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은 땅에 온 몸을 맡겨
    자본의 폭력에 저항하다
    [기고] 정리해고·비정규직법 전면폐기 위한 배밀이투쟁
        2015년 01월 09일 10: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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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월 7일부터 11일까지 5일간 작년에 이어 제2차 배밀이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마지막 날 도착 목표를 청와대로 잡은 행진대오는 어제 오전 쌍용자동차 구로정비사업소를 출발했다.

    80여명의 행진단이 체감온도 영하 12도라는 차가운 날씨에 길바닥을 엎드린 채 굼벵이처럼 앞으로 나아가 해질 무렵 한국재벌의 심장부인 전경련에 도착했다. 나는 어제 하루 배밀이 투쟁에 참가했다. 구로역을 돌아 영등포역을 거쳐 여의도 전경련 회관 앞까지 몸을 낮추고 또 낮춰야 했다.

    일어설 때는 온 힘을 다해 땅과 맞서야 한다. 그러나 곧 땅에 엎드리지 않고서는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길거리에는 온갖 오물자국과 먼지가 겹겹이 쌓여 있고 지나가는 자동차 매연과 소음 그리고 공권력의 교묘한 위력까지 배밀이 행진단을 방해했지만 발자국 수와 자신의 몸길이만큼 목적지는 좁혀졌다.

    차가운 날씨에 푸르름의 절정은 영등포로터리에서 여의도로 향하던 서울교 인도 위에서 행진단 모두가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볼 때였다. 아름다움이란 게 이렇게 처절하고 냉정한 것이라는 점도 만끽했다.

    이날 저녁 대한극장에서 마지막으로 상연된 영화 <카트>를 보면서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25년 전 영화 <파업전야> 제작에 참여했던 분이 대표로 있는 명필름이 만든 작품인데 오늘날 비정규직 노동자 현실을 생각할 때 여전히 ‘파업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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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해고, 비정규직 전면 폐기 배밀이 투쟁의 모습(사진=노순택)

    차갑고 딱딱한 보도블럭과 아스팔트를 온 몸으로 껴안으며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양 무릎, 양 팔꿈치 그리고 이마까지 땅에 대며 큰 절을 올리며 앞으로 나아간다고 해서 오체투지, 우리말로 배밀이(투쟁)라고 하는데 오체가 아니라 전체(온몸)투지라고 해야 마땅해 보인다. 몸의 일부가 땅에 닿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땅을 껴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딛고 사는 땅을 이처럼 낮은 자세로 껴안는 것은 흔한 일이다. 땅은 원래 있는 자연물이고 우리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무생물이며 사적소유를 통해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만 생각하고 산다. 그런데 땅은 우리를 탄생시키고 먹여 살리는 생명의 원천임을 지각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땅에 엎드려 야만적 자본주의 수탈과 착취에 몸부림치는 삶을 생각하는 것은 매우 숭고한 일이고 그런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다.

    높은 곳만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앞만 쳐다보며 질주해 온 삶에서 아래보다 더 낮은 바닥을 향해 머리 숙여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생각하는 시간은 더 없이 소중하다. 비록 자본주의의 더러운 오물이 덕지덕지 덧칠된 대지라도 이 땅이 품은 뜨거운 용암이 분출할 때는 한 줌의 재로도 남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에 우리는 더 겸손하게 살아가야 한다.

    한편으로 대지의 굳건함으로 온갖 불의에 맞서 투쟁하며 살아가야 한다. 배밀이 투쟁의 의의라고 생각한다.

    전날 쌍용자동차는 한 달여간 굴뚝농성 중인 두 명의 해고자에게 하루 100만원의 간접 강제금을 부과하는 퇴거단행 가처분 신청을 수원지법 평택지청에 냈다. 2차 배밀이 투쟁이 쌍용자동차 구로정비사업소에서 시작한 것은 바로 이 투쟁의 절박함 때문이다.

    공장을 해외투기자본에 팔아넘겨 기술까지 도둑질당한 것도 모자라 3000명이 정리해고 당했고 26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목숨을 잃은 야만에 맞선 지난 6년여 투쟁의 한 가운데서 펼쳐졌다.

    작년 말 기륭전자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1차 배밀이 투쟁은 마지막 날 청와대로 향하는 길인 광화문에서 결국 경찰에 막혔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 7시간 동안 추위에 떨면서 억울하고 분노에 치 떨리는 통곡을 해야만 했었다.

    2차 배밀이 투쟁 2일차 역시 첫날처럼 차가운 날씨에 진행됐다. 전경련을 출발해 LG U플러스 농성장을 거치고 국회와 새누리당 앞까지 진행했다. 이틀 동안 한 사업장의 비정규직노동자나 해고 문제를 넘어 이 땅 전체에 넘쳐나는 자본의 비정규직화·정리해고의 폭력과 야만을 없애기 위한 몸부림이 가장 낮은 자세로 땅에 몸을 엎드려 나아갔다.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야만적인 자본과 폭력권력의 동토의 땅을 배로 밀고 걸어갔다.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리는 땅이다. 이 땅 위에서 인간 세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는 노동자가 차별과 멸시를 당하고 직장에서 쫓겨난다. 견디다 못해 목숨까지 버려야 하는 야만세상이다. 생명의 땅이 죽음의 동토로 변해가고 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시대다. 생명조차 빼앗아가는 동토의 땅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배밀이 행진은 생명을 불어넣는 투쟁이다. 온 몸을 땅에 엎드려 차가운 얼음을 녹이는 입김을 뿜어낸다. 그 입김자국이 마르기 전에 다시 반복한다. 멈추었던 엔진에 시동이 걸리듯 얼어붙은 땅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듯 조용한 혁명이 시작된다.

    이제 2차 배밀이 투쟁 행진은 3일 더 진행된다. 하루라도 참가하자. 배밀이가 어려우면 피켓을 들고 함께 걷기라도 하자.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3차, 4차 배밀이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비정규직이 철폐되고 정리해고가 사라지는 세상, 자본의 착취가 끝나는 세상을 향한 배밀이 오체투지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투쟁이 일부 투쟁하는 노동자들만이 전개하는 투쟁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의 투쟁이 미약한 것은 우리가 아직 더 낮은 곳에서 연대투쟁을 조직하지 못한 탓 아닐는지. 노동절이나 전국노동자대회 때도 이런 배밀이 행진을 전개하면 어떨까? 전국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한 날 한 시에 비정규직과 정규직 철폐를 위해 배밀이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는 것은 가능할까? 전 지구적으로 배밀이 오체투지 국제공동의 행동을 제안하면 어떨까?

    필자소개
    좌파노동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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