 그 ‘양심’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요? 저는, 맹자의 설대로 양심의 뿌리는 선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을 좋아하게 돼 있고 아픔과 죽음을 두려워하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 누구나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의 일체감을 어느 정도 느끼니까 자신의 아픔과 죽음 뿐만 아니라 남의 아픔과 죽음도 절대 바라지 않을 만큼의 “착한 뿌리”(善根)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는 건 바로 이것입니다. “불성”의 요체는 바로 남의 아픔과 죽음을 자신의 아픔과 죽음 만큼이나 기슴아프게 여기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렇다면, 파쇼들의 수용소에서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을 대량학살해놓고 안락하게 모차르트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셨던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그건 너무나 극단적인 사례지만, ‘양심’의 완전한 파괴의 경우들을 우리가 가까이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병이 많고 운동하기 어려운 직장인 아저씨를 “실적이 나쁘다”고 하여 해병캠프에 억지로 보낸 상사들 은 과연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들인가요 (참, “실적이 나쁘다”고 해서 자기 개선하라고 군부대로 보낸다는 그 군국주의적 발상은 끔찍하지 않는가요? 이건 정말 나치 독일의 수준이 아닌가요?)? 아이들이 “공부”를 못한다 싶으면 그들을 때리고 “노예”, “천민” 등으로 분류해 끔찍한 자기비하 의식을 주입시킨  선생님과 그런 행위를 두둔해주고 방치해온 학교는 도대체 어떻게 된것인가요?

    과거의 섬뜩한 시절로 가지 않아도, 우리 주위에서도 ‘양심’이 완전히 상실되어지는 경우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양심’의 빈 자리를 “군대에서 며칠 지내보면 명령을 정확하게 실행하는 진정한 사나이가 되겠다”는 군사주의적 신념과, “인간은 그 교환가치일 뿐이다. 교환가치를 ‘업적’, ‘실적’이 만든다’는 법칙을 초교생들에게까지 적용해 그들을 업적주의적 규율에 순치시키는 끔찍한 성공주의와 훈육주의의 결합이 그대로 점하게 됩니다. 도대체 이 반인륜적 체제의 “나사”가 되겠다고 자임하는 인간들의 ‘양심’이, 어디로 도망친 것인가요?

    ‘양심’은, “도망친” 일은 없습니다. ‘양심’의 뿌리야 태생적이지만, ‘양심’ 형성의 과정은 후천적이고 사회결정적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양심’은, 그 뿌리는 어떻든간에, 궁극적으로 사회적 현상입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 사람의 입장에서는 과부가 재혼하지 않는 일이라든가, 여자 노비가 자기 아이에게 젖을 주지 않고 굶겨 죽이더라도 주인의 아이에게 젖가슴을 빨게 해주어 잘 키운다는 것은 ‘양심’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입장에서야 전자는 무의미하고 후자는 범죄적이지만 말입니다. 고대 희랍인들의 ‘양심’에 노에제가 전혀 거슬리지 않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 사회화 과정이라는 것은, 태생적 ‘양심’을 밟아버리는 과정입니다.

    남한 아이들이 사회화 과정에서는 “노력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다. 낙오자는 불쌍하지만, 자업자득일 뿐이다”라는 시장적 업적주의의 금과옥조를 완벽하게 익히잖아요. 그런 그들은, 나중에 노숙자를 보더라도, 노숙자들을 양산하는 사회가 범죄적인 사회라는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노력을 안한 사람인가 보다”라고 하여 무심히 지나갑니다.

    고대 희랍인들이 노예들을 보면 “운명의 여신이 그렇게 점져주었나 보다. 노예는 태생적으로 자유인과 다르다”라고 생각했듯이 말입니다.

    태생적인 측은지심, 남의 아픔에 대한 공감의 능력이 밟혀 죽고, 그 대신에 예컨대 국민국가의/자본주의적 “기회균등”에 대한 시비지심은 ‘양심’의 자리를 점거하게 됩니다. 평균적인 남한인은 용산참사보다 권력층 자녀들의 병역비리에 훨씬 더 분노합니다.

    “성공”을 다투는 “출세”의 시장바닥에서 누군가가 자신이나 자신의 자녀보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아 더 유력한 출발선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승자독식 우승열패의 정글에서의 심각한 ‘반칙’입니다.

    그런데 민중들을 억압, 탄압하는 전,의경으로 차출 될 수도 있고, 잘못하면 미 제국의 대북, 대중 침략에서 총알받이로 이용될 수도 있는 “군대”에 도대체 왜 가야 하는가 라는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은 거의 원천적으로 밟혀 죽어버린 듯합니다.

    나치들이 공산주의자나 유대인, 슬라브인들을 죽이는 일을 “비양심적”이라고 보지 않았듯이, 우리가 “우리 나라”와 그 기둥서방 격인 미 제국을 위한 살인 내지 살인준비를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이 기형적인 사회의 병리들을 아파하고 문제시하는 ‘양심’의 소유자가 나타난다는 것은 실은 예외, 어쩌면 기적에 가깝습니다. 사회화 과정에서는 사회화 대상자가 남에 대한 측은지심, 배려심을 버리도록 압박하려고, 이 사회가 총력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남한 대학에 진학하는 탈북자들이 가장 경악하는 대목은 뭔지 아십니까? 북조선이나 중국, 쏘련 학생들과 달리 남한 학생들이 죽어도 자기 노트를 빌려주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입니다. 정상적인, 즉 자본주의적인 경쟁의식 내면화 과정이 아직 남한처럼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의 출신으로서, 조직생활의 제일 원칙이 상사에 대한 경쟁적인 아부와 비교적 약한 구성원의 따돌리기, 괴롭히기가 되는 남한 사회는 실은 “사회”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건 “사회”라기보다는 야수화된 개인들의 기계적 조합에 더 가깝습니다. 한데 우리에게는 이건 정상, 우리가 유일하게 아는 현실입니다. 나치 독일의 “정상적” 독일인 시민이 쏘련이나 폴란드에서 징용 당해 끌려온 Ostarbeiter (“동쪽으로부터의 노동자”)에게 “일이 어렵지 않냐”고 걱정해주고 묻지 않았듯이, 서울의 여느 식당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고생하는 연변 아주머니에게 우리가 “삶이 힘들지 않냐”고 보통 묻지 않죠. 수십만의 외국으로부터의 “유사 노예”들이 우리 삶을 더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우리에게 당연지사입니다.

    업적주의적이다 싶은 세계질서에서 저들의 출신국들이 우리에 비해 낙오자로 인식되니까요. 아, 우리들의 진실된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은, 이미 사회화 과정에서 그냥 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양심의 눈이 멀어야 이 지옥에서 남부럽지 않게 잘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의 시체들을 밟아 올라가서요.

    * 약기운으로 머리가 멍해 더이상 쓰기가 힘들어요. 특히 남한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받아야 하는 반인간적 훈육, 그리고 그들이 참아 내야 하는 학습노동의 양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 어떤 다른 생각도 못하게 됩니다. 도대체 그 인체실험들은 다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필자소개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