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철이 젊은 벗들에게
    [노동당 당 대표선거] 기호1번 나경채 후보를 지지하며
        2015년 01월 15일 05:13 오후

    Print Friendly

    지금 노동당의 당 대표 선거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당 대표 후보인 나경채, 윤현식, 나도원 후보들에게 지지의 글 기고를 요청했다. 이 글은 나경채 후보를 지지하는 노동당 전 부대표 김종철씨의 글이다. 다른 후보들의 지지 글 또한 들어오는 대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 윤현식 후보를 지지하는 최창식 당원의 글 링크

    * 나도원 후보를 지지하는 용혜인 당원의 글 링크
    ——————-

    나경채

    나경채 노동당 대표 후보

    1.

    이 글은 매우 긴 글입니다. 그러니 인내심이 없는 분은 애초에…

    2.

    지금 노동당에서 당직선거를 계기로 진보정치 재편에 관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경채 후보를 위시하여 저를 포함한 한 무리가 그런 주장을 하고 있고, 또 다른 후보와 당원들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지요. 진보재편이나 진보결집보다는 당의 ‘독자적’ 전망에 애착이 있는, 특히 젊은 당원들의 고민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제 제가 젊은 동지들을 만났을 때도 그런 얘기를 한 분이 많았고, 간혹 여기저기 보이는 글에는 안타깝고 분하고 슬픈 감정들이 묻어나옵니다. 연유야 어찌됐든 미안합니다. 당을 이끌어온 사람의 한 명으로서 그간 진보정당 운동을 제대로 해왔다면 이렇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3.

    10697, 8597, 6959, 5560. 이 숫자는 지난 2010년 말 조승수 대표를 선출할 때부터, 홍세화 대표, 이용길 대표, 그리고 이번 대표선거까지 매 선거에서의 당권자 수 변화입니다. 4년 만에 거의 반토막이 돼 버렸고, 지난번 선거와 비교해도 1400명이 줄어든 수치입니다. 선거를 할 때마다 20%씩 당권자가 줄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을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저 당권자수 변화가 보여주듯 우리는 침체를 향해 확실히 접어들었고, 이 상태로라면 이 추세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4.

    잠시 시간을 돌려 제가 진보정당에 상근을 시작할 때의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회운동을 하고자, 1999년 1월부터 국민승리21(민노당의 전신) 상근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만 16년이 됐네요.

    처음에 사무실에 나갔을 때는 매주 3만원씩을 받았습니다. 점심값을 별도로 받았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대략 한 달에 14만원 정도를 가지고 생활한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이 저는 당시 갓 결혼한 아내가 직장에서 벌어오는 돈으로 가정을 꾸려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다행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기를 거의 1년, 당원이 그래도 조금씩 늘어서 활동비가 50만원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생활하기가 어려웠지요. 결국 저를 지지하거나, 아니면 인간적으로 아끼는 친구들과 선후배에게 후원을 부탁하였고, 소액이나마 그 후원이 오늘까지 제가 활동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지인들을 두었다는 것은 제게 물질적으로는 큰 힘이 됐지만, 정신적으로는 너무나 고통스런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진보정치 활동가가 살아가는 데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연히도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던 때가 대략 31세-32세 즈음이었습니다. 즉,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나오는 고민, 활동가와 생활인의 경계에서 해야 했던 고통스런 선택이 저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급적 어려운 판단을 해야 할 때 ‘서른 두 살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제 신조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이상과 현실을 조화롭게 바라보자는 저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왜 사람이 나이가 들면 소위 ‘조급증’이라는 게 생기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 당원들 사이에서 선배당원들의 조급증이 얘기가 많이 되지요. 조급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저 같은 사람이 여러분보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이제 빨리빨리 뭔가를 이뤄보려고 해서 생기는 문제, 또는 운동을 더 길게 보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어찌 보면 ‘이대로 가다가는 지금의 젊은 당원들이 어떤 미래를 맞게 될지 예상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5.

    제가 속했던 민주노동당은 비록 창당 첫해인 2000년 총선에서는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등록이 취소됐지만, 취소된 다음 달에 바로 재등록을 할 정도로 기세가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 당원 수는 1만 명이 훨씬 넘었고, 총선 실패에도 불구하고 당원들이 속속 가입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울산 북구에서 민노당 후보가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이다가 낙선했던 그날 밤, 당 홈페이지에는 하룻밤에만 1천개가 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모두가 눈물과 탄식의 글이었지요. 그때 당 게시판에 올라온 하나의 글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나는 돌아가겠다. 내 사랑하는 동지들이 지키고 있는 당으로. 현실에 찌들어 하루하루를 살면서 이미 모든 운동이 끝났구나 생각했을 때, 나와는 달리 아직도 이 진보정치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들이 지켜왔던 그곳으로.. 오늘 나는 돌아간다’는 말로 끝을 맺는 입당의 변이었습니다.

    총선에 실패했는데도 오히려 점점 많은 사람들이 합류했던 당, 그것이 민주노동당이었습니다. 또한, 민노당은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걸출한 지도자인 권영길 대표를 중심으로 수많은 활동가들이 있었습니다. 당 창당에 기여한 좌파활동가들도 있었지만, 나중에 합류한 NL활동가들도 엄청나게 많았기에 활동력이 정말 강했지요.

    물론, 더욱 중요한 것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아래서도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았던 수많은 노동자, 민중들이 민노당에 거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를 부를 수 있는 용어가 있다면, ‘비록 지금은 작지만 희망과 비전이 있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희망과 비전이 있다면 지금 아무리 작은 당을 하더라도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극복되기 때문입니다.

    창당 2년 후인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노당은 처음 도입된 정당명부제의 혜택으로 전국 8%를 득표했고, 그 유명한 2004년 총선에서는 모두 열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였습니다. ‘내 생전에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만 보면 소원이 없겠다’던 어떤 분의 말씀이 단숨에 열배로 실현이 된 것이지요. 어찌 보면 희망의 나날들이었지요.

    6.

    그러나, 당시 총선은 불완전한 승리였습니다. 그것은 지역에서 우리가 거둔 성과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04년, 열 명의 국회의원 당선은 정당득표 13%에 따른 비례대표 8명 당선의 결과였지, 지역구로는 창원과 울산 두 석 당선이라는 초라한 성적에 불과했습니다.

    이를 왜 초라한 성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가 하면, 이 두 지역구는 이미 2000년 총선에서도 당선문턱에 다다랐던 지역구였기 때문입니다. 민노당은 4년을 더 투자해서 이미 4년 전에 당선될 수도 있었던 지역구에 어렵게 당선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전국에는 아직도, 도대체 몇 년을 투자해야 가능성이 보일지 알 수 없는 지역구가 240여개 더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뭐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려울 것 같군요.

    그래도 민노당은 그 어려운 지역활동에서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여실히 제3당의 지위를 점하고 있었고, 대중은 우리들의 말을 들을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전국 지구당에는 많은 상근 활동가들이 있었으며, 제가 연수원장 시절 1박 2일로 전국을 순회하며 개최했던 열성당원 연수에는 1천2백 명이 넘는 당원들이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30명이 넘는 정책위원들은 정책개발과 별개로 당원교육에도 강사로 나섰는데, 자기 분야별로 당원교육 교안을 개발했고, 스타강사도 만들어졌지요.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뿌듯한 나날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역동적인 모습은 제2당을 교체할 가능성이 있는 제3당에게 주어진 특권 같은 것이었습니다. 비록 이후에 벌어진 갈등과 분란 속에서 그 추억은 모두 사라졌지만요.

    7.

    이제 안타깝지만 우리의 지금을 돌아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당의 현실은 모두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더 할 나위 없이 어렵다’는 말 외에 더 부연하지는 않겠습니다. 왜 이렇게 어려워졌을까요. 누구는 우리가 아직 뭔가를 해보지도 않아서라는 얘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 당원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해왔고 영세상인들의 권리를 지켜왔습니다, 지역에서는 민중의 집을 만들었으며, 방사능안전급식조례제정 운동과 지역공동체 건설사업에도 매진했습니다. 청년당원들은 알바노조에서, 청년유니온에서 청년들을 조직했으며, ‘안녕들 하십니까’ 운동과 ‘가만히 있으라’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렇듯 수많은 모범적 활동을 두고 우리가 무엇인가 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또한, ‘당이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맨날 통합에만 골몰해서 안 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는 가장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런 얘기가 대부분 그렇듯이 전혀 사실이 아닌 주장입니다.

    생각을 잠깐 해볼까요? 2011년 9월의 당 지도부 탈당 사태 이후에 우리는 2012년 총선과 2012년 대선, 그리고 2014년의 전국동시지방선거와 중간중간 있었던 보궐선거까지, 독자적인 힘으로 수많은 선거를 치른 전국조직입니다.

    3년이 넘는 이 기나긴 기간 동안 우리 당이 통합-독자 논쟁 때문에 벌이지 못한 사업이 있었나요? 전국 시도당이나 당협에서 통합 문제가 운영위 안건으로 올라와서 분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다른 사업이 유야무야된 경우가 있었을까요?

    제가 몸담고 있는 동작당협, 아니 전국 어느 당협에서도 이런 토론 때문에 당이 갈등을 겪고, 그것 때문에 할 일을 못했던 적은 없습니다. 솔직히 더 괴로운 것은 운영위라도 개최되는 당협이라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왜 지역과 현장과 부문에서, 다른 어느 당보다도 열성적으로 활동한 우리 당원들이 있는데, 우리 당은 이렇게 계속 축소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지금부터 결의를 다지면 충분히 할 수 있다’거나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보자’는 것은 너무도 안이한 것입니다.

    지금 새로운 대안을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진보정치 10년의 성찰과 전망’, ‘당 발전전망 보고서’ 등 수많은 문서가 이미 있습니다. 지금 대표 후보 공약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은 성찰적 내용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토론으로 정리가 돼 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내용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고, 그것이 왜 당에 의해서 수행될 수가 없었는가, 또는 나름 수행돼 왔음에도 당이 이렇게 어려움에 처했는가 하는 이유를 마주해야 할 때입니다.

    8.

    제 생각에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가장 큰 원인은 상처를 받은 우리가 서서히 일어서야 할 그 장소가, 단단한 땅이 아니라 아래로 점점 빠져 들어가는 늪이기 때문입니다. 힘차게 일어서기 위해 손을 짚었는데 그곳이 땅이 아니라 늪이라면 일어나기가 너무도 어려운 것이죠.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지요. 사업을 하려고 해도 밑천이 있어야 하는데 원래 가진 것도 없고, 대출마저 불가능하다면 과연 어느 누가 일어설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가 있는 현실, 정당이 딛고 일어서야 할 가장 중요한 토대인 정치현실과 정치구도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당장 어렸을 적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보십시오. 노동당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입니다.

    이 구조를 바꿔내기 위해서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재편과 결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토론이 나름 질서정연하게 진행돼 왔기 때문에 지금 논쟁은 재편에 무조건 반대한다는 것보다는, 우리가 진보재편-진보결집을 했을 때 새로운 정당에서 우리의 내용을 지킬 수 있느냐에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실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우리 당 밖의 진보정치 세력들이 그렇게 퇴행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정의당의 7대 강령을 보셨는지 모르겠군요. 경제민주주의 실현, 노동가치 존중으로 시작해, 근본적 정치개혁으로 끝나는 정의당의 7대 강령은 우리 당의 것과 거의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의당도 당원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요.

    또한, 국민모임이 하나의 흐름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민모임이 저희가 제안한 ‘진보결집의 원칙과 기준’에 동의하고, 진보정당의 독자적 성장과 당원민주주의를 지켜나가겠다고 하면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보주의자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9.

    이제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드려야겠군요. 요즘 우리 당에 입당하는 젊은 당원들이 많습니다. 그게 우리 당의 매력이자 자산이지요. 정의당보다는 더 원칙적이고, 녹색당보다는 현실 정치에 더 천착하며, 실천과 연대에서도 게으르지 않은 우리 당원들의 모습을 보고 많은 젊은 분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입당한 당원들에게 우리 당은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구태여 이 많은 정당 중에서 우리 노동당을 찾아준 당원들에게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비난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입당원이 들어오는 다른 한편에 우리를 떠나는 또 다른 많은 당원들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그런 분들이 훨씬 많아서 우리 당은 2년 전보다 1400명의 당원이 줄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떠나간 그들 역시 우리가 함께 책임져야 했던 당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수차례 당의 부침 속에서도 지금까지 당의 역사를 함께 해 주었고, 그들의 상당수는 지금의 여러분들처럼 한때는 청년당원들이었답니다.

    저는 오히려 우리 당에서 미래를 개척하고자 하는 젊은 당원들을 위해서라도 진보결집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 이 추세대로 나아간다면 우리 당의 토대가 붕괴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제가 아끼는 청년당원 한 동지가 당 상근을 그만 두고 다른 생업전선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역시 저를 믿었지만, 이번 과정에서 저에게 많은 실망을 했지요. 그는 비록 상근을 그만 두었지만 여전히 우리 당의 가치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당을 키우고자 하는 열정이 남다릅니다. 그러나 이 상태가 지속되면 또 다른 누군가가 다시 생업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현실이 될 것입니다. 15년 전의 저 역시, 후원을 해줄 수 있는 지인이 없었다면, 그리고 당원들이 모여드는 당이 아니었다면 당 활동을 그만 두고 누군가 저 대신 당에서 상근하며 고생하는데 마음의 빚을 지며 살아갔을 테지요.

    진보결집은 그렇게 두려운 괴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 하고자 하는 일을 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면서 하자는 것이고 우리 실력으로 새로운 진보결집 정당을 주도해나가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노동당 정신을 더욱 잘 보존하고 키워나가는 것임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젊은 벗들에게 이 뜻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필자소개
    노동당 전 부대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