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모임, 정동영
    그리고 진보정당들과 2015년
        2015년 01월 15일 02: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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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24일 ‘국민모임’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촉구하는 105인 국민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의 요지는 ‘새정치연합 불가론’과 ‘기존 진보정당 역부족론’이며 그래서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1월 15일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진보의 힘을 모아 ‘더 큰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야권의 혁신과 재편을 모색하여 정권교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현실 진보정당인 노동당은 현재 당 대표단 선거가 진행 중인데, 그 선거의 핵심 이슈가 ‘진보정치의 결집과 재편’을 둘러싼 것이며 찬반 진영이 후보로 나서 뜨거운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작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정당 해산 결정을 당한 통합진보당은 정당해산 결정에 대한 대중적 비판과 실천 활동을 전개하는 것과 별개로 향후의 조직 진로를 둘러싸고 내부적으로 고민 중이다.

    또한 진보진영의 가장 큰 조직의 하나인 민주노총은 한상균 위원장이 이끄는 새로운 집행부가 직선제를 통해 구성되어 임기를 시작했다. 한상균 집행부는 노동자계급정당을 추진하며 정의당, 노동당 등의 기존 진보정당들과는 거리를 두는 입장에 서 있으며 이전 민주노총이 추진해왔던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과의 배타적 관계를 모색했던 정치방침과도 거리를 두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1월 11일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자 2007년 그 당의 대통령 후보를 역임한 정동영 전 의원이 탈당을 선언하며 국민모임의 신당 추진에 합류하겠다고 밝혔고, 국민모임은 1월 12일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개최한 대토론회를 시작으로 부산, 광주 등에서 대토론회를 열고 ‘야권교체 없이 정권교체 없다’는 기조로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창당 추진을 더욱 가속화하겠다는 일정을 밝히고 있다. 신당추진위원회도 별도 구성했다.

    2015년 연초부터 정동영 고문의 탈당과 국민모임의 신당 추진 선언으로 야권와 진보정치권에서는 격랑이 이는 분위기이다. 그 격랑의 방아쇠를 누가 당겼는지의 문제와는 별개로, 그것이 의미 있는 진보정당의 재편과 재구성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격랑의 현재에 대한 질문 “당신들의 입장은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은 비껴갈 수 없다. 그 대답들이 서로 다를 수는 있지만 대답은 해야 한다.

    국민모임 토론회

    1월 12일 국민모임 토론회 모습

    정동영은 반 신자유주의자인가?

    정동영의 탈당은 당연히 민주당-새정치연합으로 이어져 온 제1야당의 내부에서 적지 않은 파열음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현역 의원 중 동반 탈당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는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비아냥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비아냥은 ‘현역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중심이라는 새정치연합 정치관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낼 뿐이었다.

    새정치연합의 무능함과 무력함, 박근혜 정권에 대한 투쟁성의 부재는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소위 저자거리의 민심은 새정치연합이 박근혜 정권의 대안이 될 능력도, 의지도, 내용도 없다는 것이며, 정동영의 탈당은 이러한 저자거리의 민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정동영과 그의 그룹은 더 대답을 해야 한다. 새정치연합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의 정당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나? 과거의 꼬마 민주당과 같은 제1야당에서 파생한 유사 정당을 모색하는 것인가? 아니면 새정치연합도 자유로울 수 없는 신자유주의와 분명하게 단절한 진보정치의 길을 걸을 것인가?

    또 물어야 한다. 누구와 함께 그 진보정치의 길을 모색하고 추진할 것인가? 정동영 고문은 몇 년 전부터 정치는 누구를 대변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며 한국사회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영세 자영업자와 같은, 땀 흘리며 일하지만 그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대중들을 대변하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탈당과 이후의 새로운 모색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와 주체를 노동자 대중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그들을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의 가장 중요한 주체이자 대변해야 할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의 행보와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아직 우리는 그의 비전과 철학을 보지 못했다. 그가 몇 년 동안 보여주었던 ‘진정성’도 정치의 중요한 덕목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이며, 누구와 그 길을 갈 것인가에 대한 비전과 철학의 문제이다.

    원로 중심의 국민모임이 해야 할 과제는?

    국민모임은 새정치연합으로는 마르지 않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으며 사분오열된 진보정당들로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대안 세력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단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진단으로는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는다. 진단이 적절한 처방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진전하는 것이다.

    국민모임이 비록 신당 추진을 모색하고 지원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국민모임은 소위 재야의 원로 중심, 지식인 중심이라는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고, 또 정동영 탈당이라는 사건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다는 비판적 지적들도 적지 않다.

    즉 새로운 신당을 모색한다고 했지만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새롭고 미래 지향적인 인물의 제시, 누구를 대변하고 대표할 것인가에 대한 지지기반과 그 조직화의 문제, 새로운 진보의 비전이 무엇이냐에 대해 국민모임은 아직 대답하고 있지 못하다.

    원로와 지식인 중심이라는 것은 한계이지만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원로와 지식인 중심으로 대안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국민모임과 신당추진위원회는 현실의 진보정당들과 정동영 등 새정치연합의 탈당파들, 그리고 2030세대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새로운 진보적 신당을 만들어가는 서로 다르지만 함께 해야 할 주체로 호명하고 조정하고 묶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럴 때 원로와 지식인 중심이라는 한계는 한계가 아니라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모임 신당추진위원회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며 새로운 신당이 담아야 할 내용, ‘새정치연합 불가론’을 넘어서 ‘새로운 진보적 신당 긍정론’을 확산시키는 진앙지가 되어야 한다. 과거의 원로들이 미래의 새로운 정치 주체들을 발굴하고 앞세우는 조직가가 되어야 한다. 진보정치에 실망하여 관망하거나 냉소하고 있는 전국 곳곳의 진보 인사와 시민사회를 다시 일으키고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의당과 노동당 등 현실 진보정당의 선택은?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이 분당했고, 또 그 일부 세력들이 합쳐서 통합진보당이 만들어졌고 진보신당은 노동당으로 명칭 변경하여 별도로 존재하고 녹색당이 새롭게 창당되었다. 통합진보당은 소위 비례대표 부정부실선거 사태와 중앙위 폭력사건으로 또다시 분당되었고 정의당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남은 통합진보당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정당으로 규정되어 강제 해산을 당했다.

    오랜 시간이 아니다. 길게는 7년, 짧게는 3, 4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국민들에게 진보정당은 새누리-새정치의 양당 정치에 대한 대안세력이자 의미 있고 신선한 정책들을 제시한 신흥 정치세력이었지만 이제 그 기억은 바래지고 분열과 갈등의 정치집단으로 기억된다.

    또 정권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소위 ‘종북주의’ 마녀사냥으로 ‘종북’이라는 딱지가 통합진보당이나 이석기 세력만이 아니라 전체 진보정치에게도 새겨졌다.

    이렇게 어려워지고 정치적 존재감이 극도로 축소된 상황에서도 진보정당들은 나름의 치열한 실천과 노동자 투쟁 등에 연대활동을 해왔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과 대안 정책들을 제시하면서 한국사회의 좌파적 진보적 개조를 위한 세력으로서 버텨왔다.

    개별 지식인이나 정치그룹이 아니라 한국의 정당구조에서 새누리-새정치의 양당 구조에 흡수되지 않고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신자유주의가 아닌 평등하고 생태 친화적인 복지국가의 전망을 말하고 실천해왔던 정당들이다. 그 유의미함은 계승되고 확장되어야 한다.

    정당은 본질적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고자 하며 그 지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조직이다. 자기 비전과 철학과 노선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그래서 정당은 끊임없이 나의 지지기반을 확인하고, 이를 확장 확대하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의 재편 국면에 대한 현실 진보정당의 태도는 이 과정에서 우리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확장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재편에 찬성하고 적극적인 것이 노선과 대중 지지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길인지, 재편에 반대하고 독자 정립하는 것이 노선과 대중 지지를 유지하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가장 1차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2015년 진보의 미래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고 노동 존중의 대한민국,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가 아니라 노동자 프렌들리(Labour Friendly)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새정치연합을 이탈한 진보세력들, 국민모임 등의 재야와 사회운동의 진보인사들,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을 추진하고 있는 노동정치연대 그리고 사민주의 지향의 정의당, 보다 좌파적인 노동당이 하나의 큰 울타리를 짓고 연합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2015년의 선택이 진보노선을 분명히 하면서 소수파 정당이 아닌 다수파 정당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은 험난하고 고단할 것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세력들의 의기투합에는 긍정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긴장과 갈등, 격렬한 논쟁이 동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연합된 새 진보정당은 보다 사민주의적인, 보다 사회주의적인, 보다 복지지향적인, 보다 생태지향적인 진보노선을 추진하는 세력들이 함께 동거하면서 경쟁하고 협력하는 조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진보의 DNA에는 다양성과 차이의 존중이 있다. 다양성을 하나로 통일하려고 할 때, 또는 다양성을 무규율과 무정부의 혼란으로 이해할 때 과거에 그랬듯이 사단이 생기고 편향과 문제점들이 확대되기 마련이다. 과거의 아프고 실패한 경험이 미래를 긍정하게 만드는 하나의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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