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 발명가 존 케이지
    [클래식 음악 이야기]"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음악"
        2015년 01월 07일 10: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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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말. 말.

    “음악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이 귀 기울어 듣지 않을 뿐이다.”

    “그 소리는 내가 죽은 후에도 계속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음악의 미래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요. 이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정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 바로 <4분 33초>라는 곡을 만들게 했습니다.”

    미국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는 바흐와 베토벤 음악을 좋아한 이웃 아주머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그런데 꼬마는 고전음악을 익히고 훌륭히 연주하는 데 필요한 지루한 연습보다 악보를 보고 그 자리에서 연주하는 초견에 더욱 관심이 컸다.

    1933년 케이지는 화성을 중시한 20세기의 비엔나 악파인 아놀드 쇤베르크의 제자로 입문하여 작곡에 필요한 기본적인 화성학과 대위법 등을 배운다. 그런데 이때도 케이지는 틀에 박힌 이론과 체계가 자신을 마치 출구 없는 방에 갇힌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그리하여 그는 다양한 음향 실험을 통해 나름의 새로운 출구를 만들어 탈출을 시도한다.

    케이지의 출구 찾기는 발명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 존 밀턴 케이지John Milton Cage Sr(1886-1964)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잠수함을 발명하고, 정전기장 이론(Electrostatic Field Theory)을 세워 우주 연구의 초석을 세운 대단한 사람이었다. 일찍이 피아노 소리에 관심이 많았던 케이지는, 음높이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피아노 건반에서 나는 소리를 비전통적인 방법으로 변화시키는 실험에 옮긴다.

    케이지는 귀에 익은 기존의 피아노 소리를 다양한 색깔을 가진 음향으로 전환시키는 실험을 했다. 건반을 눌렀을 때 햄머(hammer)가 때리는 현과 현 사이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생활용품(다양한 나사, 볼트, 벨트, 털실, 포크, 나무빗장, 콩, 고무조각, 플라스틱 등)을 끼워 넣어 소리를 내 본 것이다. 이 소리야말로 케이지가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발명품이었다.

    새로운 소리를 발명하고자 케이지는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악기의 여왕” 피아노에 가혹한 행위를 자행한다. 악기의 여왕이 케이지에 의해 “소리의 여왕”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새롭게 탄생한 “여왕”이 바로 ‘프리페어드 피아노 Prepared Piano’, 즉 장치된 또는 조작된 피아노이다.

    케이지가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흑인 여자 무용수인 시빌라 포트(Syvilla Fort, 1917-1975)에게 무용 작품을 의뢰받은 일 때문이었다. 그는 이 작품에 어울리는 아프리카풍 타악기곡을 만들었는데,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 공연장이 비좁아 타악기들을 배치할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케이지는 예전에 작곡을 배웠던 스승 카웰(Henry Cowell)이 피아노 내부에 있는 현을 손으로 뜯으면서 그 현에 달걀을 굴려 떨어뜨린 것에 착상하여 곧바로 피아노 소리를 타악기 소리로 바꾸는 소리 발명에 들어갔다. 과연 이 ‘프리페어드 피아노’는 “단 한 명의 연주자가 이뤄내는 타악기 앙상블”을 선보였다. 이렇게 하여 그의 최초의 프리페어드 피아노 작품인 <바카날 Bacchanle>(1940)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 후에도 케이지는 <마셀 뒤샹을 위한 음악 Music for Marcel Duchamp>(1947)과 <소나타와 간주곡들 Sonatas and Interludes> (1948) 등을 통해 다양한 음색과 음향을 창출하는 시도를 계속한다.

    특히 <소나타와 간주곡들>은 인도 비평가인 쿠마라스와미(Ananda K. Coomaraswamy, 1877-1947)의 <시바의 춤 The Dance of Shiva>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여기서 케이지는 인도 미학의 영원한 9가지 감정들(즐거움, 웃음, 근심, 성냄, 용기, 혐오, 두려움, 경이로움, 평화로운 고요함)을 표현해 낸다.

    케이지는 저명한 인도 철학자 기타 사라브하이(Gita Sarabhai, 1922-2011)에게 인도음악과 철학을 배운다. 사라브하이는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 신성한 경지에 도달하게 해 주는 것이 음악의 목적이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케이지에게 전수한다.

    일본의 선(禪)불교 대가인 다이세츠 스즈키(Daisetz T. Suzuki, 1870-1966)를 만나면서 동양사상에 대한 케이지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하루는 케이지가 그에게 음악과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너무나 황당했다. “나는 음악에 대해서 그리고 예술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무성의한 답을 받았다.

    그러나 이 답변 안에는 너무나 진지하고 심오한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스즈키의 답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것이 곧 가르치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선禪의 가르침이었다.

    케이지는 더 나아가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 현상의 원리를 설명하는 중국의 <주역周易>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주사위를 던져 작곡가가 제시하는 우연적인 요소나 불확정 요소를 연주자가 마음대로 결정하도록 하는 우연성 음악(Aleatory Music 또는 Chance Music)을 창안해 내기도 한다.

    음악적 절차에 있어서 어떤 법칙이나 한계가 없는 우연성 음악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작곡이나 연주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예기치 않는 상당한 자유가 주어지는 흥미와 긴장감을 부여하는 음악이 우연성 음악이다. 작곡가는 자신이 사용할 음이나 그 음을 사용하는 방법을 미리 정해 놓지 않고 마치 주사위를 던져서 결정하는 것과 같은 방법을 쓴다. 연주자는 자신이 연주할 음과 음악의 부분 또는 연주 순서 등을 자의적으로 임의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연주자가 작곡가가 되는 것이다.

    그는 <피아노를 위한 변화의 음악 Music of Changes for Piano>(1951)에서 대부분의 음악적 요소들(음고, 음가 등)을 연주자로 하여금 주사위를 던져 결정하게 한다. <겨울 음악>(Winter Music for piano)(1957)은 연주자의 수도 정해져 있지 않다.

    한 명에서부터 스무 명의 피아니스트들에 의해 연주될 수 있다. 연주자들은 어떤 순서로 연주되든지 혹은 생략되든지 상관없다. 템포도 자유롭고 음자리표도 일정한 한계 내에서 변동이 가능하다. 연주자는 전체 혹은 부분만을 연주할 수도 있다. 이들 각각의 악보에는 1개에서 61개까지의 화음들이 흩어져 있으며 각각의 화음은 1음에서 10음까지의 음들, 혹은 음 덩어리로 되어 있다.

    케이지

    존 케이지

    케이지는 음정들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한 도표, 그래프, 그림 등 상징적 부호를 통해 새로운 소리 발명을 시도한다. 오선에 그려지는 음정들의 전통적 기보법으로는 새로운 소리 발명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케이지는 새로운 방식의 표기법을 또한 발명한다. 투명한 플라스틱에 선, 점, 다양한 음향 표시로부터 연주자는 여러 도표를 겹쳐놓고 교차되어 나타난 선과 점을 가지고 직접 연주하는 방식이다.(<폰타나 믹스 Fontana Mix> (1958))

    케이지는 소리에는 작곡가의 의도가 반영된 악보에 지시된 소리가 있고 악보에 표기되어 있지 않은 소리가 있는데, 우리는 표기되어 있지 않은 소리에는 등한시하여 왔다고 보았다. 따라서 작곡가의 의도가 담긴 소리를 완전히 없앰으로써 악보에 기록되지 않은 나머지 소리들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자연 속에 파묻혀 있는 소리를 끄집어내어 우리의 귀를 자극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악보는 일종의 대본이나 지시사항이 되는 것이며, 작곡가는 음의 창조자가 아니라 음의 이벤트에 참관하는 참관자에 불과하다. 작곡가의 의도를 지시하는 악보는 더 이상 전통 개념의 악보가 아닌 하나의 “도구(tool)”가 되는 것이다.

    케이지의 <음악 산책 Music Walk for one or more pianists>(1958)에서 ‘도구’는 모두 10페이지로 되어 있다. 이 도구를 구성하는 것은 많은 점들과 마치 5선처럼 보이는 장방형의 투명도이다. 여기서 점들은 ‘소리의 사건들’을 나타내며, 오선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사건들의 카테고리를 나타낸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실험하려는 케이지에게는 역설적으로 세상의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정적의 공간이 필요했다. 존 케이지는 하버드 대학의 모든 소리를 흡수하도록 되어 있는 녹음실을 찾았다. 이렇게 소리를 완벽하게 차단한 공간에 들어왔음에도 그의 귀에는 여전히 소리가 들렸다. 이 세상에서 완벽한 소리의 차단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케이지는 그 유명한 <4분 33초>(1951)를 선보인다.

    케이지433

    존 케이지의 ‘4분 33초’의 악보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 1926-1996)가 시계와 악보(제1악장: 33초, 제2악장: 2분 40초, 제3악장: 1분 20초)를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케이지의 지시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악장이 바뀜에 따라 피아노 뚜껑을 열고 닫기를 거듭한다. 피아니스트는 아무런 피아노 소리를 내지 않는다. 무대 위는 조용하다.

    그러나 무대 아래는 예기치 않은 관객들의 기침소리, 종이 만지는 소리, 공연장 밖의 바람 소리 등으로 다양한 소리들이 순간순간 생산되고 만들어지면서 4분 33초라는 시간이 흐른다. 무대 위의 조용한 피아니스트가 그동안의 모든 소리를 생산해 준 관객과 자연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인사하고 무대를 뒤로 하고 떠난다. 그 모든 소리, 소음들이 케이지의 <4분 33초>라는 시간 프레임 안에서의 작품이다.

    케이지는 <0분00초>(1962)에서 의도되지 않는 소리에서 의도하지 않은 행위로까지 그 개념을 확대시킨다. 청중들은 여러 곳에 놓여 있는 스피커를 통해 비명소리, 침 삼키는 소리, 찰칵거리는 소리 등을 경험한다. 이는 케이지가 연주회장 2층에 앉아 타자기로 편지를 타이핑하면서 물을 마시고, 의자를 삐걱거리는 행위로부터 얻어지는 자연스러운 소리들을 관객들은 들어야 했다.

    “공장을 지나치는 트럭과 음악학교를 지나치는 트럭 중 어느 쪽이 더 음악적인가? 학교 앞에 있는 사람이 음악적이고 학교 밖에 있는 사람은 비음악적인가?” (케이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음악”이라고 한 소리 발명가 케이지에게는 그 어떠한 소리도 음악의 재료가 될 수 있다. 과거에 사람들이 음악으로 간주하지 않던 소리들을 과감하게 재료로 사용했다. 즉 우리 주변의 일상이 얼마든지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를 가던 우리의 귀에 들리는 대부분은 소음이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주의 깊게 들으려한다면 소음이 얼마나 환상적인 것인지를 알게 된다고 하였으며 가장 자연적인 소음이야말로 경이로운 음악이라고 한 케이지의 음악사상은 동양철학에 매우 근접해 있다.

    ***

    케이지의 음악과 철학에 대한 권위자 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는 “케이지의 음악은 어디에 도달하는, 진보를 달성하는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 대한 노스텔지어도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다. 묵수(acquiescence)를 통해 청자는 지금(now) 속에 산다”고 했다.

    케이지는 온갖 갈등과 번뇌를 소멸시키고 고통이 극복되는 깨달음의 상태, 무기적(inorganic) 불활적(inactive)인 열반 상태를 위해 소리를 만들었다. 케이지에게 침묵은 주위 환경을 인식하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합일하여 편안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 동시에 재료였다.

    20세기의 실험주의자인 케이지가 말하는 전위(前衛)음악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음악이다. 전위란 창작, 발견, 변화와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케이지는 예술은 자아의 표현이 아니라 정신을 바꾸는 것, 또한 자아로부터 해방시켜 감각을 통해 밖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전위 음악이란 인간의 마음을 평화롭고 평온하고 청정하게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영혼을 열어 줌으로써 일상생활을 좀 더 순도 높게 정화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선(禪) 사상이 그의 음악 세계를 뒷받침해 준다. 우연을 자연의 근원적인 원리로 인식한 그는 예술과 인생 사이의 간격을 없애버리기 위해 예술가 자신을 배제하여 자아와 타아의 구별을 흐리게 하는 선불교 사상이 적절하다는 것을 알았다.

    케이지는 새로운 소리를 창출하기 위해 음들을 탈출시켰다. 케이지(Cage)는 전통적 체제라는 새장(cage)속에 그동안 묶여 갇혀 있던 작곡가, 연주자, 청취자에 대한 정체성, 악보에 대한 고정관념, 악음과 소음에 대한 개념, 또는 집착들을 새장 밖으로 훨훨 날아 보냄으로써 자유로운 소리를 발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케이지는 갇혀 있던(caged) 소리를 해방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옛날에 작곡가는 천재였고, 지휘자는 폭군처럼 연주자들을 쥐어짰고, 연주자들은 지휘자의 노예노릇을 했다. 그러나 우리 음악에는 폭군도, 노예도, 천재도 없다. 모두가 동등하게 함께 협조해서 만들어간다. 예전에는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고,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듣도록 무엇인가를 한다.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도 누구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고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케이지)

    필자소개
    한양대 음악대학 기악과와 동대학원 졸업. 미국 이스턴일리노이대 피아노석사, 아이오와대 음악학석사, 위스콘신대 음악이론 철학박사. 한양대 음악연구소 연구원, 청담러닝 뉴미디어 콘테츠 페르소나 연구개발 연구원 역임, 현재 서울대 출강. ‘20세기 작곡가 연구’(공저), ‘음악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번역), ‘클래식의 격렬한 이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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