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치우다 우주전쟁 벌어져
    [그림책 이야기]『눈행성』(김고은 / 책읽는곰)
        2015년 01월 21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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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밤처럼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눈이 옵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따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것은 오늘이 처음일 것 같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 눈이 제법 쌓였습니다. 사람들이 생활하는 데는 조금 불편하겠지만 이제야 겨울이 겨울답습니다.

    『눈행성』은 오늘처럼 눈이 많이 내린 날의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독특하게도 속표지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보통은 표지나 면지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참 신기한 구성입니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좁은길 20호 김씨 아저씨와 좁은길 21호 이씨 아저씨는 골목에서 눈을 치우다가 서로 어디까지 눈을 치울 것인가를 두고 다투게 됩니다. 그러다 자를 가져와 측정한 끝에 김씨 아저씨가 80센티미터를, 그리고 이씨 아저씨가 1미터 40센티미터를 더 치우기로 합의합니다.

    그런데 눈을 치우다보니 두 사람 모두 너무 피곤합니다. 귀찮아진 김씨 아저씨가 눈덩이를 슬쩍 굴립니다. 그 모습을 본 이씨 아저씨도 눈덩이를 굴립니다.

    눈덩이는 곧 코끼리 머리통만큼 커집니다. 눈덩이가 너무 커지자 당황한 이씨 아저씨는 발끝으로 눈덩이를 밀어냅니다. 김씨 아저씨도 커져버린 자기 눈덩이를 무릎으로 밀어냅니다. 두 개의 눈덩이는 데굴데굴 구르다 하나로 합쳐지더니 점점 더 커집니다. 사람들은 이 거대한 눈덩이를 눈행성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눈행성은 순식간에 온 세상을 공포와 혼란에 빠뜨립니다. 과연 인류는 이 거대한 눈행성 때문에 종말을 맞게 될까요?

    눈행성

    김고은 표 유머, 김고은 표 상상력

    ‘과연 인류는 이 거대한 눈행성 때문에 종말을 맞게 될까요?’ 제가 이 문장을 쓰면서 혼자 얼마나 키득거렸는지 여러분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눈덩이때문에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니!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상상에 대해 진지하게 서평을 쓰고 있자니 지금도 입에서 킬킬킬 웃음이 새어나옵니다.

    김고은 작가는 이미 전작 『딸꾹질』에서 시시콜콜하면서도 독특한 메디컬 유머로 독자들을 키득키득 웃게 만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눈행성이라는 엄청난 스케일의 상상력으로 독자들을 웃음바다에 빠뜨립니다.

    작가가 보여주는, 명랑만화 스타일의 그림에 대해서는 독자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평범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유쾌한 캐릭터들에게는 모두 찬사를 보낼 것입니다. 또한 간판과 자막 등 소소한 텍스트에도 재미를 불어 넣는 특급 디테일 때문에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김고은 작가의 탁월한 재능인 우스꽝스럽고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흥미진진하며 저돌적인 상상력에는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게 될 것입니다.

    『눈행성』에서 보여준 상상의 추진력은 김고은 작가의 미래에 더욱 기대를 걸게 만듭니다. 그녀의 상상력에는 불가능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눈덩이를 우주로 보낼 수 있는 작가가 할 수 없는 상상이 있을까요? 분명 김고은 작가는 앞으로 더욱 어처구니없는 상상으로 독자들을 더없이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한마디로 『눈행성』은 김고은 표 유머, 김고은 표 캐릭터, 김고은 표 언어유희, 김고은 표 드라마, 김고은 표 상상 등 김고은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가득 차있습니다.

    김고은 표 감동

    제가 김고은 작가의 팬이 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바로 김고은 표 감동입니다.

    김고은 작가는 대놓고 웃깁니다. 그야말로 그림책 분야의 찰리 채플린입니다. 캐릭터도 웃기고 말도 웃기고 기발한 상상조차 웃깁니다. 그런데 보고나면 가슴이 찌릿찌릿하고 마음이 훈훈합니다. 마치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처럼 독자들은 페이소스를 느끼게 됩니다.

    특히 『눈행성』의 마지막 장면은 100점 만점에 100점을 주고 싶을 만큼 아름답고 환상적입니다. 이 장면이 아니었다면 제 마음이 이 정도로 출렁거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장면이 바로 김고은 표 감동의 실체입니다.

    『눈행성』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습니다. 어른이 된 두 어린이의 머리 위로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두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해맑게 웃고 있지요. 『눈행성』을 본 독자들은 이 장면에서 가슴이 전기충격을 받은 듯 찌릿찌릿할 것입니다.

    또한 이 장면은 ‘내 집 앞 눈 치우기’에서 ‘우주 전쟁’으로 비화된 거대한 코미디가 감동의 드라마로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이 장면 때문에 우리는 방금 본 그림책 『눈행성』을 처음부터 다시 펼쳐 보게 됩니다.

    좁은길 20호 아저씨와 좁은길 21호 아저씨가 왜 싸우게 되었는지, 왜 눈덩이를 만들게 되었는지, 눈덩이가 왜 눈행성이 되었는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됩니다. 그리고 묻게 됩니다. 누가 이 세상에 재앙을 가져왔는지, 또 누가 이 세상을 재앙으로부터 구할 것인지… 생각하고, 생각하고 마침내 깨닫게 됩니다.

    독자로 하여금 보는 내내 킬킬거리며 웃게 만드는 그림책. 그렇게 웃다가, 웃다가, 또 웃다가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게 만드는 그림책. 그때부터 자꾸만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책. 그러다 어느새 마음이 훈훈해지는 그림책. 바로 『눈행성』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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