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귀비꽃 그리고 기억들
    [푸른솔의 식물생태 이야기] 고혹적이나 치명적인
        2015년 01월 13일 10: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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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귀비는?

    양귀비 <Papaver somniferum L.>는 양귀비과 양비귀속의 두해살이 풀이다. ‘양귀비(楊貴妃)’라는 이름은 꽃이 중국 당 현종의 애첩 양귀비에 비할 정도로 아름답게 핀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양귀비와 흔히 관상용으로 재배되는 개양귀비(꽃양귀비)는 외형상의 구별이 쉽지 않으나, (i)양귀비는 줄기 및 전체에 털이 없으나 개양귀비는 털이 많고, (ii)양귀비의 열매는 둥근 모양이지만 개양귀비의 열매는 거꾸로 된 달걀 모양이며, (iii 양귀비는 중독성이 있는 아편을 생산하지만, 개양귀비는 아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구별된다.

    양귀비의 꽃이 지고 열매가 막 맺었을 때 그곳에 날카로운 칼 등으로 흠을 내면 하얀 유액이 나오고, 그 유액이 굳어진 것이 영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까지 치르게 한 그 유명한 아편(阿片)이다. 그런데 양귀비는 열매에서 생산되는 아편 즙액뿐만 아니라, 잎이나 줄기 등에도 아편을 함유하고 있어, 잎과 줄기를 말린 후 이를 차(茶)처럼 만들어 음료수로 먹어도 효과가 생긴다. 그래서 양귀비는 옛부터 천연 진통제로 사용되어 왔다. ​

    양귀비1

    마늘 밭에 핀 양귀비/ 촬영자 : 혼명

    양귀비2

    활짝 핀 양귀비 꽃/ 촬영자 : 할미꽃

    양귀비3

    양귀비 꽃의 열매/ 촬영자 : 푸른솔

    고통스러운 노동과 아편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은 양귀비를 마약(麻藥)으로 분류하고, 원료, 종자, 종묘의 소지, 소유, 관리, 수출입, 매매, 매매의 알선, 수수 및 그 성분을 추출하는 행위 전체를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아편이 가지는 중독성 때문이다. 아편의 재배와 복용에 관한 문제는 아편전쟁처럼 남의 나라 멋 옛날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현존하는 현실의 일이다. ​

    2012년 대검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양귀비를 재배하거나 복용하는 문제로 수사기관에 단속된 건수는 최근 다소 줄기는 했지만 전국적으로 매해 1,000여건에 달한다.​

    양귀비표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검찰이나 경찰의 보도자료를 보면 단속이 일어나는 지역은 대부분 농촌지역들이다. 노인들만 남은 농촌에서 현대 의학 덕택에 다들 수명들은 늘었지만, 고된 노동으로 뼈와 신경들은 그 수명을 따라가지 못하고, 퇴행성 류머티스와 신경통 등으로 정상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처방하는 양방 진통제는 위장과 다른 신체의 기능에 부작용을 일으킨다. 그래서 농촌에 남은 노인들은 어릴 적에 선대들이 식물성 천연 진통제로 사용하던 양귀비를 기억을 더듬어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줄기와 잎을 다려 차처럼 먹으면서 밤마다 아려오는 고통을 달랜다. 줄기와 잎을 다려 먹는 민간요법은 간헐적일 경우에는 특별한 부작용이 없으나, 문제는 상용하면 아편을 직접 복용하는 것과 같은 중독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속은 계속되고, 자식들마저 떠나고 없는 빈들에 남겨진 노인들은 전과자가 되어 간다. 검찰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인당 20그루, 100그루 등 기준을 상향하며 기준 이하의 양귀비 재배와 관련하여 단속되는 경우에는 기소유예 처분으로 전과자를 줄이려 하지만, 그것이 재배를 막을 수도 없고 기소유예는 처벌만 되지 않을 뿐 죄는 있는 것이므로 범죄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양귀비는 고혹적이지만 가까이 하기에는 치명적이다.

    불균형하게 발전하는 현대 의학의 취약점과 농촌지역에 제대로 된 통증 시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기형적 복지 현실이 낳은 복합적 결과물이다.

    정당에 대한 기억 그리고 양귀비

    2008년경에 생태, 평화, 평등, 연대 그리고 북한 체제와 이념으로부터 독립적인 대중정당을 건설하겠다는 것을 모토로 했던 ‘진보신당’이라는 곳이 창당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당원으로 가입하여 정당 후원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당원으로 만났던 한사람을 최근 우연히 만났다. 그 사람 왈, 당직 선거를 하는데 어디에 투표를 할 것이냐고 묻는다. 아직도 그 정당의 당원인가보다 생각하면서, 옛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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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피소드 1

    당원으로 가입하고 모임에 갔더니, 등산모임/공동 텃밭 등의 모임이 있으니 참여하라고 한다. 나름 재미있을 것 같아 가입했고, 참여했다.

    등산모임을 갔더니 전형적 운동권(?)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못타는 산을 뻘뻘거리며 오를 뿐, 등산을 잘하는 사람도, 등산과 건강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도, 당시 지방자치단체마다 만들어지고 있었던 둘레길에 대한 정보와 문제점 그리고 해결방안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없었다.

    텃밭 모임은 농장주인 아줌마가 시키는 대로 상추를 몇 포기 심고 그 옆에서 삼겹살 구어 막걸리 한 잔 했던 기억을 제외하고는, 식물에 대하여도, 농업에 대하여도, 그것과 도시생활의 연관관계에 대하여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몇 번 모임 끝에 사람들은 하나 둘 나오지 않기 시작했고, 모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 에피소드 2

    2008년 당시 한미FTA 체결로 나라는 시끄러웠고, 진보신당은 당론으로 한미FTA 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열성 당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을 붙들고 왜 한미FTA를 반대하냐고 물었다. 현재 진행되는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의 일환이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며 그 일환인 한미FTA를 반대한다고 했다. 대답은 간명했지만 그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그리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한미FTA외에 다른 나라와 체결되는 FTA도 다 반대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다른 답을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반대한다고 하였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폐쇄경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인지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공정무역에 의한 국제간의 거래는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공정무역의 관점에서 FTA를 체결할 수도 있는 것 아닌지라고 물었다. FTA에는 신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선 세계화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이야기는 순환되고 있었다.

    그런 것 다 떠나서 이미 한미FTA는 체결되었고, 피해를 보는 산업과 계층들이 있으니 이에 대한 대책에 대한 논의도 함께 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세계화에 찬성의 여지를 남겨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문제점에 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며, 각종 논문과 책을 소개하고 같이 공부를 하자고 한다. 대학교나 대학원의 한 학기 커리큘럼은 족히 되어 보였다. 그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동의를 못할 경우 발생할 비용과 에너지는? 그것은 평당원이 할 수 있는 일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부터 진보신당에서 벌여지는 정치적 논의에는 입을 닫고 침묵했다.

    # 에피소드 3

    정부의 미국 소고기 수입 조치와 관련하여 국민들 사이에 공분이 발생하였고 그것은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그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대거 당원으로 가입하는 일이 있었다. 많은 신입당원이 유입되었고, 새로운 당원들은 당의 방향과 정치적 입장에 대하여 활발하게 자신들의 견해를 표출하였고, 곳곳에서 토론과 충돌이 벌어졌다.

    우연히 신입당원이 없는 고참 열성당원(?)이 모인 자리에 갔더니 신입당원들의 주장의 위험성과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교정하기 위하여 교육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한 교육 체계를 긴급히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논의하고 있었다. 좀 과장하면 순간 ‘교화소’가 떠올랐다. 나도 교육대상으로 몰려 이해도 되지 않는 공부를 해야 될지도 모르겠구나, 교육 후에 평가서를 요구하지는 않을까? 직장에서 잘못으로 시말서를 적어야 하는 상황과 같은 것? 그 이후로 당원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일체 나가지 않았고 정당의 어느 곳에서도 정치에 관한 개인적 발언은 하지 않았다.

    # 에피소드 4

    처음 당원 가입 당시 가졌던 설레임은 없어졌다. 그러나 어김없이 당비는 빠져 나가고 있었고, 관성으로 중간중간 필요한 후원도 했다.

    노회찬, 심상정 전 의원이 진보신당 후보로 서울시장과 경기도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후원을 했지만 한 사람은 저조한 득표율로 낙방했고, 다른 한 사람은 도중에 야권연대를 표방하며 사퇴한 일이 있었다. 둘 다 결과는 참패이었지만 각 후보가 택한 방식이 달라, 각 지역의 당원들 내부에서 그리고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평가를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궁금하여 오랫만에 당원 게시판이라는 곳을 들렸다.

    경기도지사 후보를 사퇴한 심상정 전 의원에 대한 성토가 빗발치고 있었다. 역시 다른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그들의 비판 논점을 살펴보고자 글들을 꼼꼼이 읽어 보게 되었다.

    정치적 비판을 넘어서 일부 당원들은 당기위원회에 징계를 제소하고 있었다. 놀랬다. 공직선거에 출마한 후보자가 후보직 사퇴를 결정할 권한이 없는 건가? 내가 모르는 심오한 원리가 있나 싶어 진보신당의 당헌/당규를 살펴보게 되었다. 진보신당의 당헌/당규는 UN이 제정한 UN회의규칙(Rules of Procedures) 그리고 그것을 반영한 대한민국 국회법의 내용이 투여된 대의제 민주주의 운영 원리가 반영된 평이한 것이었다.

    대의제 민주주의라면 선거의 후보나 대표자들은 구속적인 위임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정의 재량권이 있는 위임인데? 출마한 여러 후보들 사이의 입장을 조율하기 위한 관련 부서와 협의를 진행하여야 할 절차적 문제의 위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정치적 비판의 대상을 넘어서 징계의 대상이 되는 문제일까 하는 의문, 그것이 내가 아는 상식이었다.

    그러나 징계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완강했고, 당 강령 위반, 보수주의자들과 타협한 기회주의자 등이 언급되고 있었다. 심지어는 제명처분까지. 그리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심상정 전의원은 징계되었다. 그리 기억된다.

    선거공간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고, 당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마지막에 야권연대를 위해 후보 사퇴를 한 것이 정치적 비판을 넘어 제명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아, 나 같은 그저 어쩡쩡한 태도로 생태, 평화, 평등 그리고 연대와 같은 추상적 내용에만 동의하여 가입한 당원이 발언과 행동을 하면? 바로 제재 대상이겠구나! 그것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탈당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정기적 당비를 차라리 사회적 약자에게 후원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머리를 맴돌았다.

    # 에피소드 5

    ​그리고 1여년이 더 흘렀다. 뇌성마비 장애인 봉사활동 때문에 인연을 맺은 곳에 정기적 후원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진보신당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주위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탈당계를 내고 있었고, 나도 탈당계를 내었다. 이유를 묻길래 당시 논쟁 중이던 통합/독자 논쟁이 싫어 그럽니다 라는 취지로 그냥 그러고 말았다.

    ​그리고 1여년 진보신당 시절 당원으로 인연이 있었고 내가 탈당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대뜸 내 이름을 부르더니 “기회주의자들, 대의를 배신한 자들은 다 내보냈거나 스스로 나갔습니다. 진보 독자의 뚜렷한 노선만 남았습니다. 돌아오세요. 함께 새로운 당을 만듭시다”라고 한다. 그 말이 왜 그리 슬펐던지. ‘미안합니다. 제가 기회주의자이어서 그곳으로 다시는 못 갈 것 같습니다.’며 조심스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사람도 나도 애처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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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 일인가 하여 정말 오랫만에 진보신당의 홈페이지에 들렸다. 이름도 노동당으로 바뀌어 있었다. 당대표를 비롯하여 당직선거를 치루고 있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독자노선, 대중정당 등등 그때처럼 구호들은 현란했다. 어떤 이들은 나간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았노라고 호소를 하고 있기도 했다. 나는 가까이 가지 않았으므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았다고 위안해 본다. 독자노선, 대중정당 이런 구호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 저 말에 동의하는 순간 교육 받아야 하고 그것을 주창한 사람이 말하는 주의에 충실히 따라야 할 것이라는 아득함만이 밀려온다.

    양귀비는 아름답고 고혹적이지만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이다. 나에게 진보신당은 그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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