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산 인질사건, 그 과정을 보며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참담한 위기대응의 민낯을 보며
        2015년 01월 14일 02: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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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3일 경기도 안산시 본오동에서는, 별거 중인 부인을 불러 달라며 의붓딸 등을 인질로 잡고 5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하던 40대가 흉기를 휘둘러 부인의 전 남편과 의붓딸 등 2명을 살해한 참담한 사건이 발생했다.

    며칠 전 발생한 “40대 가장에 의한 서초동 세 모녀 살해사건”과 함께 우리 사회와 우리 가족이 점점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생각에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밤새 심란했다.

    그런데, 이에 더해 오늘(14일) 아침, 안산 인질사건에서 위기(인질) 협상을 담당했던 이 모 교수라는 사람이 (연합뉴스TV ‘뉴스 브런치’) 방송에 출연해서 쏟아낸 당시 사건 처리 상황에 대한 말들이 필자를 더욱 심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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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 본오동 인질사건 방송화면

    여타의 과정을 떠나서 결과적으로 인질 4명 중 2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사건(그 중 한 명은 살릴 가능성이 있었던 상황)인데도, 본인이 협상을 담당했고 경찰대학 교수이며 경찰대학 위기협상연구센터장이라는 사람이,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 책임이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출연해서, 국민들과 언론에 대해 (인질사건 상황을 모른다고) 훈계를 하며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분노와 함께 우리나라 인질협상가라는 사람의 수준이 저 정도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의 말은 결과적으로 4명 중에서 2명의 생명을 구했는데 왜 경찰에게 욕을 하냐는 것이었고, 만약 조기에 강제 진입해서 작전을 펼쳤다면 더 큰 희생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주장에 일면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후 상황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그가 그런 주장을 하는 과정에서도 논리적으로 상황적으로 몇 가지 앞뒤가 맞지 않고 두리뭉실 넘어가는 부분들이 여럿 발견된다.

    먼저 이 교수는, 전화기 너머로 계속 인질인 큰 딸의 비명소리가 들려와서 작전을 펼칠 경우 큰 딸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작전 투입을 미뤘다고 한다. 즉 큰 딸이나 범인과 통화할 때 범인이 큰 딸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통화가 잠시 멈춰졌을 때는 어땠을까? 그 때도 칼을 들이대고 있었을까?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는 상황일 것이다. 즉 범인이 위협을 하는 상황인 것은 맞지만, 아니 어떤 인질사건에서 범인이 인질을 흉기 등으로 위협하지 않는 사건이 있는가?

    인질사건에서 언제나 인질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주장하듯이 딸의 비명소리 유무가 작전을 전개하고 전개하지 않고의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부분 상황에 전체 판단을 기댄 판단오류인 것이다.

    그리고 그도 말했듯이 이미 범인은 두 사람을 살해한 이후이다. 그보다 더 급박한 상황이 어디에 있는가? 이미 사람을 죽인 범인이 언제라도 다른 인질을 죽일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요행히 죽이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자기 행동의 정당성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음으로 그는 인질 중 한 사람인 전남편이 이미 죽었다는 점을 범인이 찍어서 보내준 사진을 통해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범인이 이미 그 전에 부인과의 통화에서 작은 딸을 흉기로 찔렀다고 했으니까 그 상황에서는 두 명은 이미 죽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나머지 두 명이라도 구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이 때 경찰이나 이 교수는 작은 딸이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미리 예단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는 큰 딸도 작은 딸이 이미 사망했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는 명확하지 않다. 즉 전 남편의 경우 시간이 이미 많이 지나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작은 딸의 경우 적어도 그 때까지도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즉 시간상으로 봐서 그 때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면 혹시라도 살릴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도 큰 충격을 받은 큰 딸에게 동생의 즉음에 대한 판단을 맡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판단이었다. 즉 이 지점이 전체적인 인질극에 대한 제대로 된 상황 파악에 있어서 미흡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볼 때, 이종화 교수의 주장과 달리 초기에 작전 투입을 했다고 하면 혹시 큰 딸이 위험에 처했을 수도 있지만, 작은 딸은 살릴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상황을 비교해 볼 때 어느 것이 더 적절한 판단이었을까?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 이종화 교수는 다른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국민들이나 언론들이 상황을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훈계를 하면서 두루 뭉실 넘어가고 있다. 이 점은 분명 이종화 교수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더 개탄스런 것은 아나운서의 그 다음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는데, 아나운서가 범인과 인질의 가족상황에 대해 질문을 했지만 정작 인질협상을 담당했던 이 교수의 답변은 한심하게도 ‘모른다’는 답변이었다.

    아니 범인의 가족관계, 범인과 인질 사이의 관계도 모르면서 인질 협상을 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호적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다른 가족의 증언 등을 보면 단 몇 초면 알 수 있는 관계를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 정도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는 말이 아닌가? 불상의 인질범도 아닌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특히 이번 인질상황이 범인과 부인, 전 남편, 의붓딸 등이 얽힌 가족관계로 인해 발생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확실한데 그리고 그 가족관계에서 발생한 분노가 지금 그 상황의 핵심인데 그것도 모르고 도대체 자칭 “미국에서 연수한 우리나라 1호 인질협상가” 이 교수는 그 상황에서 무엇을 가지고 협상을 했다는 말인가?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그 다음의 답변이다. 그가 말하길 ‘인질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모티브’라고 하면서 분노에 의한 인질 상황은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기에 작전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면서, 엉뚱하게도 이 사건과는 무관한 사건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클린턴 정권 때 발생한, (FBI가 강제 진압한) 광신도 집단 다윗파 사건과, 체첸 테러범들에 의한 러시아 극장 인질사건 등을 언급하면서, 인질 희생의 80% 이상이 경찰의 작전 초기에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적극 변호하고 있다.

    다윗파

    1993년 미국 텍사스에 발생한 광신자집단 다윗파 사건

    그러나 앞서의 두 사건은 종교적 광신도 집단과 분리 독립운동을 벌이는 체첸 테러 집단에 의한 사건으로서 이번 사건과는 본질적으로 맥락이 다른 사건들이다.

    이 두 사건의 범인들은 순간적인 분노가 아닌 종교적 신념이나 민족 독립의식으로 결사된 집단으로서 치밀하게 준비되고 실행한 사건들인 것이다. 그들은 죽음(순교)을 불사하고 저질렀지만 이번 안산사건은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이 교수는 엉뚱하게도 작전 투입 불가에 대한 변명의 근거로서 이 사건들을 활용하고 있다. 참으로 설득력 없는 논리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과는 달리 (세계 여러 나라의 인질 사건들 중) 반대로 작전에 의해 인질이 안전하게 구출된 경우도 적지 않다.

    작전을 실행하는가 아니면 협상을 지속하는가의 판단 기준은 오직 현장 상황에 따르는 것이고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다. 혹시라도 살릴 수 있는 인질을 구하지 못하고서 그것을 만회하고자 변명으로 엉뚱한 소리를 한다는 것은 책임 있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적어도 웃어가면서 할 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또한 이 교수는 협상 이후 특공대의 작전이 진행되었지만 정작 작전 상황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글쎄? 특공대가 투입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해당 사건이 벌어진 주택은 방이 여럿이라고 한다. 화장실까지 합치면 최소한 5개 정도의 분리된 공간이 있을 것이면, 특공대가 투입되어 동시에 여러 방을 접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고 그 상황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또 다시 인질극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때는 어떻게 할까? 본인이 이번 사건을 담당한 인질협상가라고 하면 적어도 근거리에서 상황파악을 하고 있어야 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인질협상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는지 답답하다.

    또 하나 경찰특공대가 진입하는 과정에서 의아한 장면이 있었다. 투입되는 경찰특공대 대원들의 몸에 아무런 무기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방송사 카메라가 포착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겠지만 적어도 주력인 대원들의 경우, 등에 맨 고리같은 것 정도, 창문을 깨고 뛰어든 후 인질 목에 칼을 들이댄 범인과 대면했을 경우 어떻게 하지? 손으로 잡나?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지금 상황은 칼로 사람을 죽인 범인이 인질의 목에 칼을 들이댄 상황이 충분히 예측되는데 제압할 무기도 없이 들어간다? 그럴 생각이었으면 왜 강제진입을 하는가? 그냥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지? 적어도 권총이나 테이저건이라도 들고 들어갔어야 한다.

    참으로 한심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혼란한 상황에서 총이 오발되거나 조준이 잘못되어 인질이 다칠 수도 있다. 그래서 만약 소지하지 않았다면 그런 이유 때문에 안 가져갔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그 사실을 바꾸어 말하면 대한민국의 경찰특공대가 그 정도의 상황 판단능력과 사격기술도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며, 평소 그런 상황에 대한 훈련을 받지 않았거나 실제 실행하기 어려운 준비상태였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심란한 마음에 오늘 아침 동안, 다른 채널에서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다른 방송 몇몇을 보니 그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변호사나 평론가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평소 사건사고, 범죄와 관련된 방송을 도맡아서 하고 있는 자칭 범죄(심리)전문가, 경찰행정학과 교수 등도 이번 인질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경찰을 두둔하거나 막연한 수준의 비판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그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결국 “(이론과는 달리) 현장 상황이라는 것은 매우 혼란스러워서 이 정도로 사건을 수습 대처한 것은 그런 대로 잘한 것”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어째 우리 국민들이 정치인들이나 고위공무원들에게 늘 들어오던 레퍼토리가 아닌가? 무엇인가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허둥지둥 대응, 겨우 수습한 후, 그들에 입에서 나오는 변명들, 여건 탓하고 상황 탓하고 국민의식 탓하고……. 결국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고 대충 두루뭉술 넘어간 기억들! 필자만의 기억인가?

    말 그대로 인질협상 전문가 아닌가? 위기대응 전문가 아닌가? 그리고 (경찰) 특공대 아닌가? 그 사람들 말대로라면 뭐가 전문가이고 뭐가 특공대인가? 위기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처럼 허둥대고 판단 착오하고 잘못된 대응을 한다면 그들에게 국민의 혈세를 주고 채용해서 교육시키고 해외연수를 왜 보내는가? 거의 답이 없을 것 같은 (지극히 혼란스러운) 현장상황에서도 냉철하고 엄격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전문가’ 아닌가?

    경찰이나 이 교수가 무슨 변명을 해도, 혹시라도 살릴 수 있었던 작은 딸은 죽었고 인질들은 5시간이 넘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는 되돌릴 수 없다. 경찰이나 이 교수는 5시간여 동안 대치하면서도 인질 숫자를 비롯해서, 작은 딸이 죽어가는지에 대한 내부 상황 판단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방송에 나와 얼굴에 웃음기 가득한 상태로 변명과 자화자찬으로 일관하고 있다. 도대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국가가 혈세를 들여 전문가를 키우는 것은 거기에 맞게 전문가답게 행동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전문가란 가장 엄혹한 상황에서도 칼 같은 판단력과 실행력으로 상황을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목도하는 저 모습에서 그런 그들에게 국민의 생명을 맡겨도 될지 깊은 의문이 든다.

    필자소개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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