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체제와 한국사회 변화
[책소개] 『민주정부 10년, 무엇을 남겼나』(참여사회연구소 외/ 후마니타스)
    2015년 01월 10일 11: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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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

민주주의는 정치적 결정에 도달하기 위한 제도상의 여러 협정 가운데 하나다. 그 가운데서도 민주주의는 또한 광범위한 국민의 참여와 경쟁, 주기적으로 치러지는 자유로운 선거를 그 특성으로 삼는다.

이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1987년 이후 절차적 수준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1997년 야당으로의 평화로운 정권 교체와 더불어, 한국 민주주의는 새로운 도약을 이루었다고 평가받아 왔다.

그렇지만 민주화 이행 시기에 제기되었던 이와 같은 평가에는 여전히 제기되지 않았던, 아니 아직 그 미래로 유보되어 있던 질문이 남아 있었다. 즉 민주화 이후에는 어떤 사회가 도래했는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질적으로 좋아졌는가? 민주화 이후 근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중간 결산이라 할 수 있다.

민주정부 10년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시기의 정치경제

오늘날,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를 둘러싼 평가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는 단어는 바로 ‘불평등’이다. 바로,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소득과 부가 대재벌 등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는 불평등화 또는 빈부 격차가 빠르게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불평등의 문제가 최근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1997년 김대중 정부의 등장 이후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불평등’, ‘격차’, ‘양극화’와 같은 단어들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문제들에 대한 원인은 민주 정부 그 자체에서 논의되고 찾아지지 않았다. 외려 1997년 김대중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한국 사회에 ‘강제된’(?) 신자유주의 구조 개혁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외부에 있었고, 이에 대한 해법은 비록 일시적인 고난과 어려움은 있겠지만, 민주 정부하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 역시 막연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이런 기대를 반영하듯, 10여 년 전만 해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질적으로 나빠졌다’는 어느 정치학자의 진단은 수많은 논란과 반론을 초래하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대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소위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에 이르는 10여 년의 시기 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양극화 성장과 이에 따른 불평등의 심화가 오히려 지속되었고, 심지어 확대되기도 했던 것이다.

오히려 이들 두 정부에 기대되었던 복지 체제는 취약하기 짝이 없었고, 불평등은 완화되지 않았다. 거꾸로 오늘날 회자되는 ‘새로운 가난’의 시대 또는 새로운 ‘세습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가 바로 이 시기에 등장했다는 평가가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어 왔다는 주장은 깜작 놀랄 만한 특별한 발견이나, 어느 일부 학자들의 유별난 진단이 아닌 ‘상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10년,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시기에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왜 국민의 정부인가, 왜 참여 정부인가?

물론,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시기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그저 공백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이 시기에 대한 논의는 주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관점에서 김대중, 노부현 정부의 무능력 혹은 포퓰리즘적 국정 운영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거나, 지난 정권의 적폐로 거론되어 왔다. 특히 이런 화법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기에 대대적으로 동원되어, 지난 정권을 평가하는 주요 담론으로 기능을 해왔다.

다른 한편, 오늘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대비되는 두 지도자의 이미지를 통해 진정성 있고, 책임 있는 지도자로 다시 한 번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김대중 · 노무현 정부에 대한 최근의 평가는, 그 대조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지난 두 정부 시기에 이루어진 정책과 국정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에 기반을 두고 있기보다는, 대체로 김대중·노무현으로 상징되는 두 정부의 지도자들이 가진 이미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한계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평가들은 한편으로는 현 정부의 문제점을 은폐하기 위한 핑계로 활용되거나,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또다시 신화화함으로써 당시의 문제점들에 대한 진지한 평가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진전을 위해서도, 이른바 개혁 · 진보 세력의 새로운 집권을 위해서로 바람직한 평가 방식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기의 한국 민주주의의 성격을 다루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김대중·노무현이라는 두 지도자의 개인적 이미지와 그들의 의도만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지 않다.

외려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라는 화려한 수사 속에 등장한 두 정부가 현실과 맞부딪치며 어떤 사회 경제적 현실을 만들어 냈는지를 살피려 한다. 나아가, 이 책은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 노무현 정부 하에서 나타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확인하는 데에서 멈추지도 않는다.

이 책의 목적은 이런 현실을 넘어, 각 부문에서 불평등의 구체적 성격과 원인, 재생산 기제, 정책적 과오와 새로운 과제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굵직한 질문들과 치열하고 신중하게 씨름하고 있다.

즉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거시 경제와 기업, 노동과 소득, 자산의 불평등은 과연 어떤 형태로, 어떤 원인 기제에 의해 악화되었는가? 그런 문제적 현실을 만들어 낸 지배 집단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떤 자원과 전략으로 그 일을 했는가? 사회 전반의 격동 속에서 다양한 사회집단의 삶의 궤적은 어떻게 갈라졌는가? 누구의 삶이 더 윤택해졌고, 누구의 삶이 더 궁핍하고 불안해졌는가?

더 많은 정의와 평등, 인권과 존엄을 약속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어떤 정책으로 격차와 불안을 심화시켰으며 또 어떤 정책으로 그것을 완화하거나 상쇄하려고 했는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 만들어진 법과 제도 가운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꿔야 하나? 궁극적으로, 199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남아 있는 쟁점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연구의 시기 및 필자들의 관점과 관련해,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있다. 이 책의 필자들은 1997년 이후 10년을 평가함에 있어, 완고하게 하나의 절대적 진실을 밝혀내려는 야심을 갖기보다는, 서로 경합하는 인식의 가능성들을 개방하고, 그것들을 저울질하는 숙고와 신중함으로 통해 현실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점에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관점의 편차는 물론, 다양한 쟁점들이 형성되어 있다. 독자들은 여기 수록된 글들이 각 분야에서 어떤 입장을 지지하고, 또 어떤 입장을 거부하는지 살핌으로써 각각의 분야들 둘러싼 연구자들 사이의 쟁점 역시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가장 큰 쟁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의 성과와 유산, 그리고 한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특히 가장 치열한 쟁점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현재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과연 어느 정부에게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이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경쟁하는 정치 세력들은 극도로 상반된, ‘진영론적’으로 선악을 대비하는 대답을 내놓곤 한다.

하지만 당면한 정치적 갈등 구도에서 조금 거리를 둘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본다면 이것은 몹시 복잡하고 정밀한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임이 분명해진다. 결코 현재의 문제를 모두 과거 정권의 적폐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의 정부는 오늘의 문제에 대해 일차적인 책임을 갖고 있지만, 어떤 정권하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가 오로지 그 정권의 정책 실패에만 기인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1997년 이후 전개된 사회경제의 변동에 대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과연 어떤 측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긍정적 혹은 부정적 기여를 했는지를 세심하고 명확하게 짚어 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과거 정부에 대한 평가 차원의 과제만이 아니라, 현 정부 혹은 앞으로 올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변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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